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기먹는 초식공룡 아빠입니다.
오늘은 말라위 릴롱궤( Lilongwe )에 있는 UN 난민촌에서의 진료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콩고 내전으로 떠밀려 온 사람들
릴롱궤의 UN 난민촌에는 콩고민주공화국(D.R. Congo)에서
내전을 피해 넘어온 난민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오신 분들도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곳곳에는 여전히 내전과 테러로 고통받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에티오피아 북부에는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는 부족간의 전쟁, 내전이 일어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츠와나에는 나미비아 난민들이 잠베지강을 건너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그 강은 악어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강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밤에 나무배를 타고 그 강을 건넌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일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을 피해 들어온 난민들 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난민촌을 벗어나 일자리를 구하며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말라위의 높은 실업률이었습니다.
이미 자국민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콩고 난민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도시 근처 일자리를 얻자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불만이 퍼져나갔습니다.
결국 말라위 정부는 불법 취업 단속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가혹했습니다.
일을 하던 콩고인들뿐 아니라, 그 가족들, 여성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체포되어 감옥에 수용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국제 인권 단체들도 이 상황을 지적하며
“이는 명백한 난민 보호 의무 위반”이라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 사건은 난민을 수용하는 나라가
경제난과 사회적 불만 속에서 얼마나 쉽게 약자에게 화살을 돌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습니다.
특히 자원과 일자리가 제한된 말라위 같은 나라에서는
난민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이 얽히며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말라위 사람들도 일부 생활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이 외국으로 이주할 시 이 곳 말라위를 탈출하기 위해서 입니다.
닫혀 있던 치과를 다시 열다
난민촌에 도착하자마자 저희는 장비를 설치했습니다.
저희가 자리를 잡은 곳은 예전에 이 곳에서 일하시는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난민 치과 진료소였습니다.
문이 닫혀 있었지만, 먼지를 털고 정리한 후 한국에서 가져간 장비를 넣고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공룡아빠는 진료 질서와 현장 정리,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이벤트를 담당했고,
초식공룡은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환자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아내는 위생사로서 치과 진료를 도왔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진료
많은 환자들이 찾아왔습니다.
치과에서는 오전부터 오후 5시까지 레진 치료와 발치가 주로 진행되었습니다.
정형외과 팀은 현지에서 활동 중인 독일 NGO 봉사자와 함께 하지 마비, 절단, 신경이상, 척추등의 환자를 진료했고,
엑스레이 촬영 후 필요한 환자에게는 수술까지 진행했습니다.
(수술은 후에 진료소를 빌려서 수술을 했습니다.)
진료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진행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영어로 진료했고,
통역사는 영어를 다시 불어로, 또 불어를 현지 언어로 옮겼습니다.
진료 후에는 약을 나누어 주며, 복용 방법과 주의사항도 자세히 전달했습니다.
기다리는 환자들에게는 저희가 준비한 간식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옷차림과 표정이 말해주는 이야기
함께 계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콩고 난민들은 옷차림만 보면 말라위 사람들보다 잘 입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 있습니다.
나라를 잃고 떠나온 상실감이 그들의 표정을 어둡게 만듭니다.”
반면, 말라위 사람들은 옷은 낡았지만 표정이 밝았습니다.
이 대비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삶의 조건이 아닌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점심 도시락과 감사한 하루
점심은 한국 식당에서 도시락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는 퀄리티가 낮았지만,
가격은 오히려 세 배 가까이 비쌌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멀리 아프리카에서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진료의 현장에서 느낀 축복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신께서 내게 주신 큰 축복이었구나.”
전기도, 냉방도, 편의시설도 없는 곳이었지만
그곳에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고, 사랑이 전해졌습니다.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PS: 동영상으로 촬영이 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올리려고 하니 여러가지 힘들어 일단 보류했습니다.











와이프가 간호사이며 치위생사 이기도 합니다
저희 가족도 현재는 유엔, 세이브, 초록 등을 10군대 넘게 후원하게 있습니다. 개인 1:1 연결 후원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공식적인 곳이 좋겠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합니다.
사진 잘 봤습니다.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되셨을거 같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