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출소 일일차
2025년 1월 26일 일요일 6시.
침낭을 배낭에 말아 넣었다.
어제 고생한 발을 위로하려고
만 원이 넘어 딱 한 켤레 구매한
고급 양말을 신겨주었다.
29번 국도에 올라, 답동을 등지고
녹두장군 전봉준이 있는 쌍치면 방향을 마주했다.
'치'자 들어가는 곳은 애초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게다가 '쌍' 치라니.
별빛보다 흐릿한 그믐의 새벽.
지루하게 이어진 고갯길 막바지마다
롤러코스터 정상인 듯 눈을 질끈,
스틱을 꽉 움켜쥐었다.
고갯마루 넘어 깎아지르는 절벽의
숨 막히는 아찔함보다는
당장의 호흡곤란 때문이었지만.
7시 30분.
한 시간 걸으니 도고리 버스정류장이었다.
'전통음식'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은 쌍복식당은
코로나와 트럼프 2기로 엄습한 국제적 경영 위기를
돈가스 신메뉴로 타개하고자 현수막을 내걸었다.
전통과 돈가스의 이질적 동행은
그나마 '수제'라는 단어로 체면치레했다.
식당 앞 강아지 두 마리가 입김을 내쉬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순창 강아지들은 아침으로
고추장을 옴팡지게 넣은 김치찌개를 먹었다.
얼큰하게 살이 오른 둘은 내가 다가가자,
꼬리를 흔들고 널을 뛰었다.
그들은 2미터 목줄에 묶인 채
낯선 여행자의 손가락을 핥고 또 핥았다.
살짝 된장 바른 돼지고기 향이 났을까?
8시 반. 쌍치 파출소에 앉았다.
식당도 편의점도 하나 없는 시골길, 배가 고팠다.
배낭에서 어제 하나로마트에서 산 두부를 뺐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듯 어이없이 신선했다.
제일제당 행복한 콩 찌개 두부.
'부드러워 양념이 잘 배요.'라는 문구는
나를 단박에 설득했다.
안 그래도 단단한 부침 두부는
한 입만 물어도 목멜 것 같아 손이 가지 않았다.
파출소 앞에서 먹는 생두부라니.
몰골이 영락없는 출소자는
양념장도 없이 푸석푸석, 콩물까지 삼켰다.
지난밤 노상 방뇨와 공공시설 무단 점용에 대한
나름의 고해성사였다.
11시.
갈림길마다 선택은 온전히 내 몫.
찰나의 선택이 나의 체력과 경로를 결정했다.
어제 오른 천치재가 그랬듯이.
왼손바닥 오목한 가운데 퉤, 뱉은 침을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쳐, 침방울이 튀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구닥다리였다.
난 광대 근육에 힘을 주어 생긴 명석한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 지도 앱을 켰다.
산내면 두 갈래 길은 오늘 밤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결정할 미로의 입구였다.
동쪽 옥정호와 서쪽 태인면.
동쪽은 구불거리는 산길을 걸어야 했고,
식당이 있을까 싶은 곳에서 잠을 자야 했다.
서쪽 선택지는 한 고개만 넘으면 평지였고,
태인면이나 조금 더 욕심내어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금산면까지 간다면 식당이 있었다.
산길은 어제 다리가 아플 때까지 걸었기에,
더 이상의 경험은 불필요했다.
체력을 죄다 깎아 먹은 지금은
완주를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고민하는 와중,
소나무 줄기를 타고 내린 소변은
금세 뿌리로 흡수되었다.
200밀리리터만큼 가벼워진 나는
서쪽으로 사뿐히 걸음질 쳤다.
11시 40분.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희망’이 보였다.
문자 그대로 '희망'이 간판인 희망슈퍼.
문 앞까지 다가가니 인기척이 없었고,
혹시나 당긴 문은 못질한 듯 꿈쩍도 않았다.
망했다.
희망은 개뿔.
구절재를 넘었다.
오르막은 길지 않았다.
다만 언제 끝날까 싶은 내리막이 구구절절 이어졌다.
성치 않은 무릎에 물이라도 찰까,
스틱을 길게 쥐고 보폭을 줄였다.
허벅지 뒤쪽이 뻐근했다.
오르막만 힘든 게 아니란 것을
햄스트링이 먼저 눈치챘다.
내리막 모퉁이 도로선형개량공사장 암파쇄방호공은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폭파된 돌파편을 가두느라
임산부만큼 불룩했다.
길 반대쪽은 낭떠러지.
나는 도로 끝 흰색 실선을
살금살금 밟으며 모퉁이를 돌았다.
수 킬로미터의 경사가 끝난 칠보면부터는 평지였다.
마을 안쪽에는 상점이 있었지만 몇백 미터도 아까웠다.
칠보 119안전센터로 들어가 물동냥을 했다.
본인은 지나가는 과객인데 물 두 병만 달라,
며 정수기를 곁눈질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들어간 김에 겸사겸사 화장실에서
작은 볼일도 치르고 나왔다.
역시 급할 때는 119였다.
1시 20분,
왕복 4차로 큰길 대신 마을 길로 틀었다.
지도로 보니 끊기지 않은 지름길이었다.
건너편 산 아래,
가을걷이가 끝나 마른 흙이 드러난 밭에서
무언가 타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비닐이며,
농사용 폐자재를 한 아름 불무더기 위에 쏟았다.
산신께 드리는 제사상 위 커다란 향불 같았다.
저들이 농사를 멈추지 않는 한
겨울마다 계속될 의식인 듯 경건했다.
그들에게는 지긋지긋한 겨울도
봄으로 가는 여정의 한낱 이정표에 불과했다.
그을린 땔감 위로 피어오른 하얀 연기는 산을 휘돌다
내가 있는 곳까지 날아와 코를 간질였다.
에취!
침방울 틈으로 매운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맹맹해진 코를 팽, 풀었더니 한결 산뜻했다.
아이들 어릴 때 "정읍"에 2년정도 살았고,
그 때 충분히 쏘다닌 덕인지
광주에서 칠보 까지는 머리속에 그리면서
재미있게 따라 걸은거 같네요.
8편이면 경기도 언저리는 왔을 줄 알았는데, 읽고나서 아직 정읍인걸 알았습니다 ㅎㅎ
'12년에 대리, '25년에 차장이면 저랑도 비슷하실텐데,
서울까지 완주 하시길~
정읍에 사셔서 많이 아시겠네요. 곧 태인면으로 올라갑니다. ㅋㅋ 근데 이거 작년(25년) 여행기에요. 지금 글 정리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ㅋㅋㅋ
'완주 하셨기를 + 연재도 완주 해주시길'
이었습니다.
'건강보다 연재가 먼저 입니다?' 그런 느낌이죠 ㅎㅎ
가끔 피부는 그을리고, 어깨끈에 소금 꽃을 피운 채 걷는 도보여행객 들을 보면
말 한번 걸어볼까 하는 마음도 들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댓글로나마 '김 이사님'이나 아주머니들 처럼 말 걸어 봅니다 ㅎㅎ
그 분들 덕에 걸을 수 있었네요. 성공했는지는 아직 비밀입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