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전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는 읽기 쉽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숨'은 어쩐지 읽기가 힘들어서 상당히 오래 걸려서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좀 더 깊어진 주제의식,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담아낸 이야기들이 가볍게 읽기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중에서 관심이 있었던 주제도 있었고,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이야기도 있었어요.
가볍게 적어봅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시간 이동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바꾸고 되돌리고 싶어하는 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결국 과거를 바꾸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마지막을 간신히 전해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과거로 돌아온 것에 대해 의미가 있었다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 소설집에 포함되어 있던 소설 중에서 가장 감상적인 내용이고, 눈물이 핑돌만큼 감동했던 중편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자 하려는 중에 치렀던 모든 희생이 과연 의미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주인공의 행동이 고귀하다고 느꼈습니다.
숨
- 표제작이고 상도 많이 받고 평가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감흥을 받지는 못한 소설이었습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해 사멸해가는 기계인간(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닌 다른 인류)의 과학자가 연구를 통해, 자신의 종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 어떤 작은 기계장치(예측기)가 발명됨으로 인해 모든 미래가 정해져 있고 그것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인류가 무기력증에 빠진 현실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적는 화자는 자신이 이 글을 적는 것 역시 자유의지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자유의지이든 아니든 그게 자기가 할 일이기 때문에 적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이전에 중편으로도 발매되었던 소설인데, '숨'에 다시 포함되어 나왔습니다.
그때도 읽고 이번에도 다시 읽었는데,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은 그다지 없네요. 뭐, 여전히 재미있기는 하지만요.
하향식 인공지능(뇌를 시뮬레이트하고, 그 뇌를 이용하여 사고를 하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인공지능 AI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소 담담하게 적어나가는 내용입니다.
인간 역시, 누군가(신)로부터 창조되어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AI는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인간이 AI를 대하여 취급하는 대우와 그들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그들의 권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등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습니다.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 기계를 보모로 두어 키워보고 싶어하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인간 보모는 불확실하고 이상적이지 않다는 믿음에 의해, 아이에게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계 보모를 만들어 자신의 아이를 키우게 합니다.
그 결과를 명확하게 설명해주지는 않고, 단지 기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데요, 정말로 이런 실험을 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될지 명확하게 상상하는 건 참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실험은 예전에도 이후에도 이루어질 일은 없겠지만요.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사람에게 부착하여 모든 과거를 기록할 수 있는 저장 장치가 마련되어, 그 유용성을 인정하고 많은 이들이 사용하지만 그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진실을 아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지만, 자신이 굳게 믿고 있던 과거의 한조각이 사실은 자신이 반대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충격을 받습니다. 그로 인해 간신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자신의 딸에게 사과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과거를 알고 반성할 수 있고 앞으로 변해나갈 수 있는 도구로서의 저장장치의 유용성을 깨닫고, 저장장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왜곡하거나 잊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보게 해줍니다. 과연 나는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일까요.
거대한 침묵
- 외계인 지성 생명체를 찾으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계속 되고 있지만, 사실은 지구상에 멸종 위기종인 앵무새가 지성 생명체이고 그들이 인간에게 늘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지만 인간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가정하의 이야기입니다.
앵무새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짧은 단편 소설입니다.
외계인 지성 생명체를 찾기 위해 설치한 전파망원경에 반향되어 돌아오는 메시지를 통해서, 지성 생명체가 함께 살고 있었음을 앵무새의 멸종후, 인간이 아주 나중에야 깨달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뭔가 아련한 이야기였습니다.
옴팔로스
- 테드 창 다운 냉소적인 면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입니다. 전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에서 나온 '지옥은 신의 부재' 와 닮아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 속의 인류는 자신들이 언제 창조되었는지 알고, 또 신이 우리를 창조했고 그에 의해 살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앙심도 강합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밝혀진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의 세계가 아닌 소설의 가상세계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굳건합니다.
그러나 주인공 고고학자가 얻은 증거들을 통해, 자신들이 만들어진 것은 우연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이 사실을 발표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합니다.
신에게 직접 이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충격이 될지 걱정이 되었던 거죠.
그러나 고고학자는 다시 마음을 바꾸어, 자신들이 신의 의도에 의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이런 사실들을 밝혀내면서 얻어낸 성취감을 부정할 수는 없고, 이와 같은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가게 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프리즘을 통해 양자역학으로 분리된 다른 평행세계와의 데이터 교환이 가능해집니다.
그런 프리즘이 양산되면서 쉽게 평행세계의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프리즘을 생성할 때 평행우주가 분기 되기 때문에, 분기되기 이전의 시점은 알 수 없습니다. 프리즘은 일정용량까지만 데이터를 보내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정적인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고, 용량이 많이 남은 오래된 프리즘일 수록 더 많이 달라진 평행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대체로 가치가 더 높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평행 우주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결정을 했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자기가 결정한 일들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알고 싶고,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질투하곤 합니다.
프리즘 메커니즘의 복잡성을 이용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사장 밑의 직원이 주인공입니다. 나이든 여성에게 평행 세계의 자신에게 돈을 보낼 수 있다고 사기를 쳐서 돈을 뜯어내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가장 큰 건수는, 유명인 부부가 교통사고로 여성이 사망했는데 다른 평행 세계에서는 남성이 사망했던 건입니다. 그 평행세계의 프리즘을 유명인 남성에게 팔 수 있다면 아주 큰 돈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세계의 아내가 살아 있고, 그 아내와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 프리즘을 우연히 자신의 샵에 들른 손님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서, 그 프리즘을 싸게 구입하기 위해 수작을 부립니다.
사장은 결국 그 프리즘을 구입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사기를 당했던 나이든 여성의 자식이 찾아와서 총을 들이밀고 사기당한 돈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사장은 그 여성의 자식이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내놓지 않고 버팁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가 쏘지 않더라도 다른 평행 세계의 자신은 쏴버릴 수도 있는데, 굳이 내가 참을 이유가 뭐가 있냐 라는 논리로 총을 쏘고 사장은 사망합니다. 그것을 보고 주인공(직원)은 충격을 받습니다.
주인공은 마약 중독으로 오랫동안 고생해왔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중이지만 사기꾼 사장 밑에서 여전히 나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다시 마약중독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지금 이 세계에서 마약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다른 세계에서는 여전히 마약을 하고 있는 자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나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이 올바른 행동을 할 수록 앞으로의 자신이 올바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상당히 축약한 내용인데, 짧은 소설속에 복잡한 설정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과학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는 소설들이지만, 소설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용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작가가 소설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이, 명확한 답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연이지만 외모도 닮았죠. ^^
저도....
창식이가 출연했던 예전 작품에 대한 얘기인 줄 알고 클릭...;;
그래도 테드창 작가 책들이 흡입력도 좋고 (숨은 예외일지도 모르겠네요) 재밌다고 하던데 후기 감사합니다!
ㅎㅎㅎ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저는 왜 이게 자꾸 생각나요.ㅠㅠ
웃음 포인트는... 우리가 아는 그분가 좀 닮은 느낌이에요. ㅋㅋㅋㅋ
좀 닮았죠. ^^
테드 창은 무척 유명한 SF소설가입니다. 워낙 과작이라 지금까지 쓴 소설을 전부 모아도 두권밖에 안되지만요..
숨도..분명 읽었는데 magicriver 님 해설을 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었어??? 하게 되네요 ㅋㅋㅋ
저도 주인공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다시는 용서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을 하려는 부분이 찡하더라구요.
그런 상황을 완전하게 납득할 수 있게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부분이 테드 창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저력인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