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네라는 곳이 완장찬 것처럼 행동한 몇 몇 유저가 운영자를 공격(?)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취지로
클리앙도 그리 될까 걱정이란 요지의 글을 봤습니다.
그런 생각 하실 수 있지만요.
클리앙 역사를 아신다면, 그런 말씀 못하십니다.
적수네의 운영자와 오래된 회원의 관계와 클리앙의 그것은 완전히 반대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클리앙의 운영자와 오래된 유저 또는 운영자에 불만을 표했던 유저들이 어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아니 별 불만 표시 안했어도요.
클리앙은 1990년대 중반 팜이란 회사의 pda를 쓰는 사람들 모임인 케이퍽(케퍽으로도 많이 부릅니다.)이 뿌리입니다.
Korea Palm User Group의 약자 KPUG죠.
그런데 팜에서 os를 라이센스해서 같은 os를 쓰는 클론 제품들이 여러 회사에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요새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여러 곳이듯.
소니가 이 시장에 뛰어들어 꽤 획기적인 걸 만들고 제품의 시리즈명을 프랑스말로 클리에라고 짓습니다.
클리에가 나오고 케퍽에 클리에 게시판이 신설됐는데, 클리에가 좀 특이한 기능이 많아 클리에 유저들이 클리에용 자료와 정보 공유가 불편함을 느끼고 별도 모임을 만들자란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다 어느날 cipher란 닉네임을 쓰는 이봉희란 사람이 싸이월드에 클리에 모임을 만들고 게시판에 이를 알립니다.
그가 어떤 대표성이 있어 만든 게 아닙니다. 어느 날 여러분 제가 싸이월드에 클리에 정보 교류할 곳을 만들었어요라며 케퍽과 비슷한 메뉴 구조의 싸이월드 페이지를 알린 것 뿐입니다.
그가 뭔 자료를 올리거나 정보를 공유하거나 강좌를 쓴 건 제 기억에 없습니다.
꽤 많은 고수가 그곳에 클리에와 팜에 대한 자료, 정보, 강좌를 올리고 이를 토대로 곧 웹페이지를 이봉희씨가 만듭니다.
클리에 유저 그룹처럼 이름 짓기보다.... 뭘 쓰는 사람을 뜻할 때 쓰는 표현으로 n을 클리에 뒤에 붙이자.
클리에가 불어니 영어식 클리엔이 아니라 불어식으로 클리앙이라 부르는 게 적당하니 클리앙이라고 하자.
게시판 구조는 친숙한 케퍽과 비슷하게 이런 게시판도 추가하자.
이거 다 당시 회원들이 토론해서 정한 겁니다.
.net이 붙은 건 케퍽과 해외 팜 유저 그룹들이 거의 다 나라명칭 첫 자 뒤에pug 붙이고.net 써서입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커뮤니티였던 싱가폴 모임이 spug.net이었듯이.
이 모든 논의는 유저들이 했고, 운영자는 자료, 정보, 분위기, 방향성에 대해선 하나도 한 게 없습니다.
타사이트보다 회원에 의한 자정작용과 운영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고요.
운영자가 처음 싸이월드 페이지와 웹 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했지만, 케퍽 시절 활발한 회원도 아니었고요.
IT쪽 인력이 많아 회원들이 사이트 운영 경험이나 커뮤니티 참여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초기 운영 시기 운영자의 여러 힘든 점에 대해 이해했고, 오랜동안 유저들이 운영자를 신뢰하고 보통 대장님으로 불렀습니다.
케퍽에서 운영자를 대장님으로 호칭한 전통을 따른 거기도 하고요.
비교적 고가의 pda 동호회여서 사실 케퍽 유저층을 볼 때 클리앙 운영자는 어린 축에 속했지만요.
클리앙이 이렇게 2001년인가 2002년인가 생겼고요.
운영자와 유저의 관계가 완전 박살난 건 2007년입니다. 클리앙 초기부터 있던 유저들은 1996~8년 무렵부터 케퍽 회원이었던 사람이 많고 클리앙 운영자보다 pda 사용이 오래됐을 겁니다.
몇 가지 억지에도 넘어가다가 운영자와 회원 사이가 2007년 벌어진 건, 운영자가 회원들을 강제 추방했기 때문입니다.
2007년에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이 붙은 대선이 그 해 말에 있었습니다.
당시 다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정치 얘기로 뜨거웠고 이는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다른 곳보다 더 뜨겁진 않았습니다. 존대말이 정착되어 있고 이공계, 의료계 인력이 많아서.
pda 특성상 전자, IT를 비롯한 이공계가 많았고, 팜 os용 의학, 약학 사전 등 의학 자료 덕분에 의료인, 약사 비중이 비교적 높았습니다. 얼리 아답터 중에서도 얼리 아답터들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자유 게시판에서 논쟁이 붙자, 운영자는 이를 매우 우려했습니다.
지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물론 시끄러운 것 자체를 싫어하는 운영자 성향도 있지만 논쟁으로 인해 사이트의 성장에 문제가 올까란 걱정이었을 겁니다.
둘째는 소문이나 일부 사람들이 우려한 바, 이명박의 승리는 명확한 상태에서 이명박이 자신에 대한 반발 여론이 심한 커뮤니티를 제재할 거란 걱정입니다.
더 나아가 사이트 운영자에게 관리의 책임을 물어 형사 처벌, 사이트 폐쇄까지 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우려였죠.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사이트의 성장과 폐쇄,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자 결론적으로 사이트로 얻는 운영자의 향후 수익에 대한 걱정이었을 겁니다.
2007년 당시 회원수는 6~7만 가량이었고, 운영자 본인이 2009년에 시즌 2로 개편 계획 때 밝힌 바로는 9만 후반으로 10만 내외였고요.
2007년 사태를 저는 추방을 넘어 학살로 봅니다.
일부는 6개월, 1년, 2년, 3년, 10년 글, 댓글쓰기 제한을 당했지만, 대부분 영구 글, 댓글쓰기 제한을 당했고 단 한 차례의 댓글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 운영자에 우호적이었던 사람은 징계를 피하거나 경징계로 남겼습니다.
당시 운영자가 쓴 글에서 하루에 최소 30여 명, 많은 날은 이백 명을 넘게 영구 제명했는데, 그 방식이 무기한 글쓰기 및 댓글쓰기를 전혀 할 수 없도록 등급을 강등한 거였습니다.
논쟁글에 댓글 단 사람들까지 도매급으로 처리하곤 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최소한 천 명, 많으면 수 천 명이 당했을 겁니다.
이 학살이 본격적으로 행해지기전에 벌어진 일이 몇 몇 유저가 자유 게시판에서 정치 게시판을 독립 개설하자고 한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과열을 막고자 한 유저의 걱정과 정치글 꼴 보기 싫다는 유저 등 두 가지 유형의 유저의 생각이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운영자가 정치 게시판 분리를 선언했습니다.
그 이후 자유 게시판에 아주 조금의 정치 표현에도, 그리고 정치 게시판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징계가 남발되었죠.
징계에 대한 설명은 없었고, 징계의 형평성도 없었습니다.
이 얘기도 해야 하나 싶지만, 제가 알기론 당시 정치 게시판 개설을 운영자에게 권유한 분이 이진행님일 겁니다.
여러분이 배리님으로 기억하실.
2000년대 초반에서 중반 넘어가던 시기 클리앙이 커지며 서버비가 부담(2007년이나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스럽던 때, 산업부 국장이셨던 그 분이 커뮤니티를 산업부에서 만든 사이트인 엔펀 내로 품으며 서버비 부담을 없애는 제안을 했습니다.
무분별한 광고와 홍보, 공구 등을 통한 형태는 운영자가 싫어했고(그래서 우린 그를 오랜동안 믿어왔던 거였죠.), 대안으로 적당했습니다.
나중에 엔펀과 결별할 때 결국 좋은 결말은 아닌데... 뭐 이건 여기서 줄이고.
아무튼 여러 우려로 대선 직후 동안만 정치 게시판 분리를 권유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계기로 운영자는 회원 추방을 해버린 거죠.
당시 회원 강등을 하면, 탈퇴도 할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탈퇴가 되어도 그 주민 번호는 벤해서 다시 가입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징계받은 회원이 아니지만, 클리앙이 그동안 운영자보다 회원의 자정 노력과 회원이 만든 컨텐트로 커온 곳이니
이 사태에 대한 불만과 항의의 표시로 클리앙의 글, 댓글을 다 지우고 탈퇴하고 싶다는 회원도 많았지만,
시스템 상 일괄 삭제할 방법이 없다고 운영자가 답해서 며칠씩 지우다 포기하고 탈퇴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제가 확인한 바로는 회원 아이디별로 글과 댓글을 일괄로 지우는 게 가능했습니다.
컨텐트 삭제를 운영자가 원하지 않은 건데, 거짓 답변을 한 거죠.
사실 이걸 해줬다면 강등된 회원들이 자신이 만든 컨텐트를 지워달라고 요구했을테고 그걸 들어주면 사이트로서는 타격이 컸을테니 핑계대고 자신도 할 수 없다고 한 거죠.
아무튼 이 사태 이후, 정치 게시판을 닫아버리고 자유 게시판에서 정치 얘기를 한동안 금지했습니다.
운영자에 대한 실망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벌어진 불합리한 일에 대해 논할 장을 만들자는 일부 회원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회원들이 독자적으로 시국광장이란 웹 사이트를 만듭니다.
징계 이후 대부분 떠나갔지만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분이 임시로 시국 게시판을 개설한 게 사이트화된 겁니다.
그 후 클리앙에서 정치 얘기, 불만 얘기하면 클리앙 회원들이 그 사람에게 시국광장으로 꺼지라고들 많이 하셨죠.
여러 상황을 고려할 수없었기에 그렇게 오해하실만 했습니다.
시국 광장 운영자는 시국 광장 회원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제가 알기론 배리님이셨습니다.
징계 사태와 정치 게시판이 닫힌 후 막힌 정치 소통의 장을 생각하고 만든 페이지가 사람들 요구로 메뉴가 생기고 사이트가 된 거죠.
첫 개설 땐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끼셔서 정치 게시판 폐쇄 후 게시판을 하나 만드셨던 건데, 이게 사이트가 되면서 복잡한 심경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모여 이런 저런 의견을 개진하는데 자신이 폐쇄할 권리가 이미 없다고 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초기부터 다른 분께 권한을 넘기려고 하셨고요.
여러 가지에 대해 후회하셨습니다.
배리님의 안타까운 사고를 접한 후 가끔 울적해지곤 합니다. 돌아가신 후 시국광장은 수명을 다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3년 탈상 때까지 리본을 걸고 5주기를 지킨 사이틉니다.
배리님께는 여러 모로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다른 얘기 잠깐하면, 케퍽이 클리앙 독립 후 규모가 정체되다가 pda의 종말로 사이트가 기로에 서게 됩니다.
케퍽의 대장이었던 차정호씨가 2010년 아이폰 정보를 다루는 곳으로 바꾸려고 딱 한 번 향후 방향에 대해 의견 묻는 형식을 취하곤 결론도 없었는데, 케퍽 주소를 새로 만든 아이폰 커뮤니티 아이폰당으로 갑자기 리다이렉팅해버립니다.
케퍽주소를 치면 케퍽이 아니라 아이폰당으로 연결되는 거죠.
엄청난 짓이죠. 요식 행위로 물어보는 척 한 거죠.
그래서 그동안 추앙받던 차씨에게서 모두 등 돌리고 나와서 새로 만든 곳이 kpug.kr입니다.
이 때 차씨는 회원들이 이제 팜 관련 자료의 가치는 크지 않으니 자료실이라도 db를 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아 새로운 케퍽은 약 15년에 달하는 역사가 사라진 채 시작하게 됩니다.
차씨는 커뮤니티의 글과 주소는 자신의 소유라는 입장이고 이건 회원의 글 삭제 요청을 시스템 핑계의 거짓말로 대응한 클리앙 운영자와 같은 시각입니다.
곧 차씨의 기존 케퍽은 망했습니다.
이 사태 후 모르는 사람은 케퍽 운영자를 욕하며 클리앙 운영자를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차씨의 선택이 잘못됐지만, 회원 학살한 클리앙 운영자도 만만치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케퍽은 사이트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이었고, 클리앙은 성장하고 있었기에 최종 대처가 달랐지만 과정을 보면 둘 다 좋은 운영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 둘 다 그동안 쌓여온 db를 쉽게 대하는 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그게 우리의 역사이자 자부심이고 그 자첸데.
2009년 초겨울, 클리앙 운영자는 업체의 후원을 받아 마지막 정모이자 클리앙 사이트 개편(일명 시즌 2 프로젝트)과 사이트에 대한 여러 얘기를 발표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다시피 사이트 리뉴얼을 계획하며 이를 시즌 2라고 했고,
시즌 2 적용은 그 때 계획보다 몇 년이나 늦게 되었지만, 이 때 운영자의 얘기 중 몇 가지를 저는 주목했습니다.
당시 정모 사진이 얼마 전 다시 올라왔는데 ppt 중에서 2년 전 사태라는 짧은 문구가 있습니다.
이게 제가 말한 정치글로 시작한 운영자의 회원 학살 얘깁니다.
자신의 잘못은 얘기 안 했고, 정치 얘기 안하면 좋겠단 식으로 마무리했고요.
이 때 나온 얘기가 운영자의 징계가 불편부당하여 공정성이 의심되고 운영자의 가치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문제글이 사태를 키우니, 회원 몇 명 이상 신고시 자동 블라인드 처리 등에 대해 구현 모습을 시연했죠.
나중에 시즌 2초기에 잠시 그렇게 하다 결국 다시 운영자의 가치 판단 전까진 냅두는 걸로 변경.
그리고 정모에서 정치 얘기 자체를 말자고 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명박 정부에서 커뮤니티에 대한 제재가 없자 어느 정도 정치글을 수용하는 게 회원 늘리고 사이트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을 거예요.
2007년 대선, 2008년 광우병 사태,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4대강, 2012년 대선 참 굵직한 게 많았죠.
그러면서 여기도 정치글에 관대해졌죠. 운영자가 관대한 게 아니고요.
그래도 여전히 타 커뮤니티에 비해 정치글 비중이 낮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정모에서 운영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2년 전 강등된 회원이 글쓰기도 재가입도 영구히 안 되는 것에 대해 구제할 생각에 대한 질문에
곧(그 때 계획은 한 달 여 후인) 내년 새해에 시즌 2가 열리면 이를 반영할 생각이라고요.
이것도 변명이었지만.
시스템 상 db였나 뭐가 꼬이는 문제를 핑계로 댔습니다. 거짓이었죠.
그 시절에는 주민번호를 직접 입력해서 가입했어서 주민번호를 막으면 탈퇴해도 재가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즌 2는 너무도 늦어 몇 년 후에야 도입됐고,
시즌 2가 늦어지니 주민번호 벤을 풀어 재가입이라도 하게 옛회원에게 인정 좀 베풀어달란 징계받지 않은 유저들의 요청엔 그 후에도 시스템 탓을 하고 몇 년 더 지나서야....
시즌 2에서 자유 게시판에서 자유를 빼고 모두의 공원으로 바꿉니다. 이건 지금도 이어지죠.
자유 게시판 명칭이 싫었던 거죠.
그리고 클리앙을 끌량 또는 클량으로 바꿔부르려고 했다가 유저가 따라주지 않아 거의 실패했습니다.
그 전에도 db를 일부씩 소실하곤 했지만 시즌 2 시작하며 그 전 자료와 정보들, 게시판들을 분리해서 사실상 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글에 포함된 사진 자료는 거의 다 볼 수 없어졌습니다.
부하와 새 게시판과의 호환 내세우며, 의견 수렴이나 차정호씨처럼 형식 상의 설문도 없이요.
클리앙의 역사, 회원들의 기록도 오늘 사이트 확장에 도움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었던 거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 이만 적으렵니다.
아무튼 클리앙 최대 흑역사는 회원 개개인의 사건, 사고가 아니라 운영자의 2007년 행동과 그 대처입니다.
2007년 사태 이후 사과, 반성, 대책이 없었습니다.
클리앙은 이제 20~30만명 정도 규모가 될 겁니다.
수익은 여러분이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회사들의 지출 항목에 대해 이해하신다면.
2009년 운영자가 정모에서 한 말을 기억합니다.
클리앙은 상업성을 띤, 자신의 개인 커뮤니티다.... 이 명제가 성립한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 알았습니다. 2007년 사태에 그가 2년이 지나도 왜 이리 고집을 부리고 있었는지.
2년간 제가 강등된 사람들에게 들은 어처구니없는 징계 과정과 제가 알아온 운영자는 이럴 사람이 아닌데란 의문이 풀렸고,
여러 사람이 그 후에도 미련을 갖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케퍽에 1998년부터 있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20년 가량의 케퍽과 15년 가량의 클리앙 얘깁니다.
클리앙도 그리 될까 걱정이란 요지의 글을 봤습니다.
그런 생각 하실 수 있지만요.
클리앙 역사를 아신다면, 그런 말씀 못하십니다.
적수네의 운영자와 오래된 회원의 관계와 클리앙의 그것은 완전히 반대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클리앙의 운영자와 오래된 유저 또는 운영자에 불만을 표했던 유저들이 어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아니 별 불만 표시 안했어도요.
클리앙은 1990년대 중반 팜이란 회사의 pda를 쓰는 사람들 모임인 케이퍽(케퍽으로도 많이 부릅니다.)이 뿌리입니다.
Korea Palm User Group의 약자 KPUG죠.
그런데 팜에서 os를 라이센스해서 같은 os를 쓰는 클론 제품들이 여러 회사에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요새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여러 곳이듯.
소니가 이 시장에 뛰어들어 꽤 획기적인 걸 만들고 제품의 시리즈명을 프랑스말로 클리에라고 짓습니다.
클리에가 나오고 케퍽에 클리에 게시판이 신설됐는데, 클리에가 좀 특이한 기능이 많아 클리에 유저들이 클리에용 자료와 정보 공유가 불편함을 느끼고 별도 모임을 만들자란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다 어느날 cipher란 닉네임을 쓰는 이봉희란 사람이 싸이월드에 클리에 모임을 만들고 게시판에 이를 알립니다.
그가 어떤 대표성이 있어 만든 게 아닙니다. 어느 날 여러분 제가 싸이월드에 클리에 정보 교류할 곳을 만들었어요라며 케퍽과 비슷한 메뉴 구조의 싸이월드 페이지를 알린 것 뿐입니다.
그가 뭔 자료를 올리거나 정보를 공유하거나 강좌를 쓴 건 제 기억에 없습니다.
꽤 많은 고수가 그곳에 클리에와 팜에 대한 자료, 정보, 강좌를 올리고 이를 토대로 곧 웹페이지를 이봉희씨가 만듭니다.
클리에 유저 그룹처럼 이름 짓기보다.... 뭘 쓰는 사람을 뜻할 때 쓰는 표현으로 n을 클리에 뒤에 붙이자.
클리에가 불어니 영어식 클리엔이 아니라 불어식으로 클리앙이라 부르는 게 적당하니 클리앙이라고 하자.
게시판 구조는 친숙한 케퍽과 비슷하게 이런 게시판도 추가하자.
이거 다 당시 회원들이 토론해서 정한 겁니다.
.net이 붙은 건 케퍽과 해외 팜 유저 그룹들이 거의 다 나라명칭 첫 자 뒤에pug 붙이고.net 써서입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커뮤니티였던 싱가폴 모임이 spug.net이었듯이.
이 모든 논의는 유저들이 했고, 운영자는 자료, 정보, 분위기, 방향성에 대해선 하나도 한 게 없습니다.
타사이트보다 회원에 의한 자정작용과 운영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고요.
운영자가 처음 싸이월드 페이지와 웹 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했지만, 케퍽 시절 활발한 회원도 아니었고요.
IT쪽 인력이 많아 회원들이 사이트 운영 경험이나 커뮤니티 참여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초기 운영 시기 운영자의 여러 힘든 점에 대해 이해했고, 오랜동안 유저들이 운영자를 신뢰하고 보통 대장님으로 불렀습니다.
케퍽에서 운영자를 대장님으로 호칭한 전통을 따른 거기도 하고요.
비교적 고가의 pda 동호회여서 사실 케퍽 유저층을 볼 때 클리앙 운영자는 어린 축에 속했지만요.
클리앙이 이렇게 2001년인가 2002년인가 생겼고요.
운영자와 유저의 관계가 완전 박살난 건 2007년입니다. 클리앙 초기부터 있던 유저들은 1996~8년 무렵부터 케퍽 회원이었던 사람이 많고 클리앙 운영자보다 pda 사용이 오래됐을 겁니다.
몇 가지 억지에도 넘어가다가 운영자와 회원 사이가 2007년 벌어진 건, 운영자가 회원들을 강제 추방했기 때문입니다.
2007년에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이 붙은 대선이 그 해 말에 있었습니다.
당시 다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정치 얘기로 뜨거웠고 이는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다른 곳보다 더 뜨겁진 않았습니다. 존대말이 정착되어 있고 이공계, 의료계 인력이 많아서.
pda 특성상 전자, IT를 비롯한 이공계가 많았고, 팜 os용 의학, 약학 사전 등 의학 자료 덕분에 의료인, 약사 비중이 비교적 높았습니다. 얼리 아답터 중에서도 얼리 아답터들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자유 게시판에서 논쟁이 붙자, 운영자는 이를 매우 우려했습니다.
지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물론 시끄러운 것 자체를 싫어하는 운영자 성향도 있지만 논쟁으로 인해 사이트의 성장에 문제가 올까란 걱정이었을 겁니다.
둘째는 소문이나 일부 사람들이 우려한 바, 이명박의 승리는 명확한 상태에서 이명박이 자신에 대한 반발 여론이 심한 커뮤니티를 제재할 거란 걱정입니다.
더 나아가 사이트 운영자에게 관리의 책임을 물어 형사 처벌, 사이트 폐쇄까지 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우려였죠.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사이트의 성장과 폐쇄,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자 결론적으로 사이트로 얻는 운영자의 향후 수익에 대한 걱정이었을 겁니다.
2007년 당시 회원수는 6~7만 가량이었고, 운영자 본인이 2009년에 시즌 2로 개편 계획 때 밝힌 바로는 9만 후반으로 10만 내외였고요.
2007년 사태를 저는 추방을 넘어 학살로 봅니다.
일부는 6개월, 1년, 2년, 3년, 10년 글, 댓글쓰기 제한을 당했지만, 대부분 영구 글, 댓글쓰기 제한을 당했고 단 한 차례의 댓글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 운영자에 우호적이었던 사람은 징계를 피하거나 경징계로 남겼습니다.
당시 운영자가 쓴 글에서 하루에 최소 30여 명, 많은 날은 이백 명을 넘게 영구 제명했는데, 그 방식이 무기한 글쓰기 및 댓글쓰기를 전혀 할 수 없도록 등급을 강등한 거였습니다.
논쟁글에 댓글 단 사람들까지 도매급으로 처리하곤 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최소한 천 명, 많으면 수 천 명이 당했을 겁니다.
이 학살이 본격적으로 행해지기전에 벌어진 일이 몇 몇 유저가 자유 게시판에서 정치 게시판을 독립 개설하자고 한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과열을 막고자 한 유저의 걱정과 정치글 꼴 보기 싫다는 유저 등 두 가지 유형의 유저의 생각이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운영자가 정치 게시판 분리를 선언했습니다.
그 이후 자유 게시판에 아주 조금의 정치 표현에도, 그리고 정치 게시판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징계가 남발되었죠.
징계에 대한 설명은 없었고, 징계의 형평성도 없었습니다.
이 얘기도 해야 하나 싶지만, 제가 알기론 당시 정치 게시판 개설을 운영자에게 권유한 분이 이진행님일 겁니다.
여러분이 배리님으로 기억하실.
2000년대 초반에서 중반 넘어가던 시기 클리앙이 커지며 서버비가 부담(2007년이나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스럽던 때, 산업부 국장이셨던 그 분이 커뮤니티를 산업부에서 만든 사이트인 엔펀 내로 품으며 서버비 부담을 없애는 제안을 했습니다.
무분별한 광고와 홍보, 공구 등을 통한 형태는 운영자가 싫어했고(그래서 우린 그를 오랜동안 믿어왔던 거였죠.), 대안으로 적당했습니다.
나중에 엔펀과 결별할 때 결국 좋은 결말은 아닌데... 뭐 이건 여기서 줄이고.
아무튼 여러 우려로 대선 직후 동안만 정치 게시판 분리를 권유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계기로 운영자는 회원 추방을 해버린 거죠.
당시 회원 강등을 하면, 탈퇴도 할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탈퇴가 되어도 그 주민 번호는 벤해서 다시 가입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징계받은 회원이 아니지만, 클리앙이 그동안 운영자보다 회원의 자정 노력과 회원이 만든 컨텐트로 커온 곳이니
이 사태에 대한 불만과 항의의 표시로 클리앙의 글, 댓글을 다 지우고 탈퇴하고 싶다는 회원도 많았지만,
시스템 상 일괄 삭제할 방법이 없다고 운영자가 답해서 며칠씩 지우다 포기하고 탈퇴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제가 확인한 바로는 회원 아이디별로 글과 댓글을 일괄로 지우는 게 가능했습니다.
컨텐트 삭제를 운영자가 원하지 않은 건데, 거짓 답변을 한 거죠.
사실 이걸 해줬다면 강등된 회원들이 자신이 만든 컨텐트를 지워달라고 요구했을테고 그걸 들어주면 사이트로서는 타격이 컸을테니 핑계대고 자신도 할 수 없다고 한 거죠.
아무튼 이 사태 이후, 정치 게시판을 닫아버리고 자유 게시판에서 정치 얘기를 한동안 금지했습니다.
운영자에 대한 실망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벌어진 불합리한 일에 대해 논할 장을 만들자는 일부 회원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회원들이 독자적으로 시국광장이란 웹 사이트를 만듭니다.
징계 이후 대부분 떠나갔지만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분이 임시로 시국 게시판을 개설한 게 사이트화된 겁니다.
그 후 클리앙에서 정치 얘기, 불만 얘기하면 클리앙 회원들이 그 사람에게 시국광장으로 꺼지라고들 많이 하셨죠.
여러 상황을 고려할 수없었기에 그렇게 오해하실만 했습니다.
시국 광장 운영자는 시국 광장 회원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제가 알기론 배리님이셨습니다.
징계 사태와 정치 게시판이 닫힌 후 막힌 정치 소통의 장을 생각하고 만든 페이지가 사람들 요구로 메뉴가 생기고 사이트가 된 거죠.
첫 개설 땐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끼셔서 정치 게시판 폐쇄 후 게시판을 하나 만드셨던 건데, 이게 사이트가 되면서 복잡한 심경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모여 이런 저런 의견을 개진하는데 자신이 폐쇄할 권리가 이미 없다고 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초기부터 다른 분께 권한을 넘기려고 하셨고요.
여러 가지에 대해 후회하셨습니다.
배리님의 안타까운 사고를 접한 후 가끔 울적해지곤 합니다. 돌아가신 후 시국광장은 수명을 다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3년 탈상 때까지 리본을 걸고 5주기를 지킨 사이틉니다.
배리님께는 여러 모로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다른 얘기 잠깐하면, 케퍽이 클리앙 독립 후 규모가 정체되다가 pda의 종말로 사이트가 기로에 서게 됩니다.
케퍽의 대장이었던 차정호씨가 2010년 아이폰 정보를 다루는 곳으로 바꾸려고 딱 한 번 향후 방향에 대해 의견 묻는 형식을 취하곤 결론도 없었는데, 케퍽 주소를 새로 만든 아이폰 커뮤니티 아이폰당으로 갑자기 리다이렉팅해버립니다.
케퍽주소를 치면 케퍽이 아니라 아이폰당으로 연결되는 거죠.
엄청난 짓이죠. 요식 행위로 물어보는 척 한 거죠.
그래서 그동안 추앙받던 차씨에게서 모두 등 돌리고 나와서 새로 만든 곳이 kpug.kr입니다.
이 때 차씨는 회원들이 이제 팜 관련 자료의 가치는 크지 않으니 자료실이라도 db를 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아 새로운 케퍽은 약 15년에 달하는 역사가 사라진 채 시작하게 됩니다.
차씨는 커뮤니티의 글과 주소는 자신의 소유라는 입장이고 이건 회원의 글 삭제 요청을 시스템 핑계의 거짓말로 대응한 클리앙 운영자와 같은 시각입니다.
곧 차씨의 기존 케퍽은 망했습니다.
이 사태 후 모르는 사람은 케퍽 운영자를 욕하며 클리앙 운영자를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차씨의 선택이 잘못됐지만, 회원 학살한 클리앙 운영자도 만만치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케퍽은 사이트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이었고, 클리앙은 성장하고 있었기에 최종 대처가 달랐지만 과정을 보면 둘 다 좋은 운영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 둘 다 그동안 쌓여온 db를 쉽게 대하는 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그게 우리의 역사이자 자부심이고 그 자첸데.
2009년 초겨울, 클리앙 운영자는 업체의 후원을 받아 마지막 정모이자 클리앙 사이트 개편(일명 시즌 2 프로젝트)과 사이트에 대한 여러 얘기를 발표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다시피 사이트 리뉴얼을 계획하며 이를 시즌 2라고 했고,
시즌 2 적용은 그 때 계획보다 몇 년이나 늦게 되었지만, 이 때 운영자의 얘기 중 몇 가지를 저는 주목했습니다.
당시 정모 사진이 얼마 전 다시 올라왔는데 ppt 중에서 2년 전 사태라는 짧은 문구가 있습니다.
이게 제가 말한 정치글로 시작한 운영자의 회원 학살 얘깁니다.
자신의 잘못은 얘기 안 했고, 정치 얘기 안하면 좋겠단 식으로 마무리했고요.
이 때 나온 얘기가 운영자의 징계가 불편부당하여 공정성이 의심되고 운영자의 가치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문제글이 사태를 키우니, 회원 몇 명 이상 신고시 자동 블라인드 처리 등에 대해 구현 모습을 시연했죠.
나중에 시즌 2초기에 잠시 그렇게 하다 결국 다시 운영자의 가치 판단 전까진 냅두는 걸로 변경.
그리고 정모에서 정치 얘기 자체를 말자고 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명박 정부에서 커뮤니티에 대한 제재가 없자 어느 정도 정치글을 수용하는 게 회원 늘리고 사이트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을 거예요.
2007년 대선, 2008년 광우병 사태,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4대강, 2012년 대선 참 굵직한 게 많았죠.
그러면서 여기도 정치글에 관대해졌죠. 운영자가 관대한 게 아니고요.
그래도 여전히 타 커뮤니티에 비해 정치글 비중이 낮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정모에서 운영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2년 전 강등된 회원이 글쓰기도 재가입도 영구히 안 되는 것에 대해 구제할 생각에 대한 질문에
곧(그 때 계획은 한 달 여 후인) 내년 새해에 시즌 2가 열리면 이를 반영할 생각이라고요.
이것도 변명이었지만.
시스템 상 db였나 뭐가 꼬이는 문제를 핑계로 댔습니다. 거짓이었죠.
그 시절에는 주민번호를 직접 입력해서 가입했어서 주민번호를 막으면 탈퇴해도 재가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즌 2는 너무도 늦어 몇 년 후에야 도입됐고,
시즌 2가 늦어지니 주민번호 벤을 풀어 재가입이라도 하게 옛회원에게 인정 좀 베풀어달란 징계받지 않은 유저들의 요청엔 그 후에도 시스템 탓을 하고 몇 년 더 지나서야....
시즌 2에서 자유 게시판에서 자유를 빼고 모두의 공원으로 바꿉니다. 이건 지금도 이어지죠.
자유 게시판 명칭이 싫었던 거죠.
그리고 클리앙을 끌량 또는 클량으로 바꿔부르려고 했다가 유저가 따라주지 않아 거의 실패했습니다.
그 전에도 db를 일부씩 소실하곤 했지만 시즌 2 시작하며 그 전 자료와 정보들, 게시판들을 분리해서 사실상 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글에 포함된 사진 자료는 거의 다 볼 수 없어졌습니다.
부하와 새 게시판과의 호환 내세우며, 의견 수렴이나 차정호씨처럼 형식 상의 설문도 없이요.
클리앙의 역사, 회원들의 기록도 오늘 사이트 확장에 도움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었던 거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 이만 적으렵니다.
아무튼 클리앙 최대 흑역사는 회원 개개인의 사건, 사고가 아니라 운영자의 2007년 행동과 그 대처입니다.
2007년 사태 이후 사과, 반성, 대책이 없었습니다.
클리앙은 이제 20~30만명 정도 규모가 될 겁니다.
수익은 여러분이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회사들의 지출 항목에 대해 이해하신다면.
2009년 운영자가 정모에서 한 말을 기억합니다.
클리앙은 상업성을 띤, 자신의 개인 커뮤니티다.... 이 명제가 성립한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 알았습니다. 2007년 사태에 그가 2년이 지나도 왜 이리 고집을 부리고 있었는지.
2년간 제가 강등된 사람들에게 들은 어처구니없는 징계 과정과 제가 알아온 운영자는 이럴 사람이 아닌데란 의문이 풀렸고,
여러 사람이 그 후에도 미련을 갖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케퍽에 1998년부터 있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20년 가량의 케퍽과 15년 가량의 클리앙 얘깁니다.
여튼 개인사이트라는게 핵심이었죠. ㅠㅠ
차정호씨와는 중고거래도 했었는데....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예전에 활발히 정모하고 활동하시던 분들 다 모하시나 궁금하네요. 저도 싸이월드때부터니...거의 20년이네요....(아이디 움직이는 분 거의 못본듯 하네요. 아....이글의 댓글에는 빤딱이 아이디가 많이 보이네요 ㅎㅎ)
클리앙은 요즘도 방문하는 싸이트들 중 제일 오래 다니는 사이트에다 아직도 괜찮은 사이트가 아닌가 합니다.
세상에 그 시절 이명박 욕 했던 무수히 많은 커뮤니티들 (82쿡, 엠팍, 오유..) 같은 곳들도 고소를 안 당하고 저런 이상한 운영은 하질 않았는데..
2007년 정말 난리가 났었죠.
그래서 한참 안 들어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누군가의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클리앙은 클리앙 사용자가 주인이 아니고
한 개인이 주인이라고...
이 글을 많은 분들이 봐줬으면 합니다.
(당시 비회원이어서 눈팅을 많이 했지만 내용에 공감합니다.)
머라고 해도 알아서 굴라가는 환경이 되서 원한다고 어떻게 변화될거 같진 않습니다
운영자가 무료봉사 하는냥 얘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죠
근데 이거도 참 옛날일이 되버렸네요
베리님의 일은 너무나 안타깝구요. ㅠㅠ
저도 그때 나름 중심에 있었는데 시국게가 없어진 계기가
노통을 기리는 신문 광고 모금 이후 였습니다.
어이가 없었던게 그때 광고등 다 진행 했는데
사이트 관계자라고 자칭 하신분이 저대신 인터뷰 하면서
기사가 클리앙이 넷상 반 정부 기조의 주축중 하나이다 이런 기사가 나갔는데
그때 바로 정치 게시판을 폐쇠 한것은 클리앙이 유일 합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면 자랑 할 일인데 그때는 운영자는 모른척 하면서
운영진 이라고 의심되던 몇명을 위주로 시국게 탄압이 이루어졋죠.
쪽지로 가족에 대한 협박성 언질을 받았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 그냥 그렇거니 했지만
그 이후로 저는 클량에는 소모임 이외에는 글을 거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http://dreamwanderer.net/m/30
2007년은 난리였고 운영수익내는 개인사이트라는 게 화두가 된 건 2009년인 모양입니다.
그 때는 제가 메인으로 쓰는 데는 아니였기 때문에 그 광경을 목도만해서 살아남았는데
글쓴이가 잘써주셨는데 흑역사였긴합니다.
벌써 10년이 넘었다니...
신기하게 그 당시도 지금도 제대로된 대체 커뮤니티가 없기 때문에
지금도 잘나가고 있습니다만
이런 글이 올라온다는 자체가 제대로 커뮤니티가 굴러가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라...
다른건 회원들이 알아서 한다지만 쓰레기만 좀 치워달란 소리도 반응이 없으니 좀 그렇죠.
이런 비아냥이 횡행하던 시대 ㅠ
그리고 베리...아닙니다 배리... 입니다
그 친구 베리라고 쓰면 꼭 배리라고 바꿔달라하던 자 입니다
입술두접시 그립네요
배리옹의 장례식은 한국에서도 친구들과 함께 했었고
털보아저씨나 김미화씨도 오셔서 조문하시고 예배드렸습니다
저 입술두접씨 아저씨 그립습니다 잊어주시지 않아서 고맙습니다
당시 운영자의 행태를 옹호할순 없지만 정치글을 싫어하던 저로서는 다른방법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결과론적이지만 그렇게 함으로 해서 사이트도 더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도 들고요.
새소게나 팁과 강좌 등에서 유통되는 정보도 물론이고 자유게시판에서 논쟁이 생겨도 저 사태 이전 보다는 매우 단편적이고 감정적으로 흘러가거든요.
아재 세대로서 복고에 대한 행수나 시대의 변화를 못따라가는 관성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그런 느낌을 지우기가 힘드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https://archive.is/uyYPB
하던, 나가서 비밍하던 클량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새로운 사람도 너무 많고, 시끄러워졌어요...
매너 없는 사람도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고요
배리 님과는 사석에서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누었던(당시 저는 20대 초반 꼬마였네요) 기억이 납니다..
어느 순간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무거움을 핑계삼아 조용히 살고 있었습니다만,
울컥해서 정말 거의 6년만에 댓글 달게 되네요..
어느덧 기억도 희미해지고 있지만 배리님의 부고를 들었을 순간의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운영자가 뭔가 심오한 뜻으로 어렵게 운영하고 있는줄 알았어요.
안보이는 다른분들도 잘 있으시긴 한지... 참..
초기에 친했던 분들 그립네요..아직 sns에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다른 커뮤니티/카페에서 그 때 아이디의 흔적을 볼 수 았는 분들도 있구요...
특히 배리님 그립네요...
2007년엔 클리앙에서 좀 떨어져 았어서 대강 느낌만 기억납니다.
여튼, 다시 자유로웠던 그 당시의 분위기가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698826?CLIEN
((당시에 저는 젊은 회원 이었는데,,,요즘은 늙은 회원이 된듯 하네요,,,))
이 글을 읽다보니 당시 질풍노도의 시절이 떠오릅니다.
하수상하던 시절을 겪으며 한때 시사.정치 글이 금기시 되던 시절이 있었습지요.
분기탱천해서 클량과 싸이퍼님을 마구 후벼 파는 글을 익명으로 쓰기도 하고
또 그 글이 클량에 퍼날라와져서 논란이 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시국게의 후유증이 컸던 탓도 있고 정국이 차츰 더 악화되며 이곳 회원들의 쌓여가는 분노가
커지면서 글쓰기 제한이 풀렸지요. 그 덕분인지 결국 지금과 같은 세상을 맞이했습니다.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 시간과 인내심이 약인듯 합니다.
차츰 무심해지고 초연해지면서 그때의 섭섭하고 야속했던 마음도 많이 풀렸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정돈된 사이트의 혼란과 미흡한 부분도 조금씩 정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간만에 배리님 얘기와 낯익은 분들의 댓글을 보니 무척 반갑기만 합니다.
다들 편안한 일요일 되시길~
아이고~ 대다수가 어줍잖은 기사 스크랩물들인데요 뭐.
42.195km님은 클량史에 빠꼼하신 것을 보니 아마도 '귀향한 신규회원'이신가 봅니다. ~ㅎ
제가 익히 알고 있었던 분인지도 모르겠군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배리님을 추모하고 아쉬워하는 오래된 회원 분들이 많은 것이군요.
눈팅 회원이라 잘 몰랐는데, 잘 읽고 갑니다.
그리고 늦게나마 배리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냥.. 여기 모인 사람들이 좋아서.. 좋은 의견들이 많아서.... 그냥 그저 그렇게 머물고 있습니다...
이십여년간 이렇게 있을 수 있는 사이트가 있고, 이를 구성하고 있는 운영자님과 회원분들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반가운 닉네임들이 언급되네요.
2007년의 사태는 저도 지켜보았습니다.
배리님의 사고가 있었을 때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에서야 그 이유중의 하나를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클리앙의 처음 모습과 사람들이 많이 사라지고 변해버렸음이 아쉽기만 합니다.
클리앙 싸이월드도 가입했던 눈팅회원입니다
초창기 가입자들 리셋했던 기억도 있고..
엔펀시절 즈음 5~6년 안들어왔었는데 격동의 시기였네요
2000년대 잘나가던 사이트중 다수가 문닫거나 과거의 영광을 유지 못하는 시대인데 그래도 클리앙이 요기까지 온건 유저의 힘이라고 봅니다
운영자도 유저를 위한 마인드로 운영해서 앞으로도 계속 접속할수 있는 사이트가 되길 바랍니다
지금도 탈퇴/재가입이 안된다면 고소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유령이긴 했지만..2002년 회원군번입니다. --;
글 정리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여기를 거기랑 비교하는 건 좀 웃겼네요.
그나저나 2007년 무렵이 본격 클리앙 가입했던때 같은데
예전에 극악무도한 애플신도들의 모습에 학을 뗀적은 있었어도
이런 내용이 있었는 줄은 몰랐네요..
정말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다른 부분은 둘째치고 배리님 이야기가 있어서 댓글 답니다.
시국게가 배리님이 돌아가셔서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는 것도 알아갑니다.
배리님 그립네요.
이전 역사(?)와 유저와의 관계를 잊어 버린다면 말입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것이 명확해졌네요
음...이사가고 싶군요....싹...다 모시고.....새로운 곳으로...
이런 저런 커뮤니티의 흥망성쇠를 겪어온다는 것은... 아련하면서도 나만 나이든 것 같아서 씁쓸했는데, 시국게.. 배리님.. 옛 이름들이 반갑네요.
그립네요. 케퍽시절.
했던 예전기억들부터 주욱 떠오르네요.
(집에 너33 아직있네요)
그 시절 이후에 전체적으로 퀄리티 떨어지고 그래서
잘 안오다가 간만에 좋은글 읽었네요.
좋은글, 깔끔한글 감사합니다.
뭐... 그렇습니다.
하이텔 내의 동호회들도 문제가 많았고 결국 kbench가 되었던 부분도 갑자기 떠오르네요.
회원들과 운영진들과의 관계. 회원들이 올린 컨텐츠에 대한 인식이 좋은 곳은 잘 못크고
회원이 올린 컨텐츠가 자기것이라고 인식하는 사이트 중에서 잘 되는 곳들이 나오다보니
어느순간 빈익빈 부익부의 원칙이 커뮤니티에도 적용.
눈팅족 이지만 하지만.. 참 안타깝네요.
그분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랍니다
없는지 알기 쉽게 요약한글이네요. 저도 2003년도
가입자인데 MB이후 한동안 클리앙에 접속하지 않다 소모임 개설후 자주 방문하네요.
지금은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있는 과거 클리앙하던 룸메형이 생각납니다.
이봉희씨가 절대 그분들을 품을만큼 큰 그릇이라 생각되지 않네요. 얼마전 황모양께서 출산하신걸로 알고 있는데 부끄럽지 않을 아버지가 되시려면 싸이트 운영 제대로 하셔야될듯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kpug 싸이월드 그리고 지금의 클리앙을 다 지내왔는데 시국게 시절에 마침 해외생활을 길게 하느라 적극적으로 참여도 못하고 띄엄띄엄 접속해서 그냥 분위기만 스캔하고 갔습니다. 올려주신 글을 보니 그때 열심히 활동했음 지금까지 영정이었겠네요 ㅎㅎ
본문에 잠깐 언급하셨는데, slrclub도 올림푸스 e-10을 쓰는 반대걸(반모)씨의 개인 사이트였죠. 클리앙과 비슷한 류의 진통과 몇번의 사건사고를 겪고 덩치가 커지고 결국 법인 전환하고 그 뒤로도 더 굵직한 사고 이후에 결과적으로 지금처럼 너덜너덜 해졌습니다. (거기도 클리앙처럼 초기에 서버비용 모금하고 그랬는데...)
2019년에 다른 글에서 정치글을 규제하면 좋지 않느냐는 의견들에 대해 제 의견을 댓글로 적었는데, 길긴 하지만 정치글 규제가 커뮤니티와 회원, 그리고 운영자 사이퍼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로 다가온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리로 옮깁니다.
=================================================
'정치 얘기를 안 하면 쌈도 안 나고 좋지 않겠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사이트 이용자가 줄고 글이 줄어듭니다.
문화 컨텐트에서 검열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에서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나서야 비로소 한류가 생겼습니다.
과거 미국 팝 음악, 락과 포크와 90년대에는 힙합이 휩쓸었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 음악을 듣고 모닝구 무스메 등 일본 아이돌을 소비하던 한국 젋은이들은 한국 음악을 촌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다 90년대 초중반부터 댄스, 랩, 힙합 한국 음악이 서서히 주류로 뜨면서 이제는 젊은이들이 한국 음악을 외국 음악보다 더 듣습니다.
여명의눈, 모래시계가 히트치며 미국, 일본 드라마 위주로 보던 게 바뀌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영화 또한 쉬리가 90년대 후반에 히트하면서부터 일본 영화 수입 개방과 한국 영화의 상영 비줄을 강제한 쿼터제를 줄였음에도, 한국 영화가 그 후부터 더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가? 경제력의 향상과 함께 그보다 더 중요한 게 검열 문제입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검열 그 자체보다 검열을 우려해서 제작가, 감독, PD, 작가가 아예 미리 문제될 듯한 부분을 손봅니다.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자해 놓고, 검열에 걸리면 아예 대중에게 선보일 수도 없으니까요.
이로 인해서 대중이 접하게 되는 대중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현실성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작위적인 작품이 나오게 되고, 이런 건 현실을 가장 잘 아는 그 나라 사람이 외면합니다.
더 선진국의, 더 자유로운 나라의 문화 상품이 우리를 기다리니까요.
70~90년대 히트한 홍콩영화, 그리고 일본 영화가 왜 지금 몰락하고, 한국 영화가 아시아를 호령하는가?
적어도 아시아는 꽉 잡던 일본 음악과 아이돌 산업이 한국에 밀려버리고, 한국 아이돌이 이제 세계적이 되었는가?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중국 영화, 음악, 드라마, 예능은 왜 여전히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것을 베끼고, 무협에서 대포를 쏘는 황당한 판타지에 치중하는가?
중국이 무협영화, SF영화에 치중하는 건, 간단합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 이것은 정치적인 메시지가 빠지기 어렵고 그걸 빼면 현실성 떨어지는 작위적 작품이 되니...
중국인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좀 더 자유로운 소재가 무협과 SF인 거죠. 그러나 이 역시도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면 작위적이 되고, 그걸 중국 제작자, 감독, 작가들도 아니까,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과도한 특수 효과를 넣어서 우리 작품은 이런 커다란 스케일의 볼 거리가 있다고 홍보하는 거죠.
그래서 진시황이 통일을 하는 춘추전국시대가 끝나는 무렵에, 대포... 그것도 최신 레이저 빔 같은 걸 쏘는 장면같은 말도 안 되는, 무협물+역사물+SF물이 결합한 볼거리에 치중한 장면이 나오는 거죠.
정부의 검열 이전에, 제작자, 감독, 작가가 스스로 자체검열을 해버리는 것, 이것이 문화 상품에 있어 가장 독입니다.
2007년에 운영자 사이퍼가 정치글을 규제한데는 새로 들어설 정권, 이명박 정권에 의한 커뮤니티 탄압으로 사이트가 닫거나 운영에 문제가 생길 걸 걱정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클리앙은 국내에서 30위권 밖의 커뮤니티였습니다. 다른 곳들이 더 먼저 탄압당해야 클리앙의 순서죠.
디시, 오유, 웃대, SLR, 보배드림을 비롯한 어느 커뮤니티 운영자도 사이퍼처럼 저런 선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서도 커뮤니티를 건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워낙 실정을 해대니, 커뮤니티들이 다들 정부 비판 일색이었고 그걸 막다가는 회원이 떠날 지경이었죠.
그러자 사이퍼는 슬그머니 정치글에 대해 놔두기 시작합니다.
2007년에는 자신의 주장이 먹혔지만, 그 이후에는 오히려 그러다 사이트 회원이 떠나 사이트가 망할 수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죠.
앞서 말한 문화 상품에서의 검열과 같은 맥락입니다.
클리앙에서 정치글을 막으면, 당장은 조용해져서 좋죠. 그러나 우리의 삶은 정치와 밀접합니다.
당장 이번 강원 산불에서 소방관의 활약이 강원 지역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지켰습니다.
소방관의 처우를 개선하자, 국가직으로 전환하자, 부족한 장비를 지원하자... 이거 다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에 의해 막혀 있으니, 곧바로 정치적인 주장이 되고 맙니다.
이재민의 지원에 대한 주장도 마찬가집니다.
정치는 모든 것과 이어져 있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연예, 과학, 인문학, 보건, 복지, 관광, 국방안보, 외교, 북한문제, 일본과 과거사와 독도문제, 의무병인 한국의 군대, 저출산문제, 노인자살, 연금, 부동산, 미세먼지...
이런 것 모두가 정치와 이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집권하면 그 민주주의가 후퇴합니다.
유럽의 68년의 대학생 위주 집회 영향으로 일본은 69년에 반정부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그 후 자민당 위주 독재로 굳어지며 그 이후 세대는 반정부 시위라고 할만한 활동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우경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아이돌 음악에서 보여주듯, 소아애적인 아이돌을 생산해내고 있죠.
아베 정권 들어 일본은 문화 상품마저 자체 검열을 하고 있고요.
홍콩 영화가 몰락한 것은 중국으로 주권이 넘어간 게 큽니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의 민주주의 성장이 지지부진한 것 또한 정부의 통제 때문이죠.
한국은 꾸준히 민주화운동이 있었습니다.
일제가 조선에 진주하자 동학운동이, 나라를 뺏기고는 3.1운동과 여러 집회와 독립운동이...
이 혼란기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광주에선 6.10 학생의거 등 지역, 계층을 가리지 않고 벌어졌죠.
미국 군정과 이승만 정부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집회가 있었죠. 공산주의자의 영향도 있었지만,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가 국민 삶을 어렵게 하면서 벌어진 항의가 더 컸습니다. 잘 알려진 제주 4.3, 여순 사건 뿐 아니라 지금은 콘크리트 같은 경상의 대구, 부산, 마산, 진주 같은 곳이 더 항의집회가 강했습니다.
박정희 정부에서도 부마항쟁이라고 부산과 마산(지금의 창원시와 진해도 같은 구역입니다.)에서 커다란 집회가 있었고요.
전두환 정부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6월 항쟁으로 몰아냈고요.
이명박 정부에서는 광우병 촛불집회가 광화문을 밝게 빛나게 했고요.
박근혜 정부는 그 추웠던 겨울 석달 넘는 주말마다 촛불집회로 탄핵했죠.
식민지, 미군 군정으로 주권을 잃고, 독재와 군사독재,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의 독재를 겪으면서, 언제나 각계 각층이 저항을 했습니다. 목숨을 잃고 재산을 던져가면서요.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처럼 살면서도 고국에 독립자금 보내던 민족입니다.
나라 잃었을 때도 중국을 떠돌며 무장투쟁을 했고요.
소련 땅에서 강제이주도 당해야 했고요.
일본에서 징용과 관동대지진 때 우물에 독약 넣었다는 소문으로 일본은 지진으로 인한 일본 민심을 조선인을 공격하는 걸로 무마했고, 그렇게 학살도 당했고요.
미국 200~250만명, 중국 200만명, 일본 150만명, 구소련 100만명 이상의 해외 동포가 흩어져 사는 게 안타까운 과거 역사 탓이지만, 이렇게 세계 4대 강국에 백만명 이상씩 사는 경우가 없죠.
딴소리지만 우리가 해외 동포에게 과거에는 경제력이 부족해서 그들을 외면했지만, 이제는 한국어와 한글, 그리고 우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방학 때라도 운영하는 학당을 운영해서 이들을 활용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습니다.
과거 어려운 역사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때론 중국 의용군에도 들어가야 했고 해방 후 공산주의자도 함께 했지만, 그것 전체를 빨갱이로 몰면 안 됩니다.
아무튼 우리의 그런 꾸준히 이어진 저항의 역사가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로 만든 겁니다.
정치글을 규제하면 당장 몇 개월 좋습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커뮤니티를 망하게 합니다.
그걸 2007년 대선 때 정치글에 대해 과하게 규제하면서, 그걸 빌미로 평소 맘에 안 드는 회원을 쫓아냈던 사이퍼가...
그 사태 이후 사이퍼는 금새 깨달은 거죠.
정치글을 규제하는 걸 계속하다가는 자기 돈줄인 클리앙 자체가 망할 수 있다는 걸요.
그래서 과거 자신의 잘못을 여전히 인정하거나 사과하지는 않지만, 2007년에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강화했던 정치글 규제를 그 이전보다도 더 자유롭게 전면적으로 풀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현재도 오유 사태처럼 운영자가 정치글을 대할 때, 한가지 장점만 생각하고 대응하면...
결국 커뮤니티 회원이 줄고 글도 줄게 됩니다. 당연히 커뮤니티의 수익도 줄어들고요.
사이퍼가 정치글 규제를 포기한 것은 정치적 견해 때문이 아닙니다. 그게 커뮤니티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임을 결국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커뮤니티에서 정치글을 얘기하지 않으려면... 거의 모든 주제를 다 외면해야 합니다.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연예, 과학, 인문학, 보건, 복지, 국방안보, 외교, ..... 당연히 종교도요.
독재국가의 국민이 겪는, 입에 재갈 물리는 답답함이 돌아오겠죠.
그리고 더 자유로운 커뮤니티로 다들 떠날 겁니다.
우리가 90년대 중반까지... 한국 대중문화는 촌스럽다고 여기며, 미국과 일본 영화 드라마 음악을 보고 듣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 보니 내가 뭘 타고 여길 왔는지도. ..
가입18일차 입니다.
하루 자는시간도 포기하고 모공에서8시간 이상씩 최대한 댓글 까지도 다 읽으면서 배워갑니다.
딴지일보는 시작때부터 가끔 눈팅만 했었는데,
이곳은 헤어날 수가 없네요. 앱으로 보기도 넘 편하고
제겐 힐링의 공간입니다.
댓글 대댓글의 몰랐던 농담들도 이해할 수 있게되서 기쁘고, 운영자가 돈걱정은 안 하는구나. 알게되서 좋습니다.
힘들진않을까 뱅기타고 날아가서 밥이라도 사얄것 같은 . . 제겐 너무 고마운 클리앙!
수년전에 많은 분들이 떠나셨다니. 안타깝네요.
가입 막히기 전에 그분들 다시 와주셨기를.
2년전 겨울 이사전에 마지막으로 고이 간직하던 핸드스프링 treo 90을 버린 걸로 팜기종은 이제 없습니다.
정게분리 등으로 시끄러운 시절, 염증(?)을 느끼며 이슈를 외면하고, 클리앙도 오지 않았던 시절도 생각나네요. 후회하고 반성하는 부분입니다.
깨어있는 시민, 클리앙 회원님들 아니었으면, 이번 법무부장관 관련 사태를 보며 종잡을수 없이 흔들렸을꺼라 생각합니다. 요즘 제게 가장 의지되는 분들은 얼굴도 모르는 클리앙 분들입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저도 Palm 시절부터 가입한 사람이라 감회가 새롭네요.. ㅎㅎ
클리에가 거의 망했던 시절, 클리에가 거의 망해가지만 여기는 클리에 사이트인데..
클리에 말고 다른 이야기들만 잔뜩 하는게 이상하다고 이야기했다가..
운영자 분께서 친히 댓글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을 달아주셔서..
홧김에 탈퇴했다가 그래도 여전히 클리앙 분위기가 좋아서 최근에 다시 가입했네요..
대략의 스토리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다시 짚어주시니 좋습니다. :)
내용글이 거의 클리앙사가 정도급입니다.
마치 허구로 가득한 역사 해설서 읽다가
제대로 된 정통 역사글 하나 읽은 느낌입니다
이런 흑역사가 난무한 가운데에서도
애증을 갖고 남아 계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이런 회원분들이 클리앙 역사의 주춧돌인데 말입니다
긴 글 작성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누구덕에 이사이트가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는듯 한데 여튼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진 않는것 같네요. 입장을 올리긴 하겠지만 기대는 좀 내려놔야 할거 같습니다.
"입 바른 얘길 하시던 42.195km님의 '영구강등'에 대해" (2019-11-27)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4327843CLIEN
리스펙트~ 합니다. 스크랩 해 두고 또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인가 가입 유저로써 지금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봐 왔지만, 운영A를 필두로 한 최근의 몰상식 운영은 이젠 더이상 봐주기 힘들지경이네요.
뭐 그래서 전 글 별로 안올리는 댓글러에요... 그래도 열심히 글 올려주시고 상식, 트렌트, 잡학지식과 인사이트 공유해주시는 여러 적극적 회원분들에겐 항상 감사합니다만, 관리에 있어선 이젠 좀 염증나려하네요. 콘텐츠 관리도 하는게 없으면서 꼴랑 이렇게밖에 못하겠는지... 대체사이트 구상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닐텐데 이러다간 KPUG꼴 머지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