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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은 겉으로는 범죄 심리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랑의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랑은 진심이기에 순수하고 그래서 이상합니다. 이 영화는 상대와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어지면 안되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멈출 수 없는 비극의 정서가 담겨있습니다. 이 작품의 각본은 박찬욱 감독과 늘 협업해왔던 정서경 작가가 감독과 함께 공동 집필한 것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복수는 나의 것을 찍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추천책으로 도스토옙스키의 후기 장편을 얘기한 적도 있죠.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일상적으로 보기 힘든 환상적인 인물 설정, 그럼에도 느껴지는 깊은 핍진성, 눈사태처럼 극이 진행할수록 커져가는 몰입감, 작중 인물들의 극단적인 행동과 심리, 현실에서 잘 쓰이지 않는 문어체 대사의 사용 등 헤어질 결심은 도스토옙스키 후기 장편의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그래서인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과도 유사한 점을 보이는데요, 두 작품 모두 구조적으로 범죄 심리 장르의 공식을 따르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진짜 이야기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사랑에 관련된 내용이란 점에서 비슷합니다. 물론 죄와벌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고 주인공을 이끌어가는 동기도 박찬욱의 작품과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극 중 주인공인 해준은 부산 최연소 경감으로 유능한 경찰입니다. 그는 영화에서 클리셰처럼 나오는 부패하고 타성에 젖은 경찰이 아닙니다. 후배조차 기가 질릴 정도로 FM대로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이죠. 그는 산처럼 단단하게 자리와 원칙을 지키는 것에 대해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품위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강박적으로 청결에 집착하며 집안의 물건들과 업무를 보는 곳은 한치의 흐트럼도 없이 질서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태산 같은 남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삶에 균열을 가져오는 여자가 찾아옵니다.

송서래는 해준과 가장 먼 극단에 있는 사람입니다.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반창고가 얹힌 상처에 향수를 뿌리고, 테이블에 아이스크림이 녹은 채로 냅두고, 제대로 씻지도 않고 티비를 보다 쇼파에 앉아서 잡니다. 엘리트 경찰 출신인 해준과 달리 서래는 태생부터 불법 밀입국자 출신이고, 이제는 남편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해준은 그 사건을 수사합니다. 서래는 바다에서 왔으며, 밀입국하다 바다에서 죽을 뻔 했고, 종종 카메라 앵글은 바다 모양의 벽지를 배경으로 하는 서래를 비춥니다. 하지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와 물의 대한 이미지와 서래는 거리가 있습니다. 차라리 서래와 연결되는 바다의 이미지는 그러한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깊은 심연과 해저의 어둠에 가깝습니다. 서래는 깊은 바다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초반 영화는 의도적으로 서래에 대해 관객이 거리감을 느끼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누가봐도 서래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담당 형사를 유혹하고 수사를 무마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굳이 여성 형사도 마다하고 신체의 상처를 해준이 직접 찍게 하고, 화장실에서 향수를 뿌리고 취조실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는 모호한 말로 해준을 뒤흔듭니다. 그 모든 것이 의도가 적나라하게 보여 서래는 해준을 단지 이용하고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는 혐의를 벗기위해 말이죠. 그녀의 목적은 명확해보입니다.
해준은 현재 부부를 이어줄 자식도 해외로 보내고, 아내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주말부부로 지내는 상태입니다. 초반 해준과 아내와의 섹스 장면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어떠한 애정도 없이 단지 부부의 의무로 섹스를 하는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섹스할 때도 정안(아내)이 해준을 통제하려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죠. 해준과 아내가 일상에서 주고 받는 대화는 공허하고 쓸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한 고독과 외로움 때문에 해준이 서래의 작업에 그렇게 쉽게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해준이 아내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주는 장면과 서래에게 취조 중에 스시를 사주는 것은 의도적으로 대비됩니다. 스시를 먹고 싶어하는 아내에게 해준은 김치찌개를 끓여주지만,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 서래에게는 자진해서 비싼 스시를 사주죠. 마치 쉬이 떠난 마음과 깊게 빠진 마음처럼. 그렇게 서래의 의도대로 해준은 서래에게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수사를 덮고 무마하려고 합니다. 서래의 집 테이블에서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처럼 해준이 지키던 질서와 도덕은 그렇게 녹아버립니다. 영화에서 보면 아침 저녁으로 면도를 할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한 해준이 서래를 만나고서부터 헝클어진 머리, 하얗게 질린 입술, 온통 땀에 젖어 엉망이 된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태산 같던 해준이, 깊은 심연의 서래를 만나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해준과 서래는 섹스를 한 사이는 아니지만 명백한 불륜입니다. 화양연화에서 두 주인공은 서로 몸을 섞기는커녕 스킨쉽 한번 제대로, 키스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육체적으로는 결백한 사이입니다. 하지만 그 둘은 사랑했기 때문에 불륜 관계입니다. 하지만 해준은 서래에 아름다움과 성적인 매력에 끌렸음에도 어떠한 스킨쉽이나 성적인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작중에서 나오는 데이트는 단 한번이며 해준이 서래에게 하는 것은 취조를 빙자해서 집에 가서 요리를 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해준이 서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상징하는 장면이 몇 개가 나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해준이 서래에게 요리를 해주는 장면입니다. 해준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관리를 하고 주변을 정돈하고 청소하는 성격입니다. 상사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떠나자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물티슈로 책상을 닦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런 사람이, 집안 부엌에서 서래가 담배를 피고 있음에도 오히려 흥얼거리면서 옆에서 즐겁게 요리를 합니다. 해준이 서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해준은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한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관계의 진전을 위해 노력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집에서 서래를 위해서 요리를 해줄 뿐입니다. 허나 이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피의자와 이런 관계,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은 해준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해준은 서래의 대한 마음을 접지도, 그렇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서래를 택하지도 못한채 애매함으로 자신을 덮습니다. 자신을 존경하는 후배는 해준을 질타하며 서래의 대한 마음 때문에 수사에서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해준을 비난합니다. 결국 이러한 부적절한 관계를 끝내는 것은, 해준을 지탱해 왔던 원칙과 형사로서의 의무입니다. 우연으로 시작된 단서를 해준은 집요하게 붙잡아 서래가 남편을 직접 죽였음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서래의 집에 찾아가 모든 사건의 진실을 말합니다. 해준은 서래에게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여자에 미쳐서 내가 수사를 망쳤다고, 나를 이제까지 지켜주던 원칙, 양심과 도덕, 의무를 모두 버렸다고, 그렇게 난 붕괴했다고. 해준은 그렇게 서래와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사실 둘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해준이 서래에게 자신이 붕괴했다고 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해준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그 절망은 단순히 자신이 형사로서의 양심과 의무를 저버린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해준을 더 슬프고 절망하게 한 것은 자신의 대한 서래의 마음이 거짓이고 가짜였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래는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해준에게 거짓 마음을 팔았고, 해준의 마음을 이용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하기만 했다는 것, 서래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단지 연기에 불과했던 것 그것이 해준을 그렇게 절망하게 했을 것입니다. 서래는 해준이 계속 추궁하자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라고 항변하지만, 상처받은 해준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난 완전히 붕괴됐어요.”라고 해준은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꼴을 당했음에도, 해준은 서래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래와 완전히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서래에게 말합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해준은 서래가 범인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아무도 찾지 못하게 바다에 버리라고 하고 서래와 헤어집니다. 그리고 해준은 아내가 있는 이포로 내려갑니다. 원래 보통의 영화라면, 여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고 청자는 아직 이야기의 반밖에 오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은 감독이 의도한 것인데 원래는 1부,2부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2부는 이포에서 시작됩니다.

서래가 해준을 사랑하기 시작했던 시점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무척 모호합니다. 보는 관객에 따라 전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래가 해준이 사건 용의자를 잡는 것을 직접 목격했을 때의 인상이 트리거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해준과 용의자와의 추격씬은 무척 현실적입니다. 마치 육상선수처럼 지치지 않고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겨워하고 결국 둘이 지쳐 나가떨어져 추격이 끝나게 되죠. 하지만 그렇게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도 해준은 범죄자를 제압할 때 꼿꼿한 자세를 유지합니다. 그는 어떤 비틀거림도 없이 철로 된 장갑을 끼고 범죄자의 칼을 잡고, 한쪽 손으로는 용의자를 가격합니다. 용의자가 고통에 무너질 때까지. 그렇게 용의자가 항복하고 순수히 수갑을 받자 그제야 해준은 지쳐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그 광경을 서래는 몰래 보고 있습니다. 서래는 그때 알았을 것입니다. 이 남자는 가장 힘들고 지칠 때도, 꼿꼿함과 자세를 유지하는 남자라고, 끝까지 품위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런 남자가 자신이 범죄자인 것을 알면서도 증거를 인멸하라고 한 것입니다.
작중 1부에서 강조되는 말이 있습니다. ‘마침내’라는 말입니다. 그 마침내라는 말은 서래의 강인한 의지를 연상시킵니다.. 서래는 거칠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살기 위해 어떠한 마침표도 찍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불법 밀입국을 하다 바다에 표류되어 죽을뻔한 서래는 그러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자 남편을 죽입니다.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결혼했지만, 가정 폭력과 구타를 견디지 못해 남편을 죽인 것이죠. 보통 사람이라면 경찰에 신고해도 몇 번씩이나 그냥 사정만 듣고 돌아가는 것을 보며 포기할 법 하지만, 서래는 치밀하게 계획하여 완전 범죄로 남편을 죽이고 마침내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러한 바위 같은 의지력과 행동력, 그런 점에서 서래와 해준은 닮았습니다.
처음에 서래에게 해준은 단지 용의자 신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기말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해준이 ‘마침내’ 서래가 범인이라는 완벽한 증거를 추적하고 잡아내 자신 앞에 왔을 때 가슴이 철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해준은 가짜 애정으로 자신을 속인 서래를 증오하고 분노하기보다, 슬픔에 잠겨 헤어질 결심을 하고 단지 이렇게 말합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서래가 해준을 진정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서래는 아마 그 때 깨달았을 것입니다. 무죄를 위해 명백히 자신이 해준을 이용했음에도, 해준의 답은 끝까지 서래를 지켜주는 것이였다는 것을. 그래서 해준은 이포으로 이사를 가고 어떠한 연락도 없이 서래 삶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서래의 ‘헤어질 결심’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대답은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래와는 완전 다른 사람 임호신과의 결혼입니다. 작중에서 서래는 해준과 재회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해준씨는 결코 나와 결혼하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이것은 서래가 자기 자신에게도 하는 말입니다. 서래는 해준과 결혼할 수 있다고해도 결코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혼은커녕, 몰래 만나는 것도, 밀회도, 어떠한 연락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포에서 다시 해준을 만나기전까진 그래왔습니다. 해준을 위해서 말이죠. 서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준과 어떠한 미래를 꿈꾸며 그리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해준의 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을요. 만약 서래와 해준이 이어진다면 그 결과로 해준은 가정과 사회적, 그리고 경찰로서 쌓아온 모든 명예와 경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서래가 바라지 않습니다. 형사로서의 지키던 공정과 상식, 그리고 품위는 해준을 지탱해왔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래서 서래는 완전히 해준을 잊기로 결심하고, 해준과 딴판인 남자와 결혼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다시 서래는 해준 앞에 나타납니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2부에서 서래의 모습은, 마치 1부에서 해준의 모습을 그대로 비춘 거울과도 같습니다. 1부에서 해준이 서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았던 형사로서의 양심을 버렸듯이, 서래는 해준을 지키기위해 어떠한 짓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버립니다. 그녀는 용의자인 자신과 놀아난 해준을 지키기 위해 그 비밀을 폭로하려는 현남편을 죽입니다. 1부에서 현남편을 죽인것처럼, 마침내 자신까지도 죽이고 맙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해준 삶에 있어서 약점이자 해준의 일상을 앗아갈 시한 폭탄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서래는 해준에게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고,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극중에서 보면 서래가 자신의 진심을 말할 때는 서툰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로 말합니다. 그것은 딱딱한 말투로 핸드폰을 통해 번역되는데, 서래가 해준의 대한 마음을 표현할 때 번역기의 목소리는 여성으로 바뀝니다. 자신의 근원이나 마찬가지인 할아버지가 묻어있는 눈 내리는 산속에서 서래는 해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ㅡ날 떠나고 한 순간도 날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죠? 마치 죽은 것만 같았죠? 그리고 날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마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만 같았죠?
해준은 그 말을 듣고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침묵은 긍정입니다. 해준은 서래를 위해서 헤어질 결심으로 아내가 있는 이포에 왔습니다. 점점 상태가 좋아지는 아내와 달리 해준은 하루하루 시들어갑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해준 앞에서 서래가 해준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ㅡ당신이 날 사랑한다고 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내 사랑은 시작되었어요.

요즘 드라마를 보든 영화를 보든 사랑이란 말은 늘 범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인색하리만큼 멜로 영화지만 사랑이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해준은 서래에게 단 한번도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래는 알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날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그래서 자신의 전부였던 형사의 품위와 양심을 버리고 내 비밀을 묻었다는 것을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해준이 이렇게 서래에게 말한 순간, 이것은 서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부에서 서래는 해준을 지키기 위해 바다에 버린 핸드폰을 가져온 해준에게 마치 거울처럼 이 말을 되돌려줍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그리고 해준이 버리라고 했던, 자신이 남편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증명할 핸드폰을 다시 해준에게 되돌려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으로 재수사해요. 다시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ㅡ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가능한 말이다. 바로 그 이유는 우리가 사랑 받기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무 요구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그의 현존 이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사랑을)바라기 때문이다.ㅡ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는 책에서 왜 사람과 사람이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지 담담하게 써내려갑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기보다 먼저 사랑을 받기를 원하고, 어떠한 보상도 없다면 상대의 대한 사랑을 지속할 힘을 금세 잃어버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에서의 사랑은 무척 이상합니다. 두 주인공은 서로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상대에게 사랑을 받을 결심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해준은 자신 인생 전부나 마찬가지인 형사로서의 긍지를 버리면서도 서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래 인생에서 사라집니다. 서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래는 희생을 넘어서 자신까지 희생시키면서 해준을 지킵니다. 그녀는 사랑 받을 결심을 완전히 포기합니다. 그렇기에 해준이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는 것도 그녀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서래의 사랑을 완성시킵니다. 해준이 그러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서래는 어떠한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마침표를 찍는 사람이고 마침내 끝을 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서래는 사랑할 결심을 먹었기에 완전히 헤어질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물들간에 극단적인 행동은 우리가 실제로 겪는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상과 영화간의 간극에도, 두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 사랑은 이질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입니다. 이 영화는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을 두고 현실의 감정과 욕망을 풀어내는 박찬욱 감독의 능력이 출중히 발휘된 극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이 그동안 전작에서 보여왔던 지나친 선정성과 폭력성의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15세 이용가 영화로서도 본인의 개성을 잃지 않은채 자신의 영화를 온전히 만들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박찬욱 영화의 특유의 소품과 배치 그리고 영상미, 음악은 보는 분들에 따라 주관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딱히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매우 훌륭했습니다. 또한 주연 배우들 포함 배우들의 연기에 구멍 하나 없어 영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박해일 배우 연기가 정말 놀랍더군요.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였지만 정말 이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해일 배우에게 정말 인생 영화가 아닌가합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선뜻 추천할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면 쉽게 대답을 못할 것 같습니다. 영화적, 오락적 재미를 생각한다면 탑건2를 추천해주는게 좋은 대답이겠죠.
15세 이용가로 야심차게? 개봉했지만 흥행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이 대중적인 정서의 영화는 아닙니다.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영화 또한 단점이 있고, 실제로 런닝타임 시간 동안 완급조절의 실패한 장면이나 씬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려운 영화는 아닙니다만 극 중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들이 널뛰기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그러한 감정과 정서에 따라가기 힘들어서 보는 도중에 좀 피로하다고 느낄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 중간 넘어서 몇몇 분들이 극장을 나가시더군요; 하지만 조금만 내려놓고 두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감정을 따라간다면 어렵지 않게 몰입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박찬욱 감독 작품 중에 이 작품이 최고였습니다. 이제 헤어질 결심이 극장에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실분들은 누구와 같이 보기보다는 혼자 사람 없는 시간에 조용히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는 멜로란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시간을 보내는 용도 외에는 따로 본적이 없는데 헤어질 결심은 혼자 조용히 2회차를 볼 예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포로 내려간 것인데 오타인 듯 합니다. 이과라서 이런 분석 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어제군요) 마침내 3회차 관람을 하고 왔습니다..
내게 이렇게 인상 깊게 다가와서 여운을 남기는 영화가 있었던가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곡이 흘러나올 때 앞자리에 80은 훌쩍 넘기셨을 할머니께서 홀로 관람을 마치시고 가까스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북받치더군요 ㅠ
지나고 생각해보니 '붕괴'되었다는 중의의 표현이었지만,
저는 박해일 배우의 '붕괴' 라는 말을 들은 순간에는 한가지 생각만 들었었네요.
'당신에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개봉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 극장에서 본 후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부분도 있는데 두뿌님의 리뷰를 읽고 보니 제가 놓쳤던 부분이 꽤 많다는 걸 느끼게 되네요. 집근처에 아직 상영중인 영화관이 있는지 봐야 겠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잘 만든 영화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박찬욱의 다른 작품들처럼 관객에게 고통을 강요하여, 즐기기는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왠지 모를 먹먹함에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게 부러울 정도입니다.
이 글 덕분에 3차로 또 보러 가고 싶어지네요!
근데 계속 부산이라고 하시는 건 아마 이포를 말씀하시려는 거였겠...죠?
끝부분에 주모운이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 옆집 남자가 다 이사갔다고 했는데 곧이어 소려진이 아이와 함께 나가는 장면이 나오죠. 아이는 두 사람의 아이가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해준을 지키기위해 두번째 남편의 피살을 이뤄냈고..
그런걸로 볼 때 어설픈 도구만으로도 목적을 이뤄내는 강한 서래의 의지를 표현한게 아닐까 싶네요.
지금 다시 볼 의향도 있지만 추후 OTT로 나오게 되면 자막도 입혀지고 멈춰가며 돌려보며 볼수 있다면
좀더 많은 느낌을 받을수 있을거 같아 기대중입니다.
가벼운 시간 때우기로 이 영화를 본다면... 힘든 영화임이 분명하거든요
대사와 상황과 흐름을 곰곰히 씹으면.. '탁'하고 모든 것이 이어지며 등장인물의 감정선에 쉽게 올라탈 수 있는데,
올라 타느냐, 못 올라 타느냐는 이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탕웨이도 연기 잘 했지만, 저는 박해일의 연기가 대단했다고 봅니다.
나중에 OTT 올라오면 자막 켜고 다시 볼 생각입니다. 153만 밖에 관객이 안 온게 안타깝습니다
깐느박은 진짜 대중적으로 만들었다며 흥행에 나름 기대한 것 같던데요... 그건 깐느박 눈높이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ㅎㅎㅎ
리뷰 덕분에 장면장면 분절된 현악기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실제 세상은 그만큼 극단적인 상황은 잘 없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사랑은 희생을 동반한다는 상식에 근거하여 굉장히 공감을 했습니다.
서래와 사랑에 빠진 관객이 붕괴되는 경험까지 느낀 오랜만의 수작이었어요.
한국 영화는 대사가 잘 안들린다는 단점만 좀 커버되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헤어질 결심에서의 사랑은 무척 이상합니다. 두 주인공은 서로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상대에게 사랑을 받을 결심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논외지만...
화양연화 주인공이 스킨쉽이 없었군요...
왜 전 이때까지 몸을 섞었다고 생각했는지...
저도 조만간 2회차 도전해봐야겠습니다^^
그럼에도 야한 느낌이 들죠.
그러게요...
기억은 엄청 끈적했던느낌입니다^^
화양연화도 조만간 다시한번봐야겠어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1부의 마지막에 나온 해준의 이 말은 결말을 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래는 해준의 경찰 경력을 망칠 수 있는 현재의 자신을, 휴대폰을 바다에 던져 아무도 못 찾게 하려는 것처럼 바다에 던져 아무도 못 찾게 만듭니다.
자신이 바다에 멀리 던져 없애버린 두번째 남편의 휴대폰을, 집요한 형사 해준이 잠수부와 해녀를 동원해 찾아내자 다른 방법, 즉 밀물이 들어와 바다가 되어버리는 곳에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 들어가 묻혀버리는 방법으로 아무도 자신을 찾아내지 못 하게 합니다. 즉 자신을 숨겨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 하게 함으로써 해준을 보호하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