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틀 연속으로 감상했던 샌프란시스코 오케스트라와 유자왕의 협연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올해 유자왕의 내한공연 소식을 듣고 꼭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유자왕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실력 보다는 그의 파격적인 의상과 독특한 무대 매너가 더 널리 알려졌을겁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경험했던 유자왕의 연주는 웬만한 남자 연주자는 압도할만한 포르테시시모부터 피아노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여리여리한 피아니시시모까지 넓은 소리의 폭과 함께 멜로디와 반주 부분이 깔끔하게 구분되어 들리는 완벽한 보이싱과 리듬감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저에게 있어서는 연주 자체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컸습니다.
예정되었던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8번을 제외하면 모두 난이도가 높은 현대적인 곡이라 난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5년전 감명 깊게 들었던 유자왕의 연주를 기억하며 걱정은 줄이고 기대는 키웠습니다.



먼저 대구에서 이뤄진 공연의 후기가 올라온 블로그 글을 보니 프로그램 일부가 바뀌었고 앙콜 연주할때 태블릿에서 연주곡을 고르는 모습이 재밌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전 공연에서도 프로그램 일부가 바뀌겠구나 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앙콜의 기대도 가져봤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안내방송을 통해 공연 1부 프로그램 일부가 변경되었다는 안내가 나옵니다. 다행히(?) 가장 난해할 것으로 생각했던 쇤베르크 피아노 모음곡이 빠지고 슈베르트 곡이 들어갔네요. 더욱 다행히도 대구 연주 처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8번이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프로그램의 연주가 모두 끝나고 관중의 열렬한 박수에 화답하며 선사하는 앙콜은 마치 유자왕이 공연을 마치기 아쉬워 하는듯 했습니다. 앙콜 연주를 일곱 번 정도 했나? 싶었는데, 대전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수정된 프로그램 및 앙콜 목록을 보니 앙콜 연주를 열 곡 해줬네요. 앙콜로 연주한 곡들도 하나같이 다른 연주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난이도가 높은 곡 뿐이라 마치 전체 공연이 3부로 이루어진 듯 했습니다.
앙콜 중간에 앞 자리에 앉은 관객의 갑작스러운 “베토벤!” “퓌어 엘리제!” 라는 요청에 익살스럽게 반응하는 모습도 재밌었네요.
그리고, 대구 공연과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면 의외로 겹치는 부분이 적다는 것이 보입니다. 유자왕의 내한공연 전부를 따라다니는 매니아가 있다면 정말 만족도가 높을것 같습니다.

공연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유복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가서 끝 없는 산해진미의 향연에 오감만족과 함께 터질듯한 배를 두드리며 집에 돌아오는 느낌입니다.
매진이 안되었다는건 저도 좀 놀랐습니다. 처음 예약이 열린 3월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때문에 3좌석 마다 하나를 막아두었다가 4월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막혀있던 좌석도 풀렸는데, 이게 전부는 아닌것 같습니다. 아마도 조성진 같은 연주자와는 달리 유자왕의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덕분에 예약이 열리고 두 시간이나 지나서 예매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유자왕의 공연은 말 그대로 화려한 만찬이었습니다. ^^
아람누리의 프로그램도 좀 달랐었네요.
- 1부 -
Schubert 슈베르트 / Liszt 리스트
- Liebesbotschaft 사랑의 메세지
- Aufenthalt 안식처
- Erlkonig 마왕
Schönberg 쇤베르크
- Suite for Piano, Op.25 피아노 모음곡 Op.25
Schubert 슈베르트
- Hungarian Melody in b minor, D.817 헝가리안 멜로디 나단조 D.817
Ligeti 리게티
- Étude No.6 “Automne à Varsovie” 연습곡 6번 "바르샤바의 가을"
- Étude No.13 “L’escalier du diable” 연습곡 13번 "악마의 계단"
- 2부 -
Scriabin 스크랴빈
- Piano Sonata No.3 in F# minor, Op.23 피아노 소나타 No.3 올림 바단조 Op.23
Soler 솔레르
- Sonata in g minor 소나타 사단조
Scarlatti 스칼라티
- Sonata in g minor, K.450 소나타 사단조, K.450
Mendelssohn 멘델스존 / Rachmaninoff 라흐마니노프
- Scherzo from Midsummer night’s dream 한여름 밤의 꿈
Rameau 라모
- Le sauvage 야만인들
Albéniz 알베니스
- Iberia Book III No.3 “Lavapiés” <이베리아> 3권 No.3 "라바피에스"
- Encore -
Marquez 마르케스
- Danzon No.2 단손 No.2
Brahms 브람스 /Cziffra 치프라
- Danse hongroise No.5 헝가리 무곡 No.5
Bach 바흐
- Badinerie 바디네리 (arr. Cyprien Katsaris 시프리앙 카차리스)
Schubert 슈베르트 / Liszt 리스트
- Auf dem wasser zu singen 물 위에서 노래하는
Liszt 리스트
- Au bord d’une source 샘가에서
Tchaikovsky
“The Dance of the Four Swans” from ‘Swan Lake’ <백조의 호수> "네 마리 백조의 춤"
Prokoviev 프로코피에프
Piano Sonata No. 7 Op.83 Finale: Precipitato 피아노 소나타 No.7 Op.83
Bizet
Carmen 카르멘 (arr. Horowitz 호로비츠)
끝 없이 이어지던 앵콜 공연은 3부 연주 프로그램 같았고, 마지막엔 거의 모두가 기립 박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공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