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군중의 견해를 형성하는 직접적인 요인
전 장에서 군중의 의견을 형성하는 간접적, 근본적 요인이 소개되었고, 이번 장에서는 그러한 간접적 요인의 바탕 위에서 직접적으로 군중의 의견을 만들어내는 요인들이 설명됩니다.
1) 이미지, 말, 구호
군중은 논리가 아닌 이미지로 움직입니다. 특정한 말이나 구호를 용의주도하게 사용하면 군중의 마음 속에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때로는 격정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군중의 마음 속에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한 말은 그 의미가 객관적으로 정확할 필요가 없으며, 군중이 그 말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하는지만 중요합니다. 군중에게 그 단어의 의미가 불분명하면 불분명할 수록 오히려 더 잘 먹힙니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 사회주의, 반공, 반일, 세금폭탄, 국민저항권 이런 단어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프랑스혁명의 주체들은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적 전통을 되살린다는 모토를 내걸었지만, 사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귀족정이나 큰 차이가 없었기에 프랑스 혁명기 민주주의 개념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또한 당대 프랑스인들의 조국 개념은 그들의 선조인 갈리아인들이 가졌던 그것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이렇게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고 사람마다 계층마다 시대마다 해석이 다 틀리기에 정치지도자는 말을 잘 써야 합니다. 기존 시스템 그 자체를 뜯어고치기보다는 그건 그대로 놔두고 그 시스템을 부른 말만 민중이 싫어하는 표현에서 민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으로 바꾸는 게 유효할 수 있습니다. 토지세를 ‘토지사용료’라는 이름으로 바꾸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종합부동산세를 ‘애국세’ 뭐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에게 국민은 설득이 아닌 현혹에 대상에 불과한 것이군요…)
2) 환상
환상 역시 군중을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동인이 됩니다. 과거의 종교적 열광이나 당대의 이데올로기 운동 모두 이런 환상이야말로 문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한 걸로 압니다.) 반면 객관적인 과학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가 힘듭니다. 거짓말이라도 큰소리 뻥뻥 치며 천국이 올 거라 설레발을 쳐야 사람들이 와~ 하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당대에 유행하는 사회주의 역시 저자는 이런 종교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은 진실에 목말라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객관적 증거에는 등을 돌리며, 틀린 말이라도 듣기가 좋으면 그걸 믿고 따릅니다. 이러한 듣기 좋은 틀린 말을 잘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대중의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의 환상을 깨부시려다가는 이들에게 몰매나 맞게 됩니다.
3) 경험
군중을 이러한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려면 경험으로 뚜드려 패는 것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것도 잠깐 혼내주는 걸로 안되며 오랜 기간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경험으로 참교육을 시켜줘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인간 사회가 순수 이성의 힘만으로는 갑자기 바뀔 수 없음을, 민중의 지지를 받는 독재자라 하더라도 결국은 나라를 망치게 된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프랑스 혁명이후 수십년간의 대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4) 이성
이성은 민중을 움직이는 직접적 요인이 결코 될 수 없다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군중은 논리적 사고가 아닌 이미지의 연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웅변가들은 군중을 설득하려 할 때는 이들의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해야 합니다. 그는 우선 군중이 어떤 정서에 의해 움직이는지를 완전히 이해해야 하며 이러한 군중의 정서를 자신도 공유하는 척 해야 합니다. 그리고 논증이 아닌 이미지의 연상(즉, 찍어다 붙이기) 작용을 활용하여 자신이 암시하고자 하는 내용을 군중에게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설 도중에는 군중의 반응을 시시각각 파악하여 연설문을 바꾸는 임기응변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군중이 이성이 아닌 정서에만 움직인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성은 학자들에게 맞기면 됩니다. 명예심, 자기 희생, 믿음, 애국, 영광에의 희구… 이런 것들은 감정의 영역이며 이는 이성이 할 수 없는 역사 발전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