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은 외부의 시각에서 보기에 다소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습니다. 존왕양이, 왕정복고라는 극히 수구적이고 폐쇄적인 모토를 들고 나온 변혁 세력이 의외로 효과적인 근대화 개혁을 달성해 냈기 때문입니다. 개혁의 주인공들은 도쿠가와 막부와 다이묘들 밑에서 경륜을 쌓는 동시에 상업에도 종사하여 경제적 감각도 익힌 하급 사무라이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선 당연히 상인계급으로서 돈으로 사무라이계급의 지위를 산 사람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판 '부르조아지'를 낳은 일본의 전통과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다며 루스는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합니다.
아무튼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개혁가들의 근대화 정책들은 매우 현실적이고도 효과적이었다고 저자는 평합니다. 일단 이들은 일본사회의 특징인 서열사회 자체는 유지하면서도, 중간단계에 있던 쇼군과 다이묘들을 없애고 위계관계를 단순화합니다. 그렇다고 징세권과 같은 다이묘나 사무라이들의 특권을 뺏기만 한 건 아니고, 개평은 좀 주긴 했습니다. 유신 정부는 이들에게 연금을 주다가, 나중엔 막부시절에 받던 연봉의 5년~15년치를 합쳐서 퇴직금으로 주는 이거먹고 떨어져 줘라 명예퇴직(?)까지 시켜주었던 것입니다. 옛 귀족들이 이 퇴직금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면서 사무라이 계급과 봉건영주 계급의 연합은 마무리됩니다. 천황을 제외하고 다이묘와 사무라이 같은 특권계급과 사농공상의 계급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유신 정부의 지도자들은 우월적인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메이지유신은 인기 없는 개혁이었다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농민들 입장에선 수확물의 40% 이상을 세금으로 떼어가는 주체가 다이묘에서 중앙정부로 바뀌었을 뿐이었고, 중앙정부가 약속처럼 세금을 화끈하게 낮춰주지 못하고 지리하게 시간을 끌면서(이는 개혁세력에게 진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재정이 빡빡해서였긴 하지만) 이에 불만을 가진 농민들은 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농민들은 학교설립, 징병, 달력 개정, 천민의 복권과 같은 정부의 개혁에 대해서는 탐탁치 않아 하는 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사무라이들 역시 개혁세력에게 실망한 건 마찬가지. 만만한 조선에 한번 쳐들어가서 일본도 좀 휘두르고싶은데 극구 말리기만 하는 집권세력에게 불만이었던 사무라이들 역시 급기야 사이고의 영도하에 반란을 일으키고, 이는 사무라이가 아닌 자원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에 의하여 진압됩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개혁과 근대화를 하드캐리한 이들이 바로 하급 사무라이 출신의 공직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속에서도 혁명세력은 위계사회로서의 일본이라는 기본적인 국가의 틀은 유지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엘리트 집단이 주도하는 정부 부문과 민간 부문의 영역을 이들은 엄격히 구분하였으며, 서로간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은 여전히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질서 하에서 일본 국민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선을 넘지만 않으면 정부가 뭘 하든 엔간해선 뭐라하지 않으며, 정부도 여론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요즘도 이러한 성향은 연면히 유지되는 듯. 아베가 아무리 삽질을 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국회의원직이나 기타 공직들이 세습화되어가는 걸 봐도 그렇습니다.) 민간이 정부의 시책을 평가하고 아닌 거 같으면 뒤엎고, 공직자들은 대부분 국민들이 선출하는 그런 서양식 스타일(우리나라 스타일도 이쪽에 가깝죠)과 이는 크게 대비됩니다.
당시 일본의 헌정 체제는 그 자체로 이러한 일본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헌법은 의회가 아니라 천황의 직속 기관인 궁내청에서 제정되었으며, 국정은 선출되지 않았지만 천황과 독대할 권한을 가지고 천황의 뜻을 독점하는 지도자들이 담당했습니다. 일반 국민들이 뽑을 수 있었던 것은 하원에 해당하는 민의원 의원들뿐이며, 이들은 법안 발의권이나 예산권도 없이 그저 나온 법안을 승인하거나 정부기관을 감사하는 기능밖에 없었기에, 다른 나라의 파워풀한 의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초라한 수준의 권력을 가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중앙 정부의 대극에서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서 존재하는 지역 풀뿌리 공동체가 일본이라고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세력이 독자적인 역량으로 민주적 책임을 지는 단계까지 나아갔는지, 아니면 단순히 중앙정부의 꼭두각시역할을 하는데 그치는지는 국가별로 그 양상이 제각각으로 나타납니다. 일본은 부락이라는 명칭의 지역 풀뿌리 공동체가 분명히 존재하였습니다. 일본의 부락공동체는 세금징수 대행의 부담까지는 지지 않았지만, 지역의 대소사를 관장하면서 구성원들에 대해 민주적 책임을 지는 단계에까지 발전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사무소+교육청+등기소+보건소의 역할을 이 부락공동체 사무소가 수행했다고 합니다.) 지역공동체는 개개인의 호적을 관리하고 있었으며, 잘못하여 호적에 빨간줄이 갈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기에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을 개개인들은 피부로 느꼈다고 합니다. (채권추심할때 주민등록 초본 떼고, 신원조회를 위하여 호적 등본 떼고 하는 우리나라의 관습이 다 여기서 시작된 것이로군요) 그러나 법원이나 학교, 경찰 등 주요기관의 담당자는 모두 다 중앙정부가 임명했으니 이러한 지방자치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한 중앙정부는 지방의 주요 사안에 대하여 시시콜콜하게 개입하였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정부-민간, 중앙-지방의 2분법은 종교와 국방, 경제 분야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국민 개개인 무슨 종교를 믿든 정부는 상관하지 않았지만, 정부가 직접 관장하는 신도는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에 상관없이 국민 모두가 받들도록 강제되었습니다.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진급할 수 있었던 군대의 경우 어떤 의미에서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진보적인 조직이었습니다. 농민들이 쟁의를 할 때 군인들이 농민들의 편에 서기도 했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도 윗선으로 가게 되면 폐쇄적인 권력집단으로 변해갑니다. 군부는 정부 내 다른 부서의 감독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되어 있었으며, 천황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에 천황의 뜻이라며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내각에서 육군장관 해군장관은 반드시 현직 군인만 할 수 있었으므로, 내각이 군부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군부는 군 관련 장관 임명을 거부하면서 사보타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이때문에 내각 구성이 안되고 예산안 의결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경우 전년도의 예산을 그대로 타서 쓸 수 있다는 헌법 조항이 있었어서 군부는 이렇게 배째라 나자빠져도 별탈이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외무성에서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동군을 보내서 만주를 점령한 것도 군부가 내각의 눈치를 안보고 예산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베네딕트는 설명합니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도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영역과 민간의 자율로 운영되는 영역은 확연하게 갈라졌습니다. 정부는 자기가 어떤 산업을 육성해야겠다고 결심하면, 국가 재정을 활용하여 공장을 만들고 사람을 뽑고 기술을 도입하고 해서 회사를 그냥 만들어버립니다. 이러한 회사가 어느정도 돌아가게 되면 정부와 친한 재벌들한테 이러한 회사들을 싼 값에 불하합니다.(정경유착은 옵션이 아닌 필수) 즉 이러한 재벌들은 정부와 결탁하여 특권을 누리게 되며 정부와 재벌 모두 일반 국민들 저 위에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국민들은 민간의 소소한 벼락부자들은 욕하면서도 재벌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재벌들에 대해선 딴세상 사람들 보듯 아무말 안하면서 진보인사들의 흠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시는 우리나라 일부 사람들의 성향도 이와 다르지 않은 듯...) 경공업, 소비재산업부터 시작한다는 유럽식 경제발전 단계는 무시하고, 그냥 무기, 조선, 철강, 철도 등의 중공업을 정부 주도로 바로 들어가는 이들의 전략은 일단 크게 성공을 거두어 서구 자본주의국들의 경제수준을 일본이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이 모델을 그대로 도입하여 성공한 것이 우리나라죠. 당시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일본 군부나 공직자 출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반면 하꼬방같은 데서 저임금 노동으로 운영되는 민간 산업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존재했습니다.
이처럼 정치, 종교, 경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일본 사회는 위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며, 일본인들은 이러한 위계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위치에 해당하는 본분을 다하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이 강국이 되면서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서, 자신이 지배하게 된 다른 나라에서도 자신의 이런 세계관이 먹힐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질서상 일본이 1등국이고 조선은 2등국이니 그 자리에 만족하면서 본분을 다해, 그럼 너희도 행복해질 수 있어... 이런 '선의'로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다고 생각한 일본인들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준 일본에 한국이 고마워해야 한다는 요즘의 일본인들, 그리고 우리나라 일부의 유사한 시각이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인들의 생각은 착각으로 판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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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모든 걸 주도하고, 국민들은 정부가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참고 또 참는 시스템.
잘되면 대박 안되면 쪽박인 시스템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