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소원은 생존
2025년 1월 25일 토요일 오전 6시.
난방이 되지 않는 욕실은
후, 하고 입에서 나온 수증기가 그대로 보였다.
샤워기를 틀었다.
이제 마지막 샤워, 마지막 면도였다.
아쉬웠다.
샤워 레버를 온수 쪽으로 더 돌렸다.
곧 헤어질 뜨거운 물의 기억이
온 피부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붉게 상기된 몸을 외투로 여미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겨울 새벽,
과묵한 가로등만이 나를 주시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인도가 끊겼다.
차만을 위한 길.
나는 도로 맨 끝 단에 섰다.
옆으로 화물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악셀을 밟았다.
이제부터 나를 지키는 건 오로지 행운과 신의 가호.
배낭 오른쪽에 무재해기를, 왼쪽에 태극기를 동여맸다.
한참 망설인 오른발이 그제야 작심한 듯
길어깨를 밟았다.
'범죄 없는 마을'이라고 이름난,
아니 이름 내고 싶은 용호마을에 들어섰다.
범죄는 없지만 CCTV가 노상 눈을 부라리고 있는 바람에
노상 방뇨도 멀찌감치
밭 뒤 후미진 곳까지 가서 해야 했다.
시골 개들은 이방인이 바른
숙박업소 대용량 스킨 향기를 금세 알아차린 듯
맹렬히 짖어댔다.
8시.
국립5.18민주묘지 어귀에 꽃 판매 노점이 문을 열었다.
파란 캡과 흰 마스크를 쓴 남자는
묘지 방향으로 가는 차마다 꽃을 흔들었다.
하지만 내가 걸어 그를 지나칠 때까지
하나도 팔지 못했다.
물론 나도 사지 않았다.
하루 40km씩 걸어야 하는 내 계획상
5.18 묘지는 지나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들어갔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기념탑 앞에 편육과 북어포, 두유를 놓았다.
가진 음식 중 제사상에 가장 그럴듯했다.
배낭에서 태극기와 무재해기를 빼어
음식 옆에 나란히 두었다.
나는 크게 절하면서 슬쩍 여행에서 무사하기를,
나의 안녕과 무사고를 빌었다.
'유세차'라고 읊기만 했다면 완벽한 안전기원제였다.
나의 무릎 꿇은 경배는
기복신앙과 뒤엉킨 대한의 유구한 종교의례였다.
먼 길에 갈급한 마음이라
공원 직원이 추운데 쉬고 가라고 안내한
휴게실에서 물만 덜렁 담고 길을 재촉했다.
후문으로 나와 굴다리를 지나서였다.
보도 바닥 위 일회용 접시가 기묘했다.
귤 한 개, 모시송편, 두부전이 한 접시에 담겼고,
옆에는 반쯤 찬 카프리 병과
맥주를 담은 종이컵이 있었다.
그리고 국화 꽃봉오리 둘이
묘지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였다.
종이컵이 흐물거리지 않고 빳빳한 걸 보니
아마 어제쯤 다녀간 듯했다.
누굴까?
45년이 지났지만,
묘지를 찾을 엄두도 못 낼 만큼 섧은 마음이란.
나는 기념탑 아래서
내 무탈과 안위만 기원한 옹졸함에 미안했다.
단출한 접시를 마주하고 고개를 숙였다.
억겁의 시간, 문드러진 제주의 등이라도
토닥일 수 있을까 싶은
어설프고 구부정한 맞절이었다.
좋은 글 잘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