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입니다.
비교의 대상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두사람입니다. 그들이 살아간 시대적 배경, 국가부터 그렇습니다.
하지만 두사람이 써 내려간 하이쿠나 오드를 대할 때마다 느끼는 것, 이 두사람은 실상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결이랄까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 작고 미천한 것에 대한 깊은 애정입니다.
잇사는 이슬, 달팽이, 벼룩 같은 작은 생명에 다가가 말을 걸었고, 네루다는 양말, 토마토, 가위 같은 일상의 사물에 오드(頌詩)를 바쳤습니다.
두 사람 모두 거대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 속에서 우주를 바라봅니다.
사물에 대한 감성의 투영이 명료하고 다양한데 두사람 모두 사물을 감정의 용기(容器)로 씁니다.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고, 사물이 대신 그 감정을 또렷하게 담아내는 방식입니다.
네루다의 《사물의 송가》들에서는 양말 한 켤레, 토마토가 각각 다른 역할을 하는 용기인데 어떤 사물에는 관능을, 어떤 사물에는 연대를, 어떤 사물에는 경이를 담는데 그 스펙트럼이 경이롭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두 사람 모두 그 투영이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물이 원래부터 그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모든 사물에 생명의 온기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네루다의 언어는 바람이고 파도이며 세차게 다가오는 홍수입니다.
그 언어의 폭풍우에 관능의 바다로 온몸이 휩쓸려가는 황홀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내밀한 감성이 언어에 묻힌다는 느낌이 듭니다.
감히 말하건대 너무 많이 말해버려서 읽는 이가 스스로 느낄 여백이 없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잇사는 하이쿠의 단아한 17음절로 읽는 이의 가슴에 가을바람이 흐르는 창을 열어 두고는 침묵합니다.
이 세상은 / 이슬 같은 것 / 이슬 같은 것이지만… 적고 그 이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이 그 침묵 속에, 이슬 한 방울에 전부 담깁니다.
"위대한 시는 언어가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고 볼 때 두 사람의 차이가 느껴지는 지점입니다.
물론 이 명제가 결코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건 네루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의 영혼내부에서 언어가 폭발하니까요, 스스로도 어쩔수 없었을 겁니다.
네루다의 수많은 시에서 보이는 언어의 홍수는 단점이 아니라 그의 존재 방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인은 언어를 찾아 헤맵니다.
감정은 있는데 말이 안 나오는 고통, 밤새 한 줄을 고치는 괴로움 — 그게 일반적인 창작의 과정 아닐까요
그런데 네루다는 언어가 먼저 폭발하고, 그는 그것을 받아 적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피가, 영혼자체가 언어입니다.
고뇌없이 생각나는 대로 쓰는 시인이니 그런 점에서 전무후무한 천재입니다.
다만, 네루다의 시에서는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예언자>에서 느껴지는, 우주와 인간자아의 경계가 녹아 하나가 되는 대양감( oceanic feeling), 신성함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브란의 <예언자> 는 인간의 언어인데 인간의 언어가 아닌 것 같은, 이미 존재하던 불멸의 낱말들이 그를 통해 내려온 듯한 느낌. 그가 쓴 게 아니라 예언자가 받아쓴 것 같은 느낌이며 그게 지브란의 시입니다
셰익스피어(W. Shakespeare)도 다른 방식으로 대양감을 느끼게 하지만 지브란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두사람 모두 성서와 아주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성서의 언어는 선언합니다.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습니다.
그냥 존재하듯 말합니다. 그 단순함 속에 무한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성서 자체도 따지고 보면 수많은 시인들의 목소리였을 겁니다.
지브란과 셰익스피어가 그 울림을 갖는 건, 어쩌면 같은 근원에 닿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브란은 성서와 같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조용하고, 나지막하게 피안(彼岸)에서 건너온 말들을 건넵니다.
셰익스피어는 성서적 깊이를 인간 드라마 속에 숨겨놓습니다.
리어왕의 절규, 햄릿의 독백 — 신을 말하지 않으면서 신의 자리를 건드립니다.
우회적면서도 훨씬 격렬합니다.
지브란은 신이 인간에게 직접 말을 건다면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고통이 신의 높이에 닿는 느낌입니다.
분명 지브란은 인간을 통과해서 온 인간을 초월한 무엇입니다.
네루다는 아무리 위대해도 인간의 자리에 있습니다.
땅위에, 물위에, 바위위에, 파도속에, 인간의 피속에, 격정속에, 그리고 혁명속에 서 있습니다.
지브란이 신과 교통한다면 네루다는 시 자체이고 그는 시작도 마지막도 인간인 시인입니다.
다만 이런 위대한 시인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수 있는 더할 수 없는 지복(至福) 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출처: A Blog for StarFairyBaby ( https://blog.naver.com/manumoon/22427446895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