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 주립대학에 재직했던 종교학 교수이자 문화인류학자인 Hector Avalos의
Religion & Violence 라는 강연입니다.
이 강연에서 흥미있는 부분들을 제 나름대로 요약해보자면,
- 어떤 사람들은 종교, 혹은 특정 종교는 본질적으로 선하며,
종교적 폭력은 종교의 '나쁜 형태'나 '근본주의적 형태'에 의해 발생한다고,
'좋은 형태'의 종교는 결코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종교적 폭력이 종교의 '일탈적인 형태'라는 생각은 '진정한 형태'의 종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진정한 형태'의 종교가 있다는 생각은 신앙 기반의 검증 불가능한 주장이다.
종교의 '진정한 형태'가 평화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주장이 아닌 신학적 논쟁에 불과하며
스스로를 '진정한 형태'의 종교를 따른다고 선언하는 순간,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게 된다.
( 저는 '사이비종교'와 '진정한 종교' 라는 구분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
현대 이슬람 폭력은 주로 서구의 세속화와 식민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슬람을 포함한 야훼신화 계열 종교들은 본질적으로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유일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소유하며, 그 추종자들이 유일신을 대신하여 전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는 " '개독'이 문제인 거고, 원래의 기독교는 좋은 종교다 " 라는 식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데,
마찬가지 맥락의 생각입니다.
자신들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폭력을 유발하거나 그 자체가 폭력이라고도 생각합니다. )
- 폭력은 누군가가 희소 자원을 획득하려 하거나 유지하려 할 때 발생하는데,
종교는 이 희소 자원을 창출(!)하여 폭력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희소 자원의 4가지 예를 보자면
1. 신성한 텍스트 : 신이 특정한 텍스트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2. 신성한 공간 : 특정 공간(ex. '성지')은 다른 공간보다 더 가치있다.
3. 특권적 집단 : 선민사상, 타민족 학살, 이방인과 결혼 금지 등
4. 구원 : 특정인들에게만 허락된 종교적 상품으로, 이를 위해 죽거나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가치가 있다.
석유같은 실제 자원을 두고 싸우는 것도 나쁘지만, 검증불가한 자원을 놓고 싸우는 건 더 나쁘다.
여기서부터는 제 생각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슬람은 폭력적인 종교이고 기독교는 그와 반대로 '사랑의 종교'라는 식의 인식이 많이 퍼져있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등은 모두
이스라엘 부족의 전쟁신인 야훼를 숭배하는 신앙입니다.
전쟁신 신앙이니 배타와 폭력, 독선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지요.
그들이 공통으로 보는 경전에서 야훼는
남색을 해도 죽여라
다른 신을 숭배해도 죽여라
혼전섹스를 해도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이래도 죽여라 저래도 죽여라
불에 태워 죽여라 돌로 찍어 죽여라
끝도 없이 주문을 해댑니다.
야훼는 이스라엘인들이 다른 신을 숭배했다는 이유로
각자 자기의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이라는 명령을 했고
그렇게 수천명의 동족을 학살한 사람들을 칭찬했다죠.
(기독교인들은 야훼신앙에는 인신공양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사람을 죽여 신을 기쁘게 한다는 점에서 굳이 인신공양까지 갈 게 있나 싶기도 합니다.
트럼프 지지자 기독교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없애버리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예언대로 예수를 재림시켜서 신을 기쁘게 하고 싶겠죠.)
어쩌다 그렇게 공통의 뿌리를 가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폭력성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진 걸까에 대해
뇌피셜하고 단순화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기독교가 자리잡은 유럽의 중세는 로마 제국 붕괴 이후 정치권력들이 분열되어
중앙집권적인 국가 시스템이 약했고
교황 체제의 종교권력이 사실상 최고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부확장(십자군전쟁), 내부통제(마녀사냥, 종교재판) 등에
전쟁신 신앙으로서의 폭력성을 거리낌없이 휘두를 수 있었지요.
그러다가 근현대에 접어들며 서구에서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이 발달하며
세속권력이 종교권력을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정치적인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후퇴하고 비교적 온순해지게 되었지요.
즉, 기독교는 원래 평화와 사랑의 종교인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의해 폭력성을 제압당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16세기에 발생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카톨릭교도들이 개신교도들 수만명을 학살한 사건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 사건을 축하하여 '하느님께 찬양'이란 성가를 부르도록 하고 특별 감사 미사를 집전했다고 합니다.)
한편 그 중세시절에 이슬람권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 구조를 오래 유지했습니다.
유럽처럼 종교권력이 정치를 압도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지식, 무역, 과학, 철학이 번영하며 종교의 폭력이 덜 눈에 띄는 시기를 거쳤습니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이 이 시기의 이슬람교는 기독교보다 관대하고 포용적이었다는 평을 합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이 지역은
식민지 경험, 국가 체제 불안정, 정치적 억압 등으로 세속 국가의 정당성이 비교적 약하고
종교권력을 통제하기는커녕 그것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은 폭력적 이데올로기, 집단행동으로 힘을 발휘하는 쪽이 환경에 적응적이 된 셈입니다.
즉, 유럽과 중동의 중세->현대의 상황에서 각각의 환경이 다르게 변해옴에 따라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환경에 적응하며 서로 반대로 진화해온 것이죠.
그러니, '기독교는 온건한데 이슬람교는 야만적이다'라기보다는
이 야훼신앙들의 폭력성이 세속권력에 의해 제압이 되었는가 아닌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 기독교도 세속권력에 의해 제대로 제압되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언제라도 이전처럼 폭력성을 마음껏 휘두르려 할 겁니다.
(지금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말이죠.)
그리고, 넓게 보자면 야훼신앙 뿐 아니라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만이 그것을 갖고 있으니 모두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 라는 '절대주의'는
그 자체가 폭력이거나 폭력을 유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절대주의라는 건 그 정의상 다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모순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일신교는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 대응을 생존전략으로 사용했고,
그 덕분에 본문의 기독교와 이슬람교 생존했지만 강력한 폭력적 요소를 내재합니다.
그러고보면,
다신교적인 부족이 타 부족과 전쟁을 해서 진다면
너희 신이 우리 신보다 더 강력하구나, 라는 식으로 융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인도 등에서 신들의 계보가 그렇게 만들어져온 거겠죠.
너희들의 신도 있고 우리의 신도 있고 하는 식으로.
예수라는 신이 있다는 말을 힌두교인이 들으면 아, 신이 하나 늘었구나 라고 할 거고
한국의 무당이 들으면 음, 예수귀신을 모셔볼까,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일신교적인 부족이 타 부족에게 진다면 이런 선택지가 있겠지요.
- 선택 1 : 우리가 믿는 신은 사실 없었다
- 선택 2 : 우리의 신에게는 당연히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신의 뜻을 잘못 받들어 벌을 받는 거다. 우리가 더욱더 맹렬하고 신실하게 신에게 충성해야 한다.
1번을 선택한 부족의 종교들은 이미 그렇게 사라졌을 거고,
결국 우리가 보는 일신교들은 2번을 선택한 것들 뿐.
국가도, 자본도, 그 어떤 사상이나 철학도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관건은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하는겁니다.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과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으면 뭐 어쩌라는 걸까요? 종교를 금지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글에서는 유일신교가 다신교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건 불교를 비롯한 다신교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하는겁니다. 다신교도 권력과 유착하면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유일신 종교와 큰 차이가 없어요.
네, 다신교라고 해서 폭력에서 자유로운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그리고 우리가 그걸 독점하고 있다)'라는 절대주의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폭력이거나 폭력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거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의 민주주의는 인류가 겪어온 거대사회시스템 중 그나마 폭력을 줄이려 노력하는 쪽에 속하고,
(정당끼리의 극단적인 대립도, 합법적인 계엄 해제와 처벌 같은 것도 과거에는 총칼로 해결했을 문제죠)
절대주의는 민주주의를 선택한 우리 사회와는 상극인 반민주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시스템 내에서 그 구성원들이 남녀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파시즘 등을 반대해야 하듯이
저런 절대주의적인 신념 또한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앵똘레랑스에는 똘레랑스를 적용할 수 없으니까요.
인종차별주의나 남녀차별주의의 기저에 어떤 신념이 있든
민주주의와 그것들은 모순적인 관계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교리적으로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좀 다르다고 봐야 하는게 맞습니다. 폭력성이 사회적 으로 제어되느냐 여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것이라는 글쓴님의 예상은 충분히 개연성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설?이 퍼진 것은 예수가 그런 이야기를 하다 갔고, 예수를 신의 지위(삼위일체설)까지 승격 시킨 종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이죠.
기독교가 왜 사랑을 강조하는 창시자를 두고도 이모양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습니다만, 기독교 자체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강조하는 창시자를 둔 종교가 맞기는 합니다.
/Vollago
학자에 따라서는, 예수를 기존의 야훼신앙(유대교)의 신본주의적 폭력에 맞서 인본주의적인 사랑을 강조한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폭력에 맞서는 방법론, 즉 자기희생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라는 거죠.
하지만 후대의 종교인들은 그렇게 전쟁신 신앙의 폭력에 저항하고 사랑을 이야기한 예수를
거꾸로 뒤집어서 그가 바로 전쟁신 야훼의 현신이라며 신격화하고 그를 숭배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그들은 예수를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셈이겠지요.
(브라만교의 폭력에 휘둘리지 말고 각자가 깨달음을 얻자고 한 싯다르타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어떤 불교신자들도 마찬가지일 테구요)
'하나의 밀알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예수와 같은 삶을 산 김대중이나 전태일 같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말든) 예수를 내 소원을 들어주는 자판기 신으로 활용하는 종교인들도 있는 거겠죠.
복을 내려 달라, 천국에 보내달라...
이렇게 사람을 신격화하는 신흥종교로서 유대교에서 갈라져나온 기독교의 교리는
마찬가지 메카니즘으로 새끼 기독교들을 찍어내는 프로토타입이자 붕어빵틀입니다.
JMS, 신천지, 통일교 같은 것들은 그 신격화의 구조를 한 번 더 적용하면서 기독교에서 또 갈라져나온 것들이죠.
("야훼가 예수라는 몸을 입고 세상에 왔다는데, 문선명의 몸을 입고 또 오지 못할 건 뭐야")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그런 신흥종교들의 피해자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사실 문제의 근원이 기독교인 거고,
기독교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런 새끼기독교들은 계속 생겨날 겁니다.
저는 세상의 속성이자, 인간의 속성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종교의 창시자가 아무리 본질에 다가간, 세상의 존재들은 하나로 연결되었으니 불행한 다툼을 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의 '고'를 없애는 것이며 이를 깨닫는 것이 해탈이라고 말하거나, 세상의 창조자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니 우리도 그 뜻에 따라 사랑하며 희생하며 살라고 해도... 몇 세대를 건너면서 종교화되며 교리의 수준은 세속화되며 자기들 편한 것만 따라 믿으며 절대시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욕먹는 개신교도 당시의 카톨릭에 비해선 나름의 개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어느새 500년이 흘러 버렸습니다.
유대교의 구약조차도 당시의 신들에 비해서는 노예(유대인)들을 하루라도 쉬게 해주는 등 개혁적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기독교는 유대교에 비한다면 기존의 가치질서를 전복하는 혁명적인 종교였지만, 결국은 카톨릭으로 세속화되고, 그에 저항해 태어난 개신교는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세속의 첨단을 걷고 있지요.
유일신론이 좀 더 위험성이 높기는 하나, 결국은 종말론, 화신, 부활 같은 것은 수많은 종교들에 있었던 요소이기도 합니다.
기독교가 그래도 수천년을 넘어오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면서도 그래도 '서로 희생하고 사랑하라'라는 창시자의 진정성을 따르려는 얼마 안되는 분들이 있기에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통일교, 신천지류와 비교는 좀 그렇죠 ㅎ 예수보다 더 희생하고 더 사랑하자고 주장하는 아류는 없죠. 그런 아류는 굳이 예수교와 다르다고 주장할 필요도 없고, 뭐 본인에게 도움될 여지도 없으니..
네, 공감가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렇게 어떤 생각을 절대화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인 듯 합니다.
이전에 이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959299CLIEN )
우리의 뇌는 정확성을 희생해서라도 신속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진화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과 다르더라도 빠르게 단정하고 확신을 갖는 쪽이 스트레스가 덜하고
(유발 하라리식의 표현으로) '대규모의 협력'에 유리합니다.
정치인의 단호한 발언과 그에 호응하는 대중,
단정적인 진리를 확신하며 안정감을 얻는 종교인들처럼요.
현대인은 함무라비의 '눈에는 눈' 식의 복수를 잔인하다고 하지만,
그건 그 이전의 끝도 없이 확대재생산되는 복수를 제한하는, 당시로서는 진일보한 법이었다고 하죠.
그런 조금씩의 진일보를 기반으로 인류는 여기까지 문명을 발전시켜온 것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함무라비의 법을 그대로 지키자고 하면 미친놈 취급받겠죠.
그렇게 진일보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겠지,
그 당시의 그 법 자체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절대불변의 진리로 받드는 건 엄청난 시대착오겠습니다.
예수도, 싯다르타도,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대규모로 모여 사회를 이루어 살게 되는 전환기(축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질서를 이야기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함무라비의 예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그 이전의 도그마를 깨뜨리며 문명을 진일보시킨 시도일 것이고
그 시기의 한계를 가진 그 결과물 자체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결과물, 그들의 말 자체를 새로운 도그마로 만들어 집착하는 광신은
현대인도 함무라비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처럼 어리석은 생각이리라 봅니다.
스티브 잡스의 도전정신을 존경하는 걸 넘어서
"우리 모두 초기 애플컴퓨터만을 사용해야 한다"고까지 가는 사람이 있다면 상담을 권해줘야겠죠.
그리고 우리 역시 그렇게
오류를 수정하며 계속 진일보할 수 있는 태도를 시스템화한 실례가
민주주의나 과학적 방법론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사람은 사소한 친절에 눈물흘리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니까요.
종교의 순기능은 그런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라 봅니다. 그냥 무시하기엔 사람의 존재가 너무 나약하죠.
비판은 환영. 다만 모든것을 싸그리 무시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과도하거나 의도된 몰이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종교는 마약'이라는 비유가 참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데,
극단적인 경우에 우리가 마약이 필요한 경우가 있듯이 그런 종교를 사용하는 게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다 잘 될 거야'라는 말 같은 것도 그렇게,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아니지만 고통을 줄여주는 마약류, 진통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문제는 남용이겠죠.
극히 제한적으로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
지금은 함부로 엄청나게 남용이 되고 있는 걸로 저에겐 보이는 거구요.
그렇게만 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전 세상이 이렇다 보니, 가슴으로는 슈퍼 히어로 같은 인격적 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무신론자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차라리 신이 사라진다면 그 빈 자리를 우리 인간이 채우면서, 진리를 찾으려는 윤리적 과학적 진화가 가속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재밌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이런 얘기도 수요가 있다니 ㅠ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959299CLIEN
전에 위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이 세상을 만들었고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는 궁극의 음모론이나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 사람들의 신분에는 차이가 있다는 등의 믿음은
그 사람들이 멍청하거나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그렇게 믿는 게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에,
즉 그게 진화적으로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에 자연선택된 meme일 거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게 생각하게 된 것도 더 똑똑해서라기보다는
문명이라는 환경이 달라지는 것에 적응하며 다르게 생각하게 된 것이리라 생각하구요.
대충 과학혁명 이전까지 인류는 그렇게 믿음을 중시하는 시절을 거치며 지내왔고,
과학혁명 이후로 본격적으로 믿음보다는 사실을 더 중시하는 흐름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저런 식의 음모론적인 종교는 계속 세가 더 꺾일지도 모르겠다고는 생각하는데,
(비록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보이고,
자기와 짝짓기할 상대방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착시테스트 같은 데서 사실은 같은 색상이라고는 걸 이론적으로 알아도 여전히 우리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그런 믿음에서 벗어난다는 건 본능을 거스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긴 할 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종교가 권력을 휘두르는 용도로 악용되었을 수 있겠네요.....
그리고 글을 읽다보니 느낀건.... 그 신의 폭력성(?)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를 의미할수도 있겠네요....
지금 살아남은 현재 인류도.... 결국 다른종족과의 경쟁.....지속되는 전쟁에서 승리해서 살아남은거죠......
그냥 종교를 도구로 쓰고 싶은 쪽이 있는것 뿐.
종교가 아닌 사회운동에서도 자주 등장하죠.
나와 다르면 배척한다!
과거 교회는 정치권력이 필요로 하는 종교적,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뒤에서 지들 배를 채웠죠.
현대의 천주교는 과거를 반성한듯 행동하지만
글쎄요...
언젠가 또 그들에게 `정치적 말빨`의 힘이 주어진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거라고 봅니다.
`강간에 의한 임신도 낙태하면 안된다..` 는 가톨릭의 말이 떠오르네요.
또 `하나님`이라는 단어 자체도 백여년전 초기엔 천주님, 여호와였는데..
우리 하느님이랑 개념이 비슷하다고 전도하다가 전도가 잘되니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 하나님 명칭 재판`이라고 검색하면
정근철이라는 한국 전통종교인이 순수 우리 단어인 하나님 단어 도용해 쓰지말라고 재판걸엇지만
얼마후 그의 자식과 당사자는 차례로 의문사 당했습니다.
20여년전
제가 다니던 학회에 강사로 오셔서
자식이 기독교 광신도에게 선풍기 전선에 목졸려 죽었다고 슬퍼하셨는데 .. 그도 결국..
구약과 신약은 다르다, 뭐는 다르다 하지만,
단순하게 여리고(예리고) 전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기독교 다음으로 친숙한 불교만 봐도 그렇지 않죠.
무조건 한번은 읽어 보실걸 추천합니다.
호호 감사합니다 :-)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전투적' 무신론자라는 호칭을 얻는 것도 참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작 종교인들은 실제로 테러를 저지르기도 하는데,
저런 사람들은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려 '전투적'이라는 호칭을 얻는다니...
무슬림만 문제라는 생각은 헛소리고... 정치가 문제죠.
정교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상관이 없습니다.
종교가 주제넘게 정치까지 하니까 문제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제삼는 사회적인 차별이나 혐오라는 건 '사람'에 대한 것이지,
사람의 언행이나 생각에 대한 게 아닙니다.
그걸 구분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적용하면 말씀처럼 이상한 논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가령 중국인 혐오라는 건 중국에서 중국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에 대한 혐오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런 식의 혐오나 차별이 문제가 되는 건
그렇게 혐오하는 기반이 변경 불가능하며 그가 선택하지 않은 정체성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고
남자로, 1950년대에, 동성애자로 태어나기를 선택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남자로 태어난 걸 반성해라"라는 비판도,
"제가 50년대생임을 반성합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라는 반성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그런 걸 기반으로 '사람'을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게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개념을 엉뚱하게 착각하여
사람의 생각이나 언행에 대한 비판, 비난을 혐오나 차별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공화당이나 이슬람교나 공산주의나 남녀차별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건 얼마든지 비판할수도, 반성할수도 있는 대상입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남녀차별주의나 인종차별주의는 나쁜 것이며 없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할 겁니다.
그걸 갖고 님처럼 말씀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남녀차별주의를 다 죽여라! 라는 폭력적인 말을 하는 거"라는 식의 이상한 말이 되는 거지요.
"남녀차별주의가 없어져야 한다니 너는 남녀차별 차별주의자구나"라는 식의 말장난도 마찬가지이구요.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누가 어떤 생각이나 말을 하든 국가에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니 개인이 남녀차별적인 생각을 하든,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하든, 전쟁신을 숭배하든
경찰이 잡아가지도 않고 기본권을 제한당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반민주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구성원들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지킬 보호막조차 내려놓은 걸
정체성의 일부로 삼는 기묘한 시스템입니다.
그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건 그 구성원들의 책임입니다.
게시판에 누군가 남녀차별적인 글을 올리면 나머지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해서
민주주의가 유지가 되는 것이지, 경찰에 신고해서 유지가 되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가 반민주적인, 혐오와 폭력, 차별을 담고 있는
야훼신앙, 남녀차별, 인종차별, 파시즘 등의 신념을 갖는 것은 자유이고,
저처럼 그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저는 이 자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의 의무라고도 생각합니다.
앵똘레랑스에는 똘레랑스를 적용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님의사상과 폭력적 신앙이 전혀다른점이 없다고 봅니다.
종교를 믿는것도 자유고 반대하는것도 자유일뿐이죠. 종교를 민주주의에서 몰아내야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파시스트입니다.
히틀러가 유대인혐오로 파시즘을 만들어내고
트럼프는 이민자혐오로 파시즘을 만들어내는것처럼.
님은 종교혐오로 파시즘을 만들어내는거죠.
민주주의 참칭하지마세요. 역겹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종교'라기보다는) '반민주적인 종교'에 반대합니다.
(저 교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저는 더 넓게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만이 그것을 갖고 있으니 모두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라는 '절대주의'라는 것 자체가
그 정의상, 다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모순되는 것이니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석군이님의 말씀은 결국은
앵똘레랑스도 똘레랑스해야 한다,
혐오에 반대하는 것도 혐오다,
반민주적인 것에 반대하는 것도 반민주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것도 파시즘이다
라는 식의 말장난이 되는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비종교를 사회에서 몰아내려고한다면 혐오이고 강요입니다.
비종교가 종교를 사회에서 몰아내고자한다면 혐오이고 강요죠.
님은 반민주적인 비종교일뿐입니다.
파시즘에 반대하는걸 파시즘이라고하는게아니에요.
님이 애초에 종교를 파시즘이라고 말하는것에 저는동의하지않으니까요.
"님이 애초에 종교를 파시즘이라고 말하는것에 저는동의하지않으니까요."
넷 물론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자유입니다.
누가 잡아가지 않습니다.
종교의 탈을쓴 파시스트는 몰아내야하고
비종교의 탈을 쓴 파시스트는 몰아내야죠. 아닌가요?
다시 복붙해드립니다.
저는 석군이님의 말씀은 결국은
앵똘레랑스도 똘레랑스해야 한다,
혐오에 반대하는 것도 혐오다,
반민주적인 것에 반대하는 것도 반민주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것도 파시즘이다
라는 식의 말장난이 되는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님의생각이 곧 반민주적 종교와 똑같은 수준의 파시즘이라고 생각한다구요.
피시즘을 몰아내는걸 파시즘이라고하지않았습니다.
파시즘은 몰아내야하는것이고.
님의 사상이 그 파시즘이란것입니다.
"님은 종교를 남녀차별주의 같은거라고 생각하시잖아요? 저는 님생각에 동의 안하거든요? "라고 하셨고, 그렇게 전제가 다르니 그 이후는 뭐 서로 무의미한 이야기이겠습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만이 그것을 갖고 있으니 모두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 라는 '절대주의'는
그 자체가 폭력이거나 폭력을 유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절대주의라는 건 그 정의상 다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모순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주장은 진리인가요?
진리는 본질적으로 배타적입니다
선생님은 진리나 참이라는 말을 절대주의라는 부정적 언어의 프레임에 가두고 또 다른 절대주의를 설파하고 있으신대요?
개독들에 대한 분노가 종교 자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건 요즘 세태에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비슷한 논리로 마오쩌뚱, 스탈린, 히틀러는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십자군같은 개독들도 20만에 가까운 살인을 저질렀지만
정상적인 종교인들 중 누구도 그들의 악행이 그들의 경전을 대변한다고 옹호하지 않아요
성경을 부정적으로 인용하신 것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마타도어를 정리하신 정도로 보이는데
맥락을 거세한 비슷한 마타도어에는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죠?"나 "쎄쎄" 같은 게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님 미움이 단순히 감정이나 의지에 기반한게 아니라면
본 글과 같은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한 post 911 세계관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은 차고 넘치니 확인해 보세요
영어 잘하시면 John Lennox, Frank Turek, Warner Wallace 추천드립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8713227CLIEN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959299CLIEN
절대주의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제가 말한 '절대주의'란,
"영원불변의 절대 진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독점하고 있다)"는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야훼 계열 종교나 독재권력이 보여주는 태도죠.
말씀하신 스탈린, 모택동 등의 사상도 그런 절대주의입니다.
소개해주신 기독교 변증론자들도 그렇고,
카톨릭 vs 개신교, 이슬람 vs 기독교,
그리고 그런 종교들과 공산주의 간의 증오와 반목도
모두 자기들만이 절대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절대주의자들끼리 치고 받는 싸움이고
본문의 교수가 이야기한 '검증불가한 자원'을 두고 싸우는 사람들인 겁니다.
말씀하신대로 '배타적인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거리낌없이 서로를 증오하고 학살할 수 있지요.
그와 반대되는 사고방식의 예가 과학적 방법론이나 민주주의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체계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과학교과서는 '언젠가 틀린 것으로 밝혀질 진술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교과서의 개정판이 계속 나오듯이
저 역시 내일이라도 제 의견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종교의 경전은 개정판이 없지요.)
절대주의에 반대하는 태도가 곧 또 다른 절대주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절대주의는 옳다, 혹은 옳지 않다'라는 검증불가능한 영역의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절대주의는 그 정의상 민주주의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라는 말을 하는 거지요.
저는 '진리'라는 개념도 (나아가서는 인간의 언어와 사고 자체가) meme의 일종이라 보고,
meme이란 gene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니
당연히 절대적이지도, 영원불변하지도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해가 바로 잡혔으면 좋겠네요
기독교는 원래 폭력의 종교일까?
요즘 흔히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똑같다. 원래 다 전쟁신 야훼를 믿는 폭력적 종교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독교가 지금은 사랑의 종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근대 세속사회가 종교를 제압했기 때문에 얌전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성경과 역사 전체를 보면 이야기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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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훼는 단순한 전쟁신이 아니다
구약에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야훼는 전쟁신”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야훼를 단순히 부족의 전쟁신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유일한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에돔·모압·암몬 같은 민족은 정복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신 2:4–19). 그들은 아브라함의 친족 계열이었고, 하나님께서 이미 기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했던 가나안 민족들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더 강해지기 위해 제거된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부패했고, 아동 제물 제사(몰렉 숭배), 극심한 성적 타락, 폭력과 우상숭배로 가득 찼음을 강조합니다(레 18:24–30, 신 9:4–5). 따라서 그 정복전쟁은 이스라엘의 야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악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역사 속 특정한 악을 심판하셨지만, 그 자체가 “야훼 = 전쟁신”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어떤 민족은 보호하시고, 또 어떤 민족은 심판하시며,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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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폭력 명령의 맥락
“죽여라”라는 구절들이 성경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특정 시대, 이스라엘이 신정국가로 형성되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주어진 명령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며 폭력적 율법 해석을 넘어섭니다. 성경 전체를 폭력 교본으로 보는 건 맥락을 무시한 해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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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독교 안에도 오래된 평화 전통이 있다
기독교가 평화로운 종교처럼 된 게 근대 세속화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부터 이미 비폭력 전통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핍박 속에서도 무력으로 맞서지 않고 순교를 택한 것이 그 예입니다. 반대로 기독교가 폭력적이었던 순간들(십자군, 종교전쟁)은 신앙 자체의 본질이 아니라, 권력과 얽히면서 왜곡된 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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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교 폭력은 구조적 문제다
어떤 종교든 폭력은 “그 종교의 본질”이라기보다, 정치적 갈등이 종교 언어를 빌려 정당화될 때 생깁니다.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특정 시대와 사회구조에서 폭력이 두드러졌던 것이지, 본질 자체가 폭력이라고 단정하는 건 과도한 단순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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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죽여라”의 종교가 아니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핵심으로 전하는 종교입니다. 구약에서도 무차별 정복전쟁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따라 어떤 민족은 보호하라는 명령이 있었고, 또 심판당한 민족은 도덕적으로 부패하여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경우였습니다. 폭력이 나타날 때는 언제나 신앙이 권력과 결탁할 때였죠.
따라서 종교를 볼 때는 몇몇 구절이나 사건만 보지 말고, 역사와 맥락, 그리고 전체 메시지를 함께 봐야 균형 잡힌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Voll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