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외로 일단 트럼프가 이번 순방에서 국빈방문으로 아시아에서 뜯어간 돈을 합산하자면 한중일만 대략 5000억불정도 되는것같습니다.(일본 1500억불 한국 750억불 중국 2800억불)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용처를 잃고 놀고 있는 돈이 1500조정도 된다는 얘기 들으니 뭐 그닥 심하게 나쁜일 같진 않은데-_-a 트럼프가 다른 국가에 투자를 요구하는걸 보자면 아무래도 미국내 상하원이나 연준을 통해 재정투자를 할수 없는 상황이기에 다른 국가에 투자를 요구하는것 같습니다. 뭐 오늘날 미국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MOU라 하더라도 이명박과는 다른게, 이명박은 그 투자를 요구할 수 없는 나라의 (당시) 대통령이었지만 트럼프는 지금 현재까지는 전세계 넘버원인 국가의 대통령이란게 다르죠. 뭐 사실 그렇게 투자해주는게 역으로 IMF같은 상황 발생시 더 낫긴 할겁니다. 뭐 이정도면 몇일간 얘기는 된것같고..
음. 이번에 리뷰할 책은 쟁점한국사인데요. 일단은 전근대, 근대, 현대 세가지 편에 이르고 있는데.. 일단 한권당 240P정도 되고요. 대략 8명의 필자들이 30P의 내용기고를 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총 23명의 필자들이 책을 완성한걸로 기록하고 있죠. 책은 올해 출판되었고요. 일단 구분으로는 전근대는 조선 중기까지, 근대는 19세기 중후반부터 일제강점기, 현대는 광복 이후를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문제를 짚어넘어간다면 '전근대'라고 부른 시기를 너무 길게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역사가 현실적으로 보면 3000년정도 된다고 합니다만(뭐 글로 제대로 쓰여진 역사로 치면 2000년정도 되는 셈이고) 그중 고려사, 이씨조선 500년정도만이 그나마 제대로 글로 쓰여진 바 있을것이고.. 그 이전의 것은 좀 짧죠.-_- ; 그렇더라도 내용적인 해석에 있어서 전근대의 볼륨이 너무 적다는 문제가 있더군요. 생각으론 고려까지를 일권으로 묶고, 조선까지를 이권으로 묶고 근현대를 삼권, 현대를 사권으로 묶는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아무래도 서양의 인쇄혁명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활용할만한 활자매체는 서양이 더 오랜게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문제도 있지만 기왕 제목을 '쟁점 한국사'라고 붙일 생각이었으면, 온건한 해석과 덜 온건한 해석(...) 두가지를 양면 충돌시켜 독자에게 해석할 여지를 주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_- ;
일단 저도 그래서 책을 구한 이후 읽어본 이후 소장할만한 부분은 현대사밖에 없다 생각해 그 부분만 구매했는데..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있죠. 아무래도 한국사에 대해서는 다른 책도 좀 찾아보는게 좋을것같고요. 사실 내용으로 본다면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내용을 복습 및 좀더 심화해나가는 책 그정도 수준이라고 보입니다.(뭐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이런 인문적 수업이 많이 부족한게 문제긴 하죠. 책을 봐도 다 고등학교 교과서때 한번쯤 나온 얘기들인데 정작 그게 뭔지도 모르고 외우게만 했으니.. 아무리 이게 줄세우기를 위해 존재하는 거라 해도 줄세우기도 다른 방법이 충분히 있지 않나 생각도 들기도 하고..)
A.전근대
1.삼국
일단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인데, 그 서술에 있어 근대적 가치를 무리하게 껴넣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더군요. 잘 읽히지도 않고..-_- ;
전근대에서 인상깊은 부분이라고 한다면.. 일단 고대사의 뿌리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문명적 토대를 만든 국가를 고조선과 부여로 잡은게 아닐까 싶습니다. 고조선의 경우는 필자는 기원전 15-10세기 이후가 고조선 역사의 출발시점이 아닌가 하고 말하더군요. 부여의 경우 기원전 3세기에 등장해 7세기정도 존속 후 고구려에 의해 멸망했는데,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의 후손임을 자처했습니다. 부여의 존재가치가 생각보다 크단 것이죠. 또한 이 부여의 경우 흰색을 숭상해 흰옷을 즐겨입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한반도의 민족전통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죠.
신라의 경우 진골과 성골이라는 구분 자체는, 그 것이 '피의 순도'에 관련되어있다기보단, 불교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성골이 불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됨은 聖이라는 글자 자체에서 어느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 부처를 '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56P
사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시스템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그 흥망성쇠를 가른 김춘추와 연개소문에 대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 삼국간의 싸움에서 신라의 김춘추는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사실 고구려 관련해서는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에 패퇴하는 일이 그 이전에 발생했기도 했죠.(...) 필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수당의 등장과 삼국간의 치열한 대립이 한반도를 생존게임으로 몰아넣었을 당시 백제와 고구려는 멸망하고 신라만 나라를 보존했다.'
사실 한국 정세 관련해서 상당히 핫한 사건이라 나무위키 등에도 기재가 되어있더군요.
https://namu.wiki/w/%EC%82%BC%EA%B5%AD%ED%86%B5%EC%9D%BC%EC%A0%84%EC%9F%81
어렸을 때는 저도 단순히 '같은 민족을 다른나라와 손잡고 쳐부숴?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연히 다른 나라였기에 현실적인 파악 아래에서 일을 도모한다 하더라도 나쁠건 없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왕위를 찬탈했던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신라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입니다. 연개소문은 당의 정벌을 물리치고 김춘추에 대해 신라와의 협상을 거부합니다. 연개소문의 경우 국내정치적인 필요에 의해(민심 규합) 국외정치적으로 호재를 만들려고 일부러 압박을 했었단 얘기죠. 반면 김춘추의 경우 당시 불교가 아닌 유교를 통한 왕권강화를 준비하면서, 당시 불교가 대세였던(...) 신라의 정치판을 유교로 돌려놓죠. 유교 자체가 예, 질서 등을 상징하는 다소 보수적인 시스템이란 부분을 생각한다면 저자는 왕권에 있어 종교가 아닌 시스템적인 강화를 노린 쪽으로 해석하더군요. 뭐 이래저래 말하더라도 유교가 다소 통치질서로서 편한 감이 있죠.(...)
일단 저자의 해석은 당시 세력은 고구려가 더 유리했을지 모르나, 고구려는 정당성이 없는 왕인 연개소문이 앉아 국외정치쪽에 쓸 여력이 별로 없었고, 반면 신라는 국내정치적으론 안정된 국가라 국외정치를 할 여력이 있었던 것으로 읽힙니다. 고려시기는 넘기구요.. 뭐 사실 이당시 역사가 대체로 개판오분전이라 적기가 참 그렇군요-_- ;
2.조선 대동법
음. 해당 파트는 이정철이란 필자인데 재미있더군요. 이 사람의 경우는 흥미로운 시선이 제법 있는데.. 당쟁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 특히 그렇습니다.
일단 당쟁에 있어서는 당쟁을 단순히 소모적인 관점에서 보는 시선 자체가 일본인 학자에 의한 것임은 어느정도 아실겁니다. 사실 흔해빠진 '근대'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저놈은 맨날 나눠서 싸운 놈들이다'라는 편견에 가까운 얘기란 말이죠. 예를 들자면 결속력이 강하다고 얘기하는 민주주의에서 양당이나 혹은 다당이 권력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도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단순히 소모적인 논쟁밖에 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다당이 경쟁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요소중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죠.
'당쟁은 권력을 향한 투쟁이다. 그것은 권력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 일본의 주장이 옳으려면 탁상공론에 불과한 이념적 투쟁의 반대편에, 건설적인 정책논의로 가득찬 정치운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나라는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187P'
저자는 조선시대의 당쟁의 경우는, 왕권과 신권 두가지가 서로 부닥치는 일종의 계급투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 것이 민주주의적 계급투쟁은 전혀 아니지만요-_- ; 사실 한쪽 계급의 이해만 충돌시키기보다는, 계급간의 이해를 서로 맞부닥치는 것이 더 건전하다고 보는 관점은 책외로 마키아벨리가 삼권분립의 원시적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부터 이미 나온 관점이죠.
'조선의 권력은 이질적인 두 요소로 구성되었다. 세습되는 권력인 왕권과 선출된 권력인 관료권, 즉 신권이 바로 그 것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본래적인 긴장이 있었다. 이것은 마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본래적 긴장과도 비슷하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핵심도 둘 사이의 긴장에서 주로 비롯된다. 191P'
예를 들어 이런 당쟁에서 선비란 계급이 탄생했는데, 이 선비에 대해서는 '불의한 시대에 도학적 신념'을 지킨 존재라고 저자는 적고 있습니다. 뭐 그것이 틀리다고 생각하건 옳다고 생각하던간에, 해당 선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선비는 적어도 자신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던 것에서 몸을 피해 운신했다고 봤을겁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권력을 탐하고 싶다면 배덕하면 그만이죠.(...)
일단 해당 부분에서 인상깊은 것은 대동법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자는 이 것이 왕조의 수명을 100년 이상 늘렸다고 보고 있는데 다소 뻥이 심한 것 같지만(...) 일부분 이해할 부분도 있습니다.
'모든 국가체제는 그 효율을 감가상각하면서 시간을 견딘다. 아무리 훌륭한 체제도 예외가 아니다. 201P .. 대동법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일은 부패한 공납시스템에서 오랫동안 막대한 이익을 얻던 세력을 차단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극단적인 사회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대동법 성립 이전에 백성들이 1결당 부담하던 액수는 대략 60말 이상이었으나 대동법 성립 이후에는 12말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정부 재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대동법 성립 전에도 정부 수취액은 그정도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205P'
그 밖에 조선시대 얘기중에 재미있던 부분은 지금 현재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나라'라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있지만, 그 당시에도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인 나라'라는 인식이 지식인들 사이에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병자호란 이후 18세기 후반까지 조선은 청과 일본이라는 두 강국 사이에서 힘겨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청의 굴기와 압박때문에 만세불공지수 일본과 내키지 않게 화해하고 그들을 우방으로 끌어안아야 했던 것, 왜관을 복구하고 통신사를 보내 일본을 다독여야 했던 것은 두 나라 사이에 낀 복배수적의 나라 조선의 고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41P'
뭐 그래서 어찌했는가.. 뭐 그냥 일본 중국 둘다 다독이면서 살았죠 뭐-_- ; 뭐 현대도 별다른 지혜가 필요할거라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B.근현대
1.동학농민운동
근대를 이해함에 있어서 가끔씩 우리의 경우 지금의 잣대를 쓰고 과거를 판단하고자 합니다. 일단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적은 파트의 저자의 경우(배항섭) 역사해석에 관한 서구편향이 있다고 비판하더군요.
예를 들자면 관료제의 경우 지금 현대를 사는 사람은 잘 느끼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현대에도 정부나 대기업-중견기업 등을 지배하고 있는 질서가 바로 관료제인 것과 같죠.(애초에 막스 베버가 예찬했듯이) 그런 것도 있지만 서구 근대적인 사고체계와 전근대(동양의 전근대를 포함해 모조리)를 문명과 야만이라는 것의 관계와 같이 생각하는 문제도 문제이기도 하고요. 저자가 그렇게 적은 것은 민중운동에 있어 그 것이 민주적, 근대적 운동이었다고 꼭 포장할 문제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실제로 세계사적으로 볼때도 '근대이행기'의 민중은 통치자들이 제시한 고래의 법이나 관습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정당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구법'에 근거한 요구는 저항을 철저하게 급진적인 형태로 이끌기도 했다. 35P ..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것같은 우리의 전근대 사회에서도 다양한 민주적 집회와 공론의 장이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민중운동이 발현될 수 있었다. 42P'
2.대한제국 외교의 가능성과 한계
대한제국의 성립 관련해서 일반적인 인식은 '힘이 없는 나라가 자존광대하다가 다쳤다'라는 인식이 일반적일듯 싶습니다. 뭐 저도 그와 인식은 별다를바 없고요. 저자는 그곳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발견하자고 적고 있는데.. 일단 전 이부분에 대해서는 별로입니다.-_- ; 저자도 그렇게 얘기될 수 있는 부분을 충분히 적고 있군요.
'1899년 12월 1일자 황성신문은 논설에서 이 국면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지금의 경우에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하더라도 근심이요,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하지 않더라도 근심이요, 일본이 이기고 러시아가 패하더라도 근심할 것이요, 러시아가 이기고 일본이 패하더라도 역시 근심할 것이다." 63P'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좋은 일이 없으니 그렇게 망한 외교도 드물겁니다.-_- a; 책외로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테제라면, '국내정치에 국외정치를 이용하러 들지 말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대의 경우 전두환이 자기 체제의 정당성을 원해서 김대중의 목숨과 미국의 인정을 맞바꾸려 한 일이 있었죠. 뭐 박근혜도 엄밀히 말한다면 국외정치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 하다가 발렸고요.
전두환은 이번정권 내에 심판당했으면 좋겠군요.(과태료 추징만 해도-ㅠ-)
3.이승만
뭐 이승만에 대해서는 암울하지 않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지 않을겁니다. EBS역사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인가 볼때도 느낀 부분이지만 역시 이승만은 대단한 암군이긴 하군요.-_- ;
'임시정부의 재정은 애국금과 인구세 수입으로 충당했다.-하지만 구미위원회는 지출 총액의 13ㅓ센트밖에 안되는 금액을 상하이로 보내왔다. 이 말은 곧 상하이에 보내는 돈의 7배정도를 구미위원회에서 사용했다는 뜻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승만이 미국에서 쓰고 남은 일부를 상하이에 보내주는 식이었던 것이다. 127P .. 이승만이 1919년에 미국정부에 제출한 위임통치 건의안 문제는 계속해서 이승만과 임시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그 건의안은 미국이 국제연맹의 위임을 받아 한국을 위임통치해달라는 것이었다. .. 신채호는 이승만을 '없는 나라도 팔아먹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반대하기도 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승만이 미국에서 여자꼬시고 그러다 걸려서 하와이에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빌고 있을때, 정작 임시정부는 이승만이 '조선을 살리자!'고 광고해서 얻은 돈의 1/10밖에 쓰지 못했단 말입니다.-_- ; 이승만은 후에 대통령에서 짤리고 임시정부의 지도자로 김구가 선택되죠. 같은 시기에 식민지의 젊은이들은 일제시대에도 불구하고 31절에 만세부른 경험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에 대한 본격적인 전민족적 저항인 31운동은 전국으로 파급되어 다수의 민중이 참여하여 전개되었다. 온나라 방방곡곡을 휘몰아친 이 민족운동의 열풍은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쳤다. .. 그렇지 않더라도 젊은이라면 대부분 산에 올라가 만세를 부르거나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른 경험을 한번쯤은 다 겪었다. 149P'
한편 광복이후 이승만은 심지어 반민특위도 무력화했으며 친일파도 등용했습니다. 저자는 '이승만에서 최규하에 이르기까지 30년 이상의 시간을 친일과 연관된 대통령이 최고권력자였으니 다른 분야는 더 말할 것도 없다.'라고 비꼽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는 미래도 없다. 과거를 기억하고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려고 하는 이유는 과거 자체를 바꾸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위한 역사적 교훈을 얻는데 기억과 청산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227P'
C.현대
현대의 가장 큰 불행은 '한국인이 한국인의 손으로 일구어낸 독립'이 아니었다는데 있을겁니다. 역으로 다른 나라의 정부의 말에 따라, 반공 이데올로기로 반으로 갈라진 나라에서, 심지어 민족적 반탁운동도 잘못된 정보에 따라 반공운동으로 변질되었죠.
'1948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 일제의 식민통치와 독립운동의 경험이 만든 국가라면 1954년의 대한민국은 냉전체제 속 열전이었던 한국전쟁이 만든 국가였다. .. 한국전쟁이 종결되자 더이상 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싼 경쟁, 정통성경쟁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 반공주의가 전면적으로 득세하게 된 것이다. 78P'
한편 한국전쟁 관련 가장 큰 비극은 바로 민간인 학살에 있습니다. 당시의 조종사들은 그냥 '흰옷을 입은 사람을 맞추라'라고 들었다고 하는데.. 역사가 참 개판이죠.
'한국전쟁의 놀라운 진실은 비전투원 민간인 희생자들의 수가 전투원 희생자 수를 훨씬 상회한다는 것이다. .. 당시 정밀폭격의 실체는 정밀이라는 표현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 우선 B-29기의 전략목표가 평양, 원산 .. 등과 같은 대도시 인구밀집구역에 집중되어있었다는 사실부터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밖에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생각보다 대국(미국)외교를 잘한게 아니란 얘기도 좀 나옵니다. 뭐 그런 것도 있지만 현 국정원 과거 중앙정보부도 개판이었단걸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도 잠깐 나옵니다. 역시 한홍구씨가 쓴 내용이고요.(...)
'(김대중 납치)사건 수습 과정에서도 박정희 정권은 일본에 큰 망신을 샀다. 김대중 납치에 관계된 사람들은 .. A급 요원들이었다. 그런 에이스들이 김대중을 납치하려고 대기하던 호텔방 물컵에 버젓이 지문을 남긴 것이다. 중앙정보부 요원이었음이 빼도 박도 못하게 드러났다. .. 일본 신문들은 한국요원들은 장갑도 안끼냐며 비아냥댔다.'
하지만 분명한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만큼 하층민도 고루 피를 흘린 민주주의도 드물다는 부분이 있을겁니다..
'419혁명때 총구 앞에서 목숨걸고 싸웠던 사람들 중에 도시하층민이 많았다. 419당시 희생자 통계를 보면 전체 사망자 186명 가운데 .. 하층노동자는 61명이나 되고 무직자는 33명이다. 하층노동자란 신문팔이, 껌팔이, 넝마주이, 날품팔이, 구두닦이 등이다. 무직자는 직업조차 없는 사람이다.'
민주주의란건 결국 민중운동으로 인해 나타난 개념입니다. 광복 이후 우리 민족의 경우엔, 피가 끓는 일이 일어나면 부패한 지도자를 몰아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1. 419로 말미암아 이승만을 하야시킨 일이고, 2.YH여공시위 등으로 박정희를 10.26 김재규의 총탄으로 죽게 만든 일이 그러하며 3.87년 민주화운동으로 전두환을 몰아냈고 4.촛불시위로 박근혜라는 과거의 망령을 하야시키고 수감시킨 것이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한홍구씨의 일성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새끼 박정희(전두환,노태우)들은 광주를 피로 물들였다. 광주이야기를 할때 가장 가슴아픈 대목은 마지막 날 도청에 남은 사람들 이야기다. 5월 26일 밤 '도청에 남아야 할까, 집에 가야 할까' 선택의 기로에서 끝까지 그곳에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모두 집에 돌아갔다면 광주는 없는 것이다. 그날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들에게 진 빚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하고 열심히 살았다. .. 만약 그날 도청에 남았던 분들이 ..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이고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 답해야 할까? 여전히 지금과 같은 현실이 계속되어 대통령은 유신잔당 정도가 아니라 유신공주가 하고 있고, ..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은 정규직인 나라라면, 그때 그분들이 도청에 남는게 맞았을까? 유신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광주도 떠나지 않았다.'
마칩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