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렌 암스트롱의 '신을 위한 변론' 이후 '신의 역사'까지 읽었었고, 요즘 다시 좀 들춰보고 있습니다.
세세한 역사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
그냥 생각해보게 되는 건...
영화 매트릭스에서 미스터 앤더슨은 자기가 사는 곳이 현실이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현실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있죠.
빨간 약을 먹은 네오는 자신이 가상현실을 벗어나 진짜 현실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 미스터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사는 곳이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그 곳 역시 마찬가지로 무언가가 만든 가상현실일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있죠.
둘 다 자신이 현실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동일합니다.
무한 겹의 매트릭스가 있으리라는 등의 상상은 하지 못합니다.

(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빨간약인가 파란약인가..." )
야훼신화에 등장하는 야훼는
자신이 무언가에 의해 만들진 게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자신이 가상현실을 생성해낸 개발자이기는 하지만,
그런 자신 또한 다른 가상현실 속의 존재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캐릭터죠.
이 캐릭터는 결국 인간 버전의 무신론자를 한 발 뒤로 미룬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작자를 만든 제작자를 만든 제작자를 만든...'이라는 무한퇴행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이런 무신론적인 설정을 취할 수 밖에 없으니
결국 야훼신화 같은 건 카테고리로는 유신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무신론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 옆동네의 그리스신화는 야훼신화와 마찬가지로 신을 숭배하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제우스 등의 신을 만들어낸 신이 또 있고, 그 신을 만들어낸 신이 또 있으며,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종국엔 카오스(혼돈)가 그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이것은 결국 무(無)를 의인화한 것이라 하기도 하지요.
장자도 좀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나비가 진짜고 장자가 가짜다", "장자의 현실은 나비라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지 장자가 나비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다"라고 합니다.
노자는 '道可道非常道', 즉 '도를 도라 말한다면 그건 이미 도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를 서양인들의 언어로 바꿔보자면 '절대진리나 신이 설사 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다'는 정도의 말이겠지요.
(비트겐슈타인 :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알 수 없다'라는 말 외에
도나 신이나 진리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기를 치는 것이겠습니다.
카렌 암스트롱은 신학자 폴 틸리히의 지적을 인용하며 현대의 종교를 비판합니다.
원래 기독교 이슬람교 등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종교라는 것은
초월적인 무언가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거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 하더라도 '신'이나 '진리'라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無)'라고 불러야 할 것,
그것이 '존재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고 (道可道非常道)
경전이나 신화 같은 것은 그런 초월에 관한 사실 진술이 아니라 상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것들도 원래는 그런 것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인도, 중국 계열의 종교들은 대체로 그런 태도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지만
서구권의 종교들은 근대에 들어 이성을 중시하는 태도와 과학적(기계적) 사고에 물들어
경전의 텍스트를 절대시하고 교리를 논리화/정교화하는 등,
결국은 신,진리,교리,경전 등의 개념을 우상숭배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출판사에서 '카렌 암스트롱이 리처드 도킨스의 얄팍함을 비판한다'고 광고하는 것도 간단하게 보면,
"도킨스 류의 사람들은 현대의 변질된 종교만이 종교인 줄 알고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카렌 암스트롱의 책, 특히 '신의 역사'를 읽다보면, 근대 이전의 많은 부분은
"신에 대해서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말하고 싶당 😝"이라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의
대환장 분투기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두꺼운 책을 아주 단순화해서 얘기해서 그렇지,
암스트롱은 이성에 기반한 신 개념도 결국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신은 인간의 언어로 궁극적으로 파악될 수 없다"는 전통이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내부에도 늘 병존해왔다는 점을 말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면서도 현대의 '논리화된 표면'으로 종교 전체를 오해하지 말고
신을 '언어적 진술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적·상징적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고대의 흐름—특히 신비주의와 상징주의적 종교관—을 되살리고자 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