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산업사회에 있어서의 예외와 보수주의
사회 구조는 관습(institution)의 자연선택을 통하여 진화합니다. 관습은 기존 환경에 적합하도록 형성되었기에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대로 이어지거나 강화되는 관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적 환경이 변하면 이에 적응하는 인간들의 노력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관습(사회 구성원들의 습관적 사고방식)또는 기질이 살아남고 옛 환경에 맞았던 관습은 도태됩니다. (생물학에서의 진화론 개념을 사회 관습의 변화 과정에 적용하시네요. 관습은 사회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역할을 한다고 보면 이해가 될 듯.) 그리고 그렇게 생긴 관습들은 그 자체가 새로운 환경이 됩니다.
이처럼 관습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잘 변하지 않는 관성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에, 환경이 바뀌어도 사람들은 옛 관습을 쉽게 버리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성이 바로 보수주의입니다. (보수주의가 판을 치고 개혁은 늘 좌초되는 이유가 이것이로군요) 하지만 환경이 크게 변하게 되면 이는 결국 사회구성원들의 행동양식에도 변화를 강요하게 됩니다. 다만 사회의 계급별로 이러한 환경변화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기술과 지식이 큰 진보를 이루게 되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서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고 근대 산업화사회에 필요한 효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사고방식 자체를 뜯어고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러한 적응을 잘 하지 못하여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돈이 많은 유한계급 사람들은 굳이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전근대 약탈적 문화에 근거하는 관습 - 즉, 과시적 낭비 - 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관습, 즉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뜯어고치게 강제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쩐의 압박, 즉 경제적 필요성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가족들 건사하며 먹고 살려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바꾸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변화라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며,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옛날이 좋았다며 과거의 관습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근대 사회의 사람들은 틈만나면 산업화 직전 단계, 즉 인간의 지위고하를 구별하던 '준평화상태'의 사고습관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지역적으로는 식민지 시절 미국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변화는 유한계급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유한계급이 보수적이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유한계급이 보수적으로 되는 데는 이러한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심층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유한계급이건 아니건 인간들은 모두 똑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어떻게든 기존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함에 반해, 유한계급은 자신이 살던 방식을 바꿀 필요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사회에서 높은 평판을 얻기 위하여 유한계급의 행동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유한계급의 전매특허인 보수주의 역시 아래 계급 사람들이 품위있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컨대, 잘 살지도 못하면서 모든 걸 시장에 맡기고 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자유방임주의적 경제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지지함으로써 자신이 이 사회의 '주류'라는 정신승리를 시전한다는 겁니다.) 이에 반해 사회의 변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수준이 떨어지는 비천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설사 이들 개혁가들이 외치는 대의에 다들 공감하는 경우에도 결과는 같습니다.
기존의 관습은 웬만해서는 바꾸기 힘들다는 점도 보수주의의 확산에 기여합니다. 사고방식을 광범위하게 바꿀 수 있는 충분한 변화의 계기가 없이 일부일처제, 부계혈족, 사유재산, 신앙과 같이 삶에 밀접한 특정 관습을 바꾸려 하면 사람들은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어쩌고 하면서 저항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존관념을 극복하고 개혁이 일어나려면 상당한 수준의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할 것인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저소득층의 경우 먹고사는데 온 에너지를 투입하고 나면 개혁같은 건 신경쓸 여유가 없으며 오히려 변화를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한계급은 이러한 현상을 활용하기 위하여 저소득층을 딴생각을 못하도록 더욱 착취하며, 이렇게 불평등이 확산되게 되면 사회의 진보는 요원해지고 유한계급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집니다. 중산층이라고 이 현상의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나면, 진정한 행복을 이루기 위한 고급진 소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중산층 사람들은 (전에 설명된 대로) 과시 욕구의 충족을 목적으로 사치적 소비재나 자산을 취득하거나 돈자랑 그 자체만을 위해 돈을 쓰지 않고 그냥 모아만 놓기도 합니다. (케인스가 강조한 바 있는 축장 개념에 대해서 베블렌도 언급하네요. 버는 돈의 상당부분을 아파트 구입에 쓰는 것 역시 대표적인 축장의 사례일 것이고,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 역시 경쟁과 과시적 목적이 크게 개입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 역시 피곤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으며, 개혁에 대해서 신경쓸 여유가 없어집니다(헐... 우리나라 얘기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어쨌든 진보합니다. 유한계급은 변화를 싫어하지만, 산업화 사회에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 특히 경제적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합니다. 다만 이들 유한계급이 진보적 개혁을 하려는 목적은 자신이 돈을 벌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일 뿐이고, 생산 증가를 통하여 사회 전체에 기여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한계급이 삿된 목적으로 만든 여러 경제적 제도들 - 사유재산의 보호, 계약의 이행 보장, 거래의 편의를 위한 장치, 즉, 파산제도, 회사 제도, 금융, 통화, 노동조합 등 - 은 경제의 발전에도 어쨌든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경제가 잘 돌아가야 유한계급이 지속가능한 착취(?)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계속 진행되면 결국 영혼이 없는 회사들이 유한계급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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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위주 설명을 하시다가 갑자기 일반론으로 들어가셔서 깜놀했네요. 신선한 시각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유한계급론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대목인, '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화되는가?'에 대한 이유는 얼추 알고 있었는데, 원텍스트를 읽어보니 확실하게 이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