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의 이 모습만은 자랑하고 싶어
편의점 편육으로 때운 아침은
한 시간 만에 폭삭 꺼졌다.
12시, 담양어탕 건물 밖에서 미간을 찌푸린 채
창문으로 어슴푸레 메뉴판을 판독하고 있었다.
기이한 눈으로 나를 보던 중년 사내가 말을 걸었다.
“어디, 산에 가요?”
“산은 아니구요. 서울까지 걸어갑니다.”
“아이고, 이리 와요. 내가 밥 한 그릇 사줄게요.”
“괜찮아요. 저도 돈 있어요.”
“힘내라고 사주는 거예요."
그의 일행을 더한 우리 셋은 사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뭐 먹을래요? 여기는 어탕이 유명해요.”
“갈비탕 먹겠습니다.”
생선이라면 질색하는
충청도 내륙 태생 도보 여행자는 바로 결정했다.
아저씨는 멈칫하더니 점원을 호출했다.
"여기 갈비탕 세 개요."
엊저녁 마신 술을 해장하려고,
붕어를 푹 고아 만든 어탕이 당겼을 사람들은
오로지 나 때문에 육천 원이나 더 비싼 갈비탕을
괜히 먹게 된 셈이다.
내 식성이 그들의 구미보다 먼저였다니.
나는 우쭐했다.
아무렴, 인생은 불확실한 게 묘미지.
나는 미안하지 않았다.
소 늑골에 붙은 살코기를
가위로 떼어내며 통성명했다.
거래처 인사하듯 자리에 앉지도,
그렇다고 일어서지도 않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김경배 이사’ 명함을 건네받았다.
나는 오늘 목적지가 북동쪽으로 20km 떨어진
담양호라고 했다.
김 이사는 그쪽은 산길이라 힘들 거라면서
서쪽 장성 방향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했다.
헤어질 때 그는 한 가지 더 당부했다.
"힘들면 히치하이킹이라도 하쇼.
그것도 방법이니까."
모로 가도 서울은 가야 하지 않겠냐는 조언은 명쾌했다.
하지만 하필 여행 첫날이라 체력은 가득했고,
자신감도 배낭처럼 불룩했다.
암, 여행은 불확실한 게 묘미지.
나는 경로를 바꾸지 않았다.
한낮은 겨울답지 않게 섭씨 10도까지 올라갔다.
외투 차림으로 18kg 배낭을 지고 걸으니,
온몸이 땀으로 질척거렸다.
방한용품과 상의를 하나둘 벗다 보니,
세 개들이 만 원 하는
흰색 폴햄 반팔 티셔츠만 남았다.
외투와 조끼, 후드 티셔츠까지
배낭 좌우 끈에 주렁주렁 맸다.
늦은 오후, 서편 하늘로 기운 태양은
나를 OHP 필름인 양
아스팔트 바닥으로 고스란히 투사했다.
배낭 양쪽으로 옷가지를 매단,
오 미터가 넘는 그림자는
궁둥이에 깃털이 풍성한 자이언트 타조 같았다.
이렇게 거대한 타조라면
서울까지 하루 만에 시속 90km로
뛰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근육질 대퇴부가 늠름한 타조에게
비행법을 잃은 짤막한 날개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로를 걷는 나에게 이따금 운전자가 손을 흔들거나,
창밖으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삼거리 교차로 모서리에
주황색 페인트칠 된 반사경이 서 있었다.
경보 선수처럼 속도를 높이던 나는
잠자코 카메라를 조준했다.
볼록렌즈 굴절률만큼 확장한 몸뚱이,
말단 비대증 환자처럼 팽창한 자신감이
LCD 픽셀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