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VF로 시작해 2018년 GSX-S750까지 20년 가까이 바이크를 탔습니다. 그 사이 두 번의 큰 사고가 있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아내의 반대로 2018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바이크를 타지 않기로 약속했죠. 이따금씩 바이크를 타고 시원하게 투어를 떠나는 것이 너무 그리웠지만 가족을 생각해 꾹 참았습니다.
지난 주말에 아내가 딸을 데리고 친정에 내려가게 됐는데, 아내가 주말 동안 자유의 몸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묻더라구요. 뭐, 집에서 낮잠이나 실컷 자면서 밀린 책을 읽거나 묵은 짐이나 정리하면서 대청소를 해볼까 싶다고 말했는데, 아내가 그런 거 말고 진짜 자유의 몸이 됐는데 거창하게 하고 싶은 게 없냐고 다시 묻더군요.
"아니, 뭐 가능만 하다면야, 옛날처럼 시원하게 바이크 타고 바람이나 쐬면 딱 좋겠지만, 이제 바이크도 없고 뭐..."
"그래? 혹시 바이크도 자동차처럼 렌트할 수 있어? 주말 정도 짧게"
아내가 바이크를 렌트할 수 있다면 렌트해서 잠깐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되묻습니다. 순간 믿을 수가 없었죠. 바이크 만큼은 절대 안된다고 강하게 반대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어리둥절한 저에게 요즘 기운도 없고 뭔가 활력소도 없어 보이는 것 같아 제가 신나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바이크를 구입하는 것은 여전히 허락하기 어렵지만, 간간히 주말 정도에만 가볍게 타는 정도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너무 고마운 일이죠. 아내 입장에서는 굉장한 용기를 낸 겁니다.
급히 바이크 렌트가 가능한 곳을 검색해보니 마침 근처 의정부 쪽에 대배기량 바이크를 전문으로 렌트해주는 업체가 있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타보고 싶은 바이크를 고른 뒤, 업체에 연락해 주말 일정 동안 렌트가 가능한지 문의하고, 바로 예약금을 입금해 예약을 완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타기로 한 바이크가 HONDA CBR650R.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기왕이면 가장 기분 좋게 탈 수 있는 엔진 필링이자, 가장 익숙한 4기통이었으면 했고, 키가 작은 관계로 시트고도 너무 높지는 않아야 했습니다. 기왕이면 가격까지 저렴하면 더 좋구요. 결국 4기통 미들급으로 범위가 좁혀지는데, R6는 시트고나 컨트롤 면에서 다소 부담스러웠습니다.가격도 650R보다는 조금 더 비쌌고요.
주말 48시간 동안 렌트하는데 드는 총 비용은 16X2 = 32만원에 48시간 이상 대여 할인을 붙여 30만원이었습니다.
(나이, 주말/ 평일, 자기 보호장구 사용 등에 따라 추가 할인이 가능합니다)
자동차 렌트 비용에 비하면 굉장히 비싼 금액이지만, 바이크를 구입해 주말동안 여가로 사용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여전히 저렴한 금액이고, 저처럼 이따금씩 레저 명목으로 바이크를 타려는 사람에게는 가치를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가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아내와 딸아이를 기차역에서 배웅하고 토요일 오전에 렌탈샵에 가서 바이크를 렌트합니다. 말끔하고 규모가 갖춰진 샵의 모습에 과거에 '바이크 렌탈'하면 연상되는 무시무시(?)한 느낌이 많이 걷혀지더군요(물론 사고가 가는 순간 그 무시무시함이 현실이 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겠지만). 서류상 중요한 약관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신분 확인 후 서류에 싸인을 하는 것으로 렌트 과정은 간단히 마무리됩니다. 장구류가 없다면 헬멧, 자켓, 글러브 등의 안전용품을 무료로 빌릴 수 있으며, 헬멧에 추가로 세나를 장착할 경우에만 1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저는 바이크를 처분하면서도 끝까지 팔지 않고 남겨둔 글러브와 남의 것을 사용하기 싫어 전날 미리 구입한 헬멧이 있어 프로텍터가 달린 코미네 자켓만 추가로 대여했습니다.
바이크를 끌고 어디를 갈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보았습니다만, 아내가 혹시 모르니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달라고 조건을 내걸더군요. 그래서 첫 날은 철원 노동당사 - 연천 호로고루 - 연천 카페를 돌아보고 이른 저녁에 복귀, 둘째 날은 가평의 어느 기도원에 들러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갖고 가평 일대 투어 - 북한강 카페를 둘러보는 일정으로 달려보았습니다.

소감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간만에 타는 그 감각이 무척 신선하고 짜릿했으니까요. 처음 바이크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클러치를 연결해 출발하는 순간, 몇 년간 잠들었던 깊은 곳의 세포가 파바박 하고 켜지는 느낌이랄까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소름이 돋더라고요. 오른손으로 스로틀 레버를 비틀었을 때 매끄럽게 치솟는 알피엠의 감각은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죠. 온 몸으로 주행풍을 맞으며 속도를 그대로 체감하는 것도 바이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일테고, 온 몸을 활용해 바이크를 기울여 코너를 부드럽게 돌아나가는 그 감각을 다시금 느껴보는 것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렇게 꿈만 같던 이틀 간의 바이크 렌트를 사고 없이 무사히 마쳤습니다. 사실 일요일 오전에는 제법 비가 내렸기에 특히 더 조심해서 탔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바이크도 온 몸도 흠쩍 젖었지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깔면 인수'라는 라이더 사이의 불문율 때문에 렌탈 바이크는 다루기 특히 더 조심스럽고 무서운 것도 사실입니다만, 어느 바이크를 타더라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을 정도의 경력이 쌓인 사람이라면 충분히 렌트 바이크도 사고의 부담을 덜어내고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물론 사고라는 것이 나만 잘 탄다고 해서 발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주말 위주로 즐기기 위한 레저용 바이크 구입을 고려 중인 분들이라면 천만 원 이상의 목돈을 들여 바이크를 구입하는 것보다 필요할 때마다 바이크를 렌트해서 이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소비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유 경제'라는 명목 하에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탈것을 렌탈 형태로 이용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이니, 바이크도 좀 더 유연하게 인식의 변화를 거치게 된다면 좀 더 편안함 마음으로 렌트해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앞으로 몇 달에 한 번씩 바이크를 렌트해 이용해볼 생각입니다. 라이딩에 대한 욕구불만을 해결하는 동시에 (아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소유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어 현재 저희 가족에게 있어서는 가장 최선의 방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처갓댁에서 돌아온 아내가 그러더군요.
"굳이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어. 이미 자기 표정이 다 말하고 있거든"
맞습니다.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아마도 결혼 이후 최고의 자유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저처럼 아내에 의해 바이크 금욕 생활 중인 분들이 계시다면, 이 방법이 나름의 해결방법이 되길 빌어봅니다. :)
P.S :
홍보처럼 보일까봐 렌탈샵 정보는 따로 적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정보 필요하시면 댓글 달아주시면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륜차 특성 상 보험이 좀 빡빡하긴 합니다. ㅠ
말씀하신 대로 자차, 자손은 가입이 불가하고,
대인/대물에 대해서만 자기부담금 최대 50만 원을 부담하는 책임보험이 적용됩니다.
저희 부부에게도 최고 맛집 중 하나입니다.
아내랑 데이트 할 때 종종 가는 곳이죠. :)
사모님도 정말 @skywalker_24님 을 사랑하고 이해하실려는거 같구요.
바이크를 안타는사람들은 절대 이해못하겠지만, 워커님의 느낌을 충분이 이해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어서 좋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아내도 바이크 타는 저를 절대 이해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 같아 고맙더군요. :)
감사합니다. ㅎㅎ
타는 느낌을 상상하게 만들 수 있었다니 글쓴이로서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맞습니다.
자차보험 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이용해야 합니다.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금전적 부담이 엄청나게 커지게 되니까요.
본문에 적었듯 어느 바이크를 타더라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을 정도의 경력이 쌓인 사람이라면 렌트 바이크도 어느 정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바이크는 차랑 달라서 보험이 어마무시하죠....렌탈시 그것까지 해결되면 더 좋을텐데 말이죠..
이륜차 소유시에도 보험이 무척 적용 범위가 깐깐한지라 렌트에서 그런 제도적 아쉬움을 해소하기에는 당장은 어려워보이는 것이 사실이죠. 이런 부분만 잘 해결돼도 이륜차 보급율이나 문화가 훨씬 좋아질 것 같은데 말입니다. ㅠ
다만 일상적으로 경험되지 않는 가속력, 엔진 필링등이 좀 더 다르다면 다르겠네요.
온 몸으로 주행풍을 느낀다는 점, 완전한 개방감을 느끼며 달린다는 점에서는 스쿠터나 대배기량 바이크나 크게 다를바가 없습니다. 속도와 컨트롤 방식에 따른 짜릿함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요. :)
저도 요새 무척 울적했는데, 바이크 하나로 완전 기분이 달라졌습니다.
무모한(?) 시도를 한번 해보심이... ㅎㅎㅎ
저도 한 번은 무릎과 종아리 비골 골절, 한 번은 쇄골과 갈비 골절이라는 큰 사고를 당했었는데,
희한하게 오기가 생겨서 더 타게 되더군요. ㅎㅎ
저도 아내가 심하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까지 더이상 탈 수가 없어 지금은 완전히 접게 되었습니다. ㅠ
저도 그러고 싶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것만큼은 꾹 참으려 하고 있습니다.
절충안을 나름 찾은 듯하니 당분간은 이런 방식으로 해결해봐야겠습니다. :)
무보험으로 타는 것은 아니고요. 대신 이륜차 특성 상 보험이 좀 빡빡한 편입니다.
자차, 자손은 가입이 불가하고,
대인/대물에 대해서만 자기부담금 최대 50만 원을 부담하는 책임보험이 적용됩니다.
렌탈 하고싶다 하고싶다 했었는데... 후기 보니 정말 저도 꼭 렌탈 한번 해야겠네요.
태울 사람이 생긴다 - > 네바퀴로 기변
테크트리의 정석이죠. 저 역시도 비슷한 선택을 했고요. ㅎ
바이크에 대한 욕구불만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쯤 한번 이용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
ㅎㅎ 그런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뒷자석에 누가 앉으면 정말 없던 연애 감정까지 다 쏟아나는 마력이 있죠.
맞아요. 대학생 시절 좋아하는 후배랑 같이 도서관에 있다가 "잠깐 잠 좀 깨고 올까?" 하면서 바이크 뒤에 태우고 가볍게 캠퍼스를 달리고 들어왔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ㅋㅋㅋ
울컥하실 정도까지야... ^- ^;;
좋은 아내 덕분에 좋은 경험하고 좋은 글을 쓰게 됐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셨겠어요 ㅋㅋ
국내에서 바이크는 혐오의 대상이지만.. 정작 라이더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스트레스 풀리는게 중요하니까요.
가끔 그렇게 뻥 뚫어 주세요. ㅎㅎ
저는 가족들과 움직이지 않는 한 4발 안탄지 너무 오래됐습니다. 4발만 타면 졸려요 ㅠㅠ
렌트는 전혀 추천하지 않습니다.
보험이래 봤자 책임보험수준이고
제꿍이라도 발생하면 돈 1000만원 그냥날라갑니다...
휴차비 + 수리비용
쉬운말로 깔면 인수 하지 도 통하지 않는게 오토바이 렌트입니다.
절대 하지마세요
저도 요새 바빠서 라이딩 못한지 좀 됐는데 나가고 싶은 욕구가 샘솟습니다.
더불어 큰 결심해주신 사모님께 대신 감사인사를 전하고픈 심정이에요.
가끔 주말에 타실 때마다 안라무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언제가 제 소형면허도 빛을 바라길~
제 드림카는 bmw r1250gs인데 이번생에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ㅋㅋㅋ
조만간 이륜차당 입당 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도 10년전에 접었다가 최근에 동생하고 같이 투어가려고 복귀를 했습니다
라는 카톡한줄 읽자마자
제눈에 뜨거운습기가 느껴지면서
더 읽는걸 포기했습니다.
부럽습니다. 늘 안전라이딩 하세요!
2종소형 면허썩어가는데
한번 타보고싶어지네요^^
매니아분들은 동의하는 배기음인가요? ㅋㅋ
군에 있을때( 90년 1월) 포병부대에서 통신이라
노동당사 인근 부대 지원가면 노동당사 앞쪽 산에 올라가서 무전치고 훈련 끝나면 내려와 노동당사 안에 구경하다 60트럭 타고 돌아오곤 했었고 ... 92년 여름이 다가올때 노동당사안에서 60이 기다리다 ㅇ소리씨 가을화보 찍는거 구경했는데.. 군인들이 안에 먼저 있으니 스탭들도 저리가라 말못하고..제대하면 철원쪽으로 오줌도 안싼다고 말하던
고참들도 많았었고 오랜만에 노동당사보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겹치네요.
우리 민족은 가마 민족이 아니라...
기마민족 입니다!!!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달리는 느낌 잊을 수 없죠!!!
글에서도 즐거움이 드러나는듯해요.
VF 란 두글자에 옛 기억이 떠오릅니다.
와이프가 마흔에는 딱 접으라네요 ㅠㅠ
스쿠터도 안된다네요 ㅠㅠ
덥고 추워도 진짜 그 자유로움이란 설명이 불가능하죠
느리든 빠르든 바람 가르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유유자적 다니는 그 맛은 진짜 최고죠
네바퀴는 이제 운전하는게 노동으로 느껴집니다.
멋있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업체정보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의정부 '바이크클럽'이라는 곳입니다.
http://bikeclub.co.kr/
잘 읽었습니다.
저도 시간 나면 철원쪽에 가볼께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