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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사용기 - 5. 생활 속 금력의 기준 4

3
2022-12-17 15:31:51 58.♡.155.162
독바위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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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생활 속 금력의 기준

현대사회에서 기본적인 육신의 안위를 어느정도 충족한 이후의 소비는, 내가 얼마나 비싼 걸 사느냐를 과시하려는 의식적 노력에 의한 소비입니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어떤 물건을 얼마나 소비하는 게 품위있는 지에 대한 어떤 관행적 기준에 부응하도록 살아야 한다는 우리들의 바램을 반영합니다. 이 관행적 기준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우리가 더 잘게 될 수록 어느 정도의 소비를 해야 하는지의 기준은 계속 올라가게 됩니다. 이 소비의 기준은 우리가 현재 정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열심히 노오력해서 돈을 더 벌어야 그럭저럭 달성할 수 있는, 딱 한단계 위의 수준입니다. 동급 최강(?)이 되기 위하여 경쟁을 불사하는 우리들의 습성이 우리들의 눈높이 또한 계속 높이는 것입니다. 각각의 계급은 계급구조상 바로 자신의 위에 있는 계급을 선망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경쟁하게 되는데, 모든 계급이 다 이 짓을 하다보면 결국 가장 최상층의 부유한 유한계급의 관행을 모두가 따라가야 하는 형국이 됩니다. 그래서 신분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신분간 이동이 가능한 현대사회에서 유한계급의 영향력은 오히려 극대화된다고 베블렌은 설명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품위있고 영예로운지를 결정하는 권력자는 바로 유한계급이 된다는 겁니다. 다만, 이러한 유한계급의 영향력은 어디까지나 과시적 낭비를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한다는 대전제와, 그러한 낭비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제작자의 본능이라는 제약 안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기준은 올라가기는 쉽지만 떨어지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즉, 특정한 수준의 낭비적, 과시적 소비를 이미 하고 있다면 이는 습관 내지는 생활의 한 부분으로 굳어지기 때문에 있는 만일 돈이 떨어졌다고 해도 이러한 소비를 바로 줄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거시경제학 시간에 배운 듀센베리의 톱니효과와 비슷한 논리네요) 물론 가장 줄이기 힘든 소비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그것이겠지만, 가오를 세우기 위한 소비 역시 만만치않게 줄이기 힘든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오랜 기간 그런 과시적 소비를 해왔다든가, 사회적 관행의 영향을 크게 받는 개인적 습성으로 인한 과시적 소비를 해 왔다면, 이는 생활이 어려워졌다 해서 쉽게 줄일 수 있는 것이 압니다. 이렇게 과시적 소비 습성을 형성하는 근본적 요인은 바로 경쟁(emulation)입니다. 인간이 경쟁을 하고 비교를 하는 습성은 아주 오랫 옛날부터 형성된 것으로 기회만 있으면 늘 새로운 형태로 불이 붙는다고 합니다. 사회는 늘 폼나는 소비를 하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매뉴얼을 갖추고 있으며, 개인에게 정해진 경쟁의 관행을 따르기를 강제합니다. 개인은 경쟁본능을 발휘하여 이러한 매뉴얼에 따라 과시의 한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경쟁본능은 금전적 경쟁, 즉 누가 돈이 많은지에 대한 자랑질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생산성이 늘어 먹고사는 데 필요한 재화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인간들은 적당히만 일하고 노는 합리적인 길을 택하는 대신, 금전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펑펑 쓸 돈을 벌려고 불철주야 일하고, 그렇게 허비할 재화와 서비스를 더욱 많이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의 한계는 없습니다. 이렇게 버는 돈의 큰 부분을 과시적 소비로 지출해야 하므로, 도시인들의 경우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집안 살림은 더욱 초라해지기 쉽습니다. 자녀 역시 남들에게 보여지는 삶의 영역이기에, 아이도 낳으면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최고로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도시인들은 아예 아이들을 많이 안낳게 되니, 맬서스 선생께선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된다고 베블런 선생께선 안심(?)을 시켜주십니다.

===============
늘 위만 쳐다보고 살며 무한경쟁을 하느라 아이도 많이 안낳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황을 족집게같이 예언하셨네요.

토머스 모어, 버트랜드 러셀, 존 메이나드 케인스 등 많은 석학들이 생산능력의 발전으로 인하여 이제 인류는 거의 일을 안해도 되는 세상이 도래할 거라 했지만, 이 예언이 맞지 않는 이유를 저자는 뿌리깊은 경쟁의 본능을 근거로 잘 설명해 주시네요.

독바위경제연구소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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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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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4]
아누이
IP 112.♡.182.249
12-17 2022-12-17 18:14:06
·
읽으면 읽을 수록 대단한 고전이네요.
독바위경제연구소
IP 221.♡.180.125
12-19 2022-12-19 13:29:57
·
@아누이님 예 100여년 전 책이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내용이죠
모듈라
IP 122.♡.224.84
12-18 2022-12-18 11:35:45
·
베블런효과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런 고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니...내년에 친한 형이랑 하는 독서 모임에서 6개월 동안 이 책으로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독바위경제연구소
IP 221.♡.180.125
12-19 2022-12-19 13:31:26
·
@모듈라님 직접 읽어보니 베블렌효과라 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더라구요. ^^ 재미난 내용이 많아 즐거운 독서모임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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