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딱 한 번 가는 여행인데 뭐 하러 비싼 걸 사?
알량한 현실주의자는 오늘 주문하면 내일 오는
초고속 쇼핑 시대에,
2주나 걸리는 중국발 네이처하이크 배낭을
순전히 가격 때문에 골랐다.
실패의 매몰 비용과 재도전의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여행 전날 방물장수 좌판인 양 널어놓은 짐을
하나하나 집어 가며, 꼭 필요한지 자문했다.
텐트, 바람을 피해야 하잖아?
침낭, 잠은 자야지. 핫팩, 추운 건 싫어.
보조배터리, 콘센트 없으면 휴대전화 충전은 어떻게 해?
양말과 속옷. 하루에 한 번은 갈아입어야지.
배낭은 검문을 통과한 물건을 꾸역꾸역 집어삼켰고,
합산 18kg의 중력이 어깨를 짓눌렀다.
2025년 1월 24일 밤 10시.
금호고속 우등 버스는 강남 센트럴시티에서
광주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세 시간 반 만에
(금강휴게소에서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핫바를 사 먹고도 남는 20분을 쉬었음에도) 도착했다.
세 시간 반 거리를 8일이나 가야하다니!
이런 비효율적인 행태에 개탄을 금치 못하며
버스 계단을 내려온 나는 화물칸에서 배낭부터 찾았다.
야밤의 유스퀘어 택시승강장, 손님은 금방 줄었다.
연로한 기사가 탄 택시가 섰다.
배낭이 워낙 커서 튀어나온 트렁크를
팔꿈치로 눌러 닫았다.
기사가 먼저 물은 것도 아닌데,
광주에서 서울까지 걸어갈 거라고 내 속셈을 털어놨다.
속으로 그가 나를 대견해하기를 기대했지만,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시지."
"그건 흔하잖아요."
흔치 않으려면 호랑이 걸음이나
뒷걸음질을 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내 목표는 '세상에 이런 일이' 출연이 아니었기에
노숙하며 걷기로 타협했다.
비보호 유턴 표지판 앞에서 차량을 살피던 기사는
은근한 말씨로 한국에서 의사를 하다
뉴질랜드로 이민 간 친구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뱅기 표만 끊어 오믄,
다 재워줄랑게 놀러 오라 그라는디,
이 택시 놀리고 으디 갈 수 있으까요?"
우정을 찾으러 훌훌 떠나지 못하는 택시 기사나,
남다른 여행을 한다며 배불뚝이 배낭을 메고 걷는 나나,
왜 우리는 자신을 몰아세우는 걸까?
택시에 탄 지 십 분.
목적지, 광주시 북구 두암동 568-14번지
뉴욕호텔에서 내렸다.
삼십 년 넘은 외벽을 새하얗게 칠해놓고,
만국기를 늘어뜨린 한 동짜리 건물은
이름만이라도 호텔이고 싶었다.
세로로 쭉 늘어진 주차장 가림막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는 비어 있었다.
고개를 어리바리 두리번대자, 중년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앱으로 예약하셨죠잉?"
어떻게 알았지? 나는 부처님 손바닥 안 손오공이었다.
"키 가져가세요. 2층으로 가면 됩니다잉."
벽에 난 창문에서 카드키가 튀어나왔다.
나는 예약자임을 증명하려
여기어때 앱 화면을 떳떳하게 흔들었지만,
창문 속 석가모니는 무심히 커튼을 닫았다.
'띵'
엘리베이터가 1층에 왔다.
경쾌하고도 육욕적인 차임벨 소리에
성인 둘이 찰싹 붙어야 겨우 탈 수 있는,
없던 정분도 들끓을 만한 공간이 열렸다.
202호.
더블 사이즈 침대에 앉아 편의용품 지퍼백을 열었다.
쌍쌍이 들어 있는 칫솔과 치약을 하나씩만 빼고,
나머지는 배낭에 욱여넣었다.
공짜로 준 것을 두고 가는 건 손해 같았다.
그런데 콘돔은 어쩌지?
헬륨가스를 채워 배낭에 매달면 짐이 좀 가벼워지려나?
알뜰한 나는 망측한 물건의 마땅한 사용처를 고민하다
탁자에 그대로 두었다.
사랑할 사람끼리 유용하게 쓰라고.
내가 못 쓸 것이지, 몹쓸 것은 아니니까.
사랑은 잘못이 없다.
잘읽고 갑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