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주말 집에서 뒹굴거리느니 알바나 해볼까 해서 당근으로 알바를 찾던 중에 강남의 한 입시미술 학원에서 조소 모델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하였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라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습니다만, 모델 일이라는 게 궁금하기도 해서 도전해 보았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뽑히는 것 보니 외모는 딱히 상관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원은 남자만 받았습니다. 제 추측이기는 한데, 아마 여자 모델들은 대부분 머리가 길어서 얼굴 옆 쪽과 뒷 쪽을 대부분 가려버려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9시 조금 넘은 시간에 학원에 도착하니, 모델은 저 말고도 두 분이 더 계셨습니다. 나중에 인적사항 기입할 때 보니 나이는 역시 제가 제일 많았습니다.
작업은 모델인 제가 회전의자 위에 앉아 있으면 학생들이 제 주변을 원으로 둘러싸고, 5분마다 한 번씩 스톱워치가 울리면 그때마다 36도를 회전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렇게 50분이 지나면 한 바퀴를 돌게 되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분명 40분에 10분 쉰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50분마다 한번씩 쉬었습니다. 속았구나, 싶었지만 다른 모델들도 가만 있길래 저도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억울하긴 합니다.
50분 동안 한 자세로 앉아있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정면을 응시하고 있어야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눈이 금방 피로해져서 집중력을 종종 잃게 되더라구요. 그럴 때마다 학생들이 '모델 분 정면 봐주세요' 합니다. 자세가 흐트러져서도 안되구요. 고개가 삐딱해져도 여지없이 지적이 들어옵니다. 다른 두 분의 모델 중 한 분은 너무 자세가 안정적이어서 좀 놀랐는데, 알고보니 경력직이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버티느냐? 다행히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는 것은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디오북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20분 정도만 지나도 허리가 아프고 눈이 피로했습니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저는 허리가 아파서 더는 못하겠다고 말하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참아봅니다. 특히 학생들은 대입 시험을 코앞에 둔 중요한 시기인데 연습중에 모델이 중간에 도망가버리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렇게 오전에 세 타임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점심을 많이 먹으면 분명 오후에 잠이 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저는 편의점에서 대충 삼각김밥으로 적당히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를 많이 마셨다가는 또 배가 아플 수도 있기 때문에 반 잔만 마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전은 연습이고, 오후 작업이 진짜였습니다. 50분씩 4타임을 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제가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녁은 역시 편의점에서 조금만 먹었습니다. 다른 모델들도 모두 편의점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7시 즈음 학원으로 돌아가 보니 어느새 자리는 모두 정리가 되어있고, 학생들의 작품이 각 모델 별로 6~7 점씩 차례차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델들이 작품 옆의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으려니, 채점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각 작품들을 모델들의 얼굴과 비교하며 하나하나씩 채점하셨습니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 분야의 전문가 분들이신 것 같았습니다.
채점하시던 선생님이 제 얼굴을 보더니, 이 모델은 조각하기가 어려운 모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인 즉슨 제가 눈코입의 이목구비는 비교적 뚜렷하지만 턱선이 불분명한 얼굴형이라 닮게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모델로 삼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도 제 얼굴을 조각한 학생들의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각자 실력 차이는 좀 있었습니다만 다들 제 특징을 잘 살렸더라구요. 어떤 작품은 저랑 너무 닮아서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델들이 학생들의 작품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외부 유출을 우려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밤 9시가 조금 넘어서 일을 마쳤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주 녹초가 되어버려 씻을 기운도 없더라구요.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드모델은 얼마나 받을까 하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엄청 고생하셨네요!!!!
그나저나 @곽공님 처럼 누드모델 알바 후기 기다리겠습니다 :)
귀한 후기 감사합니다.
저도 입시미술학원 뎃생 강사로 7년쯤 일했던 터라 왠지 반가운 이야기네요.ㅎㅎ
이 문장에서 웃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뭔가 심각한데, 사람으로 대하는게 아니라 사물처럼 표현한 말씀이 너무 웃겼어요.
뭘 하는 것도 힘들지만, 뭘 안하는 것은 더욱 힘든것 같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 머리속에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누드 모델 이야기만 봐서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저는 힘들겠네여
1분 3분 5분 10분 프리징 모델이 있고, 시급은 3만원 정도 합니다. 보통 3시간 정도하고 10만원 받아요.
저 같은 사람은 10분도 도저히 못버틸 것 같네요.
풍경이나 영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전 진짜 지루해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양쪽 다리를 석고로 본 뜬적이 있는데
털 때문에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