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고서 소감을 남깁니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여러가지 사회 문제에 대한 책들은 이미 차도록 넘치게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라는 책 역시 그 중의 하나입니다. 책의 문제 의식과 그에 대한 해법 자체가 새롭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별로 없기는 했지만, 독일 문학을 전공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국가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독일의 문화 전반에 대하여 깊이있게 공부하신 분께서 쓰신 책이라 이 책은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독일을 배우자'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독일이라는 유토피아와 한국이라는 디스토피아를 저자는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우리나라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조목조목 정리합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독일은 어려운 국민들을 보살펴줄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국민들은 입시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경쟁에 시달리지 않는, 우리들이 보기엔 거의 꿈같은 세상입니다. 그러고도 경제는 팍팍 잘 돌아가서 이제 유럽사람들은 독일이 히틀러때 무력으로 점령하지 못한 유럽을 이제는 돈의 힘으로 점령하게 되었다며 걱정할 정도라 합니다.
독일이 이렇게 유토피아가될 수 있었던 것은 68혁명이라는 기념비적인 계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김누리 교수는 설명합니다. 기성 체제의 부조리가 베트남 전쟁으로 만천하에 드러나고, 이를 계기로 유럽 사람들이 기존의 사회시스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들고 일어난 것이 바로 68혁명입니다. 독일의 68혁명 주역들은 보수적인 정치체제를 뒤엎고, 사회가 국민 개개인을 보호하고 동독에 열린 자세로 접근하는 진보적이면서 민주적인 정권을 세웠습니다. 68혁명의 의의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국민의 탄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 더 나아가서는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옳은가 등등의 질문에 대하여 늘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숙고하는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돈과 사회적 성공을 위하여 노예가 되기를 택하는 삶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실패하더라도 사회가 보호해주고, 이를 위한 재원은 국민들이 부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이들이 내린 답이었고, 그 결과가 오늘날 행복과 부를 함께 누리는 독일이라며 저자는 이 나라를 상찬합니다. 이들 독일인들은 정치는 물론 사회, 학교, 심지어는 기업까지 민주화시켜버렸습니다. 독일 기업의 이사회 의결권의 50%는 노동자의 몫이라고 독일의 의원들은 법으로 정해버렸습니다. 그 결과 노동자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일치되고 기업구성원들의 의욕을 극대회하면서 기업들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저자는 전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엔 분단으로 인해 만들어진 억압적 사회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권력, 자본, 사회의 압제에 맞서지 못하는 굴종적인 인간형을 양산하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합니다. 아도르노가 민주주의 최대의 적이라고 한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나라의 사회시스템이 찍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근 촛불혁명에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치의식이 뒤떨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요원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입니다. 국가 체제는 민주화가 되었지만 가정이나 학교, 회사에서 대부분의 우리들은 여전히 전제군주에 복종해야 하는 신세라는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들의 왜곡된 성의식은 어린시절부터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죄의식을 가지게 만들어 더욱 우리들의 영혼을 굴종적으로 만듭니다. 약탈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무한경쟁 시스템 자체에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해, 결국은 인구의 절반이 실질적인 무산계급이고 자살율도 세계 최고를 다투는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외형적인 혁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지만, 내면으로부터의 혁명을 이끌어 낸 68혁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데,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독일의 68혁명이 어떤 방법을 통하여 독일 사람들의 내면까지 바꿀 수 있었는지 이 책의 내용만으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68혁명처럼 한번의 이벤트로 사람들의 생각이 쉽게 바뀔까? 하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독일과 우리나라는 완전히 다른 역사적 경로를 걸어왔고, 저자가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해 각자가 부담을 많이 하는 유럽식보다는 미국식 각자도생 방식에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국식' 사고방식의 연원을 저자는 분단체제에서 찾고 있지만,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는 다들 어떡하든 위로 올라가려고 온갖 연줄을 만들어 무한경쟁을 하는 나선사회였다는 것을(Gregory Henderson) 기억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식 사회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 봅니다. 유럽 수준의 복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하여 세금부담을 지금의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하면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눈에 선합니다. 독일식으로 이사회의 반을 노동자들에게 준다 해도, 독일 사람들처럼 불황기에 임금을 자발적으로 깎으려 할지도 의문입니다. 특권층을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특권을 열망하는, 내 밥그릇을 조금만 건드려도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지만 거악에는 침묵하는, 복지를 늘려야 한다면서도 증세는 결코 원하지 않는 우리들은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들여와도 결국 그 안에서 갑을병정의 서열 놀이를 즐기기 시작하지 않을까요? 뭐 이렇게 등수를 정하고 배틀로얄을 벌이는 게(다이나믹 코리아?) 한국인 체질에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 이영훈 교수 같은 분들도 있기는 합니다만.
비례대표제를 통하여 민의를 제대로 반영해야 하는 등의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제언 정도 외에, 이 책은 실천적 대안까지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뭐 뻔한 생각 몇가지는 떠오르기는 합니다. 세금은 그냥 뺏기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국가에 대한 불신을 없애려면 세금의 혜택을 체감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고, 더 나아가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의미있게 사용되는지를 잘 알리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종부세를 억울하게(?) 내더라도 내가 낸 돈이 저소득층 주택을 짓는데 어떻게 얼마나 쓰여졌는지를 안다면 사람들의 사회의식은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요? 오랜 기간 동안 틀이 박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작은 것이라도 개혁의 성과를 실감하게 해 주는 것이 그나마 유효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무한경쟁이 초래하는 극심한 빈부격차는 결국 다함께 망하는 길이라는 경각심도 충분히 고취시켜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필리핀처럼 막장에 다다른 무산계급 사람들이 공산반란군이 되어 나타날지, 서서히 무기력하게 썩어가던 조선시대로 다시 돌아갈지, 고대 로마처럼 가난한 민중이 독재자에게 정치권력을 갖다 바칠지는 예단할 수는 없지만, 빈부격차의 결과는 결국 모두가 원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건 자명합니다.
뭐 이렇게 구체적인 방법은 더 많이 고민해야 겠지만, 그 전에 우리가 왜 바뀌어야 하는지를 깨우쳐 준다는 측면에서는 이 책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잘먹고 잘사는 문제에만 올인하거나 국뽕을 맞으며 버티려 하지 말고,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더 나은 삶의 방식은 없는 것인지, 주위 나라들은 뭘 잘 하고 있는지, 개선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할지를 눈을 들어 잘 살펴보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향점에 대해 저자가 잘 정리한 대목을 옮겨 써 봅니다. 써 놓고 보니 우리들은 이러한 지향점과 어째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만 커집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
인간의 본능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픈 본능도 있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돕고 싶은 본능도 있고 많은 여자와 교미해서 자기 유전자를 마구 퍼뜨리고 싶은 본능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만을 맹신하며 '인간의 이기심은 본능이니 제어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식으로 자유경제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기심은 인간의 이런 인간의 여러 본능 중 하나일 뿐이고
인간이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여러 본능을 제어하며 살듯이 이 또한 제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보이지 않는 손의 원조이신 아담 스미스 선생께선 도덕감정론에서 이미 인간을 움직이는 여러 감정을 다루시면서 이기심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라 하셨는데, 요즘 '자유주의자'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쏙 골라 악용하니 스미스 선생께서 지하에서 탄식하실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