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 평범한 아재의 김민기 예찬론 입니다.
본문 중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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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18년 9월 13일
jtbc 뉴스룸에서 김민기 선생의 공식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저에게는 영원한 정신적 멘토이자, 문화예술계 우상이기도 합니다.
워낙에 은둔형 인사 이기도하기 때문에, 어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이의 존재를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잘 모를 듯하여,
이 분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감상글을 올려봅니다.
저도 절대 전문가는 아니고,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진흙 속 진주를 살짝 비추어보는 마음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김민기의 작품들을 공유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분에 대한 저의 미천한 지식을 끄적거려봅니다.
김민기 선생은 원래 서울대학교 미대로 입학한 미술학도였으나,
대학에서의 미술수업이 본인과 잘 맞지 않았는지 낙제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듀엣을 결성하여 노래를 만들자는 친구의 요청으로
본격적으로 음악쪽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여기에서부터 김민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서울 음대에 입학하여 반대로 미술계를 얼씬거리던 조영남과의 만남이,
몇년 전 예능프로를 통해서 회자되기도 하였는데, 조영남이 그에 대하여
'결이 참 고운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고, 김민기 라는 싹이 그때부터
피어나고 있었다느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훗날 조영남, 이장희, 조동진, 김세환, 윤형주, 송창식, 양희은 등의 포크가수들 쪽에서
흠모할만한 인재였다고 하는군요.
김민기는 대학시절 '아침이슬'이라는 명곡을 만들게 됩니다.
아침이슬 이라는 곡은 대한민국 민주사를 관통하는 문화예술의 끈이지요.
피흘리며 쓰러져간 군부독재시절의 지성인들이 김민기의 노래를 불렀고,
지금도 부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부르게 될 것입니다.
이번 jtbc 인터뷰에서 아침이슬 탄생과정이 선생의 입을 통하여 공개가 되었는데,
억압과 강제에 맞서는 모든 인간군상의 고통과 저항에 대한
그분의 고민을 엿보는 것 같아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김민기 선생과 오랫동안 음악적 동지였던 양희은은 오래전 한 예능에 출연하여,
'김민기씨가, 피아노 치면서 만든 악보를 여러번 고치다가 맘에 안들어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고 그냥 나가셨는데, 내가 그 악보를 주섬주섬 주워서
이어붙인다음 며칠 후 가서, 내가 그 노래 부를테니 기타 반주좀 해주셔'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이것 또한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양희은 씨의 앨범을 통해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한편, 그의 작곡 능력을 알아본 당시 음악평론가의 도움으로
71년도에 김민기 본인의 앨범을 정식으로 출반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슬퍼런 군사독재 시절이었기에 다음해에 전량 회수당하고
그의 노래는 죄다 금지곡이 됩니다. 게다가 위험인물로 낙인이 찍혀
이후 끊임없이 감시와 탄압을 받으며 노동자들과 함께 일을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쓸쓸한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80년 이후에는 연극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김지하 시인과 그의 장모 이기도 한 박경리 선생과
교우를 하면서 문학적으로 접근을 많이 하신 것으로 보여지는데,
학전 이라는 극단을 만들고, '지하철1호선' 이라는 작품으로
대한민국 현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소시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지요.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혜화동에서 그 작품을 딱 한번 본 적이 있는데,
연극이라는 것이 정말 울림이 크고, 적극적으로 피부로 와닿는 것 이더군요.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장현성, 안내상, 송강호, 조승우 같은 배우들이 학전 출신인 것을 보면
김민기선생의 아우라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김민기 선생이
독재정권에 대하여 저항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대변하기 위하여
계획하고 노래와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번의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그 분의 평소 대담과 기타 인터뷰를 보면
인간 자체에 대한 근원적 고찰과 역사, 민족 같은 것에 대한 깊은 사색을 통하여,
순수하게 철학적 시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곡을 붙였는데,
그 시대와 사회, 사람들의 요구, 그리고 공감대 등이 한데 어울려
자신의 곡이, 시대가 요구하는 노래로 변화 되었다고 하지요.
그분의 노래에 등장하는 떠오르는 붉은 태양도, 묘지도, 그리고 철책, 겨레와 같은 단어들도
흔히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이고 우리가 항상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들인데,
시대가 사유를 제압하고, 자유를 억누르고, 진실을 통제하면서
그분의 노래가 누구에게는 독이요, 누구에게는 약인, 하나의 상징으로 승화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지하철1호선 이라는 연극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하니,
이 시대의 젊은 지성인들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또한 연극 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노래는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타 연주로만 봐도 대중 가요사에 있어서 클래식으로 꼽힐만큼 우수하고,
아침이슬, 가을편지, 내나라내겨레, 봉우리, 늙은군인의노래, 기지촌, 상록수 등등
대한민국 가요사에도 큰 역사를 만들어내셨지요.
특히 '봉우리'와 같은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일생을 바라보는 처연함과 허무함,
자신만의 시각에 갇혀서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 고통에 대해서
깊은 깨달음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송창식 선생은 예전 모 방송프로에서,
김민기와 같은 작사,작곡 능력이 내게도 있었으면... 하고 넋두리를 하시더군요.
특히 노무현 대통령께서 생전에 상록수를 부르시는 영상을 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김민기의 목소리는 매우 낮고 울림이 깊습니다. 혹자는 그분의 노래를
동 트기 전 넓은 대지에서 뿜어져나오는 운무같다고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엄청난 테크닉으로 단련된 아이돌 가수들의 낭랑하고 격정적인 목소리에 적응되어 있다면,
가끔은 시간을 내어서 김민기 선생의 노래를 들어보세요.
속도를 늦추어 글자 하나하나 가사를 음미하고 그 뜻을 해석해보세요.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하였던 음악의 또 다른 세계,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이 분을 TV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오로지 순수하게 대중문화를 파고들어 예술로 승화시키신 분,
그 예술이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퍼져 민주화의 등불 역할을 한분
스스로 말하는, 소위 무대뒤 '뒷것'이 되어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분.
사회가 썩어가고 병들 때 가장 먼저 우리가 떠올려야할 대중문화인 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주요 인터뷰 내용의 발췌, 코멘트 입니다.
[앵커]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가 좀 긴장이 좀 됩니다. 사실 인터뷰할 때마다 긴장을 안 하는 건 아닌데 오늘 특별히 좀 긴장이 됩니다. 혹시 김 선생님은 긴장 안 되십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죽겠죠, 뭐. 이렇게 있는 게.]
방송에서 시선을 제대로 두시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는 모습이, 이분 평생에 TV인터뷰 같은 것을 거의 하지 않으셔서 매우 불안한 모습이셨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손석희 앵커는 긴장을 하고 있다고 표현을 한 것이, 이 분에 대한 섭외의 어려움이나 존재의 크기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경의를 표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앵커]
얼핏 어떤 느낌이 드냐 하면 사실 여기 문화초대석은 많은 분을 모셨는데 오늘 저의 개인적인 느낌이랄까. 우리 대중음악사가 커다란 어떤 대하, 그러니까 큰 강줄기라면 그 발원지에 계신 분을 만나뵙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듭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건 너무 거창한.]
김민기라는 존재에 대해서 손석희 앵커가 다시한번 존경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가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앵커]
물론 미술 전공하시고.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목소리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그냥 노래를 만들어봤던 것뿐이죠.]
김민기 선생은 항상 노래를 만들어 주로 양희은 같은 가수들에게 주고, 본인은 주로 기타로 반주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김민기 선생이 직접 부르고 제작한 아침이슬 최초 앨범은 지금 초유의 레어템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명반 중에서 유일하게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없이 71년 대도레코드사 김민기 LP를 선택하고 싶네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목소리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그냥 노래를 만들어봤던 것뿐이죠.]
[앵커]
아니, 그런데 저는 이 목소리가 정말 좋습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너무 낮아요.]
[앵커]
아닙니다. 정말 듣기가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계시다고 저는 감히 생각을 합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고맙습니다.]
김민기 선생이 직접 부른 노래는 톤이 매우 낮고 울림이 큽니다. 설경구는 어느 인터뷰에서 '김민기 선생님이 직접 부르신 아침이슬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라고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앵커]
혹시 이 작품을 관통하는 어떤 주제를 잘 나타나는 대사라든가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소개해 주실 수 있는 게 있는지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중간에 서울역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곰보할매가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극중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어떤 정점으로 돼 있는 할매인데 그 할매가 부르는 노래 가사가 "그래도 산다는 게 참 좋구나 아가야"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속에서 버텨내는 어떤 그런 긍정적이라고 그럴까요. 그런 걸 대표하는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분의 평소 사상과 가치관에 대한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것 같습니다. 박경리 선생의 생명론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아무래도 아침이슬 얘기를 꺼내실 것 같아서 그래서 이 말씀 드리려고. 그런데 이 얘기는 어디서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얘기라서.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집이 정릉에서 수유리 우이동 쪽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가 야산에 있었고 무덤도 몇 개 있긴 있었는데 반지하창고. 옛날에 연탄들도 갖다놓고. 거기를 처음으로 제 개인 작업실로 쓸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 밤에 늘 그림 작업 하다가 이 작업이 하다 보면 막히잖아요. 막히면 기타 잡고 노래 만들고 그러다가 또다시 그림 작업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왔다갔다 했었는데 밤에 기타 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없고. 그런데 한밤중이었는데 그때 그림 작업이 막혀서 노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침이슬이었는데 가사를 '그의 시련일지라'라고 써놨는데 거기서 음악이 더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꽉 막혀서 이제 화성이건 멜로디건 더 나아가지 않아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나의 시련'으로 바꿔봤어요. 그러니까 아마도 그의 시련이었을 때는 예수나 석가 이런 성자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그런 진행이었을 텐데. 그런데 나의 시련으로 바꾸니까 금방 다 풀리더라고요, 끝까지.]
[앵커]
그다음에 나 이제 가노라로 진행이 되지 않습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래서 '그의 시련'에서 '나의 시련'으로 자리 바꿈이 그게 그 당시 젊은이들한테 그 부분이 그렇게 읽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많이 부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얼핏 해 봅니다.]
수 많은 민주인사들과 지성인들이 애창하던 '아침이슬'의 탄생과정을 저도 이번에 처음알게 되었습니다.
[앵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올라'는 그런 가사는 그러면 아까 말씀하실 때 수유리 우이동 그쪽의.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야산에 있는 무덤이 그런 걸로 보였으니까 그건…]
김민기 선생이 평소 각본을 만들고, 작사를 할 때의 모습이 단적으로 보여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의도로 김민기선생을 호도하려고 하지만, 선생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심상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양희은씨가 예전 예능프로에서 사람들이 너무 의미를 갖다붙인다고 하기도 하였죠.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그 전에 사실은 군가도 지으셨습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 물론 이것은 나중에 이제 소위 운동권 가요가 되기도 했습니다마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런데 그건 군가라고 할 수가 없는 게 반주만 스네어드럼이 들어갔을 뿐이지.]
손석희 앵커가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오해를 하였는지 모르겠지만, 늙은 군인의 노래를 군가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하지만, 그곡은 군가가 아닙니다. 잘 들어보면 한 연륜있는 사람의 회한과 넋두리를 시로 만든 것이고 그것이 군인이었다는 것일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앵커]
그렇군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침이슬을 빼놓은 김민기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냥 함께 같이 살아가는 늙은이죠, 뭐. 그걸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인터뷰 모습을 자세히 보면, 선생의 모습이 어디를 응시하지 못하고 말투도 매우 어눌한데, 저의 생각으로는 평소에 술을 상당히 좋아하시고 또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더군요.
끝.
옆에 앉아 밥먹던 와이프는 알더라구요 연극도 봤다고..
전 김민기 선생 노래 중 '작은 연못'과 '친구'를 제일 좋아합니다.
강헌의 주장에 의하면...
김민기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가수가 조용필이고,
조용필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가수가 역시 김민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강헌이 둘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하더군요..
티비에서 사실상 처음 보는 것 같은 그의 모습에 가슴이 애틋하기도하고.... 진솔하고 담백한 답변들이 하루가 지났는데도 참 가슴에 울립니다. 손석희씨가 마치 팬보이처럼 설레보이는 모습도 처음이었습니다. 좋은 감상 감사합니다.
이 분을 신문 기사로만 봤었는데, 인터뷰로는 처음 봅니다.
저는 요즘도 이 분 노래를 자주 듣는데, 40년 이상된 앨범들인데도 녹음(믹싱 이라고 해야하나?) 상태가 아주 좋더군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6352.html
위 인터뷰 기사도 함 보시죠^^
멋진 사용기(추천기) 고맙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넋놓고 인터뷰를 봤었어요..(요즘 뉴스룸 잘안보는데 ㅎㅎ)
잘 얘기하지 않는데,, 실은 김민기선생의 존경의 의미도 담아 제 큰아들 이름이 김민기에요...^^
글 잘봤습니다.
손석희씨의 반응이 좀 놀랍네요....;;
저렇게 팬처럼 행동하는 걸 처음 보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