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ne with the Wind, 1939 film
7. 금전적 문화의 표현으로서의 의복
한번만 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옷차림은 우리들의 금전적 위상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수단입니다. 물론 착용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옷의 1차적 역할이지만, 사람들이 불편한 옷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금전적 위상을 자랑하려 하는 걸 보면 옷의 역할은 보온이나 보호가 아니라 과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치재처럼, 과시적 낭비의 법칙이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취향과 품위의 법칙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옷의 소비 방향이 결정됩니다. 이에 따라 우리들은 싸구려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도 싸구려 취급을 합니다.
의복은 그 자체로 낭비적 소비의 증거가 되지만, 더 나아가 옷을 입은 사람이 생산적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유한계급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됩니다. 특히 여성의 옷은 이러한 점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신체 활동을 제약하는 스커트나 하이힐이나 치렁치렁한 헤어스타일은 착용자가 일을 안하는 여자라는 걸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이러한 여성을 거느리며 여성에게 대리적 소비를 시켜주는 남성의 경우 본인이 이런 화려하고 불편한 옷을 입으면 웃음거리가 됩니다. 남성의 경우 심플하고 기능적인 면을 고려한 옷을 입어야 그가 주인라는 사실과 그 능력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복의 소비는 유행이라는 또다른 독특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옷은 비싸고 불편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당대의 유행에도 부합해야 합니다. 매번 새로이 유행하는 옷을 사 입어야 한다는 것 역시 과시적 낭비의 법칙에 부합하며, 이 법칙은 유행의 변화가 그 법칙에 부합하는지를 늘 감시합니다. 이렇게 유행이 계속 변하다보면 패션이 발전에 발전을 거쳐 어떤 완벽하고 이상적인 형태의 그것으로 귀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패션이 과거의 패션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유행중인 스타일에 점차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또다른 패션 스타일로 갈아타지만, 이 새로운 스타일 역시 (과시적 낭비의 법칙을 적용받아) 낭비적이고 공허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저자가 보는 유행이 변하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사회가 부유하고 그 구성원간 교류가 활발할 수록 (보는 눈이 많아지므로) 과시적 낭비의 법칙이 옷의 유행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당연히 더 커지며, 유행의 변화 또한 급격하게 일어나게 되고, 특이한 스타일이 유행할 가능성도 더 커진다고 합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산업이 발전하여 잘 사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이 늘어나 이러한 유행의 양상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제 이들 부유층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한테까지 과시하기 위해 오버를 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같은 계층 사람들에게만 잘 보이면 되게 됩니다. 자기들끼리말 알아볼 수 있는 은밀한 신호를 익히고 그러한 신호에 따라 서로를 평가하면서, '그들이 사는 세상'안에서만 유행은 돌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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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유행에 대한 여러가지 궁금증이 해결되네요. ㅋ
유행의 발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베블렌의 생각은 같은 유행이 계속 돌고 도는 현상과도 부합하는 듯 합니다.
그나저나 양복 좋은 걸로 장만해야겠네요... 쓰레기 취급 안받으려면
록이 그랬고 힙합은 Swag이라는 나름 탈출구를 만들어놨다지만 위화감이 듭니다.
헝그리 로커와 랩퍼에 있어서 동경은 에너지가 되지 못합니다. 출세와 유명세가 목표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요즘 무슨무슨 시상식 보기 불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