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영화 '줄스'를 시청한 후에 제 개인적인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숨어있는 은유에 대한 설명이 가득하니 영화를 안 본 분들은 영화를 본 후 글을 읽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가독성을 위하여 존댓말은 생략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며칠 전, 거한 식사를 마치고 배부른 후 무료함을 달래려 클리앙에 접속했다(식후클). 눈에 띈 글 하나 - [강추] 영화 '줄스'(스포 없음) 이라는 글을 클릭해본다.

외계인 나오는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다. 심지어 배스킨라빈스의 '엄마는 외계인' 이라는 아이스크림도 난 별로다. 차라리 '체리쥬빌레' 같이 붉은 선혈이 낭자하는 에이리언 영화가 제격이다. 하지만 배도 불렀겠다 시간도 남아돌겠다 풀무비 시청의 감동을 디저트 삼아 먹어보기로 한다. 얼마나 맛있는 디저트인가? 네이버 평점을 검색해본다.
평점 9.4 점. 감동의 디저트라는 찬사글들로 도배되어있다. 그럼 나도 한 입만.
난 유투브의 영화 요약본을 보지 않는다. 빠른 서사 전개가 주는 흥미진진함도 좋지만 영화의 꼼꼼한 구조와 디테일에서 오는 재미도 놓치기 싫으니까. 그 누군가 '인생은 고(통)'라고 했던가. 고뇌로 가득한 길고 긴 인생에 요약본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 아무도 인생은 빨리감기 하지 않는다. 다만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찾으면서 저속으로 늙어가길 바랄 뿐이다.
그의 인생만큼 영화를 사랑한 철학자 들뢰즈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라고 은유적으로 말했다. 의미를 짐작하기도 쉽지 않은 은유만 잔뜩 늘어놓는 철학자처럼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영화가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쥔다. 내가 영화를 이해못한 것인가? 아니면 영화가 나를 이해시키지 못한 것인가? 내가 이해하면 좋은 영화 남들만 이해하면 나쁜 영화인건가?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이다. 마치 꿈쩍않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해석에 따라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처럼.
이 글은 평범한 영화를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드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 해석이다. 거의 모든 디테일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가득하니 '이 사람은 영화를 이렇게 보는구나' 정도로 봐줬으면 좋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외계인 영화가 아니다. 배스킨라빈스의 '엄마는 외계인' 이란 아이스크림이 단지 은유적 표현일 뿐인 것처럼 외계인으로 묘사되는 줄스는 어린 아기를 중의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보호자가 되어 줄스라는 한 아이를 보살피고 세상에 내보내기까지의 육아가 큰 뼈대를 이루고 있다. 영화의 거의 모든 대사와 장면이 중의적인 은유로 점철되어 있기에 이 글에서는 그 코믹한 은유들을 하나하나씩 진지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다. 너무 진지해지면 곤란하다.
대부분의 영화는 도입부에 그 영화의 전개를 암시하는 부분을 반드시 삽입한다. 처음 장면은 '밀턴'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마을 회의에서 발언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그 후에도 반복되는데 이는 틀에 박힌 듯이 반복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밀턴을 나타낸 것이다. 밀턴은 '집으로 부르기 좋은 곳' 이라는 마을 표어를 '집이라고 부르기 좋은 곳' 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줄스가 밀턴의 집으로 갑자기 오게 되고 밀턴의 집(house)을 보금자리(home)로 여기게 될 것이란 복선이며 영화의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해준다. 이 영화는 집(home)을 공유하는 가족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 영화의 독일판 제목은 줄스가 아니라 'A great PLACE TO CALL HOME' 이다



그 다음 영화와 밀턴의 성격을 암시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영화는 건널목처럼 부모세대와 자식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고 밀턴의 성격은 무단횡단 딱지를 세 번이나 끊을 만큼 소통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사가 나온다. 이는 밀턴의 성격에 대해서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어서 줄스의 우주선이 밀턴의 뒷마당에 추락하고 밀턴은 진달래가 망가졌다는 표현으로 911에 신고하는 장면이다. 왜 굳이 진달래가 망가졌다는 표현을 썼을까? 영화에 허투루 쓰인 것은 하나도 없다. 진달래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 '사랑의 즐거움' 이다. 부부간의 사랑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육아를 시작하면서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대사다. 육아는 전쟁이니까.

이 육아에서 '밀턴'이 아빠의 역할이라면 엄마의 역할은 '샌디'가 담당한다. 샌디는 소통능력이 부족한 밀턴과 달리 항상 타인과 소통하려고 하며 나중에 줄스의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자식의 이름은 대부분 부모가 지어준다. 샌디가 들고 있는 포스터에 나온 'older for younger' 라는 문구는 영화의 전개방향과 추후에 나이 든 X의 죽음이 우주선의 작동에 기여하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뒷마당에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나온 줄스의 모습이다. 푸른색의 피가 엉겨붙은 것만 같은 줄스의 첫 모습은 세상에 처음 나온 핏덩이의 모습과 흡사하다. 갓난아이가 세상에 처음 나오면 인간이 하는 일은 아기를 포대기로 감싸고 젖을 물려주는 것이다. 밀턴은 줄스를 담요로 덮어주고 물을 가져다준다. 다음날 밀턴은 줄스를 집으로 들이게 되는데 이 때 줄스는 갓난아기가 처음에 그러듯이 '기어간다'. 이 기어가는 장면은 중요하다. 왜냐면 여느 부모가 아이의 첫걸음에 기뻐하듯이 밀턴 또한 나중에 줄스가 걷게 되었을 때 흡족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과 대사들은 아기의 성장과정과 그걸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단 이 영화가 줄스의 육아를 큰 뼈대로 한다는 관점을 가지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대사가 육아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에서 밀턴과 샌디는 처음이라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대사를 반복한다(누구에게나 육아는 처음이니까). 대사를 한마디도 내뱉지 않는 줄스(아기는 말을 하지 않는다), 샌디가 딸의 옷을 줄스에게 입혀 줄 때 줄스의 제스처 등은 모두 아이의 행동과 닮아있다. 밀턴이 TV를 시청할 때 나오는 배우의 DNA에 대한 언급이라던가 밀턴이 줄스에게 CSI영화에 대해 언급할때 하는 대사와 프린터가 고장났다는 샌디의 대사(프린터는 똑같은 것을 찍어내는 기계이다. 마치 인간이 자신의 DNA를 가진 닮은 자식을 낳듯이.프린터로 22장정도 복사 - 인간 염색체 23쌍) 등 그냥 지나치기 쉬운 소소한 모든 대사들이 육아를 암시한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의 그 어떤 대사도 허투루 쓰이는 것은 없다.

소소한 것은 각자의 해석에 맡기고 커다란 질문 몇 개만 해결해보자.

1. 왜 줄스는 사과(apple)를 좋아하나?
줄스는 사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사과만 먹는다. 왜 사과인가? 이 또한 육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보통 부모가 아이를 얌전하게 만들때 손에 쥐어주는 것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브랜드는 모두가 아는 바로 그 회사. 애플이다.

2. 왜 이름이 줄스(Jules)인가?
한글로 발음하면 짧게 줄스지만 영화에 나오는 실제 발음을 들어보면 주~얼스에 가깝게 들린다. 이는 보석(jewel)의 영어발음과 닮아있는데 jewel의 복수형(jewels)이 연상이 되는 발음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보석같은 존재다. 이를 암시하는 부분은 청년이 샌디의 보석을 훔치려는 장면이다. 청년은 보석을 훔치려다 들키자 샌디를 해치려고 하는데 샌디는 모종의 초능력을 발휘해서 이 상황에서 빠져나온다. 보석같은 자식은 부모로 하여금 초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존재다.

3. 왜 고양이 7(1+6)마리인가? 고양이인데 왜 여우그림에 더 가까운가?
미국에서 보통 만6세 이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간다.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7살이 되면 아이가 집을 떠나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이리 와 나하고 놀자. 난 정말로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안했다.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여우가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까지 세상에 다른 수많은 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필요 없어. 너도 물론 내가 필요 없겠지.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될 거야.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테니. 나도 너한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구..."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중 한 부분 - 눈에 띄게 커다란 귀는 어린왕자가 만난 사막여우의 대표적 특징 )
이 영화가 육아 및 자식과 부모사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라는 맥락에서 접근해보면 왜 7(1+6)마리가 필요한지, 왜 고양이 보단 여우그림에 가까운지 쉽게 이해가 된다. 집을 떠나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7년동안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4. 왜 X를 희생시켜야만 했나? 왜 줄스는 밀턴과 샌디를 황량한 장소로 데려가는가?
인터넷에 X의 죽음에 분노해서 평점을 낮게 준 글들이 몇 개 보이던데 이는 은유를 직유로 해석해서 나온 결과이다. 이 영화가 육아 및 자식과 부모사이의 관계에 대한 은유적인 코미디 영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지 않을 수 있다. 자식을 키우는데는 부모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X의 죽음은 존엄사를 떠올리게 하는 중의적 장치이다.

줄스가 결국에 밀턴과 샌디를 데리고 간 곳은 황량한 장소인데 이 시퀀스에서 버려진 쓰레기의 이미지를 중첩(+까마귀 울음소리)시킴으로써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세태를 나타내고자 하는 창작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난 이 장면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란 영화가 짧게 연상되기도 했다.
5. 영화의 마지막 씬은 왜 그런식으로 연출했나?
마지막 씬은 우주선의 불빛과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밀턴의 딸이 운전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과 자동차 그림자처럼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의도적 연출이다. 이는 앞서 밀턴과 그의 딸의 대화 시퀀스 그리고 밀턴, 샌디, 조이스의 대화 시퀀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줄스를 자식이라고 가정해보면 마지막 장면은 자식이 부모를 잊지 않고 다시 집(home)을 찾은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반짝이는 별들을 배경으로 엔딩 크레딧.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해석은 지극히 개인적인 저만의 해석이고 커다란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숨어있는 은유로 가득한 숨은 보석(Jules) 같은 넷플릭스 영화 한편 추천드립니다. 좋은 영화 추천으로 저로 하여금 이 긴 글을 쓰게 만든 클리앙 모 이용자 분께도 감사드립니다~^_^*)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어린왕자(생텍쥐페리)
해석 출처 : 나
단순하지만 생각할 것이 많은 작품이었네요.
저는 어떤 사람에게 최고의 HOME은 어디 인가를 고민하는 데 의미가 느껴집니다.
예컨데 처음 줄스가 밀턴에게 우주로 떠나자고 했을때, 더는 미련없고 외로운 이곳을 뜨겠다고 결심하지만
딸에게 연락을 받고 그래도 나와 유대감을 갖고자 애쓰는 누군가가 있는 이곳(지구)가 진정한 HOME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결국 남게 되죠. 그래서 저는 가족 혹은 친구, 누구라도 좀 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대하며 지내야만, 우리가 지내는 이곳을 훌륭한 HOME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시청중에 외계인을 어린 아이란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체격이 외소하긴하나 먼 타별에서 혼자 지구로온 외계인이다보니, 아이라기보다는 인간과 다른 외계의 체구가 외소한 어느 종족 정도로만 생각했었네요. 사과만 먹는것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시도하다 사과를 먹기에 어떤 의미가 있나? 생각은 했으나 저 영화를 제작한 나라에서는 사과를 주식처럼 자주 먹어서 그런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솔직히 작중 가장 궁금했던게.. 왜 하필 고양이고 또 7마리인가?였는데, 저 나라도 거리에 넘처나는 고양이가 문제가 되는건가? 로드킬에 대해 경각심을 주려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다가, 외계인 이름이 줄스다보니 July와 뭔가 관련이 있나 정도 생각했으나, 딱히 July와 연관성은 없는것 같더군요. ㅎㅎ
개인적으로 영화 감상을 할때 기반 지식 없이 보여지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편인지라.. 저와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했기에 올려주신 글 정독했고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해석과, 관점이 흥미로워 즐겁게 읽었습니다. 다시한번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