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분실
영산강을 왼편에 끼고 담양 북쪽으로 올라갔다.
담양교를 지나 죽녹원까지
떡갈비 파는 식당이 즐비했다.
그제야 담양 대표 음식이 떠올랐지만
갈비탕을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위장 어느 구석에도 없었다.
죽녹원 후문 로터리를 돌았다.
안내 표지판에 적힌 ‘추월산로’라는 이름만큼
담양어탕 김경배 이사가 추천한 수월한 길을
추월하고 싶었다.
오늘 몇 킬로미터라도 당기면,
절약한 시간만큼 서울이 가까워질 테니.
시간도 무게가 있는지,
짊어진 배낭은 엄마가 숨겨놓은
장롱 속 적금통장처럼
길 위에서 불입한 시간으로 점차 무거워졌다.
찌릭찌릭,
통장 여백이 도트프린터의 비명으로 압착되듯
어깨와 발바닥은 짓눌린 고통으로
걸음마다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위한 희망의 잔고라고
살살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오후 3시,
산길에 나타난 버스정류장.
붉은 벽돌로 쌓은 벽에,
흰색 수성 페인트 칠한 지붕.
숨이 차고 어깨가 아파서
정류장 시멘트 벤치에 주저앉았다.
페트병 속 마지막 물 한 모금을,
편도선을 오므려 질끈 삼켰다.
맨질하게 미장된 시멘트 좌석 위,
백묵으로 쓰인 열한 자리 아라비아 숫자가
오후의 누릿한 햇살에 어슷하게 빛났다.
'용면개인 010-6611-731×'
지친 내가 올 줄 미리 알고 있었을까?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꾹꾹 저장했다.
해가 짧은 겨울 산에서 조난이라도 당할까 걱정됐다.
어깨가 아파 배낭 끈 버클을 풀고 줄을 더 늘였다. 줄이 길면 배낭이 내려와
허리로 무게를 분산할 수 있었다.
시험 삼아 배낭을 메니 어깨가 좀 더 가벼워졌다.
(얼마 못 가 다시 어깨가 아프긴 했지만)
그때 허리 끈에 매단 필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속에는 모텔에서, 그리고 쉬는 사이 메모한
수첩과 볼펜이 들어있었다.
얼른 필통을 주워 배낭에 다시 달았다.
하지만 이것이 불길함의 전조인 줄 알지 못했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걸었다.
무릉도원 터널을 통과하고도,
복숭화꽃은커녕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갯길을
걸은 지 한 시간.
문득 배 앞에 손을 가져갔는데
필통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 촉감이 없었다.
뒤를 돌아봤지만 떨어진 건 없었다.
분명 저 구불거리는 길 어딘가 있겠지만,
돌아가면 오늘 목표는 포기해야 했다.
'전화번호!'
휴대전화에 저장한 번호를 찾았다.
택시를 불러 돌아갈까?
어쩌면 버스정류장에 있던 전화번호는
추월산 산신령이 적은 선물일지도 몰랐다.
'히치하이킹이라도 하쇼.'
김경배 이사의 말도 떠올랐다.
하지만 통화버튼은 누르지 못했다.
여행은 내 두 다리로 마치고 싶었다.
뒤로 간다해도 내 다리로 가야 했다.
문명의 이기는 호카 등산화와
지팡이 한 쌍으로 족했다.
수첩은 잊기로, 아니 잃기로 했다.
이틀 치의 기억은 아직 뇌세포에 그대로 있었으니.
다발성 건망증 환자는 애써 호기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