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주말 집에서 뒹굴거리느니 알바나 해볼까 해서 당근으로 알바를 찾던 중에 PC방에서 일손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이런저런 알바를 많이 해봤지만 PC방 일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터라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 혼자 하는 일은 아니었고, 점장님과 기존 알바생이 하는 일을 서포트만 해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그런데 PC방이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라 나중에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2시에 일을 마치면 PC방에서 시간을 좀 때우다가 첫차를 타고 돌아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착하니 점장이 제게 유니폼을 주고 제가 할 일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점장이라고 하지만 저보다 대여섯 살은 어려보였습니다. 그는 진중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쓰는 서울말을 구사했습니다. 여자 알바생은 (점장과 알바생 간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어 안 사실이지만) 모델 혹은 방송연예 관련 학과에 재학중인 대학생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은 제대로 볼 수 는 없었지만 키가 굉장히 컸습니다. 그녀 또한 제가 좀 헤맨다 싶으면 친절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는 이용자가 나간 자리를 정리하고 초기 상태로 세팅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점장과 알바생이 만든 음식과 음료, 기타 주전부리를 서빙하는 일도 했습니다.
점장이 제게 음료수를 하나 권했습니다. 저는 양이 제일 많아 보이는 이온음료를 골랐습니다.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고되지 않았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갈증이나서 600ml 정도 되는 음료수를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비웠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알바생들은 음료 하나와 음식(버거나 덮밥, 라면류)을 하나씩 먹을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대신 일지에다 먹은 내역을 기록해야 했지요. 하지만 점장이 제게는 음료수만 권하고 음식은 권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조금 슬펐습니다.
좌석이 100개가 넘어가는 규모가 제법 큰 업장이라 그런지 일은 꽤 바빴습니다. 곳곳에 놓여있는 키오스크에 사용이 종료되어 정리가 필요한 좌석들이 실시간으로 표시되는데 그 자리를 정리한 후에 사용가능 상태로 바꿔두면 새로운 손님들이 와서 이용하고, 그 손님들이 떠나면 다시 청소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게임 속 맵에서 퀘스트를 찾아다니듯이 청소가 필요한 자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손님들이 오가고 또 중간중간 음식들을 서빙하고 하다보니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갔습니다.
9시 반쯤 되자 점장이 제게 다가와 10시 이후에는 청소년들이 이용을 할 수 없으니 혹시라도 청소년으로 보이는 자가 있으면 신분증 검사를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불량 청소년들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하고 내심 긴장했습니다만, 다행히도 우려하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또하나의 걱정은 혹시나 진상손님들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대부분의 손님들은 제가 음식을 서빙하거나 계산을 위해 카드를 주고 받으려 다가가면 자세를 고쳐 앉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친절하게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알바생이라고 저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떤 손님들은 저를 사장님이라 불렀습니다. 저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딱 한사람, 구석 자리에 조금 수상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자리에는 이런저런 음료수와 음식 그릇으로 가득했고, 모니터 화면에는 인터넷 창이 하나 켜져 있었습니다. 모자를 눌러쓴 그 남자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몰라서 점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점장은 잠시 그 남자가 있는 자리에 다녀오더니 저보고 괜찮으니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딱히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10시가 넘어가자 배가 고팠습니다. 허기는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점점 커졌습니다. 그런데 점장이 갑자기 저에게 혹시 햄버거 좋아하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좋아한다고 수줍게 말하자 점장이 햄버거 조리를 위한 그릴을 새로 바꾸었는데 테스트를 한번 해봐야겠다면서 제게 햄버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냥 하는말이 아니라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인스턴트 햄버거가 아니라, 신선한 야채와 구운 패티, 살짝 녹은 치즈와 점장의 정성이 들어간 맛있는 햄버거였습니다.
11시에 저녁알바가 퇴근하고 야간알바가 출근했습니다. 야간알바생도 여학생이라 조금 놀랐습니다. 12시에 점장마저 퇴근하고 야간알바생과 저만 남았습니다.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치킨마요덮밥(치킨이 조금 더 들어간 것 같기도 한)을 만들고는 맛있게 먹고나서 후식으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습니다. 그녀에게 밤에 나와서 일하기 힘들지 않냐고 묻자 익숙해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12시가 지나자 손님들이 빠르게 줄어들었고, 덕분에 저도 잠깐 앉아서 쉴 수 있었습니다. 한가한 것은 좋았지만 그만큼 시간이 더디게 갔습니다.
어느새 2시가 되어 야간알바생에게 그만 퇴근하겠다고 하고는 나가는 척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알바에서 손님이 된 것이었죠. 하지만 그때는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게임을 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유튜브를 보고 싶지도 않아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문득 따릉이가 떠올랐습니다. 집까지는 자전거로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인적이 드문 새벽길, 저보다 한 20m쯤 앞서서 따릉이를 타고 가는 남자를 보며, 그도 나랑 비슷한 처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바는 언제까지 하기로 하신건가요?
아, 그냥 1회성 알바를 뽑는 자리가 있었나보네요.
얼마전에 정말 오랜만에 친구랑 PC방을 다녀와서 그런지 괜히 뭔가 친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갔던 PC방은 저녁시간인데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알바 혼자서 다 하고 있더라구요. PC방에서 핫바나 컵라면 정도나 팔던 시절에 가보고 처음 PC방을 가본거라 두리번거리기만 하고 왔네요.
그런거 없고 그냥 평온한 하루가 지나갔군요.
필력 대단하십니다
다음 후기도 기다려 봅니다 ㅎㅎ
아르바이트 모음집. 수필집으로 내도 좋은 느낌입니다.
알바 후기 잘봤습니다. ㅎㅎㅎ 정말 흡입력이.... 좋네요
겜하면서 컵라면 흘리고,, 진상부리는 손님 없으면 할만할 것 같습니다.
후기 연재 기대할게요~
경험이나 생각을 계속 글로 쓰시다 보면 언젠가 작가 되시겠는데요.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읽고 싶어요.^^*
일당 주세요.
이 질문이 왜 없죠 ㄷㄷㄷ
예쁠겁니다. 진상이 없는거 보면 분명 예쁜겁니다.
잘 읽었습니다 .^^
이걸로 끝인가요?
2탄 만들러 다시 알바 가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글이 적당히 속도감도 있고 재미있어요.
웹소설 겉은거 써보시면 대성 하실듯요.
익숙해지면 자기 몫을 잘 챙기실겁니다.
예전 피시빵은 알바하기 참 좋았는데 요즘은 할 일이 많아 보이더라고요.
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마도..(상당한 확신입니다만) 이전에 하셨던 일은 글(특히 소설이나 수필)을 쓰시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문체입니다. 그냥 써내려가신 글인데도..잘 읽히고, 표현이 싱싱합니다. (딱 필요한 만큼의 감성과 정서가 잘 느껴져서요)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음 예전 번역 문체같은느낌이라고 해야될까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마치 내가 알바를 한 듯한 기분은...
세벽 2시까지 일한느낌이 드네요.
재미있고, 좋았어요~~~
수상한 남자에서의 긴장감 크~~~~
지금은 제가 알바를 하려던 때와 달리 흡연실이 있어서 조금 낫지 싶은데 궁금하긴 합니다
우리 아들은 피씨방을 거의 식당처럼 애용? 합니다..
그때는 지금 같은 시스템이 전혀 없었고
카운터에서 컴퓨터 열어주고 결제도 다하는 시스템이었죠
기억에 남는 손님은
1. 남자애 하나가 2주가 넘게 집에 안가고 계속 같은 자리에서 게임하다가 자다가 해서 수상하게 여겨서 중간 결제를 해달라고 했더니 돈 없다고 함. 집으로 끌고 가보니 진짜 허름한 건물의 2층 단칸방. 학생 어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줄 돈 없다고 함. 걍 학생 뒤통수 한방 갈기고 옴
2. 발랑 까진 여자애 둘이서 또 한 2주간 집에안가고 계속 게임하다가 자다가 함 담배를 얼마나 피고 재털이에 침을 얼마나 뱉는지 치운다고 더러워 죽는 줄.. 중간정산해달라 했더니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 어디 전화를 함
좀 있으니까 완전 조폭같은 덩치 둘이서 와서 ㅅㅂㅅㅂ 하더니 돈 계산하고 감
3. 주말이 지나고 새벽에 전날 매출 정산하는데 정말 귀엽게 생긴 꼬마하나가(8~9살?) 카운터 옆에 와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앉아있음
뭐지 하면서 웃으면서 인사하고 잠깐 자리 정리하고 오니 사라짐 카운터 계산대에 있던 40만원과 함께...ㄷ ㄷ ㄷ
인근을 다 돌면서 수색해봤지만 못찾음..ㅠ.ㅠ
4. 거의 매일을 찾아와서 스타를 하던 40~50대 아저씨들 4명
추석 당일날 오늘은 안오겠지 했는데 10시쯤 한복입고 와서 스타 함
읽는 내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진중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쓰는 서울말을 구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