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4일, NBA 서부 콘퍼런스 결승 4차전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골든스테이트가 달라스를 3: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죠. NBA에서는 중요한 경기 전후로 항상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보통은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분위기는 어떠한지 이런 것들을 기자들이 묻고 감독 혹은 선수가 대답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날 골든스테이트의 감독 스티브 커는 프레스룸에 들어와서 착석하자 마자 '오늘은 농구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어제랑 다를거 없어요. 농구는 지금 중요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격정적인 연설을 시작합니다.
https://youtu.be/FfTYoMDNE7Q
회견 몇 시간 전에, 경기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21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초등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했고 사망자 중 19명이 어린아이 였습니다. 스티브 커는 이에 대에 분노하며, '아 또 비극이 일어났구나'라는 식으로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고, 더이상 침묵하면 안된다고, 너무 한심하다!며 일갈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영상을 보시기 추천드립니다. 그럼 누가 한심하다고 하는 건지 알수 있음! 자막 달려있어요!)
우리도 최근 이태원에서 커다란 비극을 겪었습니다. 사회 전체가 또 다시 트라우마에 빠질만한.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3일전인 12월 12일, 이태원에서 친구를 잃은 생존자 10대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세상이 도통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분노와 무기력감으로 괴롭습니다. 뉴스는 보면 볼수록 스트레스인지라 봐야한다는 의무감과 보면 볼수록 괴로운 심정이 범벅이 되어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내가 뭘 어찌할 수 있겠어 (아 이 x같은 세상) 같은 무력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오려고도 합니다.
세상에 바보들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되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이기적인 놈들이 그득해 바보들이 그들에게 놀아나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책임을 질 놈은 안지고 있고, 본인들 안위에 급급해 어떻게든 사회적 파장을 줄이고 무마해보고자 하는 행태가 드러날 때마다, 정말 경기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 (혹은 경기를 일으킬까봐 무감각해지려고 노력중)
게다가 요새 사이코패쓰스러운 정치인들이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걸 보면, 와 아주 가관이야.
이런 와중에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한줄기 위로가 되는 영화입니다. 여러번 보았지만 볼때마다 나름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영화는 2001년 보스턴의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의 탐사취재팀 스포트라이트가 카톨릭 성직자들의 아동성추헹을 취재하여 보도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언론의 역할, 좋은 질문을 해주는 것

마티 배론(리에브 슈라이버 분)
편집장으로 새로 부임한 마티 배론은 스포트라이트팀에 카톨릭 성직자의 성추행에 관한 취재를 제안합니다. (명령은 못함) 한명이 아닌 50여명의 성직자가 그간 아이들을 성추행한 증거를 찾아낸 스포트라이트 팀은 이를 편집장에게 보고합니다. 그런데 마티 편집장은 이를 기사로 내지말고, 보강취재를 지시합니다.
마이크(마크 러팔로 분)가 묻습니다. 50명의 성직자가 계속 성추행을 해 온 사실을 밝히는 기사면 충분하지 않냐고. 마티편집장은 이 기사가 나갈 경우 사회적으로 시끄러워 지긴 하겠지만 바뀌는 것은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성직자 개개인의 잘못의 초점을 맞추지 말고, 카톨릭 교회라는 이름 하에 체계적으로 이를 은폐한 사실을 밝혀내야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어떤 비극이 벌어졌을 때, 직접적인 비난의 대상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좋지않은 언론들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더 자극하고 부추키곤 합니다. 그런 기사가 높은 관심과 클릭을 양산해 돈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기자가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해서 일 수도 있겠죠. 때로는 실제로 책임을 져야할 자들이 받아야 할 비판을 면하게 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할겁니다.
이태원 참사 직후 언론에서, 뒤에서 밀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는 둥, 마약이 문제라는 둥 의 기사들은, 본질을 호도하는, 좋지도 않고 옳지도 못한 언론들의 양태라고 생각합니다.
주무부처 장관은 '경찰을 미리 배치했다 해도 막을 수 없었을 것' 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발언을 하고 정부는 '주최자가 없었던 점'을 들어 책임이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상황에서 11월 1일 외신 기자회견 중 기자들은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스텔라 킴/NBCNEWS]
"애초에 젊은이들이 거기에 간 게 잘못입니까? 이렇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는 사고에서 정부의 책임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납니까?"
[진 매킨지/BBCNEWS]
"그날 행사 주최자가 없다는 걸 압니다. 그러면 어떤 공공 기관이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집니까? 궁극적으로 누가 이태원에서 안전을 책임집니까?"
언론의 역할이란,
1. 우리를 대신하여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2. 그 답을 끝까지 찾아내는 것
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
취재를 진행하던 마크는 보스턴 교구의 장인 로 추기경이 과거 한 성직자의 성추행에 관해 알고 있으면서도 은폐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를 확보합니다. 이제 고위직에서 이를 은폐했음을 증명이 가능하니 보도를 하자고 팀 회의에서 발언을 하지만, 팀장 로비(마이클 키튼 분)는 한번의 은폐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아직은 보도할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에 마크가 폭발합니다.

마크 러팔로 & 마이크 레젠데스

마이클 키튼 & 월터 로비 로빈슨

레이첼 맥아담스 & 샤샤 파이퍼
마이크: '왜요? 추기경 잡았잖아요. 끝난 거에요.'
로비: '한 명 은폐해준 거지, 아직 90명 남았어.'
마이크: '그건 차차 밝혀도 이건 지금 내야죠.'
로비: '이 기사는 서두를 수 없어.'
마이크: '달리 방법이 없어요. 빨리 기사로 안 내면 다른 신문사에서 나와요. <헤럴드>의 조 큄비도 법원에 왔었다고요.'
로비: '그럼 기사 준비하면서 <헤럴드>를 주시하자고.'
마이크: '<헤럴드>를 주시해요? 저기서 기사 어설프게 내면 교회가 덮어버릴 거에요. 지금 내야 해요.'
매트: '마이크, 마이크.'
마이크 : '왜요! 왜 망설이는데요! 배런이 로 추기경을 파헤치랬잖아요.'
로비: '시스템을 파헤치랬지! 전체를 파악해야 해. 종지부를 찍을 방법은 그것뿐이야.'
마이크: '그럼 편집장한테 가서 내가 직접 말할게요.'
로비: '내가 됐다고 할 때 가!'
마이크: '지금이에요! 지금이 그때라고요! 알고도 애들이 당하게 그냥 뒀다고요! 네? 팀장님이었을수도 있고 나였을 수도 있고 누가 당했을지 모를 일이에요! 이 쓰레기들을 잡아서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아무도 못 빠져나가게 만들어야죠! 신부든 추기경이든! 빌어먹을 교황이든!'
마이크는 불도저같고 저돌적인 기자입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취재를 하면서 만난 희생자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낍니다. 빨리 정의를 찾고싶어 합니다.
로비(마이클 키튼 분)는 연륜이 많고 시야가 넓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추행 사건들에 대한 진짜 종지부를 찍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독자들에게 전체적인 그림을 알리고, 행여나 교회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처한 취재를 요구합니다.
두 진심어린 마음의 충돌이자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의 부딪힘으로 보였습나다.
(마크 러팔로의 폭발하는 연기와 마이클 키튼의 팀장으로서의 냉철한 연기, 그 둘 사이를 번갈아 바라보는 샤샤로 분한 레이첼 맥아담스의 눈빛 연기까지 너무 훌륭해요!)
### What about us?
취재가 완료되고 기사가 나가기 전 마지막 회의 중 성추행한 신부를 변호했던 변호사들에게 '그런 쓰레기들을 변호하고 알면서도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하도록 방조한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며 동료가 비난하자 로비가 말합니다.
로비: '우린 뭐가 잘나서?' (What about us?)
벤: '무슨 소리야?'
로비: '자료도 다 있었는데 왜 진작 안 썼어요?'
벤: '자료가 부족했지.'
로비: '사비아노, 배럿, 게오건도 있었어요. 서고에 명부도 있고.'
벤: '이제 구한 정보잖아.'
마이크: '로비, 스포트라이트 취재가 필요했던 기사에요.'
로비: '스포트라이트 팀은 1970년대부터 있었어.'
벤: '그래서? 우리가 못 봤으면 아무도 못 봤어. 신부 한 명으로 시작된 기사잖나.'
로비: '... 매클리시가 신부 20명을 몇 년 전에 제보했어요. 샤샤가 (우리가 썼던) 기사를 찾았죠.'
마이크: '농담이죠? 20명이라고요?'
벤: '언제?'
샤샤: '아.. 포터 건 보도 직후 1993년 12월이요.'
로비: '내가 메트로 부서에서 후속 기사 없이 덮었죠.'
벤: '...자네가? 메트로 부서에 있을 때?'
로비: '네, 저 였어요. 기억이 안 나서 모르고 있었지만... 맞아요.'
로비는 영화 중반부에 자신이 과거에 이 사건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음을 인지합니다. 그리고 계속 괴로워 합니다. (표정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래서 친구가 영화 마지막 부분에 '자네는 그동안 뭐했나? 여기까지 오는데 왜이리 오래걸렸어?'라고 물어볼 때 망설이다 '나도 모르겠어.'라고 대답하기도 해요.
위 회의 장면에서 로비가 자신이 과거에 이 건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도 덮었음을, 놓쳤음을 고백하자 동료들이 어떻게 그럴수 있냐는 표정으로 쳐다봅니다. 그때 마티 편집장이 말합니다.
"
제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
가끔 쉽게 잊지만
우린 많은 시간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가요.
그러다 갑자기 불이 켜지면 주변에 탓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죠.
제가 오기 전에 대해선 뭐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모두 좋은 보도를 하고 계십니다.
독자들에게 즉각적이고 큰 영향을 주는 보도.
제겐 이런 기사가 이 일을 하는 이유죠.
아마 로 추기경과 카톨릭 사회에서 반발이 거셀 겁니다.
그러니 필요하시면 한숨 돌리세요.
하지만 월요일 아침엔 돌아와서 집중하고 각오를 다져주세요.
"
마티는 좋은 리더입니다. 좋은 리더의 중요한 자질중 하나는 좋은 질문을 품는 것이에요.
마티는 영화에서 삶과 직업에 대한 좋은 질문을, 그리고 본인의 답을 던집니다.
'어떤 것이 좋은 보도인가?'
'언론이란 어때야 하는가?'
'우리는 왜 남을 비난하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좋은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 답을 찾아가면서 살아간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고 헷갈릴 때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좋은 질문을 품고 살아가고 있나요?
(What about us?)
p.s.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곤 해서 궁금했습니다. 나는 왜 이 영화에서 위로를 받는 것일까? 이 글은 이 질문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또 하나의 감동을 받은 포인트는, 기자들이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내적 갈등(우리 할머니가 다니는 교회를 비판해야 하는 점, 지역 사회의 대부분인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점 등)에도 힘들어하지만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밀어 붙이는 점.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p.s.2
수퍼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총출동. 배트맨(마이클 키튼), 헐크(마크 러팔로), 닥터 스트레인지 여친(레이첼 맥아담스), 아이언맨 아빠인 하워드 스타크(존 슬래터리), 그리고 울버린 오리진에서 빅터 크리드(리에브 슈라이버).
대단한 작품이죠
대단한 서스펜스나 반전이 있는 영화도 아닌데
볼때마다 시간 순삭입니다
/Vollago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답을 낼 수 있게 한다. 좋은 말씀이네요. 잘읽었습니다.
제게는 '설리'도 비슷한 느낌의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다보면 세월호 사고가 겹쳐 보이면서 가슴이 아리기도 하고 또 뜨거워지기도 하고 그러더군요.
두 영화가 제게 감동을 준 이유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이뤄내기 위해 분투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세상은 이러해야 한다고 말하는 큰 무리의 외침 같은.
"그날 행사 주최자가 없다는 걸 압니다. 그러면 어떤 공공 기관이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집니까? 궁극적으로 누가 이태원에서 안전을 책임집니까?"
물어도 답도 없고, 답이 없어도 문제 삼지 않는 자들이 권력자이고 언론이니.. 참으로 답답할 뿐입니다..
게다가 헐크님이 나오셔서..ㅎ
1. 우리를 대신하여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2. 그 답을 끝까지 찾아내는 것
공감합니다.
실화여서 더 소름이었던....
불같이 화를 내지만 예전의 그 3점슛만큼 좋은감독 이전에 좋은 사람인듯 하네요.스포트라이트 영화도 한번 챙겨보겠습니다.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우리나라 언론사 종업원들도
이 영화를 본 물건들이 있을텐데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참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