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세계 몇대'라던가 '대한민국 몇대'라는 식의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븐원더가 생각나고 억지로 만든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실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던 경험을 한 적도 있습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에르미타주(Hermitage)는 '세계 3대 미술관'이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입니다.

에르미타주는 6개의 궁전과 3개의 부속건물로 이뤄져있는데, 겨울궁전이 본관에 해당합니다. 건물과 전시실의 크기도 어마어마하지만, 350만 점에 달하는 소장품은 고대 아시아로부터 근대 유럽, 현대 러시아를 아우릅니다. 한 점당 5분씩만 감상해도 30년이 걸리고, 전시로를 한줄로 이으면 27km에 달합니다.
소장품으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피카소, 고갱, 고흐, 로뎅, 세잔, 모네, 마네, 르느와르, 램브란트, 다빈치, 칸딘스키의 진본(!)들이 포함되고, 그 외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도 헤아리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러시아에 가고 싶던 가장 큰 이유인데, 정작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넷째 날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껴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관람 후 카렐리야공화국 행 야간열차를 탈 계획이었거든요.

티켓은 1일권과 2일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가격은 하루에 만원 정도, 현장에서 학생증 제시 후 구매하면 반 쯤 깎아줬습니다. (구매 줄도 너무너무 길어서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만) 러시아 소재 학교는 물론이고, 구 소비에트 연방의 학교들과 일부 외국 학교의 재학생도 해당된다고 하니 리스트를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제 경우는 한국에서 2일권을 구매했고, 메일로 받은 바우처를 에르미타주 입구에서 티켓과 촬영허가 스티커로 교환했습니다. 파란색은 1일 촬영권이고, 2일 내내 촬영하려면 추가로 빨간색 스티커를 구매해야했습니다. (뭔 일 있겠나 싶어서 안하기는 했습니다 ㄷㄷㄷ)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2020년 9월부터 티켓 판매 정책이 무척 복잡해졌습니다. 아마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관람객 통제를 위한 것 같은데 자세한 정보는 이 링크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https://tickets.hermitagemuseum.org/en/#id=1

한글 팜플렛과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반가웠는데, 자세히 보니 대한항공에서 후원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녹음은 김성주씨와 손숙씨로, 톤도 속도도 듣기 좋았습니다.
가이드북도 챙겼겠다, 관람 준비를 마치고 화려한 계단을 따라 겨울궁전으로 들어섰습니다.













책에서나 보던 작품들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들여다보며 열심히 걸었지만, 꼬박 반나절이나 지나서야 루벤스의 전시실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왠만한 작가들은 자기 전시실을 하나씩 갖고 있고, 전시실 하나에는 수십 점의 작품들이 걸려있습니다.) 루벤스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한 시간 넘게 전시실에 머물며 그림 하나 하나를 눈에 넣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어지는 플랑드르 작가들의 전시실들을 지나니 램브란트의 전시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램브란트다보니, 전시실의 규모도 훨씬 크고 작품 수도 많았습니다.

한 점 한 점에 마음을 뺏기며 보다가, 노인의 초상 앞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을까요. 눈이 시뻘개져서 울고 있는데, 관람객들이 조용히 지나쳐갔습니다. 눈물을 존중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싶어 처음에는 셔터를 열심히 눌렀는데,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는 가방에 넣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다는 것이 중요했고, 눈으로, 마음으로 기억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여드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간접체험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www.hermitagemuseum.org/wps/portal/hermitage/panorama?lng=ko

마지막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루벤스의 그림들을 한번 더 보러 갔습니다. 그 붉은색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미술관에 머문 시간은 이틀 꼬박이지만, 적지 않은 전시실에는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5분씩만 봐도 30년이라는 말이 실감이 됐습니다. 그리고, 한달 쯤 머무르며 매일 그림을 보러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당분간 안녕, 에르미타주를 떠났습니다.
미술관 작품들은 약탈하지 않은(유일한) 작품들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요? (러시아 측 의견)
그런데, 이곳 미술관 1층에 엄청난 유물들이 있는데, 중동-캅카즈-중앙아시아-시베리아를 잇는 고고학적 유물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건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같은 유럽 박물관에는 없는 유물들이죠. 이것들 대부분은 훔치거나 영토 자체를 강탈해서 나온 것들이라... 땅 자체를 빼앗고 그 땅을 차지하니 선사 시대부터 쌓였던 그 땅의 모든 역사가 자국의 역사가 된 거죠. 중국도 이런 식이긴 합니다.
관람객 없는 날(아마도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다시 한번 관람계획입니다?
저도 미술관의 유명 작품 앞에서는 사진찍곤 하다가 인터넷에 더 잘나온 사진 있는데... 의미 없다란 생각이 들어서 안찍게 되더라고요. 그냥 복도나, 계단 같은 곳에서 인증샷이나 찍는... ^^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azyryk_burials#Pazyryk_carpet
미술관 무지 좋아하거든요.
하는 마음으로 검색해봤더니 러시아 최서단이네요 -_-;;
맘 크게 잡고 계획해봐야겠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예르미타시전 을 했을때
큐레이터의 시간(기획한 큐레이터가 직접 전시 가이드)
에 참여를 했었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웠기에..
작품수는 100여점 안되게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큐레이터분께서 본인의 철학을 담은, 그리고 동선까지 고려한 전시 기획은 저 곳, 예르미타시를 언젠가 한번 꼭 가보고싶다. 라는 마음을 갖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국중박 큐레이터의 시간에 실망한적도 많은데, 저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글을 보니 상트에 다시 가고 싶네요 ㅋ
언젠가 가족들이랑 같이 가보고 싶네요..
말씀하신대로 교과서에서 보던 작품들을 직접 보게 되었다는 것도 신기했고 압도적인 규모에 한번 더 놀랐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 가고 싶은 곳인데 올려주신 사진들 덕분에 좋은 기억이 다시 떠오르게 되어 감사 드립니다.^^
언젠가 다시 가보실 분들이 많네요. ^^
예전에 한참 미술 공부할 때는 유명한 작품들 소장 위치도 대충 다 외웠던 것 같은데 몇년 지나니 기억도 흐릿해져서..
가보고 싶던 미술관은 겉핥기 식으로나마 대충 다 본 것 같은데 딱 하나 이 곳만은 아직입니다.
막 가려고 생각하던 참에 코로나가 창궐...
세상이 다시 좋아지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다시금 의지를 불태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몇년전 국립중앙박물관에 에르타미주전이 있어서 다녀왔고,
그때 보았던 작품들도 여럿 보입니다만
전시하는 공간 자체가 워낙 압도적이라 사진상으로만 봐도 차이가 많네요.
정말 멋진곳이네요.
에르미타주전이 맘에 드셨다면 방문하시면 무척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에르미타주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규모와 더불어 아름다운 구성 등...프랑스에 대한 동경과 예카테리나의 욕심덕분에 탄생했지만 프랑스 그 어느 박물관과 비교도 안됩니다.
너무 그립네요 ㅎㅎ 저는 모스크바를 더 좋아하지만 상트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죠..
읽다가 보니 지난번에 봤던 보헤미안 중세도시 방문기 쓰신분이시네요.
혹시 블로그 하시면 구경하러 가고싶습니다 ㅎㅎ 하시면 알려주실수있으실까요?
저도 3년 전에 가서 상트에만 대략 1주일 머물렀어요
참 사람 많아 오래 기다렸던 기억이 있네요
3대 미술관 중 저기만 가봤네요^^;
그 옆에 현대 미술관도 볼만 했습니다
/Vollago
에르미타주 앞 궁전 다리도 야경도 좋았고, 예카테리나 궁전, 페테르고프, 마린스키에서의 발레/오케스트라 공연 너무 좋았어요!
저도 반드시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입니다.
이 글을 보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후회가 막심하네요
꽤 오래전이었어요 거의 10년 전...
많은 정보도 없었고 인터넷도 쉽지 않았던 시절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넘어왔었죠
그래도 마린스키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 봤네요
다시금 가고 싶습니다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