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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대만] 타이베이, 타이난, 가오슝 여행기 1

4
2026-04-10 22:42:08 142.♡.82.114
arielkim
사람으로 기억되는 시간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계획은 꽤 이전부터 세워두었지만, 대만과 중국 사이의 불안한 외교 상황을 핑계로 계속 미루고 있었던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둘째 아들이 대학생이 된 이후, 처음으로 봄방학 일주일을 맞춰 우리 부부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만에는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아르헨티나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WenKu, 그리고 또 한 명은 2년 전 일본 후쿠오카 여행 중 우연히 만나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Rex이다.
 
WenKu는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다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연결된 너무나 반가운 친구다.
대만 여행 계획을 세우며 다시 연락을 했더니, “Bienvenidos a Taiwan”이라는 스페인어 메시지로 따뜻하게 환영해주었고, 공항까지 직접 픽업을 나오겠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인연답게, 우리는 지금도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눈다.
 
Rex와의 인연은 조금 더 특별하다.
후쿠오카 근교 유후인 온천에서, 서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통성명을 하며 알게 된 친구다. 당시 Rex는 여자친구와 함께 여행 중이었고, 간호사로 일하는 젊은 청년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둘이서 여행중이었는데 작은 도시였던 유후인에서 그날 이후에도 거리에서 다시 만나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Rex는 몸에 작은 문신이 있어 일본 온천 출입이 제한될 수 있었는데, 내가 혹시라도 신고할까 봐 꽤 긴장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시작된 인연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사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당신의 나라에 가니 만나자”고 연락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아들이 함께하기 때문에, 비슷한 또래의 젊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연락을 해보았다.
 
Rex는 “이번에도 어머니와 함께 오는 여행이냐”고 물었고, 나는 이번에는 아내와 아들이 함께한다고 답했다.
바쁜 간호사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만나주겠다는 답장을 받았을 때,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
 
다시 만난 인연, 그리고 첫날의 기억
 
타이페이 도착 첫날, WenKu는 약속대로 공항까지 나와 우리 가족을 맞이해주었다.
 
시먼딩 근처 에어비앤비에 짐을 풀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분위기 좋은 대만 레스토랑이었다. 그 자리에서 WenKu의 아내 Grace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35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이어졌다.
그동안 쌓여 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Grace는 영어가 서툴렀고, 중국어를 모르는 아내와는 번역 앱을 통해 대화를 이어갔다. 언어는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충분히 따뜻한 시간이 만들어졌다.
 
⸻
 
여행, 그리고 또 다른 인연
 
둘째 날은 타이페이 시내를 둘러보는 일정이자, Rex를 만나는 날이었다.
 
오전에는 Rex의 추천으로 샹산(코끼리산)에 올라 Taipei 101과 시내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느라 땀을 한바가지씩 흘렸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 모든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주었다.
 
점심에는 Rex와 그의 여자친구 Annie가 함께 나와 우리를 맞아주었다.
양손에는 대만 대표 과자 펑리수를 들고, 단 한 번 만났던 나와 처음 보는 아내와 아들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다.
 
현지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두 사람이 올해 말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식사 후에는 우리가 계획했던 디화제 일정에도 함께 동행해주었다.
커피숍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Rex의 영어가 서툴러 번역 앱을 사용해 대화를 이어갔지만, 그 과정조차도 오히려 더 진솔하게 느껴졌다.
 
디화제 관광을 마친 뒤에도 두 사람은 시먼딩의 로컬 우육면 식당을 소개해주며 저녁까지 함께하자고 했다.
그 덕분에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은 식당에서 진짜 대만의 맛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하루를 함께 보내며 느낀 따뜻함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효율과 배려, 인상 깊었던 투어
 
셋째 날은 타이페이 근교를 도는 ‘예스폭진지’ 투어를 진행했다.
예류, 스펀, 스펀폭포, 진과스, 지우펀까지 하루에 다섯 곳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대만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필수 코스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가이드의 운영 방식이었다.
 
약 40명이 함께하는 대규모 투어였지만, 가이드는 인원을 가족 단위로 나누어 ‘조’를 구성했다.
우리 가족은 7조였고, 인원 확인 역시 개별이 아닌 조 단위로 진행했다. 단순하지만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또한 출발 전 카카오톡 단체방을 만들어 각 관광지 정보, 포토 스팟, 간단한 지도까지 공유해주는 시스템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프로페셔널하게 느껴졌다.
 
이동 중 들려준 대만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연중 대부분 비가 오는 기후, 스쿠터 주차 방식, 그리고 튀지 않으려는 대만사람들의 문화적 특성까지—짧은 여행이었지만 현지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도시의 온도, 타이난
 
넷째 날 아침, 타이페이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용산사와 중정기념당을 방문했다.
그리고 고속철도(THSR)를 타고 타이난으로 이동했다.
 
타이난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THSR 타이난역은 시내와 꽤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결국 로컬 전철로 갈아타고 숙소까지 이동해야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자연스럽게 일정의 일부가 된다.
 
타이난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타이페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도 훨씬 적고, 도시 전체가 한결 여유롭게 느껴졌다.
 
물가 역시 타이페이보다 저렴했고, 천천히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에 참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
 
늦게 만난 야시장, 그리고 음식 이야기
 
넷째 날이 되어서야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야시장을 방문했다.
타이난의 대동 야시장은 다양한 먹거리로 가득했는데, 특히 고구마볼 같은 저렴한 간식들은 딱 내 취향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음식에 대해 우리 부부가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대만 음식은 전반적으로 간이 세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대부분의 음식이 부담 없이 맛있게 느껴졌고, 자연스럽게 입맛에도 잘 맞았다.
 
처음에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로컬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지만, ChatGPT와 Gemini의 추천, 그리고 구글 리뷰를 참고하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리뷰에 올라온 사진을 가리키며 주문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는 항상 만족스러웠다. 음식은 맛있었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대만을 ‘아침 식사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번에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집에서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 우리도, 여행 중에는 거의 매일 아침을 사 먹었다.
 
콩우유(또우장), 튀긴 빵(요우티아오), 계란전병(딴삥) 같은 메뉴들은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
 
취향은 결국 솔직하다
 
다섯째 날 역시 타이난에서의 일정이었다.
안평고성과 안평수옥 같은 역사적인 장소들을 방문했고, 타이난 미술관 2관과 하야시 백화점도 들렀다.
 
하지만 돌아보니 우리 가족의 취향은 꽤 분명했다.
전통적인 역사 유적지보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쇼핑 공간에서 더 큰 흥미를 느꼈다는 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평소에는 잘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취향’을 더 또렷하게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번 타이난 일정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
 
여행이 남긴 작은 질문들
 
타이난을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생긴 궁금증들도 있었다.
 
왜 이렇게 더운 날씨인데도 긴팔과 긴바지를 입는 사람이 많을까,
왜 오래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도로는 이렇게 바둑판처럼 정리되어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이번에도 ChatGPT와 Gemini를 통해 찾을 수 있었다.
 
강한 햇빛과 벌레를 피하기 위해 긴 옷을 입는다는 점,
그리고 도시의 격자형 구조는 일제시대에 형성된 도시 계획의 영향이라는 점.
 
여행은 단순히 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하고 이해하는 과정까지 포함될 때 더 깊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
 
낯선 과일, 그리고 오래된 기억
 
대만에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평소 접하기 힘든 다양한 과일을 맛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망고는 아직 제철이 아니라 망고빙수로만 즐길 수 있었지만, 대신 구아바, 석가(Sugar Apple), 롄우(Wax Apple), 대만 대추 같은 과일들을 맛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Passion Fruit이었다.
스페인어로는 Granadilla라고 불리는 이 과일은 단단한 껍질을 깨면 안에 개구리알처럼 생긴 과육이 들어 있는 독특한 형태다.
 
어릴 적 에콰도르로 이민 갔을 때 처음 먹어본 과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때의 충격적인 첫 경험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는 이름만 ‘Passion Fruit’으로 들었을 뿐 실제로 다시 본 적은 없었다.
 
그 과일을 대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단순한 음식 이상의 감정이 떠올랐다.
여행이란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과거의 기억을 끌어내기도 한다.
 
⸻
 
또 하나의 도시, 가오슝
 
다섯째 날, 공자묘를 둘러본 후 가오슝으로 이동했다.
로컬 전철을 타고 도착한 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버스를 타고 루이펑 야시장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타이페이, 타이난, 가오슝 세 도시를 모두 방문하는 일정이 과연 무리한 선택이 아닐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세 도시는 각기 다른 분위기와 색깔을 가지고 있었고, 볼거리 또한 다양했다.
물론 숙소를 여러 번 옮겨야 하는 과정은 꽤나 고되고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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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중심은 ‘무엇을 하느냐’
 
여섯째 날은 가오슝을 본격적으로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숙소 근처 로컬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치진섬으로 향했다.
페리를 타고 5분이면 도착하는 이 섬에서는 대부분 전동 자전거나 소형 전동차를 빌려 이동한다.
 
우리 역시 전동차를 빌려 섬을 돌아봤지만, 솔직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특정 명소가 아니라 전동차를 타고 이동했던 그 경험 자체였다.
 
이후 방문한 보얼예술특구에서는 다시 한 번 우리 가족의 취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기자기한 상점, 야외 조형물, 벽화들로 구성된 이 공간은 치진섬보다 훨씬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
 
예상 그대로, 그리고 그 이상의 경험
 
소우산 전망대에서는 가오슝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풍경과 함께, 야생 원숭이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음식을 노리고 다가오는 모습은 조금 긴장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저녁에는 리우허 야시장을 가기 전, 대만 최대 규모라는 Dream Mall을 방문했다.
이곳의 특징은 쇼핑몰 옥상에 대관람차가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답게 대관람차에 올라 가오슝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
 
여행 속 또 하나의 선택
 
일곱째 날은 다시 타이페이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오전에 시간이 남아 어디를 갈지 고민하던 중, 아들이 동물원에 가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굳이 대만까지 와서 동물원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들의 설명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입장료가 100달러에 달하는 반면, 가오슝의 소우산 동물원은 1~2달러 수준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동물원으로 향했고, 호랑이, 하마, 낙타 등을 구경하며 의외로 알찬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동물원 안에서도 야생 원숭이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또 하나의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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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인연
 
타이페이로 돌아온 뒤, 저녁을 보내려던 중 Rex에게서 연락이 왔다.
밤근무 전 잠깐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린지앙 야시장에서 다시 만났고, Rex가 추천해준 탕위안 빙수도 맛볼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행의 끝자락에서 다시 이어진 인연은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
 
여행의 마지막 장면
 
마지막 날, 특별한 계획 없이 공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던 중 WenKu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출국할 때도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WenKu가 사는 곳은 단수이였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결국 우리가 단수이로 가서 WenKu를 다시 만나기로 했고, 그의 가족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여행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영화 촬영지와 주변 명소들을 함께 둘러보며, 이번 여행은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
 
⸻
 
여행, 그리고 남은 것
 
7박 8일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먹고, 느꼈다.
매일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했지만, 그만큼 더 깊이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돌아보면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도시보다 사람, 장소보다 경험, 그리고 계획보다 인연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대만은 그렇게,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었다.
arielkim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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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길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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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tx
IP 112.♡.237.91
04-11 2026-04-11 00:46:09
·
인연이 중요하죠. 저도 얼마 전에 대만 여행을 했는데 (타이베이, 타이난을 갔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만났습니다. 나중에 또 볼 날이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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