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북서쪽, 도우루강 하구에 위치한 포르투(Porto)는 글자 그대로 오래된 항구(Port)입니다.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은 포르투에서 시작됐습니다.
우리에게는 비긴어게인 시즌 2를 통해 알려졌는데, 멤버들이 버스킹을 하던 부둣가의 건너편에는 세계 최고의 포트와인 와이너리가 즐비합니다. 포르투에서의 첫날, 와이너리 투어에 나섰습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퍼레이라, 몇년 새 포르투에서 가장 핫한 와이너리입니다. 테일러에 비해 조금 더 마일드하지만 젊은 감각을 더한 가벼운 맛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우리 돈으로 만원 쯤 되는 입장료를 내고 와인 투어에 참가했습니다. 투어는 약 30분간 진행되고 마지막에는 시음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잘생긴 가이드를 따라 묵직한 나무향이 나는 통로를 걸었습니다. 사방에서 풍겨오는 오크향이 근사했습니다.
가이드에 따르면, 포트와인은 포르투갈이 원조라고 합니다. 항구 와인이라는 뜻도 있고, 포르투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도 있다고 하네요. 포트와인의 특징은 달콤한 맛과 높은 도수입니다. 17세기 프랑스와의 분쟁으로 와인 수입이 막히자, 영국인들은 새로운 와인 산지를 찾아 헤맸는데, 도우루강 상류에서 꽤 좋은 포도밭 후보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결국 질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영국까지의 운송이었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주정(Wine Spirit)을 자꾸만 섞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지금의 달고 독한 포트 와인이 되어버렸답니다. 포트와인은 일반 와인보다 높은 20도 이상의 도수를 자랑합니다. 소주보다 독하죠.
포트와인은 크게 빈티지(Vintage)와 블렌드(Blend)로 구분하는데, 단일 캐스크에서 숙성된 와인을 그대로 병입한 것이 빈티지, 서로 다른 캐스크의 와인들을 섞어서 병입한 것이 블렌드라고 했습니다.
에티켓의 표기법도 다른데, 빈티지는 에티켓에 병입 연도를 표기하고, 블렌드는 연식을 표기한다고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만약 블렌드 에티켓에 10년이라고 써있다면, 이는 섞은 와인들의 평균 연식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8년 숙성된 것, 12년 숙성된 것, 10년 숙성된 것을 섞어서 만든 와인이라는 뜻이라더군요.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기법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시음장에 자리를 잡자, 두 종류의 와인이 나왔습니다.
포트와인은 브랑코(Branco), 토니(Tawny), 루비(Rubby)로 나뉘는데, 각각 색깔도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브랑코는 흔히 우리가 아는 화이트와인과 비슷하지만, 옅은 색부터 짙은 호박색을 띄는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포트와인 답게 달고 독한데, 토닉워터와 얼음, 레몬그라스, 오렌지, 라임, 흑설탕 등을 섞어 칵테일로 만들어 먹는게 일반적이라고 했습니다.
토니와 루비는 겉보기에 비슷하지만 특성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토니는 대형 나무 캐스크에서 3년 정도 숙성한 뒤 작은 금속 캐스크로 옮겨 7개월 이상 숙성한 것고, 루비는 대형 나무 캐스크에서만 숙성한 것이랍니다. 토니는 루비에 비해 옅은 붉은색이나 다홍색을 띄고, 맛은 (상대적으로) 드라이하고 니트한 편이라고 했습니다. 루비는 짙은 피를 연상케하는 색이고 맛이 정렬적이고 고혹적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달면서 짙은 향을 내는 포트와인인 것 같았습니다.
시음으로 나온 와인은 토니와 브랑코였습니다. 설명 만큼이나 매혹적인 향과 맛이었습니다. 이래서야 도무지 좋아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시음장과 이어진 와인샵에서 브랑코 한 병과 2012년 빈티지를 구입했습니다.
빌라 노바 지 가이아의 언덕을 올라 테일러에 도착했습니다.
1692년 설립된 테일러는 포르투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올해의 포트와인'상을 수 차례 수상했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최상급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와인투어 프로그램은 퍼레이라와 사뭇 달랐습니다. 퍼레이라가 가이드를 따라 코스를 도는 식이라면, 테일러는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형태였습니다. 투어 코스의 규모도 퍼레이라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자료들과 설명도 풍부해서 꼼꼼히 보려면 서너시간은 걸릴 것 같았습니다. 와인의 향기가 물씬 나는 오크통 사이를 헤매는 경험은 똑같이 황홀했지만요.
오크통으로 가득한 셀러를 걸어 4만 리터의 와인이 들어있다는, 거대한 오크통 앞에 섰습니다. 뭔가 아스트랄한 기분이 들어 멍하니 통을 보고 서있었습니다.
투어를 마치고 뒷뜰로 향했습니다. 두 종류의 와인을 든 소믈리에가 어색한 프랑스어 억양을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빨리 주세요,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시음으로 받은 칩 드라이(Chip Dry)가 꽤 맘에 들었습니다. 한잔을 더 청해 마시고 판매처에 들러 빈티지를 구입했습니다.
도우루강변으로 나오자 독특한 디자인의 배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과거 와이너리들이 영국으로 와인을 실어나르던 배를 재현해놓은 것들이었습니다. 타볼수는 없나 궁금해하다 샌드맨의 라운지로 향했습니다.
퍼레이라의 투어에서도, 또 테일러에서도 브랑코 칵테일을 마셔보라고 했었습니다. 궁금하던 차에 주문해보니, 토닉워터와 라임을 더하고 가벼운 스터로 향을 올린 듯한 칵테일은 꽤나 맛이 좋았습니다. 레몬그라스와 설탕을 더해 복잡한 맛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우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향긋한 칵테일 잔을 빙빙 돌렸습니다.참 평화롭구나.
잠시 쉬다 포르투 크루즈의 와인 전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친구가 어디선가 받아온 시음권을 내밀고 토니를 한잔씩 마셨습니다. 다른 와이너리들이 전통과 품격을 강조한다면, 이곳은 젊고 트렌디한 분위기로 조성된 공간이었습니다. 흡사 고급차 전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와인 역시 가볍고 드라이한 풍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젊다는 것은 무겁지 않다는 뜻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상당히 마셨습니다. 20도가 넘는 포트와인은 도수에 비해 달콤하다보니 상당히 위험한 술이었습니다. 방심하다가는 뻗어버리기 딱 좋겠습니다.
술도 깰 겸, 골목 사이를 걸어 천천히 언덕 위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많이 마시기는 했지만, 일몰을 보며 와인을 마시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 의기투합했습니다.
골목을 지나다 로얄 오포르투의 와인 전시장을 만났습니다. 정말 이 동네는 사방에 와이너리구나, 들를까, 잠시 생각했지만 머리를 흔들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더 마셨다가는 공원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해질 무렵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공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일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면, 삶을 무척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많은 것을 바라며 살고 있지 않은데, 왜 이런 장면을 보는 것 조차 그렇게 힘든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퍼레이라의 브랑코를 꺼냈습니다. 우리돈 칠천원,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훌륭한 와인이었습니다.
포르투갈에 와보면,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와인으로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 알게된다는 말이 납득이 갔습니다. 이 맛과 순간이 꽤나 그리워질 것 같았습니다.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포르투의 일몰 포인트라는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도우루강 위로 떨어지는 해가 도시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영원한 항구, 포르투가 서서히 잠들어가고 있었습니다.
/Vollago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느낀 감정을 글로 표현 한다면 바로 이게 아닌가 싶네요,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떠오른 생각이 "아!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가고 싶다!" 였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가 포르투인데...언제쯤 다시 가볼 수 있을런지 ㅠ
그냥 한 두잔이 딱 좋은거 같습니다.
이렇게 멋진 사용기를 올리시다니 너무 대단하십니다~
글 솜씨와 사진이 너무 멋져서
저도 잠시 와인에 취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그때 있던 그 녀석은 뭐하려나 ㅎㅎㅎ
눈이 너무 호강해서요
근데 이 녀석이 나이먹은 녀석이 더 맛있고 술이란 느낌이 덜 들만큼 더 부드럽더라구요…
그나저나 사진이 너무 멋있네요
포르투갈 전체는 얼마동안 계셨던거에요?
말씀하신 브랜드도 한번 맛보고 싶네요 ㅎㅎ
좋은 글 사진 감사합니다.
보이고 구매 조차 힘든게 포트와인이였죠.
가격이 저렴하고 단맛이 강해 우리로 따지자면 미림?
정도의 위치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지역에서 멋진 환경이 첨가 되니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 네요.
와인맛보다 코로나로 인한 타국의 자연환경이
그리워지고 휠씬더 이국적으로 느껴지네요.
와인의 성숙미가 시간에 따라 가치가 높아지듯
사진의 영상미가 좀더 그리워지네요
와인과 염장대구 그리고 에그타르트는 정말 맛있어 보이더군요.
꼭 한번 여행가고 싶습니다.
/Vollago
그나저나 포트와인 종류도 꽤 되네요.
사진도 너무 멋지고 거리도 감성이 넘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