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레미제라블을 완독했어요. 거의 10년전에 보기 시작하고 중간에 한 참 쉬다가, 노틀담의 파리를 읽고 이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5~6권의 대하소설이죠. 대하 소설을 마치면 마치 히말라야 산을 정복한 느낌입니다.
위고는 참 말이 많은 작가죠. 아주 간결한 문장을 쓰는 레이몬드 카버와 정반대의 작가이죠. 이 책에도 위고 특유의 소설 스토리에서 삼천포로 빠지는 역사, 사회, 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와요. 이 책에서 이런 부분을 빼면 책 분량이 거의 반으로 줄지 않나 싶네요. 이 책을 보니, 뮤지컬이나 영화는 각색을 참 많이 한 것이 느껴집니다. 책에서는 혁명의 바리케이드가 스토리의 클라이맥스이지만, 혁명의 당위성 보다는 마리우스가 우연히 혁명에 참가하고, 장발장이 마리우스와 자베르를 구하는 얽힌 실타래를 푸는 핵심 사건으로 나옵니다.
레미제라블에 대해서 보통 장 발장이 죄수에서 성인으로 바뀌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데, 책을 다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빅토르 위고가 테나르디에 가족을 통해 인간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이 정말 놀라워요. 마치 배트맨과 조커, 빌런들의 이야기와 유사하죠.
사건마다 등장하는 테나르디에
테나르디에는 소설의 중요한 순간마다 꼭 나타나요. 우연이 아니라 위고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거죠. 워털루 전투에서는 죽은 병사들 시체를 뒤지는 도둑이었고, 몽페르메유 여인숙에서는 판틴을 속이면서 코제트를 괴롭히는 악한이었어요. 파리 고르보 저택에서는 장 발장을 잡으려고 함정을 파고, 하수도에서는 엉뚱하게도 장 발장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마지막에는 장 발장을 이용해 마리우스에게 사기를 치다가, 오히려 그의 위대함을 증명해주는 꼴이 되죠.
이건 그냥 스토리 전개가 아니에요. 테나르디에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좋은 사람들을 끌어내리는 사회의 힘, 남의 불행으로 배를 채우는 기생충 같은 악을 상징해요. 세계를 정복하려는 거대한 악역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소시민적이면서도 지독한 악인이에요.
환경을 이기는 선택의 힘
위고가 정말 대단한 건 테나르디에의 자식들을 통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에요. 왜 하필 테나르디에의 자식을 등장시켜 혁명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까요?
부모에게 버려져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가브로슈를 보세요. 이 아이는 파리 그 자체에요. 재치 있고, 당당하고, 가진 건 없지만 마음은 넉넉해요. 다른 부랑아들(사실은 자기 동생들인 줄도 모르고)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바리케이드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노래를 부르며 죽어요. 가슴 아프지만 숭고한 죽음이에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고결한 마음이 자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
에포닌의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해요. 어릴 때는 코제트를 괴롭히고 아버지 범죄에 가담했지만, 마리우스를 사랑하면서 완전히 달라져요. 처음엔 질투와 소유욕이었던 감정이 점점 순수한 사랑으로 바뀌어요. 마리우스와 코제트를 연결해주고, 그들을 보호하다가 마리우스 대신 총을 맞고 죽어요.
배트맨과 조커의 원형
장 발장과 테나르디에를 배트맨과 조커에 비유하는 할 수 있어요. 이들이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질서와 혼돈, 구원과 타락, 희망과 절망 사이의 영원한 싸움을 대변해요.
장 발장은 배트맨처럼 개인적 비극을 선한 힘으로 바꿔요. 빵 한 덩어리 때문에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최악의 하루"가 그를 파괴할 수도 있었지만, 미리엘 주교의 자비 덕분에 약자들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죠.
테나르디에는 조커처럼 이념 없는 혼돈을 상징해요. 사회를 뒤집으려는 게 아니라 썩어가는 사회에서 이득을 챙기려 해요. 그의 악은 소규모지만 끈질기고 개인적이에요. 거창한 악역보다 더 무서운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만날 수 있는 타입이기 때문이죠.
쉽지 않은 현실
『레 미제라블』이 단순한 권선징악 소설을 넘어서는 이유는 위고가 뻔한 결말을 피했기 때문이에요. 가장 나쁜 인물인 테나르디에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심지어 성공까지 해요. 반면 착한 사람들은 고생하고 일찍 죽어요. 가브로슈는 허무하게 죽고, 에포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장 발장조차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쓸쓸히 세상을 떠나요. 희망을 잃지 않는 현실주의에요. 선함이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결과에 상관없이 그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죠. 복수 대신 용서를, 이기심 대신 사랑을, 안전 대신 희생을 택하는 인물을 볼 때마다 우리는 위고가 남긴 메아리를 듣고 있는 거에요.
Even the darkest night will end and the sun will rise.
It is nothing to die. It is frightful not to live.”
“Not being heard is no reason for silence.”
"가장 캄캄한 밤도 언젠가는 끝나고, 태양은 다시 떠오를 테니까요."
"죽음은 두렵지 않아요. 진정 살아보지 못하는 것이 무서운 거죠."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말하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위고 문체의 모토는 '카타르시스 극대화를 위해 독자를 최대한 고통스럽게하자' 인듯 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