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하이져의 플래그쉽 헤드폰 HD650 (이하 “650”)을 1년 여 사용하는 동안 느낀 점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가 매우 만족하고 사용해왔기 때문에 사용기보다는 찬양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착용감: 이 헤드폰의 외관을 보면 중후한 색상과 디자인 때문에 꽤 무거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 보면 예상 외로 상당히 가볍습니다. 실제 스펙상 무게는 260g 으로 다른 풀사이즈 헤드폰과 비교해도 가벼운 편에 속하기 때문에 적어도 무게 때문에 착용이 불편하진 않을 겁니다.
착용감에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정수리 압박' 인데 이 헤드폰은 헤어 밴드 부분 쿠션을 중앙을 제외하고 양쪽에 배치했습니다. 덕분에 정수리 압박이 별로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건 HD600에 비해 더 나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HD600도 정수리 압박이 별로 없는 편이긴 합니다.)
다만, 양 옆으로 느껴지는 장력이 꽤 셉니다. 특히 처음 구매 했을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저는 이 때문에 이 헤드폰을 오래 착용하고 나면 턱관절이 얼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해외 리뷰를 보면 이 장력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러 헤어밴드의 금속부분을 늘리는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비록 그렇게 하진 않았지만 일정 기간 이상 사용하다보니 제가 적응을 한 건지 헤드폰이 적응을 한 것인지, 현재는 처음 샀을 때 보단 훨씬 편해진 것 같습니다.
소리가 제 아무리 좋아도 착용감이 안 좋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 시간 이상 큰 불편없이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지'를 기준으로 볼 때 650은 합격입니다. 그러나 착용감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꼭 청음샵 등을 통해 못해도 30분 이상 착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청음샵의 용도가 '소리'를 들어 보는 게 아니라 '착용감'을 시험해 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리는 오히려 잠깐 매장에서 들어서는 알기 힘듭니다. 청음샵에서 듣기 좋았던 소리가 집에 와서 다시 들어 보면 아차 싶었던 경험을 한 게 저 뿐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사용 편의성: 휴대성이 물론 상당히 안 좋습니다. 전용 케이스를 제공하지도 않고, 접히는 구조도 아니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쓰기는 상당히 불편합니다. 애초에 실내에 붙박이로 놔 두고 사용하는 용도입니다. 케이블도 3m로 길고, 당연히 리모트 컨트롤 등의 편의 기능은 없습니다. 그리고 케이블 끝이 6.5파이 굵은 단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3.5파이 단자에 연결하려면 동봉된 젠더를 이용해야 합니다. 원래 용도에 맞는 케이블이긴 하지만, 요즘 트렌드에 맞는 좀 더 간편한 케이블도 같이 준 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헤드폰은 완전한 오픈형입니다. 헤드폰을 쓰고 있어도 사실 상 안 쓰고 있을 때와 거의 마찬가지 수준으로 외부 소리가 들리고 내부 소리가 새어 나갑니다. 그래서 소음이 있는 공간에서는 음악 감상이 힘들고, (도서관 처럼) 소음이 없어야 하는 공간에서도 쓸 수 없습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음악 감상을 하는 경우에만 제대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소리: 이 헤드폰의 포인트는 역시 소리입니다. 소리 하나는 정말 아무리 칭찬을 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이만하면 돈을 더 주고 더 비싼 헤드폰을 구입한다고 해도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헤드폰 소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실제 연주자/가수가 내는 소리, 녹음 엔지니어가 의도한 바로 그 소리를 충실하게 들려주는 헤드폰을 가장 좋은 헤드폰이라고 생각합니다. 헤드폰은 음악을 듣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에 헤드폰 스스로가 어떤 음의 변형을 일으키는 것을 — 설사 그 변형이 더 나은 방향이라고 할지라도 — 원하지 않습니다. 650은 제가 들어 본 수많은 헤드폰 중에서 가장 그 기준에 부합하는 헤드폰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클래식 음악을 공연장에서든 헤드폰으로 집에서든 자주 듣는데 650으로 듣는 소리는 실제 공연장의 가장 좋은 자리에서 — 보통은 적당한 거리가 있는 가운데 자리에서 — 듣는 소리와 매우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때때로 650의 고음이 부족하다는 평이 있는데 — 650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 제 기준에서는 오히려 적절한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몇몇 고음이 선명한 '모니터링' 헤드폰의 바이올린 소리는 제 기준에서 오히려 지나치게 선명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연장에서 실제로 듣는 바이올린 소리는 결코 그렇게 날카로우리만치 선명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실제의 소리는 대게 촉촉하고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공연장의 반사 울림까지 더해져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650의 바이올린 소리는 그런 점에서 더 실제와 가깝습니다.
더욱이 규모가 큰 교향곡을 들어 보면 650의 진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수많은 악기가 한꺼번에 내는 소리 가운데 현악, 관악, 타악기 소리가 각기 다 잘 들리고, 그들이 어우러져서 내는 소리의 울림을 훌륭하게 표현해 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연주 중간 선명하게 치고 올라오는 금관악기의 울부짖음, 타악기의 시원함, 목관악기의 부드러움, 현악기의 매끄러움까지 이처럼 잘 표현하는 헤드폰은 흔하지 않습니다. 풍성한 저음이 감싸주면서 중음, 고음이 전혀 묻히지 않고 자기 소리를 정확한 위치에서 내줍니다.
저는 특정 장르에 더 맞는 헤드폰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헤드폰의 기준이 왜곡없는 소리라면 좋은 헤드폰은 모든 장르에 좋습니다. 클래식에 좋으면 힙합에도 좋고, 힙합에 좋으면 클래식에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650은 제가 주로 듣는 클래식 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장르에 어울리는 소리입니다.
실내에서 조용히 음악 감상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로 듣는 장르를 막론하고 650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HD600과의 비교: 650은 HD600 (이하 “600”)과 자주 비교됩니다. 저도 650을 처음 구매할 당시에 하도 고민이 되어서 청음샵도 여러 번 찾아 가고 결국 둘 다 구입해서 몇 주간 비교해 보고 하나를 정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둘 다 좋은 헤드폰이라 어떤 선택을 해도 만족할만 하며, 순전히 취향의 문제라는 말을 해두고, 제 나름대로 비교를 해 보겠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두 헤드폰의 가장 큰 차이는 고음에, 보다 와 닿는 말로는 바이올린 소리에, 있습니다. 600이 650에 비해 바이올린 소리가 더 깔끔하고 선명하게 들리고, 650이 600에 비해 바이올린 소리가 더 부드럽고 촉촉하게 들립니다. 비유를 하자면 600은 연주가가 내 바로 옆에서 연주를 하는 느낌이고, 650은 연주자와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듣는 느낌입니다. 저는 후자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650이 더 맞았습니다. 그리고 녹음 상태에 따라서는 600의 선명한 바이올린 소리가 때때로 귀를 부담스럽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욱 650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650이든 600이든 둘만 놓고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여타 헤드폰들을 전부 고려해서 따져 본다면 거의 같은 성향이며, 고음 중음 저음 모두 아주 훌륭한 헤드폰들입니다. 고음이 충분히 선명하고 저음은 충분히 풍성합니다. 솔직히 둘 중에 더 나은 디자인만 보고 골라도 후회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앰프에 대해: 650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꼭 따라나오는 말이 “앰프는 필수”이지만, 저는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폰 5s, 아이패드 미니2, 맥북에어를 사용 중인데 어느 기기에 650을 꽂고 들어도 충분하다 느낍니다. 객관적 수치 상으로 최상급인 o2앰프도 가지고 있기에 지인의 도움을 얻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봤지만, 저는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 귀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둔감한 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 음향에 민감한 정도를 주변인들과 비교해 본다면 적어도 "평균적인 사람들 수준"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제 스스로 내린 결론은 적어도 지금 제가 가진 기기들 (아이폰 5s, 아이패드 미니2, 맥북에어)에서 추가적으로 앰프는 필요 없다, 입니다. 앰프나 DAC의 역할과 원리에 대해 좀 더 알아 본 지금은 더욱 이 생각이 확고해 졌습니다. 설사 아이폰으로는 좀 부족하다 싶은 '느낌'이 들더라도 추가로 맥북 정도면 저에게 충분합니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견이 많을 거라 예상하고, 저와 다른 감상 경험도 존중합니다.
가성비에 대해: 리뷰를 작성하는 시점 네이버 최저가 기준으로 40만원 정도에 새제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이어폰/헤드폰에 발 들일 때 생각을 해보면 엄청난 가격입니다. 그 때는 이어폰에 5만원 이상 쓰는 것도 비싸다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40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다른 헤드폰들과 '소리 면에서' 비교를 해 보면 650은 심지어 가성비가 좋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40만원에 사실 상 거의 최상급의 소리를 들려주니까요. 특히 클래식 교향곡까지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헤드폰을 찾는다면 이 가격대 이하에서 다른 대안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 되면 그 위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게 됩니다. 오디오 분야는 물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스피커까지 안가더라도 헤드폰에서 조차 몇 백 쓰는 거 일도 아닙니다. 650의 가성비가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헤드폰에 대한 투자 비용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바로 그 지점에 650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650이 처음 출시 된 지 10년도 넘었습니다. 그 사이에 블루투스, 노이즈 캔슬링, 스마트폰, 정전식 평판형 헤드폰 등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트렌드가 쏟아 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50은 아직까지 헤드폰 애호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검증 받았고 앞으로도 쉽사리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말 그대로 헤드폰 계의 ‘클래식'이라고 부를 만한 헤드폰입니다.
650 명기지요 전 600이 더 좋게들리고 가격도 싸서 600으로 샀습니다 오픈형이라 밖에서 듣긴 좀 그렇고 밤에 스피커로 듣기 힘든경우 종종 꺼내듣곤합니다 방출예정은 없습니다 그냥 최고입니다
from CV
모멘텀과 차이가 큰가요??
저도 hd600과 저울질하다 r70x로 왔는데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세팅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hifi 에서 가성비가 무색할만큼 놀라운 소리 뽑아주는 시스템도 있지만, 어느 정도 레벨 올라가면 결국 들인 돈 따라 소리 차이는 나더라고요. 다만 들여야 하는 금액이 exp 형태를 띈다는게 문제라는...
어떤 후기에서 그러더라고요. 하이엔드급도 궁금하지만, 귀에 맞고 소리가 맘에 들면 그것도 문제라서 청음하기가 두렵다고요ㅋㅋㅋㅋ
사람이 참 간사합니다. 업그레이드는 체감이 크지 않은데 다운그레이드는 체감이 엄청나요.
from CV
• ◡ •)/via ClienKit 2 beta
이정도 해드폰은 앰프가 필수라는 말에 접고 있었는데
갖고 있는 아이폰,패드로 된다고 하니 귀가 솔깃하네요. ㅎㅎ
w.ClienS
600/650으로 만족하실진 미지수이지만, 만약 실내용 헤드폰 구입을 언젠가 생각하신다면 반드시 리스트에 놓고 고려할 만한 헤드폰입니다.
이넘의 독일 감성 ㅠㅜ 취향 저격..
K501은 피아노 전용, 현악 4중주 이상은 HD650으로 즐겼습니다.
뭐 또 다른 헤드폰으로 가볼테지만 딱 Q701과 HD650의 중간점이 소니 MA900 이더군요.
HD650은 계속 생각나는 레퍼런스가 맞습니다.
지금도 괜히 팔았다는 생각이 계속 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