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꽃에 미친 선비가 있었다지요.
《양화소록》을 쓴 강희안이나 《화암수록》을 쓴 유박. 꽃에 등급을 매기다니,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중얼거리며 24년 9월, 방통대 농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26년 9월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혹여 우리 시대에도 식물에 진심으로 미친 이가 더러 있을까 싶어, 지난 2년의 투쟁기를 남겨봅니다.
오십이 넘어, 이제는 그저 꽃처럼 살란다, 저 대나무처럼 푸르게 살란다고 태화강변을 자전거로 오가며 혼잣말하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우연히 지원한 자원봉사자에 합격해 태화강 국가정원 해설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영문학 전공을 밑전 삼아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얄팍한 인문학적 소양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그 한 해를 버티기 위해 외계어를 배우기로 합니다.
문과 전공자에게 자연과학은 그야말로 외계와의 조우, 그 너머의 어떤 것이었습니다.
첫 출석수업에서 교수님은 편입생들에게 1·2학년의 필수 전공 과목부터 공부해 기초를 탄탄히 쌓으면 이후의 학습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첫 학기에는 지정 교과목을 이수해야 했기에 다음 학기에 고려해 보기로 했습니다.
생활원예, 생물통계학, 원예작물학 1, 식용작물학 1, 환경친화형농업, 원격대학교육의 이해.
그중 가장 큰 장애물은 생물통계학이었습니다.
제일 열심히 공부했는데, 점수는 제일 낮게 나왔거든요.
그래도 첫 학기는 나름 성적장학생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듬해, 해설사로 재선발되고,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미친 거야, 중얼거리면서 과제물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버텼습니다.
식용작물학2, 원예작물학2, 재배식물육종학, 식물의학, 토양학, 해충방제학.
이번에도 성적장학생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학기는 조금 더 만만치 않았습니다.
잡초방제학, 식물분류학, 재배식물생리학, 반려동물학, 재배학원론, 생물과학.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성적 장학생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제일 열심히 공부한 과목 성적이 제일 낮게 나온다는 징크스가 이어집니다.
반려동물학은 같이 사는 고양이를 위해 수강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학기.
이번에는 징크스를 깨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자원식물학, 농축산환경학, 농업생물화학, 농업유전학, 원예학.
학습 시간을 최대한 균일하게 배분했습니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풀면서, 양자역학이 정원 해설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말들을 검은 밤하늘이 놀라 허옇게 질려 물러가도록 풀어내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쌓이고, 한 학기가 쌓이고, 2년이 쌓였습니다.
마지막 학기는 평점 4.4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졸업 안내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제 부실했던 정원 해설이 조금은 탄탄해질까요?
겨우 낫 놓고 기역자 읽는 수준입니다만, 그래도 까막눈은 면한 듯합니다.
꽃이 피면 이름을 궁금해하고, 대나무를 보면 종을 살피고, 잎의 모양을 들여다보고, 계절이 바뀌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찾아봅니다.
아마 이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끝이 안 보이는 정원을 오늘도 일보 전진하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