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도쿄에 거주 중인 외노자 아저씨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와이프가 허리를 다쳐서 야밤에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다녀왔습니다. 아내도 저도 119에 전화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가게 된 건 처음 있는 일이라 긴장 넘치는 경험이었는데요. 다행이 큰 일은 아니지만 혹시 다른 분들께 참고가 될까 싶어 부족하지만 짧지 않은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닥치고 스콰트!!
석달 전부터 와이프랑 같이 집 앞의 헬스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와이프 몸이 like 마시멜로.. 인데다 운동과 담쌓고 살아온 터라 지난 석달간 맨몸운동부터 꾸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시작한 바벨 스콰트에 허리를 삐끗 해버렸네요. 스콰트 하는 중에는 멀쩡하더니 마무리 스트레칭 하다가 고통이 급 몰려온 모양입니다. 마시멜로씨가 살다살다 운동하다 다치는 날이 오는구나 하면서 그 와중에 서로 낄낄대며 집에 들어와선 찜질하고 파스 붙이고 누워만 있었죠.
며칠 쉬면 낫겠지 했는데 와이프가 저녁내내 끙끙대더니 밤 12시가 넘어가도록 잠도 못자고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스러워 하는 겁니다. 참 답답하더라구요. 찜질해주고 움직이는 거 도와주고 손 잡아주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진통제를 먹어도 느낌도 안 온다고 하고... 밤 1시가 넘어가자 얼마나 아픈지 급기야 펑펑 우는데 이쯤되니 제가 반쯤 패닉상태가 되더군요.ㅠㅠ 척추에 문제가 있을 지도 몰라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생전 눌러보지도 않았던 번호 119를 떠올렸습니다.
■구급차 불러도 되나? 일단 상담부터
덜컥 겁이 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러본 적 없는 119.
서바이벌 일본어 구사자인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이정도 증상에 구급차를 불러도 되나 하는 걱정.
비용에 대한 두려움.
와이프는 울며 비용 물어보고 비싸면 부르지 마라고 하질 않나. 이 상황에서 돈걱정 따위 해야한다니 매우 서러웠지만 침착하게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도쿄 소방청 구급 상담 센터 번호
#7119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 상황에서 구급차를 불러도 되나?" 난감해 하실 겁니다. (교통사고라든지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때라면 당연히 119입니다만) 그래서 도쿄 소방청에서는 24시간 구급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어서 전화로 상황판단을 도와준다고 하는군요.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지 또는 근처 가까운 응급실이 어디 있는지, 응급처치 하는법 등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저도 일단 상담센터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운동하다 허리를 다쳐서 저녁내내 아파한다, 움직일 수가 없다, 밤인데다 가까운 응급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등등 상황을 이야기하니 오퍼레이터 분이 의사와 상의를 하고 오더니 119에 연락해 구급차를 부르라고 합니다. 그렇게 용기를 얻어 119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렀습니다.
■TV에서 보던 구급대원들이 등장
소방청의 구급차 이용 매뉴얼(한글)
https://www.fdma.go.jp/publication/portal/items/portal002_korean.pdf
전화가 연결되고 화재인지 구급인지 물어봅니다. 구급이라 대답하고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몇 분 내로 구급차가 도착할 거라고 합니다.
울면서 꼼짝도 못하는 와이프를 두고 의료보험증과 지갑, 신발과 옷가지를 챙겼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10분 정도 뒤에 앰뷸런스가 울리더니 구급대원 세 분이 도착했습니다. 이 더운 여름에 긴팔의 두꺼운 옷을 입고는 현관에 들어서는데 제 눈엔 영웅의 등장이었습니다.
제가 서류 작성을 돕는 동안 두 분이 능숙하게 대응하더군요. 바퀴달린 기다란 의자에 와이프를 옮겨 앉히고는 1층까지 내려가서 대기하고 있던 침대에 눕히고 구급차에 올랐습니다. 이동하는 내내 아파하던 마시멜로 와이프도 안심이 되기 시작하는지 표정이 나아집니다.
구급차가 출발하기 전에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 보호자인 저와 상의를 합니다. 제가 근처에 아는 병원이 없어서 야간 진료가 가능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원 분이 그 병원에 전화를 하더니 지금 환자를 봐 줄 수 있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없고, 여자 1명이 입원할 수 있는 자리도 없지만 진찰과 응급처치는 가능하다고 해서 그리로 가기로 했습니다. 몰랐는데 저희 동네 바로 다음 전철역 근처에 작은 종합병원이 있더군요. 가까운 응급실이 어딘지도 모르고 살았다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구급차 침대에 누운 마시멜로씨 옆에 앉아서 구급차 내부를 둘러봅니다. 미드에서 자주보던 광경이라 신기합니다. 하지만 고통받는 환자가 내 아내라 가슴이 아픕니다.
출발하며 리더가 운전자에게 말합니다. 허리 다친 환자니까 안 흔들리게 천천히 몰라고.
■영웅의 퇴장
몇 분 지나지 않아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립니다. 대략 한 시간 반동안 와이프는 뢴트겐도 찍고 진통제도 맞습니다. 구급대원 분들은 환자를 데려다만 주고 바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응급실 일을 잠깐 도와주는 경우도 있나봅니다. 그렇게 한참 뒤에 다른 곳으로 출동한다며 병원을 나서는 앞에서 90도로 숙여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뭔가 더 처리해야할 절차가 남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구급대원 분들은 그냥 쿨하게 떠나버렸습니다.
■귀가
새벽 3시 정도에 와이프가 진찰을 마치고 걸어!!나왔습니다.(메르시가 다녀갔나!!??) 커다란 베이지색의 의료용 복대를 차고서 말이죠. 정형외과 전문의가 없으니 지금은 진통제(좌약이었다고.ㅠㅠㅋㅋㅋ)로 버티고 낮에 다시 오라고 하더군요. 진료비는 제가 당장 가진 현금이 없어서(카드 결제가 안 되는 병원이었습니다) 접수증 한 장 받고 낮에 진료 받으러 다시 와서 한꺼번에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에어컨 켜고 와이프를 겨우겨우 침대에 눕히고 저도 옆에 눕고 나니 지난 몇 시간 동안 겪은 일이 꿈같았습니다. 이거 실화냐..
저는 회사를 쉬기로 하고 오전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와이프를 부축해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다행이 뼈나 신경에는 문제가 없다더군요. 근육이 크게 놀란 걸로 보이니 약 먹고 파스 바르고 며칠 상태 보다가 아프면 다시 오라고 합니다. 아픈 것도 꽤 줄어든 듯하고 느리지만 천천히 걸을 수도 있으니 안심이 됩니다. 당분간 마시멜로 와이프는 요양 라이프 확정이군요. 이번주 메뉴도 제가 만드는 카레로 확정입니다.
또 다른 걱정이었던 진료비는 의료보험 덕분에 큰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역시 야간 진료비가 비싸서 약값 포함 총 금액이 2만엔 조금 넘게 나왔는데 제가 부담한 금액은 7천엔 정도로 끝났죠. 구급차는 비용이 안 드는 거였어요. 이번만큼은 왕창 나가는 세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끝으로
곳곳에서 밤낮으로 일하시는 소방서 분들, 구급대원 분들, 의사와 간호사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껏 운 좋게 크게 안 다치고 살아와서 잘 느끼지 못했는데 여러분 덕에 이 사회가 제대로 기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벨 스콰트는 충분한 워밍업과 안정된 자세가 중요합니다. 무게에 욕심 부리지 맙시다. 인생은 길잖아요.
정신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운동 초보에게는 바벨보다는 덤벨 고블렛 같은 것이 더 안전할지도 몰라요
아직은 덤벨일까나요. 다쳐서 맨몸으로 돌아갈 것 같지만요.ㅎㅎㅎ
이번에 대통령 잘뽑아서 뿌듯합니다. 드디어 염원이었던 소방전문병원과 처우개선에 힘을쏟는다고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고마워서 음료수 한 상자 챙겨드렸는데 받을 수 없게 되어있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한사코 거절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소방관님들 처우 개선된다니 제가 다 기쁘네요.
해당 금액이 넘지 않는다고 해도 껄끄러워서 아예 받지 않는 경우가 많구요.
그나마 일하고 욕먹는경우도 부지기수라 고맙다고 인사만 받아도 괜찮습니다.
부패방지의 첫 단추인 부패방지법을 나쁘지 않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서 쾌차하시길 바라고요. 서서히 요가나 필라테스를 해보시길 권해드려요. 큰일 아니라 다행입니다!
요가는 제가 하고 싶습니다.ㅠㅠ
매달 월급에서 보험료 나가는 거 보고 궁시렁거렸는데 이젠 아닐듯 합니다.
근데 한국어 매뉴얼이 있다는 건 여러모로 충격이네요...
저도 한국에서 매우 흡사한 상황으로 119 불러본 적이 있습니다.
보험 적용전 금액은 기억 안나는데 병원비 17만원, 약값 1만 3천원 가량 들었습니다.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일단 응급실 접수하면 7만원이라고 하더군요.
이어지는 치료과정이 더 신경 쓰이긴 하지만요.
자칫 잘못하면 허리 삐끗인데 특히 바벨 들고는 진짜 조심하셔야됩니다
ㅠㅠ 타지에서 아프면 서러우니 몸건강히 조심운동하세요
아웅신나님도 조심하세요.ㅠㅠ
물론 낸 세금이 많기 때문에 당연하겠습니다만.. ㅠㅠ
또 이럴때는 보험 아니면 어쩌나 싶고 참 사람 마음이 이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