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과 관련 없는 넋두리가 굉장히 많은 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힘들고 어렵기만 했던 플랜트 배관일이 어느정도는
자신이 생기기 시작한 날입니다.
2020년 12월까지 치과대학병원에서 마지막 사무직 일을 마치고
한바탕 울고 나온 뒤 겨우 2주도 못 쉬고 다시 시작했던 일인데,
매일 욕 먹고(진짜 쌍욕) 혼나고 고된 현장에서 남들 다 놀고 쉴때
야외에서 춥고 더움을 그대로 느끼면서 4층이 넘는 현장을 왔다 갔다..
2만보 3만보 걸으며 하루를 마치고 어느샌가 단 한 통도 오지 않는
카톡과 끊겨진 전화의 적막감을 느끼며 집에 있을 때면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
하는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6개월 동안 단 한번도 도면을 보지 않았습니다.
모든 배관 라인들은 아이소 도면에 담겨져 있었고, 제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배울 수 있었으나, 저는 항상 이런 고민에만 빠져 도망갈 생각만
했습니다.
돈을 위해 타지에서 숙소 생활하며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저녁에 집에 가는
생활.. 누구도 만날 수 없고, 원치 않는 술자리가 이어지는 생활에서 이 일에 대한
신물만 났던 것 입니다.
일을 시작하며 분명히 병원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게 되었지만,
주말, 워라벨, 연차, 인연, 인간관계, 여자관계 가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일을 오해 하시는 반장님들도 가정은 있으시지만
반기러기 생활이나 다름이 없고
부부관계도 소원해지고 금술이 좋은분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제가 살던 패턴이 너무나 바뀌었기 때문에, 사실 적성에 너무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제는 35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어딘가 새롭게
들어가기는 많이 늦었다는 생각.. 이제는 계약직 생활 전전하기는 지겹다..
전 직장에서의 2년간의 고통...
여러가지 생각들이 저를 휘감지만.. 그래도 가끔 제 자신을 다잡기 위해
알바천국, 사람인, 잡플래닛, 잡코리아 등의 어플의 적당한 직종들의 알림을
켜놓았는데, 작금의 현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 알바천국, 사람인, 잡코리아, 알바천국 에서 알림이 왔습니다~!'
'--- 병원 의무기록사 , 원무팀 급여 자사기준-
- -- 요양 병원 급여 자사기준-
자사기준은 안봐도 비디오 입니다. 최저시급 보다 조금 많거나 비슷합니다.
가면 월급을 받아도 - 일 뿐 이었던 그 생활로 다시 돌아갈 것이 뻔하기에,
그냥 지금 일을 계속 하자고 다시 한번 다짐 합니다.
저에게는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빚이 있습니다.
한 30분 정도 적었다가 그냥 너무 개인적이라서 지웠는데..
아무튼.. 이런 빚으로 인해 계약직이 받는 월급 200만원 초반으로는
월세, 생활비, 식비 하고 빚 갚으면 그냥 -에 가까운 생활이 되어버렸던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 입니다.
인간 관계가 깨진 것도 저에게는 많이 힘든 것 이었지만,
더 힘든 것은 .. 평생 제대로 아프지 않았던 부모님 께서
올해 갑자기 입원을 하시게 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더욱 가슴이 찢어지게 됩니다.
아버지는 위 세척을 하고 2주 정도 입원 하셔야 할 만큼
크게 앓으셨고.. 어머니는 척추 수술로 예전 만큼 자연스러운
거동을 하실 수 없게 되신 것 입니다.
사업을 하는 집의 특성상
저는 그리 순탄치 않게 자랐습니다.
평생을 석공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전에 처음으로 큰 투자 및 빚을 내어
자신의 공장을 운영하셨고, 어머니는 단지 내 식당을 운영하시며
아버지를 내조 하셨습니다.
사양 산업이었으나, 고부가가치 산업이었기에 수입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외상도 많고 사업 운영 이라는게 순탄치 않은지라
뜻하지 않는 사태로 인해 명절 때면 빚쟁이가 찾아오고 차압 딱지가
붙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저희를 위해 세진 진돗개 1호를 사주셨고
그때 접했던 컴퓨터는 아무도 없는 촌구석에서 책과 함께
지금의 저의 여러가지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기 되었습니다.
우리 집에 용돈이라는 개념은 없었고, 저는
통은 큰 편이었으나, 돈은 그리 쓰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빚을 절반 정도 갚게 되자, IMF가 찾아왔고, 거래처가 줄도산을
하면서, 우리 공장은 순식간에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고, 어머니도
식권으로 내줬던 외상들을 못받으며, 가세는 급속도로 기울었습니다.
엎친대 덮친격으로 집에 불이 났고,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이었던 저는
새벽에 저에게 회초리는 드셨을지언정 손찌검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따귀로 간신히 깨어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당시 마지막으로 했던 게임이 V챔프 부록으로 줬던
졸업 크로스 월드 분기별 엔딩만 남겨두고 저장했었는데
그 엔딩들을 못봤던게 아쉽긴 하더군요 ㅋ
얼굴에는 검정을 묻히고 급하게 나오느라, 할머니 쓰레빠와
옷을 입고 울면서 학교에 가자 친구들이 울면서 십시일반 걷어서
줬던 기본 용품들과 적십자에서 나왔던 구호물품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당시 저희집에는 앨범이 10권도 넘게 있었고,
비디오카메라 촬영 영상도 100개가 넘었으나
모두 불타버려 이제 저에겐 어릴때의 추억이
단 한장도 없습니다.
우리 가족은 약 1주일 정도 친할머니 댁에서 지냈으나,
눈치로 인해 저만 할머니 댁에 두고
부모님은 나와서 컨테이너에서 지내시면서 한 달만에 어렵게
조립식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집을 지으셨을지
생각해보면.. 많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일을 많이 한 편 입니다.
매우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기사 식당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웬만한 집에서는 1주일 분량이 될 설거지와 반찬거리 다듬기
등을 거의 매일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가끔 오시면 제 손을 잡고 울면서 할머니가
미안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할머니가 왜 미안하냐고 하면서
주머니에 있는 돈을 주고 할머니 집에 갈때 차 타고가라고
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고작 초등학생이 말이죠...
제가 아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보살' 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있다면 우리 외 할머니와 같았을
것 이라고 생각했던, 명절 때마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우리 강아지 하며 안아주시던 넉넉하고 따뜻했던
그 분의 성함을 중학교 때 처음으로 장례식 장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엄마 보다 어린 나이가 되신 할머니를 못뵙는게,
그 당시 더 표현하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씀 한번 못드렸던게
얼마나 한탄 스럽고 후회 스러운 일인지, 할머니 묘에 가서
펑펑 울면서 항상 느끼고 또 느낍니다.
지금처럼 하얀 지옥을 살때, 우리 할머니가 계셨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 너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외가 6남매 중 외할머니를 가장 많이 닮아
이모들과 삼촌들도 친정처럼 여기는 둘째인
우리 엄마를 보며 외할머니를 느끼곤 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는 지금도 침착맨 영상을 보며 설거지 하는 것 보다
그냥 원래 설거지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방학 때는 항상 식당 서빙을 도왔으며, 석재 공장에 뭔가 도와야 할 때도
나가서 도왔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은 중 3때 휴게소 상행 주유소 알바를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돈을 삥땅치던 형들의 협박으로 힘들었지만, 부모님의 도움으로
잘 넘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리니지 하느라 원하는 고등학교
못들어가서 쪽팔렸던 교복비, 입학비, 교재비, 남는 돈으로는 형 디지털카메라
집 필요한거 뭐 뭐 등을 샀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전단지, 서빙, 청원경찰, PC 유지보수, 주유소,
하림, 게임 이벤트 쿠폰 pc방 뿌리기 등등
정말 여러가지 일을 했습니다.
격투기 관련 사업도 했었고요...
정식적인 일은 농협, 대학병원 이 곳 저곳...
학교는 원래는 컴퓨터 공학에서 네트워크 정보 통신과
군대 다녀와서 다시 병원 행정쪽으로..
일을 하면서 생긴 수익으로는 아버지 사업하면서 생기는
전기세( 매달 100만원 이상, 각종 공과금 및 세금)
등을 메꾸는데 사용되었었고요..
이런 것들이 당시에는 저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었었습니다.
아무튼 이야기 하다 보면 넋두리가 되는데..
이런 저런 힘든일이 있었어도, 어떻게든 우리집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픈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금년도에는 부모님이 모두 크게 아프시면서..
저의 마음도 많이 변했습니다.
위에 이래 저래 적어 놓았다시피..
언젠가는 여러 생각들이 들었었습니다.
왜 아버지는 안되는 사업을 계속 유지를 하셔서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가..?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선하고 착한
어머니는 잘못도 없이 빚 투성이로 사셔야 하는가..?
매우 어려울 때 아버지께서 일이 없어 매일을 낚시로 보내시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힘 없이 쳐진 아버지가 보기 싫어 매일 1시간씩 마사지를 하면서
이래 저래 많은 대화를 했었습니다.
추후에 듣기로 아버지는 그때 자살까지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아 주셔서 지금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내가 얼마나 어렵게 살았나.. 왜 우리집은 사업을 해서
어릴때도 애들 처럼 못살고 커서도 이렇게 살수밖에 없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20년 가까이 집에서 살던 저는 사회 생활을 한 뒤로는 집에 자주 못가는 대신
필요한 것들을 자주 보냈습니다.
밖에서 사회 생활을 하고 제대로된 독립을 시작했을때..
여자친구와 연애를 할떄는.. 사실 부모님에 대해 정신적으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 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뭐.. 담담히 받아들여야지.. 하고 느끼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진짜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크게 듭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이제 이 세상에서 진짜로 날 알아주고
귀하게 여겨줄 사람이 누가 있지..?
하는 고민들이.. 부모님의 투병으로 인해 자츰 현실로 다가왔음을 깨닫게 되는 것 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이제 법정 노인이 넘으셨기에.. 예전 같지 않으심을 더더욱 느낍니다..
이제는 그냥 예전에 느꼈던 모든 응어리들이 아예 없습니다.
그냥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실 저는 이 플랜트 배관일을 하기 싫어서 대학교를 다시 갔었습니다.
군대를 졸업하고 주유소 알바를 하다가 벌이가 좋아서 2년 정도
하다가 손가락 바닥이 거의 뼈가 보일 정도로 잘리고 피부를 이식
했던 사례가 있었는데도, 1년 정도 더 하다가 대학교에 다시 갔고,
대학교 다시 간뒤로는 처음으로 여자친구도 사귀고 쭉 병원
밥벌이를 했었던 것 입니다.
그런데 어딜 가도 2년 계약직만 하다가.. 결국 정규직이 못되고
다시 이 플랜트 배관일을 하게 되어버렸네요..
어릴 떄는 그냥 싫었고 젊음을 버리는 것 같아서 더 싫었는데,
이제는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 플랜트 배관일이라는 것을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공장들에 있는 모든 시설들은 대부분 파이프 라인으로 되어있습니다.
군대에서 1개의 소대가 몇개의 분대로 이루어진 것 처럼
대부분의 현장은 3인 1조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배관공, 용접사, 조공(헬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배관공은 배관 도면을 보고 파이프 라인을 계산하고 설계하는 일을 하고
용접사는 그렇게 설계한 파이프를 용접하는 일을 하며 조공은 그와 관련된
모든 허드렛일을 합니다.
(파이프에 관련된 자재들을 가져오기 및 그라인더로 파이프 자르기, 연마석으로 갈기
배관공이 하는 모든 것 서포트, 용접사가 하는 모든 것 서포트)
아무튼 이렇게 조공으로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용접사로 가냐 배관공으로
가냐의 테크트리를 타게 되는데, 저는 배관공의 테크트리를 타려고 시작했지만,
어째 제대로 마음이 먹어지지가 않아서 도면 한번 안보고,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었는데, 지금 일하는 군산 현장에서는 그냥 숙소에서 안지내고 조금이라도
부모님이 보고 싶어 연무대 근처에 있는 집에서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75킬로 운전해서 현장에 가서 일을 하고 7시에 끝나면 다시 운전해서
집에 와서 샤워하고 부모님이랑 이야기 하면서 마사지 해드리고 이렇게 클리앙질도
잠시 하고 자고 반복 입니다.
이러다보니 어느 순간 카카오톡에는 연락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누구에게 전화 할 사람도 없어지게 되더군요..ㅠㅠ
어디 현장이 붙박이라도 되어야 운동이라도 다니고 할텐데
한달 두달 하면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야 하기도 하고요..
병원에서 일 할때는 그래도 심플 했습니다.
저의 직책이 있고, 행정적인 변경이 생기면 그것을 우리 병원에 맞춰서
개정하고 각 진료과에 전달하는 일을 하거나 제 전공 일을 하면 되었으니까요
끝나면 저희 그룹과 술도 한잔하고 나름 입지가 좋으니 보컬 트레이닝 하기도 좋고
운동하기도 좋고.. 연차 쓰면 되고 격주에 한번 주말에 쉬기도 하니..
그럭저럭 괜찮았는데요..
정장 입고 일해서 깔끔하기도 했고.. 지금은 작업 복에 안전 벨트에 각반에
가방에 토시에 안전모에 목보호대에... 먼지 구댕이에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ㅠㅠ
어떻게든 피부 안상할려고 최대한 싸메고 안다칠려고 조심 조심 하고
무좀 안생길려고 툭하면 통풍에 신경쓰고..
집에 오면 샤워 하고 STRIDEX로 닦아준다음 슬리핑 팩으로 마무리 해주고요..
제일 중요한 발 세정을 풋 브러쉬 + 풋 샴푸로 꾸준히 관리 해주니 각질이나
그런건 아예 안생기고 뽀송하게 관리해줄 수 있게 되더군요 ㅠㅠ
아무튼.. 이 일을 하면서 단기간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 째로 집이 생겼습니다.
월세를 전전 하던 저는 숙소 생활을 하면서 급하게 계약 기일이 다가오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고,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아산에 좀 저렴한 아파트를 대출 +
지인분 에게 돈을 빌려서 구해버렸습니다.
그 동안은 벌이가 200대 초반이어서 아예 꿈도 못꾸던 건데..
벌이가 많이 늘어나니 금방 갚을 수 있다는 확신에 질러버리게 되었네요.
하지만 집을 샀어도 숙소 생활을 하기 떄문에 집에는 한 달에 한 두번
들어갈까 말까 입니다..ㅠㅠ
둘 째는 차가 생겼습니다.
새롭게 얻은 집은 아산 외곽에 있어서 차가 없으면 아예 돌아다닐수가 없고
이 일의 특성상 다른 지역에서 다닐 경우가 더 많아서 차 없으면 움직일수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어찌 어찌 하다 800 만원 주고 LPG 올란도를
구매했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거 적으면 또 엄청 길어져서 패스 할게요 ㅎㅎ
근데 문제는 한 달 좀 지나자마자 오토미션 망가져서 175만원 수리비 나왔습니다
으헐..ㅋ
셋 째는 인간 관계가 아예 끊겼습니다.
이게 연락을 한다고 해도 그래도 여유가 있고 볼수가 있고 해야 유지가 되는데,
전화도 어렵고.. 만나기는 더더욱 어려워져서 애매한 사람들은 싹다 정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정리가 된거일수도 있지만요 ㅎㅎ
넷 째로 돈을 바라보는 시야가 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벌이가 너무 적어 .. 투자는 커녕 숨만 쉬고 살기도 벅찼는데
빚을 갚아 나가면서도 약간의 여유금이 생겨서 주식이나 코인에 조금씩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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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플랜트 배관일을 시작한지 이제 8개월차가 되어갑니다.
이 일은 현장이 계속 바뀌고 일용직으로 분류되어 일을 잡지 않으면
그냥 집에서 놀고 있어야 하는 일이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제대로
돈을 맞춰주는 현장도 별로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10년 20년 이상 일을 한 기공(용접사, 배관공)이 너무나 많은
상황이라 조공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 일의 단가는 보통 하루 급여를 받는 것을 1공수 라고 하는데,
1공수에 기공들은 18~25 까지 받고 조공들은 12~18까지
받는 편입니다.
그리고 보통 7시30분~5시 까지를 1공수 7시까지는 1.5공수
10시까지 2공수로 치고 철야를 할 경우 4~7공수까지
챙겨주기도 하며, 야리끼리 라고 불리는 작업의 경우
20일 까지 해야하는 공사를 10일 안으로 끝내주는 현장에
갈 경우 10일을 일하고 20~30일 급여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도면에 따라 미리 shop장에서 제작을 하는
'모작' 이라는 작업의 경우 한 달에 50공수 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협상을 하고 진행을 하기도 합니다.
보통 쉬지 않고 일을 할 경우 조공은 평균적으로 400↑
기공은 600↑ 정도 벌고 있으며 위에 말한 특수 작업의 경우
1000 이상을 벌기도 합니다.
메리트라고 한다면 협상이 잘 되는 회사의 경우
숙소 및 삼시세끼를 지원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HEVA 공수라고 해서 2~3공수를 급여에 포함해
주기도 합니다.
숙소 및 삼시세끼의 경우 한 달에 약 100~200 정도의
지출 발생을 막기 때문에 저축에 매우 용이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조공이 매우 부족한 현상이므로
단단히 마음 먹고 뛰어드는 분들의 경우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버실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워라벨 적으로는 최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8개월 차가 되어서야.. 뭔가 조금 느끼고 있는데,
더 나아지고 좋은 일이 생기면 다시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
일 끝나고 와서 2시간 동안 작성하려니..
이래저래 두서도 없고 글 분위기도 휙휙 바뀌네요 ㅋㅋ
원래는 이런 글을 적으려고 했던게 아닌데.. 어쩌다보니..^^;;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정이입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냥 지나칠까 했는데, 글을 적게 되네요.
어린 시절 저 역시 동년배 친구들과 달리 많이 굶어보기도 하고, 원치 않는 노동(?)을 하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이십대 이후 나름 이런 저런 도전을 해서 소위 대기업이란 곳을 다니고 있고, 경제적으로 충분한 여유도 생겼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 해봤었던 그런 것들이 제가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고, 자립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글 쓰신 분도 제 나이가 되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건투를 빕니다.
제 고등학교 친구도 여기저기서 목수도 하고 용접도 하고 어쨌건 몸쓰는일 하는데 가끔 사고나서 입원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멀리 있어서 일년에 세네번 정도 간간이 통화하는데 오늘 목소리 한번 들어봐야겠네요.
저로 인해 친구 분이 떠오르셨다니 다행이네요!
가족에 관한 애정은 정말로 공감이 가네요
보살같은 할머니 항상 내 편인 부모님..... 남얘기같지 않습니다 저도 지방살이 하는데 서로 화이팅해요!!
서로 화이팅 하고 항상 몸 건강하기로.. 약속!!
쉽지 않은 도전이였을텐데 이겨내고 계시는거 같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 화이팅 입니다!!
정신 차린 순간 부터 사회는 저에게 톱니바퀴가 되도록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네버마인드 님도 화이팅입니다! 건강하세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열심히 잘 해서 더 좋은 소식으로 찾아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기운을 받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땀 흘리며 몸 쓰는 일은
사무직보다 2~3배 받는게
정당한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앞으로 다 잘될 겁니다
현장직 하시는 분들은 그 돈 안 주면 정말 아무도 안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ㅠ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소식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얼른보내줘 님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만을 기원 하겠습니다^^
저도 아예 다른 분야 일을 하다가 이번에 새로이 문화재보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용 하나하나가 다 저의 처지와 비슷하네요.
몸 다치지 않게 조심하시고 꿈꾸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
문화재보수... 냉정과열정사이 였나요..? 그 작품에서 봤던 것 같은데..
현실 문화재보수는 그렇게 낭만적일리도 없고.. 그저 힘들고 많은
책임감과 사명감이 요구되는 일일거라 감히 짐작해 봅니다..
저와 같은 처지로 느껴지신다면 이누이님도 정말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사시고 있을 것 같아요 ㅠㅠ
항상 몸 건강하시고 정말 행복하시기를 제 마음을 담아 기원 드립니다 화이팅!
응원을 보냅니다
읽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영화 소울을 보고 나서는 의미를 위해 살지 말고 삶 그 자체를 의미로
느껴보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분기점이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지만... 저라는 사람은 무너뜨리지 않고
중심을 세워서 뭔가 해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사시고 사람의 귀함을 아는 좋은 분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시라는 염려와 응원의 말씀은 몇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네요 생각해주시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빚을 청산 할 때까지는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될 때 다시 돌아오려면 기술이 필요하기에
그때까지는..^^ 감사합니다!
뭔가 가슴이 찡한 댓글 입니다..
정말로 잘 되어서 엄마다 님의 말씀이 예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열심히 몸으로 뛰어주시는 글쓴이 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 돌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 남은 생은 더 행복하실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돌려 말하면 이렇게까지 긴 글을 읽어주시고 이렇게 의미 있는 댓글 까지 달아주신
하라짱님 또한 정말 멋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지금의 대한민국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건강 조심하시구 다음엔 꼭 더더욱 밝은 글로 뵈어요!!!
늘 빠른 댓글과 공감 정말 감사합니다^^
연배도 같으시다니... 더 대단하시네요! 항상 몸 건강하시고 화이팅입니다!
몸 건강하시고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