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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사용기 - 4. 과시적 소비 2

5
2022-12-14 13:15:08 221.♡.180.125
독바위경제연구소

gatsby_party.jpeg The Great Gatsby (2013 film) 


4. 과시적 소비


일을 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것 역시 내가 가진 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남성 주인에게 예속된 부인이나 부하들은 대저택에서 살면서 고급진 물건들을 사서 쓰는 것으로 주인의 가오를 세워줍니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의 유래는 물질문명이 그리 발전하지 않았던 약탈 문명의 초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시적 소비의 양상은 시대의 변화와 계층의 분화로 상당 부분 변모하게 됩니다. 원래는 주인에게 예속된 여인들의 소비는 여인들이 본업인 집안일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준으로 국한되었고, 기타 피지배계급의 경우 생존에 가능한 수준까지만 소비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술, 담배와 같은 마약성 물질들이나 기타 사치재의 경우 지배계급 남성만이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묵계였습니다.

평화로운 시기가 되고 약탈보다는 노동력에 기반한 산업 생산이 부를 만들어내게 됨에 따라 유한계급이 과시적 소비를 독점해야 한다는 법칙은  형식적으로는 사라지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차원에서는 계속 관철되었습니다. 지배계급은 과잉 소비를 넘어, 어떤 재화를 어떤 방식으로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익혀야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이 부자라는 걸 입증하기 위하여 주위에 선물공세를 하고 대규모 파티를 개최합니다.

사회의 부가 축적되면서 계급의 분화현상 역시 심해집니다. 부자로서의 교양은 물려받았으나 정작 부를 물려받지 못한 사람들은 부자들에 빌붙어 (부자의 돈으로) 대리 소비를 하는 데 만족해야 합니다. 부자들이 이들은 그냥 지원해 주는 건 아닙니다. 이들 기생계급이 누리는 한가함과 과시적 소비가 결국 부자 본인의 재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인증 가능하도록 기생계급이 특정한 표식을 장착하거나 같은 옷을 입게 합니다. 파티의 경우 누가 파티의 주인인지 명확하므로 그 자체가 훌륭한 인증수단이 됩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런 제복이나 표식은 곧 예속의 증거가 되기때문에 사회적 멸시의 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근대가 도래하면 더 이상 많은 수의 식객들을 거느리는 귀족같은 건 보기 힘들어지며, 집안의 하인 수도 줄어듭니다. 여가나 과시적 소비에 있어서 부부간 역전 현상이 일어납니다. 아래 계층으로 내려갈 수록 남성 가장은 여가나 과시적 소비를 누리지 못하게 되지만, 중하류층이라 하더라도 부인은 한가하게 살면서 좋은 걸 사 쓰는 걸 보게 됩니다. 형편이 어려워 부인이 한가하게 생활할 여건이 안된다 하더라도, 명품 하나는 꼭 사서 쓰려 하고, 특히 아끼는 사치품은 여간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처분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발견됩니다. (모파상의 '목걸이'인가 하는 단편소설이 떠오르네요. 나는 대충하고 다녀도 아내는 비싼 브런치도 먹고... 어디 가서 꿀리지 않도록 명품백이라도 들려야 한다는 남성들이 특이한 건 아니군요 ㅋㅋ)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성은 남성의 소유 재산으로서 남성을 대리하여 소비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일을 안하고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최상층 유한계급의 특권입니다. 중하층의 과시적 소비는 그저 최상층 유한계급의 그것을 따라하는 모방적 행위에 불과합니다. 유한계급의 생활방식은 그 아래 계층의 전범이 되며, 현대사회의 경우 계급간의 경계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유한계급의 소비행태나 라이프스타일은 오히려 하류 계층으로 더욱 쉽게 침투합니다. (너도 나도 스타 따라하기에 바쁘지요)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 있어서 높은 평판을 얻으려면 돈이 많아야 하고, 돈이 많다는 걸 자랑질하려면 일을 안하고 살면서 비싼 걸 펑펑 사제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못하면 와이프랑 애들이라도 가오를 세워줘야 하며, 정 안되면 와이프만이라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게끔 차려입고 사치스런 걸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어하는 것이 가장이라고 합니다. (흠... 너무 애처가를 상정하신 게 아닌가요?... 아, 와이프를 럭셔리하게 해 주는게 결국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군요!!)


평판을 높이기 위한 과시적 소비나 과시적 여가의 핵심요소는 '낭비'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낭비의 대상일 뿐입니다. 과시적 소비는 재화를, 과시적 여가는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경우엔 과시적 소비가 좋을 수 있고, 다른 경우엔 과시적 여가가 더욱 효율적인 광고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발전단계가 아직 낮아서 대부분 사람들이 시골에 산다면 한 사람이 잘 보여야 할 주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게 되고, 그러한 경우엔 과시적 여가나 과시적 소비 모두 나의 대단함을 알려주는 좋은 홍보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한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타인과 피상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는 현대사회에선 과시적 여가보다는 과시적 소비가 더욱 좋은 과시수단이 됩니다. (그냥 고급차 타고, 명품백 하나 들고 다니면 게임 셋이라는 말씀인가 봅니다.)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현대사회에선 자신과의 비교대상 역시 많아지기 때문에 잘나보이기 위한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이 정도는 되어야 돋보이지~' 소리를 들으려면 넘어야 하는 허들 또한 높아집니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쉬다 오려고 가는 캠핑장에서도 고가의 텐트와 장비로 과시적 캠핑(?)을 즐기시는 분들이 은근 많은 걸 보면 우리나라는 정도가 더 심한 듯 합니다.) 아무튼 이에 따라 같은 소득 수준이라 하더라도 시골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씀씀이가 헤프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한편, 현대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또다른 성향인 '제작자의 본능(the instinct of workmanship)'이 기존에 지배하고 있던 과시적 본능과 상충하게 됩니다. 제작자의 본능은 무엇인가 의미있는, 이 세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업적을 남기고자 노력하는 본능을 말합니다. 노예에 의한 강제노동이 없어지고 임노동제로 전환된 이후에는 노동이 비천하다는 기존 고정 관념도 약해지고, 이젠 부자들도 사냥이나 만만한 놈 괴롭히는 걸 넘어 무엇인가 의미있어 보이는 일들을 하려 합니다. 그냥 대놓고 아무일도 안하는 것보다는, 학문이나 예술을 하거나,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단체활동(로타리 클럽이나 라이온스 클럽 같은 게 바로 이거군요) 같은 것을 하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척 하는 걸 요즘 상류층들은 더욱 선호합니다. 부자들의 활동이 이런저런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돈자랑'이라는 핵심은 계속 유지됩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의 필수 요소는 '낭비'라고 규정했는데, 이 '낭비'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며 어떤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기술적 용어임을 알아달라고 저자는 당부합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소비를 할지 가오를 세우기 위한 낭비를 할지를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개인의 경제적 선택입니다. 사실 우리가 실생활에서 '낭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앞서도 언급된 제작자 본능 -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인류 전반의 복지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 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작자 본능의 입장에서 볼 때 경쟁적 소비는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경쟁적 소비가 현대 경제를 떠받치는 유효수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같은 소비를 두고도 이게 낭비적인지 건전한 건지는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오직 제작자본능만이 세계에 도움이 되는 행위와 남보다 잘나 보이기 위한 행위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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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과시적 여가보다는 과시적 소비가 주류가 된다고 하시는데, 요즘은 SNS의 등장으로 과시적 여가 역시 남들에게 자랑질하기 매우 좋아진 것 같습니다. 과시적 여가의 귀환?


베블렌의 과시적 소비 개념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와 대극을 이루는 제작자의 본능 개념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나 알게 되었네요. 생산적 본능과 경쟁의 본능이 상호작용하는 게 인간진보의 원리라고 저자는 생각하는가봅니다. 

독바위경제연구소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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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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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
아누이
IP 112.♡.182.249
12-14 2022-12-14 16:42:26
·
읽으면 읽을수록 탁월하네요 정말 명저입니다.
필자께서 괄호로 넣어주신 현실판 예시도 참 좋구요. ^^
돈많은백수
IP 115.♡.33.193
12-14 2022-12-14 18:36:42
·
뭔가 제가 최근에 명품에 대해 쓴 글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요.
저는 무지랭이라서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을 베블렌은 훨씬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만 빼면요.

제 글: https://yongwookha.github.io/LifeAndTravel/2022-10-23-thoughts-of-lux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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