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 대한 리뷰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
첫 시작은 미국에서 발생한 입시비리로 시작합니다. 얼마전 미국의 유명 배우와 부자들이 거금을 써서 입시비리를 저지른 사건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1229005200091?input=1195m
이 과정에서 과연 입시비리가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라는 의문으로 책은 시작합니다.
레이건, 대처시절부터 좌파라고 불리운 클린턴, 특히 오바마시대까지 능력주의는 쭉 강조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샌델은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 이유와 트럼프의 승리 이유를 능력주의에 대한 포퓰리즘의 반발로. -> 힐러리는 패배이후에도 ‘자신은 지식인들 계층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라고 자위합니다. 트럼프는 ‘미국은 위대하다’라는 구호아래 미국의 일반시민계층에게 어필합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과연 '개인의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라는 샌델만의 주장을 펼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생각 :
샌델이 SAT에 대한 비판점을 그대로 수능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수능이 공정하다. 모든 사람들이 능력만큼 노력해서 쟁취할수 있는것이 수능아니냐) 거기에 미국의 대졸자(특히 아이비리그) 위주의 비판점을 우리나라의 스카이위주(특히 서울대)에 적용해서 반영해보시면 많이 피부로 와닿으실것 같습니다. -> 보통 수능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론을 취할 수 있는 부분이 보입니다.(저는 중고등 교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학종의 장점과 단점을 이 책에서 전부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이 입시에 강조되면 안된다는 주장에 샌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만약 교사의 역량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제가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자세한 책의 내용을 설명하기엔 저의 능력도 부족하고, 샌델의 의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간단히 서술하자면, SAT도 결국은 경제적 능력에 성적이 결정된다고 보여집니다.
미국은 대학교 진학생이 인구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합니다. 즉, 3분의 2가 가지는 자괴감과 소외감은 기존의 정치인들이 완벽히 무시했다라고 봅니다. 이 비판을 우리나라의 서울대 연,고대로 적용해서 보면 현실에 와닿습니다.(우리나라의 경우 대학 진학율은 높지만, 스카이 진학율로 따지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스누라이프의 설문조사도 신문기사화됩니다.(마치 특정 대학교의 여론은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데 중요한 지침이 되는것처럼. 또한 입시성적이 높은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데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얼마나 학벌을 중시하는지 생각해보시면 미국도 다르지 않구나라는걸 보게 될 것 같습니다.
-> 과연 사회의 유리한 위치에 도달한 사람은 진짜 개인의 능력으로만 온것인가? 라는 의문을 던집니다. - 개인의 가정환경, 개인의 선천적 지능 등
저는 개인적으로 노력하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흔들리게 한 사례가 있습니다. 저는 교사입니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에 눈에 띄지도, 공부하는 걸 힘들어하지도 않았습니다. 다행히 임용도 한번에 합격해서 교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상담선생님께 친한 선생님과 함께 심리검사를 (재미삼아) 받았는데, 상담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선생님께서(나)는 성격이 차분하고, 책상에 앉아있는 행위 자체가 많이 힘드시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에 반해서 (나랑 같이간 선생님)은 성격상 앉아있는게 정말 힘드셨을텐데 교사가 되시기까지 정말 고생많으셨을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저는 학창시절동안 솔직히 책상에 앉아있는게 힘들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냥 앉아서 책만 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그러고도 고작 교사밖에 못했냐고 하신분들께는 미리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랑 같이 검사한 선생님은 제가 봐도 정말 활달한, 에너지 넘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학생들과 교감도 잘하고, 진짜 학생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이었구요.
저는 운 좋게 한번에 임용을 붙었습니다. 저랑 같이 검사한 선생님은 n번의 임용을 봤구요. 과연 그 선생님의 노력이 저랑 비교했을 때 부족했을까요? 그리고 저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능력이 부족했을까요? 저는 그 선생님을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방법들을.
결론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
1. 능력으로 올라간 자에게는 동정심이 있기 어렵다. - 나는 순전히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한 사람은 단순히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 ->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을 도와줘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 이 결론은 복지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 존재하게 됩니다. -> 샌델은 이 점에서 '성공한 그들이 진짜 자신의 ‘능력’으로만 올라간 것인가? 인간의 선천적 지능은 진짜 동등한 출발점인가?'(저는 개인적으로 이 측면에서 우사인 볼트를 떠올렸습니다. 우사인볼트도 제가 달리기를 못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왜 다리를 더 빨리 놀리지 못하지? 다리를 더 빨리 움직이면 되는데 그게 왜 어렵지?‘) 가정환경은? 경제적 환경은? 심지어 노력을 할 수 있는 그 인내심은? 이런 모든 면에서 과연 동등하게 출발해서 진정한 노력으로 성취했다고 할 수 있는가?
2. 능력으로 올라가지 못한 사람에게 자괴감을 준다. - 나는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 이 두 감정은 사회적 공동체 연대감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결국 인간세상은 혼자선 살수 없는 세상입니다. 과연 개인의 능력만 강조하는 세상이 사회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반문을 하는 책입니다.
샌델이 던지는 결론은 개인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운이므로(지능이든, 사회적 배경이든, 노력으로 가장한 능력이든) 사회적인 연대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좌파라고 생각되는 정당들이 능력주의를 우파보다 강조하고 엘리트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멀어지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미국의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등)
우리나라도 진보라고 일컬어지는 정당들이 실제 시민들과 멀어지는 현상이 과연 이와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공정하다는 착각 세 권을 읽고 제가 느낀 생각은
인간이 진정으로 평등한 출발점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운을 인정하고,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성취했다는 것을 버리고 사회의 연대를 위해 노력하자라는 주장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샌델이 생각하는 것과 틀릴 수도 있습니다.(물론 클리앙님들과 다를 수도 있구요.). 하지만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항상 생각해봐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저의 부끄러운 독서 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을 쓸까말까 몇주를 고민했습니다. 저 따위가 이렇게 글을 남기는게 과연 부끄럽지 않은 것일까, 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런데, 어떤 트위터 님께서 독립운동가가 노오력을 안해서 못산다는 말을 하는 글을 올린걸 보고 정말 너무나 화가나서(정말 쌍욕을 몇번이나 할 것 같았지만) 올립니다.
글솜씨가 부족하지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SAT도 결국은 경제적 능력에 성적이 결정된다고 보여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능(정시)이 공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교육학자, 정치가, 관료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수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대중들은 정시가 공정하고 수시는 특권층에 유리해서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다른 반도 짚어주는 부분이지만 얘네 반은 몇자 더, 중요포인트로 적힙니다.) 보면서 좌절했었습니다.
저도 sltx님 의견에 동의하진 않지만 강남애들이 수능 잘 보는게 불공정하다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건 아니라고 읽히네요. 수능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셔야... 그러니 정시도 출발부터 불공정하다 그런 의미겠죠. 전반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수능은 기회가 공정하지요. 강남3구가 사교육에 넣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수능성적이 월등한게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시간과 노력을 넣으면 아웃풋은 언제나 흘륭하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아래가 안보이는 밑빠진 독에 물붙기죠.
반대로 수시를 봅시다. 수능처럼 전국구가 아니라 해당학교만 어떻게 하면 플러스 알파가 가능합니다. 농어촌과 수도권의 정보 차이로 기회조차 얻지못하는 학생이 대다수입니다. 이건 강남에서 시간과 노력을 퍼부으면 아웃풋은 언제나 확실하죠. 수능 한번 못봐서 일년 재수할 이유가 없습니다. 농어촌에서는 접해볼수도 없는 스펙(물건의 능력을 나타내는 말)으로 입시를 압살합니다.
어느쪽이 공평할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학력고사시절에는 개천에서 용도 나왔지만 지금처럼 비쩍말라가는 개천에서 미꾸라지라도 나올까요?
저자가 말하는 재능이 꽃피울수 있게 도와준 사회의 도움을 알아야한다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슬픈열대님이 말씀하신 강남3구의 수능성적이 월등하던 말던 수능공정설에 대한 반박입니다. 의지와 노력으로 공부를 더 많이 한 학생이 입시에 유리한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기득권(재력, 권력, 학력, ...)을 가진 부모들이 정시를 선호한다면 왜 그럴까요? 그 사람들에게 수시보다 정시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득권 부모가 정시를 선호한다는 증거가 있나요? -_-;;; 여러분이 서울대교수와 제2,3저자로 같이 논문에 이름 올릴수나 있나요? 협회장 추천서 받아볼수나 있을까요? 어디 사장과 아는 사이라서 바쁜 고교시절에 인턴 경험에 싸인해주는 친구분들이라도 계신가요? 대학교에서 고등학생 2명 대학원생 체험학습 공고 즉시 받아볼수 있나요?
아무리 공부잘해도 망칠수 있는게 정시입니다. 수시는 그런건 없죠. 인풋 아웃풋 확실하니까.
그 의지와 노력이 완전히 공정하다는 절대신뢰에 대해서, 저는 측정도 못할 것을 신뢰하지않습니다. 의지나 노력에 결과가 정비례하지않는데 공감하고 최소 보완책이 있어야한다는데 동의합니다. 지금처럼 최대 보완책이 아닌, 정시가 주가 되고 수시가 최소 보완책이 되길 바랍니다. 공정성에 구멍 뚫려있는 수시가 누구한테 유리할지는 각자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강남3구에 대한 환상이 있으신것 같습니다. 강남도 공부는 하는 애들이나 합니다. 다만 아이의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이를 뒷바침 해줄수 있는 경제력이 있다는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간신히 1등급 들어가고 있는 범재수준의 강남아이와 언제나 전교 1등하고 있는 영재수준의 시골아이. 어느쪽이 수시에 유리할까요? 어머니가 준비해준 핵심논술노트로 논술대회에 입상하는 아이, 아버지 친구 회사로 봉사활동시간 넉넉히 채워주는 아이, 품앗이로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아이들과 모든걸 혼자 알아서 준비해야하는 영재 누가 이길까요? 정시였다면 영재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았겠죠. 수시에서는 과연 공정한 경쟁이었을까요? 어떻게 보면 능력(경제력)을 이용한 공정한 경쟁일수도 있겠네요. 부의 되물림, 멍청한 자들의 지배라는 부작용은 차치하고요....
https://sovidence.tistory.com/1091
그래서 코로나 초기에 마이클 샌델이 불공정한 고통 분담에 대해 꼬집었죠.
우리나라도 빈부격차를 줄이는 분배적 정책을 더 강하게 운영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십년간 벌어진 불공정성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죠.
요즘들어 정말 많이 공감하는 내용이네요. 내가 누리는 모든것 중에 진짜 순수히 내 노력만으로 얻은게 얼마일까. 아마 10%도 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심지어 노력이라는거 자체도 많은 부분 부모님한테 받은게 아닐까? 그렇다면 다 운인건데 사회에 환원해야할 책임에 있는게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게되네요.
개인적으로 티비 예능에서 '서울대'생만 나와도 와~~ 호들갑 떨고, 띄워주고, 동시에 같이 나온 개그맨들은 웃자고 한 말이지만 자기비하를 유머로 내뱉고 이런 것도 어느 순간 되게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소위 고학력 전문직의 특권의식이 형성되는 것인가 하고요. 글 읽다보니 저도 제가 하던 생각을 두서 없이 적어보았네요.
책 소개를 좋은 예와 함께 잘 해주셔서 저도 얼른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사회의 흐름을 잘 올라타고 내려오는 행위는 능력이 될 수 있으나 사회의 흐름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죠.
그리고 그 사회가 만들어주는 흐름이 없다면 아무리 눈치가 좋아도 기껏해야 치킨 한 두 마리 더 먹고 말겠죠.
부동산의 가격 형성도 똑같습니다. 어떤 곳이 오를까에 대한 눈치가 있는건 능력이지만 사회 인프라가 없었다면?
사회 인프라 때문에 형성되는 부동산의 가격으로 번 돈을 개인의 능력으로 획득했다라고 하기엔 공헌도가 미미하죠.
개인간의 경쟁은 소소한 차이만 생겨도 이루어집니다. 그 정도 차이는 능력에 의한 것이라 치부해주고 가져도 된다고 봐요
그러나 요즘 CEO나 그런 고액 연봉자들이 정말로 개인의 능력으로 그만큼 벌 수 있냐고 하면 멍멍이 소리라고 해줘야죠.
잡스가 아마존에서 태어났다면 무엇을 얼마나 해냈을까요?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까요?
워렌 버핏은요? 일론 머스크는요? 사회로 인해 능력에 부스터를 달았을 뿐, 능력이 사회를 끌고 간 건 아닙니다...
아니라 같은 노력을해도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벌고 누군가는 그렇지못하다는것이죠
사회가 있어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내가 이렇게 벌 이유가 없다고 최대한 환원하려고 하죠.
그것 역시 자본주의적인 관점으로 세금 처리 등등에 쓰일 수도 있지만.
노력이 중요하다한들 사회가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연에 가셔서 머리 굴리면 뭐 엄청난 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나요?
능력에 차이도 있고 노력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그게 이런 부의 차이를 가져다주는게 정당한가를 논하는겁니다.
왜 나머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냐고 힐난하는 자세부터가 별로네요.
눈 모으기 빡센 곳에선 아이들이 노는 눈을 부모들이 퍼다주는 눈인 것을 보고나서
'운'이 정말 운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능력주의는 정의롭지 않은 것 같아요.
정시를 대신하여 도입된 수시(의대 등 상위권 학교/과), 로스쿨, 의전원 등의 제도에서 고위층이나 고소득층 자제 비율이 높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개인적으로 저 자신은 아마 현대 정도의 복지수준이 아니었다면 이미 무능력의 대가로 도태되어 죽었을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는 중이었던지라
저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때 뭐랄까 참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보이는 결과만으로 그 사람의 인성까지도 게으르다 성실하다 함부로 평가하는 세상에서 참 고마운 책이었어요.
저의 석사 시절 짧은 지식으로 되짚어 보면, 흔히 평등주의(egalitarianism)라고 불리는 이념(?)의 기본이자 핵심 문제가 바로 '무엇을 평등하게 할 것인가'인데요
롤즈/드워킨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흔히 개인의 선택에 따른 불평등과 선천적인 불평등을 구분하고,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선천적인 불평등을 사회가 중화시켜주는 것이 평등주의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내 야심으로 사업을 10년간 하다가 실패해서 최하층으로 떨어진 사람과 선천적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최하층으로 존재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비교하면, 전자의 경우는 불평등의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지만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니까), 후자는 불평등의 문제라고 보는거죠
이런 관점은 흔히 luck egalitarianism 이라고 불리는데요, 인간이 선천적으로 차등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운을 중화시키는 것이 평등주의의 목표라고 보는 겁니다
흔히 출발선의 평등을 말할 때 보통 이런 luck egalitarianism을 말하곤하죵
근데 이런 류의 평등주의는 문제가, 결과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정당화된다는 겁니다
가령, luck egalitarianism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국가가 있다고 해보죠 이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선천적인 운으로 인한 불평등이 각자의 성공에 최소한의 영향만을 끼친다고 해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분명 실패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출발선이 평등했기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은 정말 말 그대로 '실패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보다 도덕적인 우위를 갖겠죠 (가령, 내가 더 노력했으니까 내가 더 뛰어난 인간이다! 같은 생각)
그리고 성공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에 대해 도덕적인 비난을 할 수 있게 되겠죠 (출발점은 똑같았으니 이건 모두 니 책임이고, 니 잘못이다! 같은 말) 마치 더 도덕적으로 행동한 사람이 덜 도덕적으로 행동한 사람의 행동을 지적하듯이요
근데 이렇게 되면 정치공동체가 유지되기가 힘들어지겠죠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니까 굳이 그들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취급할 이유가 없어질테니까요
근데 정치공동체가 약화되고 뿔뿔히 흩어진 개인만 존재한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지겠죠
결국 luck egalitarianism 같이 기회의 평등만 강조하는 관점은 평등주의의 하나의 이상을 실현할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로 정치 공동체의 와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거죵
근데 적고 보니까 능력주의에 대한 얘기랑은 약간 동떨어졌네용
샌델은 공동체주의에서 공화주의로 발전(?)한 사람이니까 지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공동체 유지를 강조할 것 같은데, 그런 정치 공동체 유지라는 목적을 위해 단순히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는 게 제 댓글의 요지일 것 같네용 ㅎㅎ;
정시(수능)은 단지 그 형식에서 공정하다는 느낌을 줄 뿐이고, 실제로는 딱히 공정하지도 않다는 점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해도 인정하려고 드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아무리 통계자료를 내밀어도)
그러한 착각과, 시험으로 줄만 세우면 공정하다는 뽕(?)은 공동체를 위한 정의 가치 실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죠.
'공정'하다는 시험으로 줄세우기를 하면, 그 선발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정'해야되기 때문이지요. 그런 제도는 결국 약육강식에 불과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능력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과연 공동체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는가 그런사람들이 공공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인의 자리에 있는것 혹은 행정관료로 있는것이 공동체의 입장에서 맞는 것인가와
결국 교육에만 포커스를 맞춘 정책은 능력주의를 정당화 시키고 정당화된 능력주의는 극단적으로 떳떳한 승리자와 부끄러운 패배자를 낳는다 정도네요.
이분 책은 항상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더라구요.
좋은 주제를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울림이 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저도 비슷한 내용의 책인 meritocracy trap을 읽어보려고 생각만 .. 하고 있었는데..! 예일대 교수가 쓴 책입니다
확실히 능력과 노력을 대단한 사회적 가치, 도덕적 가치로 보는 것이 과연 맞는지 요새 생각이 많습니다 특히 공부에 대해서요
정리하면, 수시는 수능보다 부모의 재산이 적은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일 수는 있으나, 부정행위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이므로 어느 방법이 절대적으로 좋을 수는 없고 사회가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능력주의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더 낫게 살 수 있다는 믿음, 그로 인한 교육열이 한국 내에서는 대체로 나쁜 것이라고 생각이 되고 그런것이 없는 사회(미국, 유럽의 소위 선진국)를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해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많이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들이 1953년도에 폐허였던 나라를 7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에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는 세계 현대사에서 유일한 기적을 만들어냈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노력하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과 그로 인한 교육열이 사라졌을때 과연 사회 구성원 전체가 느끼는 행복감이 줄지 늘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의 역동성과 발전 속도는 확실히 줄어들 것입니다. 과연 그게 바람직한 방향일지 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신기하다고 생각한 사실 2가지만 추가하고 마무리하지요. 첫번째는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결과입니다. 최근 결과들을 보면 다들 예측하실 만한 나라가 거의 1,2위를 도맡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과 미국이죠. 재밌는 점은 참가자 이름을 보면 미국 학생들도 대개 중국 (혹은 동아시아)계 이민자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바로 뒤에서 대충 3위권인 나라인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유럽 선진국, 인도 이런데랑은 비교도 안되게 한국 학생들이 좋은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둘째로, 15-19세 자살율입니다. 아마 WHO 인지 OECD에 가면 통계가 나오는데, 15-19세 (어느 나라건 대개 고등학생이죠) 자살율을 보면 세계에서 가장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낸다고 생각되는 한국의 자살율보다 호주, 영국, 미국, 뉴질랜드의 자살율이 더 높습니다. 교육 시스템이 자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거나 적어도 한국 교육 시스템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엄청나게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것은 아니란 거죠.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더군요.
그러나 딱히 기회의 공정보다 더 합리적인 가치가 있을까하는 물음엔 딱히 생각나는게 없네요.
로봇이 인간을 노동해방시켜서 모두가 기초소득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삶을 사는 먼 미래가 아니라면...
주변 환경 영향은 과소평가 하는 경향이 있는거 같더라고요
학문적으로 흥미를 느끼다가 현실에 달걀처럼 산산히 부셔져 버리니까요...
개인이나 집단이 얻는 걀과가 온전히 그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며
심지어 그 능력조차 운이라는 걸 생각하면 좀 더 겸손해지고
좀 더 나눌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책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ClienKit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