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데쓰게임물과 달리 게임에 참여하고 주요 조역으로서 캐릭터가 세세히 펼쳐보여져 시청자로부터 어느 정도 공감이나 친근감마저 끌어내는 인물이 주최자로 밝혀진다는 것은 <오징어 게임>의 특장점입니다. 그 인물, 즉 오일남은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단순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이해가 (금방)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재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게임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 그가 구슬 게임에서 지고도 살아남은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얼마 안 남아 있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사가 갈리고 내가 이기면 상대방이 죽는 게임을, 사람들이 떼거지로 죽어나가는 게임을 오일남처럼 즐길 수는 없습니다. 오일남은 첫 번 게임부터 전혀 움츠리지 않고 즐거워 죽겠다는듯이 몸을 움직입니다. 자신의 기지가 큰 역할을 해 줄다리기 게임에서 승리하고 난 다음 누워있는 상태에서 그가 짓는 환희에 넘쳐 있는 표정을 보십시오. 그 승리로 상대편 열 명이 죽은 상황의 끔찍함, 그 승리의 아슬아슬함은 보통사람들한테는 그런 표정을 못 짓게 합니다.
그가 즐긴 것은 문자 그대로의 게임만이 아닙니다. 그는 선한 인간이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가를 건 게임도 즐겼습니다. 그는 선의 미미함을 믿습니다. 그가 자신의 그 믿음이 약간이나마 깨질 가능성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을 리는 없습니다. 그 기대 없이는 그 게임이 그리 즐거운 것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실 그는 이미 성기훈이 어느 정도 선한 인물임을 경험했습니다. 약한, 악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타자를 위해서 얼마나 자신이 위험해지는 것을/불리해지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느냐 면에서 성기훈은 꽤 선한 편인 인물입니다. 그가 오일남이 가장한 치매를 이용한 것은 악하기보다는 약한 것입니다. 그것은 기만적인 방식의 이기적인 행동이었지만 조상우의 적극적인 기만적 행동보다는 훨씬 덜 이기적입니다. 게다가 지영은 새벽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희생시키는 선함을 보여주였습니다. 지영의 그 선택은 상당히 논리적입니다. 둘 중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면 누가 죽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가를 따져서 해당되는 이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다라는 본능적 자기중심주의를 초월해 나를 완전히 이성의 판단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종교들에서 처음으로 장엄하게 확인된 극렬한 이타주의가 보통 사람들에게도 보인다는 사실의 드라마틱한 과시입니다.
오일남이 지영의 그런 자기 희생을 보고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기희생이 아주 드물게나마 보통 사람들한테서도 보인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삭막한 자본주의적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들을 경험했던지 간에 오일남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지영 정도는 아니더라도 분명 선한 인물들을 접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오일남은 향수에 젖을 정도로 유년기를 제법 즐겁고 따뜻하게 보낸 걸로 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일남이 잔인함의 극한을 달리는 데쓰게임의 주최자라는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일남의, 배려라기보다는 얼마나 복귀할지에 대한 호기심 덕분으로 게임을 벗어난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게임에 복귀했지만 그 복귀는 빚지고 지옥같은 삶을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일회차 게임 참가 전에 게임 탈락의 대가가 죽음이라는 것을 주의받았다면 과연 몇 명이나 게임에 참가했을까요?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것 뿐입니다. 오일남 자신은 그 빚들을 지고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게임 참가자들의 판단이 아니고 그리 판단하는 것과 그 판단에 따라 대랑살인이 귀결되는 기획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것은 전혀 별개입니다.
오일남은 이미 돈이 충분하기에 돈을 더 벌기 위해서 그 게임을 주최한 것이 아닙니다. VIP들은 그 게임을 운영하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드니 끌어들인 것 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대량살상을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처럼 어떤 숭고한 이념을 위해서 그 게임을 주최한 것도 아닙니다. 오일남은 그저 재미를 위해서, 선의 미미함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만의 하나 깨질 가능성을 기대하고서, 그러나 그 믿음이 깨질 리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게임 주최자가 된 것입니다. 그 게임이 극단적인 데쓰게임인 것은 그래야 더 재미있기 때문에, 그래야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관찰하는 재미가, 정확히는 자신의 믿음이 확증되는 재미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일남은 순전한 악의 현신입니다. 그 순전한 악은 사회에 구조적으로 자리잡은 불평등, 재기불가능, 승자독식주의의 악을 능가하는 것이므로 결코 후자들을 리얼리즘적으로 유비하는 것이 못 됩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시청자들은 오일남이 어쩌다 그런 인간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일남이 극소수나마 문자 그대로 선한 인간들조차도 가차없이 죽음으로 내모는 게임을 그저 재미를 위해 구상하고 실행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맥락은 드라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다 죽어' 하는 그의 외침은 연극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선의 미미함은 믿어도 선을 알아보는, 선에 관심이 있는 인물이므로, 제법 행복했던 유년기를 보낸 인물이므로, 그가 복수심 따위의 개인적 감정과 돈 욕심과 어떤 숭고한 이념 - 이 모든 것들과 아무 관계없는, 순전히 재미만을 위한 대량살인 게임의 주최자라는 사실은 이해되기 힘듭니다.
재미를 위해 대량살인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오일남의 악함은 세계가 선해질 희망이 없기 때문에 소수의 선한 인간들의 존재 의미도 없다는,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의 의미가 없다는 냉소적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 믿음은 선이 아예 없다는 믿음이 아니라 너무도 미미하게만 있어서 세계는 계속 패배하고 실패한 이들의 지옥으로, 악이 선을 압도하는 지옥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오일남은 자신이 창조한 그 데쓰게임의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더 지옥같지는 않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게임에서 성기훈이 이겼다는 것은 그에게 또는 드라마상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동사할 처지에 놓여 있는 노숙자를 외면하지 않는 정도의 지극히 간단한 선함보다 더 큰 선함을 이미 기훈과 지영이 드러냈는데도 오일남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드라마가 괜히 오일남이 자신이 그 마지막 게임에서 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죽게 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오일남의 이런 믿음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전체로서의 세계는 지옥도 같다고 해도 그 지옥도의 여백을 찾으려 애쓰는, 또는 그 지옥도에 여백을 만드려고 애쓰는 소수의 인간들은 늘 있고 그들의 그런 노력은 세계가 계속 지옥도로 남아 있게 되어도 의미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다시 말하지만 오일남이 어쩌다 이런 잘못된 믿음을 가진 인물이 되었는지를 드라마는 전혀 보여주지 않으며 그의 보여진 모습 일부는 그의 그 믿음과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구슬치기 생존은 우연이 아니죠 ㅎㅎ
줄다리기가 비교적 우연에 가까운데
구슬치기를 보면 줄다리기를 졌을 경우엔 본인 생존을 위한 장치가 있을 확률이 더 높겠죠..
오일남은 줄다리기 게임에서 이미 확실히 목숨을 걸었습니다. 참가자들이 서로 죽여댔던 그 밤에도 확실히 목숨을 걸었습니다. 다른 게임들이라고 자신만은 탈락해도 목숨을 잃지 않는 꼼수를 부릴 인물이 아닙니다. 오일남은 재미를 위해 타인들의 목숨들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거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목숨도 걸지 않으면 재미를 못 느낄 인물입니다. 어차피 뇌종양으로 1,2년 내에 죽을 운명이기도 하구요. 구슬 게임에서 안 죽은 것은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이긴 게임이었고 성기훈에게 흥미가 생겼는데 마침 성기훈이 그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지 구슬 게임에 이르기까지 어떤 게임에서도 탈락해도 죽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처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 설탕뽑기는 룰을 사전에 알면 통과가 쉬운 게임입니다.
중간에 솎아내기 = 광란의 밤에는 오일남의 외침으로 살륙이 멈춥니다.
줄다리기는 처음 의도적으로 오일남이 아무 팀에도 속하지 못하게 하려고
치매 = 요실금 까지 연출해서 깍두기로 남으려고 했는데 주인공 때문에 팀에 소속하게 되고요.
오일남이 모든 게임에 자기 목숨을 걸고 했다는건 칼도님의 과대해석이라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90% 이상 생존 확률이 있는 상황에서 게임을 즐긴거지요.
일반 서민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됩니다.
유리판 2장 사이에 흙을 넣어 개미집 키우는 키트나
어항에 구피 같은 걸 키우는 사람의 마인드라고 생각하면
오일남의 행동은 전혀 이해 못할 일은 아니죠.
한 차원 더 높은 위치에서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들이 자기가 정한 규칙 속에서 그야말로 모든 걸 걸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것을 관찰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에게 이미 내재되어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이 잠자리나 사마귀 두 마리를 잡아 서로 가까이 대고 머리, 몸통, 날개가 다 떨어질 때 까지 싸우는 걸 지켜보면서 느끼는 짜릿한 기분은
권투나 종합격투기, 축구, 소싸움 등등을 관전하면서 느끼는 쾌감, 남의 집 불구경 하는 재미에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저 유니폼 입은 인간들이 나의 대리만족을 위해 저러고 있고 나는 그들과는 구별된 존재라는 확신이 있다면 게임을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일남이 게임을 조직하고 관전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안에 직접 들어가서 즐기기까지 하는 건 컴퓨터게임을 모니터로 하다가 촉각 장갑과 VR고글을 끼고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욕구와 똑같은 거고요.
본인이 게임중에 죽게 된다면 기꺼이 죽겠다. 혼자 침대에서 죽는 것보다 훨씬 익사이팅하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마약중독자가 스스로 치사량까지 약을 복용하고, 성적쾌락을 위해 스스로 실신상태까지 목을 조르다 목숨을 잃고, 사고사 확률이 무척 높은 익스트림스포츠를 중독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숫자적으로 많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이 사회에 항상 존재하는 인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이에는 포털사이트 오토바이 라이더 카페 한번 가보세요. RIsk를 즐기지 않는 일반인들과는 아예 사고방식이 다른, 스스로 목숨 내놓고 살고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오일남을 "그런 인간"이라고 지칭하고 계신데, "그런 나쁜 인간"이라는 가치판단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인간 본성에 그런 성향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것 같고요.
전체적으로 오징어게임을 볼 때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는 설명이 잘 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성선설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해가 더 힘들 거고요.
욕망실현(호기심 포함)을 위해 남이건 자기자신이건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람도 또 다른 순간에는 멀쩡하고 이타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꼭 공감 불능의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도,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을 글썽이는 감수성이 있는 사람도 한편으로 그날 밤에는 한쪽이 불구 수준이 될 때 까지 싸우는 불법격투기에 열광할 수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이 큰 히트를 친 이유 중 하나는 오일남같은 캐릭터를 "타도해야 할 악인"이 아니라 as-is의 스탠스로 보여 줬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윗 댓글들의 논의를 모두 포함하여 종합해 보더라도 전반적으로 수긍이 가는 좋은 견해라 생각합니다.
다만 @GOMGOM님 말씀처럼 인간이 가진 다중적 속성을 생각해본다면, 오일남이 중간중간 보여주는 악인으로서는 의외의 모순적 모습들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런 모습들은 극중 반전을 위한 장치들이었으니 더더욱 필요한 묘사였구요.
본문과 댓글들을 읽어본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일남이 일관성을 잃은 실패한 캐릭터라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반전 이후 악인으로서의 잔혹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었어야 할 필요성도 없었거니와, '곱씹어보면 치가 떨릴 정도의 악인이었다'라는 결론까지 이르게될지 말지는 그저 시청자 개개인들 감상에 맡기면 될 뿐이니까요.
이 글을 읽기 전 '오일남'에 대한 저의 감상은 '천진무구한 악의 순수함을 잘 표현했다.'는 정도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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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물론 어떤 시청자 개개인들은 그 결론까지 이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저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맞다고, 곱씹어 보지 않아도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제 글은 그 결론에 관한 한, 전혀 곱씹지 않았고 그런 결론을 가리키는 너무나도 명백한 근거들을 나열한 것 뿐입니다. 상당수가 그저 루저/희생자일 뿐이고 일부는 선량하거나 곱기조차 한 게임 참가자들을 그렇게 죽도록 몰아가는 것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극악한 짓거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일남은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일남이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오일남이 천진무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만한 머리가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노인 나이가 될 때까지의, 자기보존과 성공을 위해, 루저보다는 승자가 되기 위해 머리를 쓰고 몸부림쳐온 동안 선과 악의 명백한 구분을 볼 수 있는 '천진무구한' 눈을 잃었기 때문입니다(언제나 선과 악이 명백하게 구분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저는 하지 않습니다. 명백하게 구분되는 경우들도 있고, 드라마는 그 경우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즉 오일남은 타락을 했습니다. 근본적인 것을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픽션은 현실적으로 개연적인 것을 어느 정도 과장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 타락이, 수천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게임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악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니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고 설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설정에 그치는 데쓰게임물 많습니다. 그것들은 그냥 전형적인 장르물입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몰입해서 보라는 오락물입니다. 그러나 설정에 그치지 않으면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의/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의 설득력 있는 형상화가 필요합니다.
오일남에만 초점을 맞춰 썼지만 <오징어 게임>에는 그 외에도 개연성이 부족한 지점들이 있습니다. 써두었던 글을 복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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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최근에 올라온 국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호평하는 한국인들이 아주 많지는 않아도 적지도 않은 것 같고 해외에서 꽤 인기있는 것 같은데,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나 없습니다. 조직측에서 총든 진행요원들과 감시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데 게임을 플레이할 때 꼼수를 부린다던가, 그 조직의 무자비함을 경험했음에도 다른 게임 플레이어를 죽을 정도로 팬다던가 (그러는 것을 오히려 환영하는 조직이지만 플레이어들이 그걸 미리 알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 플레이어들을 모아 데려가는 과정에서 조직의 보안조치가 허술하다든가 그 정도 조직에서 하급 조직원 몇 명이 플레이어 한명과 작당해 탈락자들의 시신들에서 장기를 빼돌리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라든가 세모 마크 하급 조직원으로 위장한 형사가 어떻게 네모 마크 중간급 조직원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할 수 있느냐라든가 (중간급 조직원이 한 명, 그것도 조직 자신의 처분에 의해 줄어 들었고 보충된 것도 아닌데, 그 지위 조직원수가 여전하고 그 아래급 조직원수는 한 명 줄었다면, 어떻게 그 정도 조직의 인사 및 보안 부서가 그걸 모를 수 있을까?) 등등.. 그래도 재미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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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경우를 순수한, 심지어 천진무구한 악이라 표현하는거죠. 제가 오일남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악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살면서 이러한 캐릭터를 경험할 일이 없는 다수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현실에 이러한 캐릭터(죄책감 없고, 지능이 높으며, 대 부호인, 스케일이 큰 계획 범죄자)가 있을 개연성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일남이 일관성을 잃은 실패한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덧붙여주신 다른 말씀들을 보면 분명 설정 상 허술함이 있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만, 극의 특성 상 전제부터 비현실적 설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양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