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머리하러 미용실에 간다' 라는 그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 저에게는 '가끔씩 누군가가 나에게 내주는 숙제' 인 것만 같습니다.
예전에 시력이 그나마 좋을 때는 저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미용실에 가기 전에 어떤 머리를 할지, 어떤 미용실을 갈지 말고는 고민할 게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의 저에게는 '그 미용실에 내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미용실 안에서 부딪치거나 넘어지지 않고, 잘 활동할 수 있을지' 를 먼저 생각해야만 합니다. 물론 여기에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민인 '오늘 할 머리 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덤입니다.
'머리하는 날은 마음을 편히 갖고 싶어서', '다들 머리하러 같이 가지 않나?' 등 이런저런 핑계들로 매번 친구들과 동행했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용기를 냈습니다.
낮에도 잘 안보이지만 특히나 야맹증이 있는 저에겐 완전 안 보이는 밤이 더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오늘은 낯선 곳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까지 더해져 극악 난이도의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혼자 길을 나서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복잡하고 사람 많은 곳은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고 불편한 점도 더 많기 때문에 주로 작은 규모의 미용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모발도 얇고 반곱슬인데다 두상도 옆이 튀어나와서 머리하기가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같은 곳의 선생님께 머리를 믿고 맡겼었습니다.
처음엔 친구 소개로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었는데 실력도 좋으셨지만 무엇보다 '솔직하고 담백한 스타일' 이라서 좋았습니다.
제가 '시각장애인' 임을 밝히면 대부분은 '시각장애인처럼 안 보여요!'라고 칭찬(?)을 하거나 당황하며 '전혀 몰랐어요 얼마나 안 보이시는 거죠?'라는 반응이 대부분인데 이 선생님은 그저 담담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저를 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 편히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번에 독립해서 1인 미용실을 오픈하신 덕분에 오늘의 도전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또 새로 오픈한 낯선 장소까지 찾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하고, 또 그 안의 구조나 화장실 등도 다시 머릿속에 담아야 하니까 말이죠.
'밤에 혼자 낯선 곳을 찾아간다는 건' 마치, 실눈을 뜨고 선글라스를 낀 채 한밤중 어딘가를 찾아가는 기분이랄까요. 저는 용기를 내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막막한 마음을 다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마음이 약해져서 포기해버리기 전에 저는 얼른 물을 엎질러 버렸습니다. 일단 미용실 예약을 하고 장애인 콜택시까지 호출해 버린 것입다. 예약시간은 오후 6시. 딱 퇴근시간과 겹쳐 버렸습니다.
역시나 장애인 콜택시 접수량이 많아서 전화로 접수를 해도 차량이 배정되기까지 한참이 걸렸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5시 40분을 넘어가는데 이제서야 저를 향해 호출 차량이 출발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서 이제 불편하게 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고, 목적지까지 기사님이 안내해주시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특정 시간대는 차를 호출하는 것조차 힘들고 평소에도 차가 배정되어도 언제 도착할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일정도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거나 아님 거의 약속시간 1~2시간 전에 출발해야 하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에 밖에서 기다려야 할 경우에는 더욱 난감합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되서 삶의 반경이 훨씬 넓어졌기에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렵사리 차를 타고 출발은 했는데 역시나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차가 너무 막힙니다. 미리 장애인콜택시를 호출하긴 했지만, 다음번에는 이 시간대에 이 정도 거리는 더 미리 차를 불러야만 한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네비를 따라 목적지 근처에는 도착했지만 결국 한 번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안 보여서 못 찾고 기사님은 보여도 어딘지 몰라서 못 찾는 이 상황이 가장 슬프고 당혹스럽습니다. 가끔 오죽하면 저한테 길을 묻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물어보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근처에서 한참을 헤매다 제가 디자이너 선생님께 전화로 길을 물으니 손수 저를 찾으러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KJ헤어에 도착했습니다. 결국 지각을 좀 했지만 그래도 일단 도착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대로변은 아니고 관저동에서도 번화가가 아닌 약간 골목이고 바로 앞 차도 쪽도 어두운 편이어서 제가 찾아가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가게 이름도 KJ hair 라 다 영어라서 한글보다 가독성이 떨어지다 보니 제 기준에서는 더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인 저의 입장에서는 정말 마음이 편안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1인 미용실이다 보니 내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볼 것도 없고, 실내 구조를 익히거나 이동할 때도 동선이 단순해서 정말 편했습니다.
오늘도 디자이너 선생님은 쉽지 않은 내 헤어를 정성껏 손봐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분명 나보다 한두 살 어리신 걸로 알고 있는데 느낌은 꼭 '형님' 같습니다. 무심하게 담백하게 대해주시는 덕분에 오늘도 부담 없이 머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반택시보다 훨씬 저렴한 장애인 콜택시지만 그래도 왕복으로 택시를 타고 올만큼 가성비 좋은 가격과 온전히 저에게 집중해 주시는 게 좋아서 계속 여길 찾게 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시각장애 특성상 아무래도 익숙한 환경과 물건을 선호하게 되는 경향도 있으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의 길고도 길었던 여정이 끝이 났습니다. 초행길이라 더 긴장되고 힘들었지만, 돌아오는 건 그저 찾아갔던 것의 '역순' 이기에 훨씬 수월합니다. 다시 장콜을 불러 타고 아파트 단지에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만난 순간 드디어 '살아서 돌아왔다' 라는 생각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낯선 곳에 혼자 외출할 때면 늘 오늘 같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또 어딘가의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큰 도전이나 고난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작은 실패에도 나에게 그동안 엄격했었기에 오늘은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성공을 맘껏 칭찬해 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저를 토닥여주고 장하다고 마음으로 크게 한번 안아 주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이런 '성공' 이 쌓이고 쌓여서 자존감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는 '경험' 이란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저의 다음 도전이 기대가 됩니다.
늦은 시간 오늘도 저의 긴 글을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평범한 시각장애인 달체리>
- 달체리 사용기(자기소개)
https://blog.naver.com/a631888/221723362562
-저시력 시각장애 사용기 : 혼자서 은행, 백화점(아트박스, 의류매장), 대형마트 다녀오기
https://blog.naver.com/a631888/221709116761
- 잘 보인다는건 어떤 느낌? ; 내가 바라본 세상
https://blog.naver.com/a631888/221623794277
저도 맨날 졸았었는데
머리숱이 줄기 시작한 뒤로는 한가닥이 아쉬워서 ㅠㅠ 자세를 항상 잘 유지해야 합니다 ㅠㅠ
그냥 생색내기용 아닌지 의심했던 저를 반성하게 되네요.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서비스라는 것을 배우고 갑니다.
아직도.. 장애인콜택시가 문제가 많긴해요.
각 장애별로 구분하지 않고 하다보니
안내하고 운전하시는 기사님들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어찌 모든 장애 특성을 다알고 다 배려하겠습니까
그치만 정말 일부 기사님들의 불친절이나
시각장애인에게 혼자 찾아가라고 하거나 찾아오라고 차메서 내리지도 않는 분도 있어요. 참 그럴땐 이게 화를 내야할지 기분이 참 참담하기도해요. 현실적인 문제들인지 계속 건의를해도 잘 바뀌지 않는것 같아요.
그래도 예전에 저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찾아갈때에 비하면 차가 없던 사람이 차가 생긴것과 비슷할 정도로 행동반경이 넓어젔고 심리적인 안정감이 일상에서 많이 증가했어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ㅠㅠ
독립적인 이동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가격적인 부담을 줄여주고 특히 휠체어이동을 하는분들에게는 정말 유용합니다
아직 장애유형별로 개별화된 지원이나 응대라던지 친절도같은 부분은 추후교육을 통해서 개선되야할 부분이 필요하겠지요 ㅎㅎ
저도 직업상 장애학생들을 태우고 장애인콜택시나 특장차를 많이 타보았는데 장애인콜택시 숫자가 많지 않다보니 택시기사님들도 예약시간에 시달리시더라구요.(특히 특장차)
선천적 장애가 아닌 후천적 장애는 본인이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이.
평생 걸릴수도 있다고 하던데. 받아들이지 않고 평생 괴로워 하면서 산다고.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아직도 다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나 이런곳에서 제스스로도 편안히 밝히고 꺼내보이는 연습을 하는것도 있습니다.
계속 노력해야만 하는 문제지요 ㅎㅎ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힘내보려구요. 날 추운데 감기 조심하셔요
응원 감사합니다!
그래서 견디고 힘내는 부분들도 있어요.
이렇게 힘나게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ㅎ
저도 철이님 응원하겠습니다.
요즘 사연만 다르지 안 힘든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같이 힘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적게 먹는 습관이 참 어렵네요.. ㅜ.ㅜ 살을 빼야하는데..
가스님 반가습니다 ㅠㅠ
적게 먹는 습관은 저도 언제나 힘든 부분이네요 ㅠㅠ
세상은 넓고 맛있는건 너무 많으니까요.
말씀하신것처럼 '나에겐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힘든일' 일 되기도 하기에
저도 비록 장애를 갖고 있어서 불편한 점들이 많지만 저와 다른 장애나 불편함을 가지신 분들을
가끔씩 생각해보고 같은 눈높이에서 고민해보기도 합니다.
항상 제 글 봐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항상 힘나고 있습니다 :)
댓글을 달아야 하나 싶지만
달체리님 글을 보고나면
항상 많은 부분에서 배웁니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네요
오늘도 참 많은 불안감과 두려움들에 맞서 싸워야만 했지요ㅣ.
그래도 담담히 하루를 살아낸 제 자신을 발견할때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조금은 성장하고 성숙해진건 아닐까 싶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