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또다시 밤
너무 배가 고팠다.
4시 반이 되도록 식당 하나 없었다.
두부 한 모, 25g짜리 먹태 한 봉지가
오늘 먹은 전부였다.
버스정류장에 앉으려는데
흰색 기아 K8이 내 앞을 막았다.
아까부터 내 주위를 빙빙 돌던 차였다.
"어디까지 가실라요? 태워줄게요잉."
조수석 창문을 내린 아주머니가 물었다.
"서울까지 갑니다."
"아이고. 왜 혼자 가시요?"
"누가 이걸 같이 하겄어요?"
나는 헛웃음을 지었고,
그녀도 운전석의 아들도 헛헛, 하고 웃었다.
"오늘은 원평까지 가는데,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발바닥도, 어깨도, 주린 배도.
하지만 어금니를 꽉 물어 보조개를 보였다.
아주머니는 창문을 닫고,
흰색 K8은 나를 한 바퀴 돌더니
농로를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ABC 초콜릿이라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후회막급했지만 이미 차는 사라졌다.
그다음 버스정류장인 용호교차로 정류장에 앉았다.
어제 까페글리제 사장님이 준 봉투를 뒤적여
주먹 반만 한 고구마를 꺼냈다.
덜덜 떨리는 손은 껍질 벗길 힘도 남지 않았다.
우적, 껍질째 씹어 삼켰다.
소화기관은 껍질도 모조리 분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5시.
원평리까지 반듯한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였다.
대신 옆 서남권 추모관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 꼭대기 추모관은 여기서 자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직원이 나오더니 황급히 문을 잠그고는
주차장으로 뛰었다.
여기서는 못 자겠다.
안 그래도 심심한 원혼들이
심약한 나를 밤새 놀릴 수 있을 테니.
목적지는 김제 원평초등학교.
지도에는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식당이 여럿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가고 싶었다.
초등학교 넘어 BHC치킨이 있었다.
연휴지만 대목이니 치킨집은 열려있으라는
믿음도 한몫했다.
순대국밥과 중화요리, 카페를
눈 질끈 감고 무시했다.
고소한 삼겹살마저 외면한 나는
원평초등학교를 지났다.
그런데 굳게 믿은 치킨집은 불이 꺼져있었다.
지도에는 더 이상 가도 식당이 없었다.
다시 돌고 돌아
다리미 삼겹살 원형 테이블을 독차지하고 앉았다.
목살 2인분에 사이다 하나.
휴대전화 충전하는 한 시간을 꽉 채우느라
돼지목살은 바짝 구워졌고,
새벽부터 눈비가 온다는 예보에
바짝 마른 입은 맹물만 들이킬 뿐이었다.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하나,
고달픈 현실을 마주한 나는
호랑이 굴에 물려간 소년이라도 된 양,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