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취향의 금전적 규범
과시적 낭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소비를 평가하고 규정하는 법칙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실제로 소비를 할 때 대 놓고 '아 이제부터 과시적 소비를 해야지~' 하면서 소비를 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소비자들은 그저 사회의 관행에 따르고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규제하는 것일 뿐입니다. 역시 바로 이러한 관행, 즉, 비싸고 고급진 것을 사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사회적 규범은 (제품 자체의 사용가치와 별도로) 다양한 소비재의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 하에 어느 정도 비싼걸 사줘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주는 소비의 규범이 생겨납니다. 이 소비의 규범, 또는 영예로운 낭비의 규범은 사람들의 의무감, 미의식, 효용감, 신앙의식에 대한 생각, 심지어는 진리에 대한 인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과시적 소비를 위한 부의 축적이라는 지상명제는 사회의 윤리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현대사회에서 경제윤리의 가장 기본은 사유재산에 대한 존중인데 이마저도 과시적 소비라는 대원칙을 밑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때로는 과시라는 '미덕'을 사유재산 보호라는 윤리에 우선하는 현상도 벌어집니다. 크게 해먹은 아주 큰 도둑의 경우 오히려 사람들이 비호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이러한 영향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좀도둑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면서도, 아주 큰 금액을 훔쳐서 그 돈을 뽀대나게 쓰거나, 처자식을 품위있게 살게 해주려고 훔쳤다 항변하면 사람들은 이러한 범죄자를 오히려 두둔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과시욕의 투사?). 사실 사유재산의 불가침성이라는 개념 자체도 과시의 수단인 부를 중시하는 전통적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종교에 있어서도 과시적 낭비의 법칙은 꽤 잘 관철됩니다. 거대한 성전에서 성직자들이 불편하지만 화려한 제의를 입고 의식을 집전하는 것을 보면 신도들은 안도감을 느낍니다. 반면 이러한 종교시설은 신도들에게 거의 편의를 주지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대리적 소비의 개념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입니다. (한겨울에 절에 가서 불공 드릴 때 보면 거의 난방을 안하시더구만요. 그나마 방석은 줘서 다행 ㅋ) 즉, 주인공은 신이고 신도들은 그 신을 빛내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일 뿐이니 챙겨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직자들이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는 것이나, 일반 신도들도 교회에 가는 일요일에는 일체의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역시 과시적 여가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소비의 규범이 더욱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소비재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에서입니다. 모든 소비재는 그 자체의 용도가 있지만, 그 소비재가 과시적 낭비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그 가치가 올라갑니다. 입으로는 이뻐서 산다고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그 물건이 비싸기때문에 더 많이 찾는 것입니다. 수제 은수저와 기계로 만든 알미늄 수저의 가격 차이가 기능이나 디자인의 차이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져 있는 걸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명품', '짝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 여기 해당되겠지요) 수제 은수저가 더 고급지고 취향을 저격하니 비싼 돈을 주는 건 당연하다고 우리들은 말하지만, 수제 은수저가 비슷하게 만든 싸구려 수저의 수십배 가격으로 팔리는 건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진실은 수제 은수저가 비싸다는 것 그 자체가 어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품을 보고 아름답다는 미학적 평가를 내릴 때, 그 평가에는 명품이 진짜 아름답다는 순수한 미적 평가와 함께, 그 명품이 비싸다는 사실또한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후자의 기준은 당연히 과시를 소비의 평가기준으로 하는 사회적 압박이 강제하는 것입니다. 비싸야 예쁜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움과 비쌈이 마구 뒤섞여 비싸야 아름다와 보이는 현상은 의복, 화훼, 가구, 집과 같은 재화와 공원, 정원과 같은 인공물들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사회의 유행은 특정한 재질과 디자인의 옷이 유행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규정하지만, 이 유행은 객관적 기준이 없이 계속 바뀝니다. 아름답지만 싼 꽃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좋아하고, 부자들은 별볼일 없어도 재배하기 힘들고 비싼 꽃을 찾습니다. 공원에 여러가지 동물들을 풀어놓는 것 역시 금전적 과시와 아름다움의 추구가 뒤섞이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의 상류층들은 이렇게 대놓고 사치스럽게 보이려는 습성을 졸업하고 오히려 질박함을 추구하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최근 상류층의 선호는 제작 본능의 웃자람을 반영한 것입니다. (과시적 낭비로 모든 걸 설명하다가, 반대 사례가 나오면 제작 본능으로 설명하시는데 너무 편하게 논리전개를 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애완동물 중에서도 특히 개와 말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사치재로서 소유되는 것이라 합니다.
동물뿐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취향도 금전적 평판의 영향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 기준은 고대에서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여 계속 변해 왔습니다. 여성이 생산적 노동을 해야했던 고대에는 팔다리가 튼실한 스타일이 각광받았다고 하며,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여인 묘사에 이 점이 잘 드러난다고 합니다(그리스 로마 조각을 봐도 좀 그런 거 같기는 합니다. 상당히 육덕진 스타일...). 하지만 중세에 들어서 상류층 부인은 일체의 노동에서 배제되고 남편을 대신하여 대리적 여가를 누리는 것이 임무였기때문에, 중세시대의 이상적 여성상은 여리여리하고 허리가 심하게 잘록하며 얼굴도 곱상해서 일같은 걸 잘못 시켰다가는 큰일날 것 같은 그런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중세적 이상형은 근대에 들어와서도 산업 발전이 더딘 지역에선 계속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뭐 우리나라도 그런 취향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상류층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부를 쌓고 중산층들도 생활이 윤택해지게 되었기때문에, 사람들은 한가한 여성에 대한 동경을 졸업하고, 건강미가 넘치는 여자를 높이 쳐주는 고대의 취향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저자는 이러한 취향의 법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작동하는지에 대하여 심리학적, 언어학적으로 좀더 심도있는 논의를 전개합니다. 심미적 가치의 이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전적 가치는 매우 은밀하게 작동합니다. 가치평가를 하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내가 이게 돈이 된다고 생각하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거야'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 금전적 평판이라는 이 평가요소는 가치평가자의 오래된 습관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이 습관적 사고에 따라 사람들은 아름다운지의 여부를 평가할 때 (무의식적으로) 이게 '내가 돈이 많다는 걸 자랑질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라는 기준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미학적 평가를 할 때 사람들은 여러가지 다른 평가기준을 원용할 수 있으며, 금전적 평판이라는 기준은 특히 미학적 평가와 매우 가깝기때문에 그만큼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표현 할 때 아름다운 건 그냥 '아름답다'고 표현을 할 수 있지만, '내가 돈이 많다는 걸 자랑하는 데 도움이 되는'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형용사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퉁쳐서 그런 것도 그냥 아름답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자는 '경제적 아름다움(the economic beauty)'이라 명명합니다. (초등학교때 얼굴이 예쁘고 형편이 어려운 여자아이보다 얼굴은 좀 덜 이쁜데 부잣집이었는지 잘 차려입고 다니던 여자아이가 더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 부분은 완전히 이해가 되는데요? ㅋㅋㅋㅋ) 이 경제적 아름다움은 경제적 실익에 도움이 되어야 하지만, 과시적 욕구도 충족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괴하고 쓸데없는 장식을 하고 그걸 아름답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타 재화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됩니다. 모든 재화들은 인간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됨으로써 (사용)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 기본이지만, 비싼 걸 살 수 있는 지불능력을 가지고 늘 서로 비교하고 경쟁을 하는 인간의 습성에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가 최종적 가치 결정 과정에 늘 개입하기 마련입니다. 재화의 가치는 전자의 요소에 의하여 발생하지만, 후자의 요건이 충족되지 못하면(이것이 과시에 도움이 되는가? 라는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즉 과시적 필요성이라는 요소는 재화의 가치를 높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대대로 이어지며 강화됩니다.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 제품과 수제품의 관계는 이러한 점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상품 자체의 질은 대량생산 제품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조금은 삐뚤빼뚤해도 수제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수제품이 질도 더 좋고 예쁘다고 하며, 그런 복고 스타일을 고전적(classicism)이라면서 그럴 듯하게 불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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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으로는 자신의 재력과 능력을 과시하고 싶으나 비싼 물건을 살 때 그렇게 대놓고 솔직히 자신의 목적을 밝히면 쪽팔리니, 비싼 물건이 아름답다고, 더 잘 만들어졌다고 드립을 치는 것이다.... 이렇게 그냥 말하면 될 것 같은데.... 저자께선 상당히 에둘러 길게 말씀을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