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인 8월 12일에 유럽 본토에서 1999년 이후 처음으로 개기일식이 펼쳐졌습니다. 몇 달 전 지도를 확인해보니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목적지 중에 스페인 마드리드가 마침 일식 통과선의 남측 경계에 아슬아슬 걸쳐 있었더군요. 즉, 한국에서 비교적 빠르고 단순하게 관측 장소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이 천문현상을 보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 7년 전 P1000을 들고 싱가포르에서 태양이 고리처럼 보이는 금환일식을 찍어보긴 했는데,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고도 남는 개기일식은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 정말인지 확인해볼 기회였습니다.
마드리드 직항이 저녁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관계로, 전날에 일단 도착한 뒤 일식 당일에 관측 장소로 점찍어둔 세고비아로 향했습니다. 비교적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교과서에서도 소개되는 로마시대의 수도교(약 2천 년 전, 먼 곳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지은 긴 다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세고비아 알카사르 또한 중세시대 성의 전형으로 나름 유명해서 관광지로서 인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몰까지 지속되는 일식을 보고 당일 교통편으로 마드리드에 돌아올 수 있는 최북단의 도시였죠.

세고비아에 도착해서 여러 장소를 답사해봤는데, 원래 후보지로 골랐던 곳이 생각보다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일식을 보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살펴보다가 최종적으로 이렇게 알카사르가 보이는 성곽 중간쯤에 자리잡았습니다. 한국에서 메고 온 8kg 어치 장비가 든 가방을 풀고 주섬주섬 조립을 했죠.
메인은 물론 P1000 카메라이지만, 이번엔 카메라 아래쪽에 흰 벽돌 같은 걸 장착했습니다. 별 추적장치의 일종인 사이트론 나노트래커입니다. "추적"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지구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보이니 하루에 1바퀴 도는 장치를 북극성으로 향하게 해놓으면 별을 따라가는 것처럼 되죠. 태양이 움직이는 속도는 별과 약간 다르지만 나노트래커는 그 속도를 감안하는 모드가 있으므로 북극성으로 향하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대낮엔 직접 볼 수가 없으므로 왼쪽에 나침반과 각도기가 합쳐진 형태인 빅센 폴라미터로 대략적인 방향을 잡았습니다.
한국에서 테스트해본 결과 오차가 완전히 잡히지는 않지만, 10분 정도에 한 번 조정을 해주면 그럭저럭 되었습니다. 현지에서 가동시켜 봤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자동 셔터를 달아놓고 촬영을 부분일식 단계가 시작되기 조금 전부터 시작하니 약 1시간 후 개기일식에 도달했는데, 중간에 오차가 누적되다 보니 개기일식이 펼쳐지기 약 15분 전에 촬영을 중단하고 긴급 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개기일식 순간에는 추적장치에 따로 순을 댈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이유는, 부분일식을 촬영할 때는 햇빛이 워낙 밝아서 들어오는 빛의 양을 10만 분의 1로 줄여주는 ND100000 필터를 끼워야 하지만, 개기일식이 진행될 때는 맨눈으로 봐도 될 정도로 어두워져서 필터를 바로 떼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운명의 순간에 필터를 분리하는 것만 해야 하지, 다른 건 신경쓸 수가 없는 것이죠. 이렇게 개기일식이 시작되기 직전에 필터를 제거하고 1분 가량 촬영이 되는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달이 태양 앞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때 필터를 재장착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시작 직전에 태양이 아주 약간 덜 가려졌을 때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왼쪽 가운데에 홍염(prominence)이 보이고 그 아래쪽에 이른바 베일리의 구슬이 보입니다.

한편, 개기일식 당시에 주변이 얼마나 어두워지는지를 보여드리기 뒤해 아이폰으로 별도의 사진을 동시에 찍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17프맥으로 찍었는데, 16프로(앞서 2번째 사진에서 작은 삼각대에 올려져 있는 것)로 타임랩스 촬영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맨눈으로 태양을 봐도 딱 저렇게 하늘에 검은 점이 있고 그 주변에 평소 태양보다 훨씬 덜 밝은 빛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주변이 얼마나 어두워졌으면, 오른쪽의 알카사르가 야간 조명을 켜야 할 정도였죠. 정말로 금환일식과는 딴판이더군요. 만약 일식을 보러 가신다면 개기일식은 꼭 한 번 찾아가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만약 연속 사진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래에 영상으로 편집한 버전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추적장치가 태양을 뷰파인더 내에 유지시키는 건 그럭저럭 잘 하더라도 완벽하게 추적하지 못 하기 때문에 수동으로 사진을 정렬하느라 좀 애를 먹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천문현상 관측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해결되었네요. 근데 다음에 또 볼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