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딱 만 하루가 지났네요. 어제 이시간부터 새벽까지 겪었던 일들을 공유하면서 혹시 저와 같은 상황을 겪으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사용기를 남깁니다.
저는 9세 남아가 있는 3인 가정의 가장이고,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아들을 씻기고 내보낸 후 제 몸을 씻으려는 찰나,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들~ 넘어졌어?'라고 물어보니 '응~'이랍니다. '괜찮아?'라고 물으니 '응~ 괜찮아'라고 합니다.
'조심해~'라고 한 뒤 다시 몸을 씻으려는데 갑자기 안방에서 와이프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10년간 살면서 들어본 가장 큰 절규였네요...
놀라서 나가보니 아들 얼굴이 아주 그냥 피칠갑이 되어있는 겁니다. 다행히 아들은 덤덤했는데 크게 아파하지는 않는 눈치였고요.
평소 아들이 다치거나 얼굴에 상처가 나면 저와 와이프, 특히 제가 화를 좀 많이 냈는데, 아들녀석이 왠지 넘어진 뒤 피가 나자 별거 아닌줄 알고 말 안하고 있다가 피가 계속나고 아프니 엄마에게 온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어찌된 상황인지 물어보니 아들이 평소에 자주하는(아마 이 또래의 아들이 있는 부모님들은 다들 아실법한) 문에서 양손과 양 다리로 지탱하고 위로 올라가는 그 원숭이놀이를 하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고 합니다. 얼굴부터 떨어진거죠. 넘어지면서 턱과 앞니가 크게 부딛혔고, 윗니쪽은 피떡이 되어있었습니다. 이도 살짝 흔들렸고요.
순간 덜컹 가슴이 내려앉더군요. 영구치였거든요. 또래보다 영구치가 빨리 자라 앞니 두개가 모두 자란 상태였는데 그쪽을 바닥에 부딛힌 것으로 보였습니다. 울고 불고 절규하는 와이프를 달래고 아들을 화장실로 불러 가글을 시키고 피를 닦아주면서 물어보니 그렇게 아프지는 않다고 합니다. 에혀...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자식새끼 다치면 부모 마음 찢어지는 경험 해보신 분들 많으실텐데, 전 아들이 더 어렸을 때 몇번 그런 경험이 있어서 아들 다치는거에 유독 민감한 편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요.
이때 시간이 저녁 8시 정도였습니다. 와이프는 빨리 응급실에 가자고 하는데 저는 응급실에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불나게 야간진료가 가능한 근처 치과를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밤 9시까지 진료하는 치과 하나를 찾았고, 바로 아들 옷을 입히고 와이프와 함께 차키를 챙기고 밖으로 부랴부랴 나갔습니다.
어제는, 비가 참 많이 내렸습니다. 태풍 영향인 듯 한데, 비도 많이 내리고 바람도 꽤 심했죠. 저희는 우산을 부여잡고 간신히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내비를 찍고 출발하면서 와이프에게 '혹시 모르니 치과에 전화해서 진료받을 수 있는지 물어봐'라고 했죠. 지금부터는 시간 순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 오후 8시 10분 : 집에서 차로 20분 걸리는 오후 9시까지 진료하는 치과로 출발
- 오후 8시 15분 : 와이프 치과로 전화해 간호사와 통화, 간호사, 진료접수가 마감되어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하며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보라 함
- 오후 8시 25분 : 근처에 있는 종합병원인 강남병원 응급실 도착, 하지만 치과 진료는 과가 없어서 불가능하며 119에 전화해서 야간진료하는 치과 정보를 얻어보라고 안내받음(119에서 이런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 오후 8시 27분 : 119에 전화를 걸어 야간진료하는 근처 치과 3개 정보 수신, 와이프와 아들을 차에 태우고 우산쓰고 비바람 맞으며 차례 차례 전화를 함
- 오후 8시 30분 : 한 곳은 전화 안받음, 한 곳이 전화받아 다급하게 '아이가 넘어져 앞니를 다쳤다, 진료 가능한가' 문의하니 '진료 접수가 마감되어 진료가 어렵다'는 답변 받고 끊음, 마지막 한 곳에 전화해서 간호사에게 상황 설명, 간호사는 응급실과 119에 연락해봤느냐고 되물음, 이미 근처 응급실에 왔다가 진료가 불가능해 119를 통해 전화번호 안내받고 전화한 거라고 설명, 간호사가 원장님께 여쭤보겠다고 자미 기다리라고 함, 잠시 후 원장님이 퇴근 준비하셔야 한다며 진료가 어렵겠다고 함
- 오후 8시 40분 : 귀가 후 잠시 망연자실해 있다가 죽전 단국대 치과병원이 생각나 검색했으나 야간진료 하지 않음을 확인, 수원 아주대병원 치과병원도 야간진료 없음, 근처에서 가장 큰 병원인 용인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전화해 봤으나 치과 진료는 어렵다는 답변 받음, 분당 서울대 병원도 불가...
- 오후 8시 55분 : 와이프가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학교 치과병원에 야간진료가 가능한 치과 응급실이 있다는 것을 발견, 바로 전화해서 야간진료실의 의사선생님과 통화해서 상황 설명, 의사선생님은 경기도 용인이면 여기까지 꽤 멀다며 근처에 야간진료 가능한 치과를 찾아보고 연락주겠다고 하심
- 오후 9시 5분 : 의사선생님께서 지금 야간진료 가능한 곳이 없는 것 같다며, 오라고 하심, 그길로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출발
- 오후 10시 : 폭우가 쏟아지는 경부고속도로를 뚫고 서울대학교 치과병원에 도착,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로 야간 진료실 도착하니 의사선생님께서 전화하신 분이냐고 물어보심, 그렇다고 하고 접수 및 진료 시작
- 오후 11시 45분 : 접수, 상태 점검, 진료, 처치, 처방, 수납 등 모든 프로세스를 의사선생님 혼자 하시느라 시간이 상당히 오래걸림(그래도 진료 받은게 어디냐며 와이프가 안심시켜줌),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앞니 하나의 뿌리쪽 중간 부분이 부러진 것 같고 주변 치아에도 영향을 주어 흔들린다고 함, 일단 소독하고 레진으로 고정시켰으며 내일 아침 근처 치과 내방하여 처치 받으라고 안내해 주심
- 오후 11시 55분 : 업무팀 직원의 안내로 무인수납기에서 약 17만원 결제(모두 비급여), 귀가하니 새벽 1시
- 다음날 오전 10시 : 평소 다니던 치과 방문, 상태는 좋지 않지만 어제 밤에 처치한 덕분에 1주일정도 상황을 지켜보고 신경치료 등 필요한 처치를 해보자고 하심, 일주일 뒤 어제 서울대 치과병원에서 찍었던 엑스레이 사진을 가지고 다시 내방하기로 함
- 다음날 오전 10시 30분 : 서울대 치과병원 업무팀에서 연락옴, 비급여 항목으로 결제된 어제의 처치 비용을 유형 변경을 통해 일부 환부해 주겠다고 함, 13만원이 급여 항목으로 변경되어 약 4만원만 다시 결제(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 정말 최고임)
최대한 간단 명료하게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겪은 상황을 정리해 봤습니다. 오후 9시까지 진료한다는 치과들에 전화를 여러번 했지만 8시10분 ~ 30분사이에 전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가 가능한 치과는 없었습니다. 사정을 절절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받을 수 없어 너무나 실망감이 컸지만 치과 자체적인 사정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네요... 다행히 서울대 치과병원이 차로 안막혔을때 1시간 안쪽으로 도달 가능한 거리에 살았으니 망정이지, 어제 처치 안받고 오늘 오전에 동네 치과에 갔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물론 지금도 상황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어제의 처치로 일말의 희망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치과 야간진료가 필요하신 분들을 위한 팁입니다.
- 치과의 대부분은 오후 6시 내외로 진료 종료, 야간진료 가능한 치과는 특정 평일에 오후 8시 혹은 9시까지로 명시되어 있음
- 하지만 몇몇 오후 9시까지 진료가 가능한 치과들의 경우, 검색결과로 확인되는 진료시간은 신규 접수를 통한 진료시간이 아닌 이전에 접수된 건들에 대한 진료시간으로 생각됨
- 검색 결과만 보고 바로 치과에 가지 말고 반드시 전화해서 진료 가능한 지 확인 필요
- 응급실이라도 치과진료는 병원에 치과가 있지 않는 이상 어려움, 사전에 전화로 확인 필요
- 규모가 큰 대학병원에 별도의 치과병원이 있다고 할 지라도 응급실 혹은 야간진료를 하는 곳은 드뭄
- 수원 광교, 분당, 용인지역에 오후 9시 이후 야간 진료가 가능한 치과 없음
-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응급실(야간진료실)이 거의 유일한 대안
- 수도권에 살고 혹시 야간에 치과진료가 급히 필요하다면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야간진료실로 연락
전공의 집단휴진 사태로 인해 서울대학교 치과병원에 전화를 했을때부터 걱정이 많았습니다. 바로 오라고 하지 않으셔서 더욱 불안했고요. 진료거부인 것인가 살짝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너무나 친절히 맞이해 주시는 의사선생님(레지던트로 생각됨) 덕분에 아들도 잘 치료 받았고 저희 부부도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었네요.(의사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래서 서울 살아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야간에 치과진료가 급히 필요하고 수도권에 사시는 분들은 고민하지 말고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야간진료실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침착하게 잘 하셨네요. 아드님도 좋아질꺼에요.
-> 우리나라는 치과의사라고 하지만, 외국에서는 doctor가 아니라 dentist라고 따로 부릅니다.
배우는 것도 다르고 향후 진로도 완전히 다릅니다. 이번 전공의 파업과도 관련 없습니다.
치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은 치과 대학이 있거나, 병원 내 치과가 있어 치과 전공의가 수련 중인 병원 정도가 가능합니다.
거의 전부 대학병원이고, 대학병원에서도 안 되는 곳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치과 진료는 대부분 윗글 같이 '외상' 과 관련된 부분만 가능합니다.
일반 충치 치료, 사랑니 통증 같은 건 주간/야간 상관없이 응급실에서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근처에 치과 진료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보려면 위에 말씀하신 대로 119에 전화해서 물어보는게 빠릅니다.
119 상황실로 연결되는데 보통 인근에 치과 진료 가능한 병원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의대가 치대 약간 무시? 경시? 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있더라구요..
영역이 다른데 무시하고 말고 할게 있나요
의사들도 치과 영역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치과의사들도 일반 의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요.
그래서 보통 각 지역의 치과대학이 있는 대학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시면 위의 경우처럼 야간에도 응급한 치과진료를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저도 아들이 6살이라 가끔 위험한 행동을 해서 자제를 시키긴 합니다만... 제맘대로 안되죠 자식이...ㅡㅡ;;
여튼 마음 고생 많이 하셨는데 진료 및 의료보험 처리가 잘되어서 다행입니다.
귀한 경험 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아이 치아가 괜찮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저도 7살 남아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남 일 같지 않네요.
아프지 말고 괜찮다며 꼬옥 안아주세요.
에효.. 이미 문을 닫은 곳은 어쩔 수 없지만.. 애가 이빨을 망가져서 피칠갑이라는데.. 접수마감이라 안되고 퇴근준비해야 해서 안된다는 그 치과들은 참.. 기계적으로 따지만 맞는 말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너무 야속하게 느껴지네요.. 충치치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응급 상황인데 말이죠..
아드님과 비슷하게 다쳤던 적이 있습니다.
피범벅이 된 아이를 데리고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소아전문응급센터를 운영하는 아산병원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안내를 받고서 아산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앞니가 흔들리고 입술이 터지고 했는데, 다행이 코뼈는 안 부러져서 치료받고 3~4일 후 붓기가 빠지니 회복이 다 되었습니다.
인상적인 기억 하나.
치료를 다 하고 나서,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 후에 의료진이 아이에게 어떻게 다친 것인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더군요. 아마도 가정폭력 등으로 다친 것은 아닌지를 체크하는 과정인가 봅니다.
은퇴하면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보다는 종합 병원이랑 지하철역 가까운 도심에 살아야한다는 말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