3, 5, 6, 9, 10 거짓말.
1. 일부 사실.
2. 일부 사실.
7. 일부 사실. (들어가기 쉬웠다는 부분만 사실. 구청장, 군수는 직선제인데 무슨 소린지?)
9. 일부 사실. 지금도 일부 사실.
10. 비정규직은 광범위하게 존재했으나 비정규직이라 부르지 않았고, 법적 근거가 없었을 뿐. 그 법적 근거를 만들어준(합법화 한) 것이 IMF를 계기로 한 전경련 등 사용자단체의 공격과 그를 핑계로한 재경부처, 국회우원들의 밀어붙이기, 민노총의 후퇴와 한노총의 투항.
@Just.Do. 뭘 알고가 아니라 내가 저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해 왔기에 아는 겁니다.
"IMF 전"이라는 걸 80~90년대 얘기라고 가정하고 얘기하자면,
3. 중졸도 나사만 돌릴 줄 알면 취직 을 하긴 했죠. 마찌꼬바라고 영등포나 구로 골목골목 있는 직원 2~3명 되는 영세공장이나 깜빡 졸면 손가락 잘리는 프레스 공장에. 그리고 진급해서 공장장이 된다? 뭔 그런 헛소리를... 그 당시에도 대기업 공장 정규직은 꿈의 직장이었어요.
5. 그 당시에는 병역자원(인구수)이 넘쳐났기 때문에, 고졸 밑으로는 현역 주지도 않았습니다. 고졸도 면제나 방위 받는 사람이 30%가 넘을 때인데 무슨 중졸, 초졸이 군대가서 부사관이나 주임원사를 달아요?
더 하자니 귀찮아서 이만합니다만, 저 위의 글에서 진실은 30%도 안됩니다.
저건 빼박 선동이예요.
지금도 중소기업 다니면서 프레스 찍고 새벽까지 잔업하면 취업 가능해요.
그런데를 안 가려고 하니 취업이 어려운거죠.
아울러,
그 당시 주 5일근무가 아니라 주6일근무에 야근 수당도 제대로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무슨 과거가 다 좋고 지금이 어려운 것처럼 곡해하지 마세요.
페이퍼백
IP 182.♡.7.249
09-25
2018-09-25 13:49:36
·
IMF이전의 한국이 일본 버블과 같은 수준은 아니었죠. 본문의 많은 부분에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대졸자들의 9급 공무원 진학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요. 그나마 쉽지도 않았죠.
경찰직 9급도 당연히 아주 쉽지는 않았고요.
공장가서 나사돌리다가 공장장... 공장장 같은 사람들은 70년대에도 별도로 뽑아서 승진되는 자리였죠.
자영업이 개꿀이라... 진짜 그랬으면 다들 자영업 했겠죠.
라이센스
IP 119.♡.250.15
09-26
2018-09-26 02:28:53
·
구체적인 통계와 근거자료도 없이 자신과 주변 일부의 경험 혹은 추억만으로 과거의 일부 사실을 일반적 진실로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죠.
저희 집은 그때 시골 살았는데
농협에서 농민들에게 지원해줘야 하는 금액이 나오면
그거 농협직원이랑 지역 유지들이 다 해처먹고
정작 농민들은 혜택도 못받았다고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던데
본문에 과장이 다소 섞인 건 맞지만, 의 댓글과 대댓글 역시 너무 비판적으로만 접근한 건 아닌가 싶습니다.어차피 제가 혼자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설득력은 없을테니, 다른 곳에서 받아온 글을 링크를 걸어보겠습니다.다른 건 몰라도 신자유주의 경쟁체제가 밑바닥까지 뿌리내린 지금보다는, 당시가 훨씬 더 여유가 있었다는 건 사실인 듯 합니다.https://pgr21.com/pb/pb.php?id=qna&no=11635
천도복숭아
IP 221.♡.237.171
09-25
2018-09-25 12:49:18
·
ㅠㅠㅠ
bluesbird
IP 223.♡.165.75
09-25
2018-09-25 12:49:48
·
저때는 대기업 중소기업간 임금격차도 없었습니다
중소기업 기술자였던 저희 아버지는 대기업 사원보다 임금이 두배 이상이였던...
그때 안 살아봤다고 너무 말 쉽게 하네요.. 헐.
보통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레벨이 저런 판타지를 갖고 있는 듯 합니다만...
말도 안되는 얘기죠.
저 위에 엘리베이터 걸이나 공무원, 경찰되기 쉬었던 갖고 부럽다는건 지금 동남아 후진국 부러워하는 것과 동일한 거죠.
EUROPA_MR
IP 221.♡.199.47
09-25
2018-09-25 12:52:56
·
저때 잘먹고 살던 세대가 지금 애들한테
노오,,,력,,,이,, 부족,,,하,,,다!!! 하고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리와리꽁꽁꽁
IP 121.♡.45.62
09-25
2018-09-25 12:53:00
·
대딩 1.2학년때 도서관서 공부하면 이상한놈 취급받던시절. 저학년때는 펑펑 놀며 대학의 낭만을 즐기다가 군대다녀와서..적당히 학점 관리해주면 취업은 걱정없던 시절.
4학년때되면 각 학과사무실마다 입사원서가 종류별로 수십수백장씩 쌓여있고..골라서 가고싶은데 지원하면 웬만하면 다 합격하던 시절. 미달된 취업원서 사장들은 똥줄타서 각 학교선배들 동원해서 학교로 찾아와 울 회사에 지원해달라고 사정하던 시절..
이게 다 실화였어요. 이런때가 있었다는게 진짜 믿기지않네요 ㅠㅠ 스펙이란 단어 자체가 사회적으로 지금처럼 통용되지않았었죠 ㅎ
이젠정말
IP 221.♡.126.160
09-25
2018-09-25 13:04:46
·
와리와리꽁꽁꽁님//
그때도 학과마다 차이는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학원 진학에 떨어진 사람들이 하는 수 없이 취업했고요. 보통은 유학까지 가거나 해서 연구소 취업이 최종 목표였습니다.
지금은 취업에 떨어진 사람이 대학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좀 황당.
페이퍼백
IP 182.♡.7.249
09-25
2018-09-25 13:54:40
·
저 시절보다 조금 일찍 대학교 졸업했는데, 님의 말이 어디에 해당하는 이야기인지를 모르겠네요. 대학 졸업이 쉬웠던 것도 사실이고, 대학나와서 막노동 할거라면 취업은 걱정없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공무원 대기업 일자리가 저 시절이라고 뚝뚝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물며 저 시절은 대학 진학률이 지금의 반도 안되던 시대였죠.
그렇죠.
정확히는 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경련을 비롯한 사용자단체가 제대로 정비되고 정부와 사용자들의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반격이 시작되기 전,
IMF를 빌미로한 사용자 단체의 대대적인 반격과 노동자 조직의 후퇴와 지식인들의 투항이 본격화 되기 전,
88년~97년까지 대략 10년간의 일장춘몽이었죠.
그나마도 저 위의 글처럼
무슨 꽃밭에서 꿀빨고 그런 건 전혀 아니었죠. 그냥 그 이전이나 그 이후보다는 훨씬 살만했다. 정도지......
내가 78인데 대부분 실화인데? 아부지가 부동산하시는데 제가 고딩 졸업할 때쯤 부동산 자격증 시험만 보면 딴다고, 함 시험만 보라는데.. 아들더러 복덩방 하라는거냐며 싫다고 하고 운전면허 시험만 땄네요 ㅋㅋㅋ 공부 어중간하던 애들은 교대 지원하고 잘 하는 애들은 컴공이나 정보통신 지원하던 시절입니다.
과거가 지금보다 훨씬 집 사기 쉬웠던 건 사실입니다. 서울 기준으로도 그렇습니다. 또한 물가상승률 등의 요인을 고려해도 당시 예금 이율이 지금 이율보다 높습니다. 초졸 입대나 군수 얘긴 헛소리지만, 공무원이나 군대에 말뚝박기를 당시보다 지금 훨씬 더 선호할 정도로 살기 팍팍해진 것은 사실이죠.
세세한 과장은 (다소 크게) 있을지언정, 당시가 지금보다 희망적이었고 살기 덜 팍팍했던 건 사실입니다.
IP 115.♡.143.14
09-26
2018-09-26 08:37:56
·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나이 드신 분들이 박정희때가 더 살기 좋았다...하고 뭐가 다를까요?
나라에서 집도 지어주던 시절이었으니까요....ㅡㅡ;;
xero
IP 121.♡.92.59
09-28
2018-09-28 02:40:45
·
다르죠. 박정희 때는 말 그대로 살기가 팍팍했는데요. 80 ~ 90년대는 경제성장 이후 사회 전반에 꽤나 여유가 있던 시절입니다. 적어도 지금처럼 신자유주의 기반 경쟁체제가 뿌리내려서 모두가 살기 팍팍해지진 않았어요. 물가는 싸고 임금은 높았죠. 뭐 제가 이러쿵저러쿵 더 해봐야 믿진 않으실테니, 그 시절을 겪으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링크 하나만 놓고 가겠습니다.https://pgr21.com/pb/pb.php?id=qna&no=11635
caliph
IP 112.♡.231.118
09-25
2018-09-25 13:03:12
·
하긴 저때는 포항공대나 카이스트가 제발 학생들 좀 보내달라고 입시설명회도 학교에 직접 와서 했었죠.
애들은 지방대라 가기 싫다고 안갔죠. ㅋ
지금은 많이 변했죠.
삶이 만만하진 않아도 저 황금기때 돈을 벌고 삶을 누린 사람이랑 이미 성장이 끝나버린 상황에서 삶를 누린 사람이랑 누가 행복하겠습니까? ㅋ 저땐 상대적으로 일부가 힘들었고 지금은 전체적으로 힘듭니다.
지금시대에 저도 대학진학률 30프로 안에 너끈히 들정도였는데 취업이 쉽진 않네요
10프로 안에도 들정도네요...ㅎㅎㅎ
와리와리꽁꽁꽁
IP 121.♡.45.62
09-25
2018-09-25 13:16:49
·
그 30프로의 경쟁을 뚫고 대학가면 지성인이라고 불리며 꿀빨던 시절이죠.
지금은 8~90프로가 대학가는데 뭔놈의 지성인입니까. 다단계 포섭 1순위 대상 호구일뿐이죠. 불쌍합니다.
주 6일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야근, 철야, 주말 특근비도 주고요....
그땐 무료 봉사(!)했었어요. ㅎ
아울러 4년제 대학 자체를 그 당시에는 못 갔어요.
그리고 서울 및 수도권에 집을 살 수는 있었어도,
지금처럼 번듯한 집을 살 수 없었습니다.
무슨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도 아니고,
조금만 더 있으면 박정희때가 더 좋았어요....까지 나올 기세네요...ㅡㅡ;
xero
IP 121.♡.92.59
09-28
2018-09-28 02:35:58
·
주6일이야 당시 시대가 그랬으니까요. 당시 대비 여유가 사라지고 세상이 더 각박해진 것이 핵심인데, 과거였고 기술이나 사회가 덜 발전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렇게 살았던 걸 가지고 까면 의미가 없죠. 그렇게 따지면 현재는 거지조차도 중세시대 최강국의 왕이 누리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걸 누리고 삽니다만?지금처럼 번듯한 집 역시 그런 집 자체가 드물었죠. 그러니 ‘8, 90년대에 8, 90년대에 서울에 지어진 아파트를 사기’와 ‘2010년대에 2010년대에 서울에 지어진 아파트를 사기’를 놓고 비교해봅시다 어느쪽이 더 나을까요? 그 시절처럼 20대에 맨손으로 시작해서 30대에 3, 40평대 아파트를 장만하는 시나리오를 어디가서 얘기해보세요. 미쳤다고 할 걸요?4년제 대학 자체를 못 간 건 가계 수준 문제보다도 대학의 숫자 자체가 적은게 더 컸습니다. YS의 대학 자율화 조치 이후 대학교가 늘어난 속도만큼이나 대학 진학율이 높아지는 속도도 늘어난게 이를 증명하죠.
1. 일부 사실.
2. 일부 사실.
7. 일부 사실. (들어가기 쉬웠다는 부분만 사실. 구청장, 군수는 직선제인데 무슨 소린지?)
9. 일부 사실. 지금도 일부 사실.
10. 비정규직은 광범위하게 존재했으나 비정규직이라 부르지 않았고, 법적 근거가 없었을 뿐. 그 법적 근거를 만들어준(합법화 한) 것이 IMF를 계기로 한 전경련 등 사용자단체의 공격과 그를 핑계로한 재경부처, 국회우원들의 밀어붙이기, 민노총의 후퇴와 한노총의 투항.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서 여론몰이 하는게 뭐다?
선동.
무슨 글만 쓰면 선동이래.,
"IMF 전"이라는 걸 80~90년대 얘기라고 가정하고 얘기하자면,
3. 중졸도 나사만 돌릴 줄 알면 취직 을 하긴 했죠. 마찌꼬바라고 영등포나 구로 골목골목 있는 직원 2~3명 되는 영세공장이나 깜빡 졸면 손가락 잘리는 프레스 공장에. 그리고 진급해서 공장장이 된다? 뭔 그런 헛소리를... 그 당시에도 대기업 공장 정규직은 꿈의 직장이었어요.
5. 그 당시에는 병역자원(인구수)이 넘쳐났기 때문에, 고졸 밑으로는 현역 주지도 않았습니다. 고졸도 면제나 방위 받는 사람이 30%가 넘을 때인데 무슨 중졸, 초졸이 군대가서 부사관이나 주임원사를 달아요?
더 하자니 귀찮아서 이만합니다만, 저 위의 글에서 진실은 30%도 안됩니다.
저건 빼박 선동이예요.
원 글이 그런 뜻으로 쓴 글이 아니잖나요?
지금도 중소기업 다니면서 프레스 찍고 새벽까지 잔업하면 취업 가능해요.
그런데를 안 가려고 하니 취업이 어려운거죠.
아울러,
그 당시 주 5일근무가 아니라 주6일근무에 야근 수당도 제대로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무슨 과거가 다 좋고 지금이 어려운 것처럼 곡해하지 마세요.
대졸자들의 9급 공무원 진학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요. 그나마 쉽지도 않았죠.
경찰직 9급도 당연히 아주 쉽지는 않았고요.
공장가서 나사돌리다가 공장장... 공장장 같은 사람들은 70년대에도 별도로 뽑아서 승진되는 자리였죠.
자영업이 개꿀이라... 진짜 그랬으면 다들 자영업 했겠죠.
저희 집은 그때 시골 살았는데
농협에서 농민들에게 지원해줘야 하는 금액이 나오면
그거 농협직원이랑 지역 유지들이 다 해처먹고
정작 농민들은 혜택도 못받았다고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던데
역시 그때에 비하면 지금인 헤븐이죠
중소기업 기술자였던 저희 아버지는 대기업 사원보다 임금이 두배 이상이였던...
거이 없다고 보는게 맞았겠죠...
심지어 기술직은 어마어마하게 돈받았다고;;
보통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레벨이 저런 판타지를 갖고 있는 듯 합니다만...
말도 안되는 얘기죠.
저 위에 엘리베이터 걸이나 공무원, 경찰되기 쉬었던 갖고 부럽다는건 지금 동남아 후진국 부러워하는 것과 동일한 거죠.
노오,,,력,,,이,, 부족,,,하,,,다!!! 하고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학년때되면 각 학과사무실마다 입사원서가 종류별로 수십수백장씩 쌓여있고..골라서 가고싶은데 지원하면 웬만하면 다 합격하던 시절. 미달된 취업원서 사장들은 똥줄타서 각 학교선배들 동원해서 학교로 찾아와 울 회사에 지원해달라고 사정하던 시절..
이게 다 실화였어요. 이런때가 있었다는게 진짜 믿기지않네요 ㅠㅠ 스펙이란 단어 자체가 사회적으로 지금처럼 통용되지않았었죠 ㅎ
그때도 학과마다 차이는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학원 진학에 떨어진 사람들이 하는 수 없이 취업했고요. 보통은 유학까지 가거나 해서 연구소 취업이 최종 목표였습니다.
지금은 취업에 떨어진 사람이 대학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좀 황당.
1) imf 이전은 저렇게 좋진 않았고
2) 좋았던 시절도 잠시일뿐, 10년 더 거슬러올라가면 전두환임
3) 즉 독재 끝 후 민주정권 나오는 과정에 자아아암시 펼쳐졌던 순간의 꽃밭이었을 뿐.
정확히는 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경련을 비롯한 사용자단체가 제대로 정비되고 정부와 사용자들의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반격이 시작되기 전,
IMF를 빌미로한 사용자 단체의 대대적인 반격과 노동자 조직의 후퇴와 지식인들의 투항이 본격화 되기 전,
88년~97년까지 대략 10년간의 일장춘몽이었죠.
그나마도 저 위의 글처럼
무슨 꽃밭에서 꿀빨고 그런 건 전혀 아니었죠. 그냥 그 이전이나 그 이후보다는 훨씬 살만했다. 정도지......
(서울교대)
그리 쉬우면 부동산 자격증 따지 그랬어요? ㅋㅋㅋㅋ
무슨...ㅡㅡ;;
교대의 경우 남녀 편차가 아주 심했구요..여자는 당연히 최고급들만 갔고..남자는 반대였습니다. 한때 거의 공무원 취급이었어요. 선호되는 분야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국민학교교사.
지금처럼 남자쪽에서도 인기있는 선망직종이 된지는 얼마안됩니다.
Imf이후 극도로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 경쟁체제가 뿌리내리면서 그 이전을 뒤돌아보니 저런때가 있었구나 하는거죠.
정말 너무하네요. ㅡㅡ;;
참고로 1973년생이고 1992학번인데,
그 당시 그리고 그 전에 중졸은 군대 안 갔습니다. (무슨 초졸이 하사관을....ㅡㅡ;;)
은행 이자가 10%면 대출 이자가 그 보다 높다는건 초등학생도 알겠죠? ㅋ
(은행 대출 이자가 IMF때엔 무려 28%였다는...)
이소라의 노래가사처럼,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가 딱 맞는 것 같네요.
그것도 자기 입맛에 맞게만 적는....ㅋㅋㅋㅋㅋㅋ
이때 주6일에 집까지 일감가져와서 일하는 미친듯한 업무환경이었습니다.
근거 자료나 두고 얘기하면 좋겟네요.
지구 역사상,
은행 이율이,
대출 이자보다 많았었던 적 있나요?
은행에서 통장만 만들어봐도 아는 이야기 아닌가요? ㅎ
지금이 오히려 대출 이자가 적어 장기 대출로 집사기가 더 좋습니다.
그 당시에는 급전 빌리려고 곗돈 타고 그랬던 시기에요.
과장된게 아니라 일부를 과장시켜 거짓말로 도배한 겁니다.
참고로 1990년대초부터 중졸이하는 학력미달로 군대 자체를 안 갔었어요.
더 쉬워요.
서울 강남, 서초, 송파에 집 사려고 하니까 어려운거지.....
부모님 세대에 가진거 하나도 없이 돈 열심히 벌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었지만,
변두리에만 가능했었겠죠.
대출 자체가 안되니.....
우리나라 역사상 집을 빚 안 지고 살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나요?
아울러,
그 당시에는 빚 자체를 못 졌어요.
그래서 곗돈 돌리다 계주 도망가서 파산하고...2금융 쓰다 잘못돼 차압되고....등등
집 사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참고로 제가 도곡동 럭키 아파트 2억 4천, 대치동 은마 아파트 2억 8천일 때부터 부동산 했어요.
그 당시 외국인 회사 다니는 제 급여가 채 100여만원......30년을 안쓰고 모아도 못샀었어요.
다 똑같아요. 부동산은...
무슨 산너머(과거, 외국)엔 무지개가 있다는 착각은 하지 마세요. ㅎ
세세한 과장은 (다소 크게) 있을지언정, 당시가 지금보다 희망적이었고 살기 덜 팍팍했던 건 사실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나이 드신 분들이 박정희때가 더 살기 좋았다...하고 뭐가 다를까요?
나라에서 집도 지어주던 시절이었으니까요....ㅡㅡ;;
애들은 지방대라 가기 싫다고 안갔죠. ㅋ
지금은 많이 변했죠.
(주변에 받은 사람들 많음)
그리고,
서울대를 30명 가까이 보낸 나름 좋은 고등학교 다녔는데,
한반에 4년제 대학을 채 20명도 못 갔었어요.
지금처럼 개나소나 대학을 다 가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그당시는 평균 경쟁률이 4:1수준이라서 한반에 60명 넘어도 일부만 대학을 갔던 것 같고요.
그런데 지금은 한반에 20명 수준이라서, 어차피 20 명 못가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요 ㅎㅎ
고등학교도 시험봐서 들어갔는데요? ㅋㅋ
저 서울 강동구 명일동 살았는데,
우리반에 고등학교도 재수해서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2부(야간)가는 애들도 많았어요.
그 전 세대는 중학교도 시험봐서 들어갔고요.
같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ㅋ
저도 중3 겨울 방학때 고등학교 선행 공부한다고 왕십리 EMI단과 학원 다녔는데,
월 14,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반에 200명이었어요. 정말....ㅋㅋㅋㅋ
저때는 큰 사회의 일부(일부라고 하긴 많네요.)
가.힘들었지만 지금은.전체적으로 다 힘들죠.
지금시대에 저도 대학진학률 30프로 안에 너끈히 들정도였는데 취업이 쉽진 않네요
10프로 안에도 들정도네요...ㅎㅎㅎ
지금은 8~90프로가 대학가는데 뭔놈의 지성인입니까. 다단계 포섭 1순위 대상 호구일뿐이죠. 불쌍합니다.
대기업 취업에 명문대, 수도권대, 지방대 차별은 고스란히 임금 격차로 반영되고
중소기업하고 대기업 차이도 컸을 텐데요
대신 지금과같은 극단적인 경쟁이 적고 평생고용같은 덕목은 미덕이죠. 중산층이 형성되고 서민층사다리가 아직도 건재해 개천에서용나는 희망을 품고 살수있었던 시절이라 그리워하는 감정이 드는거죠 ㅎ
어디서 술자리 같은데서 주워 들은 이야기로 호도하는게 더 웃깁니다.
참 재미있네요....ㅋㅋㅋㅋ
저도 직접 겪은세대입니다. 싸그리몰지는 마세요.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라니.
대학진학률 10~20% 이랬던 시절입니다. 대학생 귀했구요. 기업들은 호황이라 골라가던 시절 분명히 있었어요.
초졸, 중졸이 군대를 갈 수 있었나요?
그리고 은행 이율이 대출 이자보다 셌었나요?
꽁꽁님이 겪은 추억에서는요? ㅎ
카드이런것도 없었고..노란 현금봉투 따박따박 받으면서..
사회는 전반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성숙해졌지만...비인간적 경쟁위주의 신자유주의 체제 도입과 천하의 사기꾼색기들인 이명박근혜를 거치며 중산층이 붕괴되고 양극화가 커지면서 개인의 행복과 안정감은 더 떨어지는 현상이 생긴거예요..
그냥 선동이라거 할게 아니고 왜 사람들이 그시절을 그리워하게된 감정이 생겼는지를 돌아보고 지금부터 좀더 인간답게 살수있도록 보완해나가야죠.
그냥 추억글을 선동이라고 모니 진실게임이 되버리네
그것도 거짓말로 과장시킨 선동글....
퍼온 글 막줄 함 보세요. ㅋ
하는건데.. 제가 저 멘트가 문제였다면 안퍼왔겠죠. ㅠ
저도 문통 지지자에요. 저 정도 글은 과장이 섞였어도 그냥 추억으로 용인할 정도라고 판단했구요..
나사 돌리던 놈(!)이 공장장, 초졸, 중졸의 주임원사, 그냥 뽑힌 놈(!)이 대기업 임원 등등....
(제가 저 퍼온 글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놈..놈 죄다 놈이네요...ㅡㅡ;;)
이게 추억으로 용인할 정도의 글귀인가요? ㅡㅡ;;
지금 세대들이 주6일근무해가며 개고생해 올라갔더니,
시대 잘 타고 태어나 꿀빨아서 올라갔다고 하는게 추억인가요?
이건 좀 아닌 듯 싶습니다.
나사돌리다 공장장이라.
지금 어지간한 중소기업도 공장장 하시는 분들 명문대 나오셨는네
과거엔 꿀빨았는데 지금은 개고생한다고 선동하는거죠.
그 희망적이었다는게 주6일 근무에 내내 야근에 철야에 주말 근무까지.....
그것도 돈도 못 받고 일했다는 건 쏙 빼 먹고 이야기하는건가요?
옛 어른들이 박정희때가 더 살기 좋았다...하고 다를게 뭐가 있을까요? ㅡㅡ;;
당시는 지금처럼 대학교 4년 내내 공부만 하고 스펙을 쌓아도 취업을 못해서 고민하지 않았고, 취업 후에도 나이 40이면 거리로 내몰릴 걱정도 하지 않았으며, 지금처럼 서울 및 수도권에 집 사기 어럽지도 않았죠.
주 6일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야근, 철야, 주말 특근비도 주고요....
그땐 무료 봉사(!)했었어요. ㅎ
아울러 4년제 대학 자체를 그 당시에는 못 갔어요.
그리고 서울 및 수도권에 집을 살 수는 있었어도,
지금처럼 번듯한 집을 살 수 없었습니다.
무슨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도 아니고,
조금만 더 있으면 박정희때가 더 좋았어요....까지 나올 기세네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