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전 도덕이라는 것은 동시 존재의 균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나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나는 도쿄에도 있고, 동시에 튀니스에도 있다. 야단치는 것도 저고, 용서하는 것도 접니다. 이를테면 그런 겁니다. 그런 균형이 있는 거죠. 그런 균형 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마블영화는 멀티버스를 도입했어요. 멀티버스는, 간단히 말하면, 평행세계 이론인거죠. 그러니까 여기와 같은 우주가 무한히 많고, 또 다른 지구가 있고, 또 다른 내가 있고 뭐 그런거죠. 그런고로 최근 스파이더맨에선 토비 매과이어 (샘스파), 앤드류 가필드 (어스파), 톰 홀랜드 (톰스파)의 3명의 스파이더맨이 동시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흠, 그런데 하루키가 말한 동시 존재가 마블의 멀티버스처럼 또 다른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닐겁니다.
그럼 뭘까요? 정답은 없겠죠.
전 두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내 안의 여러가지 나.
노래 '가시나무 새'에는 이런 가사가 있죠.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대학교를 갓 입학했을 때, 90년대 말 무렵에, 불쌍한 북한 사람을 돕자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꽃제비. 북한이 자원이 부족해 땔감으로 이용하느라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고, 그로인해 잦은 수재가 일어나 식량 생산이 원할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오백원을 기부하면 한 아이가 일주일을 더 살아갈 수 있고, 오천원을 기부하면 한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거에요.
제가 그 당시 과외를 두개를 하고 있어서, 친구들에 비해 여유가 있었던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당구장을 가면, 아, 당구장은 여유있는 사람이 내는게 아니지 물린 사람이 내는거지, 하여간, 당구장에 가서 당구 한게임을 치면 돈만원, 노래방에 가도 돈만원, 맥주한잔 하면 한 오만원?, 스키장에 가면 얼추 10만원? 정도를 쓰게 되던데요. 아니 5000원이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릴수도 있다는 소리를 듣고나니 뭘 할때마다 이로인해 살리지 못한 북한 아이들의 생명이 몇명인지가 자꾸 계산이 됩디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길티 마케팅이란 용어를. 별로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더군요. 뭐 왜 바람직하지 않은지는 차치하고.
제 안에도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제가 있었고, 노래방에 가서 놀고 싶고 즐기고 싶은 제가 있었겠죠. 그리고 그들은 모두 동시에 존재합니다. 제 안에서요.
제 안의 너무도 많은 나를, 어떻게 잘 조화시킬 것인지의 문제로 나름의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뭐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란 이는 완벽하지 못하고, 이기적이며, 세속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그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아닌줄 착각함)
간혹 세상에는 자신은 버리고 남을 위해 진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도 인간이기에 완벽할리 없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과는 뭔가는 다른 그런 사람들요.
체 게바라도 분명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일 겁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운동도 잘했고, 의대를 나왔고, 말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게다가 잘생겼어. 그런 사람이 20대에 친구와 남아메리카를 오토바이 한대로 여행을 하고서, 남아메리카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부조리하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를 직접 보고 느끼면서 그 세상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체 게바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어머니를 가슴아프게 하며,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와 딸도 버리다시피 하고 떠납니다. 본인이 옳다고 믿는바를 이루기 위해.
피델 카스트로를 포함한 82명이 독재자에게 탄압받고 있던 쿠바에 잠입합니다. 그리고 이 82명으로 시작한 게릴라는 2년만에 독재자를 쫓아내고 국가를 전복시킵니다.
그리고 쿠바의 대사직을 맡게 되고, 이후 산업부 장관과, 쿠바 국립은행 총재를 맡아 이집트, 인도, 유고슬라비아, 인도네시아의 국가 정상들과 회담을 하고, 심지어 중국의 마오쩌둥과 북한의 김일성도 만납니다.
하지만 아직 쿠바만 혁명에 성공했을 뿐, 남아메리카 대륙과, 이를 넘어 전세계에는 탄압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또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혁명 게릴라를 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남아메리카로 떠납니다. 그리고 39세의 나이로 불꽃같은 생을 마감합니다.
체 게바라도 분명 그의 안에 그가 많이 있었겠죠. 사람인데 없었을리가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쓰여진 그의 행적을 보면,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했는지를 보면,
그래서 그의 안의 있었을 수 많은 그를 어떻게 다스렸을지를 보면,
한편으론 경외감이 들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복잡미묘한 감정이 듭니다.
두번째는 다른사람이 보는 나.
이창동 감독은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 버닝에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어떤 이에게는 미국을 구원한 구원자로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이에게는 세계를 멸망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극한의 이기적인 인간으로 보이기도 하죠. (파리 기후 협약 탈퇴라니!)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일까요? 어떤 하나가 명백한 진실이고 하나는 명백한 거짓일까요? 아니면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둘다 어느정도의 진실과 거짓을 포함하고 있는 걸까요?
또 김영하 작가가 본인의 MBTI를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면서 이렇게 설명 하더군요.
"MBTI는 내가 생각하는 나일 뿐이다. 내가 질문 문항에 대답을 하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사람이 보는 내가 꼭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 본인을 굉장히 꼼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이 볼때 '쟤는 왜 이렇게 덤벙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체 게바라는 현재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요.
제가 체 게바라 평전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건 그의 한 장의 이미지 컷 때문이었습니다. 보면 아시는 그 유명한 이미지와 '체 게바라'라는 이름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알고 있더라고요. 꽤 여기저기에 그의 이미지가 많이 보였습니다. 그 이미지는 제게 힙하고 쿨한 느낌이었고, 뭔가 저항정신의 상징 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정작 뭐하는 사람인지, 언제적 사람인지, 살아는 있는지 죽었는지, 어느나라 사람인지 (남미 같긴 한데)도 몰랐습니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와 싸우기 위해 목숨까지 버린 체 게바라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머그컵과 티셔츠에 새겨진 하나의 이미지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누군지도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상품으로
이러한 현실은 희극일까요? 비극일까요?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된 후
더 알아보고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또 그를 여러 방면으로 비판하는 글도 많더군요.
잔인한 새디스트라는 사람도 있고,
의사로서 똑똑하지 않아 혁명을 빙자하여 도피했다는 의견도 있고.
장관이자 은행총재로서 엉망이어서 쿠바 경제가 파탄났단 의견도 있고,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일까요?
그렇게 여러가지의 체 게바라는 '동시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 어떤 체 게바라를 마음에 아로새길지는 각자의 선택이겠죠.
그것이 각자의 진실이고요.
이책을 읽은지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그런데 그렇게 억지로 불편한 마음으로 모양이만이라도 따라하지 않으면 우리는 저급하고 천박한 물결로 생각없이 떠내려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갈등을 겪으면서도 일단 높은 곳을 바라보며 밀리면 밀리는 대로 조금씩 이상을 향해 서로 힘을 보태는 게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동시존재라는 말과 통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평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저의 의견을 좀 남겨보자면,
체의 건강, 페루 등 남미를 여행한 궤적이 영향을 끼친것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체의 상징을 이용하는 타자와 체를 일치해 보는 건 경계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만 하는 사람(저같은^^;)이 아니라 행동하는 멋진 인물이기에 추모합니다.
그 인생자체가 여러가지 느낌을 주니까요.
곱씹어 읽고 있어요
Chess님 같은 깊은 통찰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통찰력에 감탄하며x2 부러워하며x3 글 잘 읽었습니다.
동시존재의 균형이라니... ㄷㄷㄷ
당구장과 노래방과 꽃제비라니...
폭넓은 시선에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 도서관 가서 체게바라 평전 찾아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