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사용기게시판에 아마추어 무급 리뷰어로 정착해있습니다. PC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다른 리뷰도 읽기 원하신다면 아이디(kabazus나 사과군주) 닉검색을 해주세요
음. 사실 이 책을 리뷰한 이유는 3기에 와서 써왔던 리뷰들들을 돌아봤더니, 하나같이 정치-역사-경제쪽이었다는데 있습니다. 사실 이번 3기는 그닥 인기있는 시리즈도 아니지만 그냥 마지막에 통일성을 넣고 싶었달까요-_-a
일단 이 책은 이동형(이작가)가 '이이제이' 방송 이전 2년동안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모아 출판한 책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선 약간 통일성이 떨어집니다만(특히 '영원한 라이벌'이라 붙인 라벨을 생각하면)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의 삼김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박정희때부터 김대중 당선까지의 현대사를 나름의 해석을 붙여 진행했다는 점에서 도리어 점수를 주었습니다.
일단은 책 구성 자체가 전에 소개한 책인 '와주테이의 박쥐'처럼 매수가 적은 책이 아닙니다. 500P를 넘기면서도 김대중 정권 당시가 아닌 김대중 대통령 입성까지를 다루는 여백의 미를 가지고 있죠.(이하 전대통령 호칭은 뺍니다.)
김영삼의 경우엔 승부사 기질과 함께 배짱(머리는 없었지만)이 있었고, 반면 김대중의 경우엔 심사숙고를 거치고 논리적이지만 그 때문에 둘다 야권에 있었을 때에 도리어 가장 예측불가능한 인물이 김영삼이었단 부분이 재미있었던 부분이었죠.
'두 양반들이 없었으면 민주화는 아직 오지도 못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둘다 섬 출신이라는 점은 같지만, 김영삼의 경우 거제도 섬마을에서 도련님으로 컸고, 한편으로 김영삼의 아버지가 마을의 개종을 원할 때 전부 개종할 정도로(...) 영향력이 지대한 지역에서 컸습니다. 김대중의 모친은 반면 아버지 김운실의 정실도 아니었던 반면, 전라도에서 최고의 수재만 들어간다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죠.
김영삼의 아버지같은 경우 '공부는 못해도 배짱은 있어야지'를 모토로 삼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아버지의 영향때문인지 김영삼은 후에 3당합당(1992년 대선)을 하여 대통령에 김대중보다 먼저 입문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의 경우 약관의 나이에 경리사원에서 대표를 맡게 되었는데요. 광복 이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면서(1950년 이전이라니 감이 안잡히죠=_= ;) 1957년 천주교 세례를 받는데 이때 대부가 장면이었습니다. 김대중은 민주당으로 입당했는데, 국회의원 뱃지만큼은 달지 못했죠.
반면 김영삼의 경우 유지의 아들로서 성공리에(20대에) 국회의원 뱃지를 답니다. 그러다 1969년 박정희의 3선개헌에 불쾌감을 가지고 있다가 자유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을 입당합니다.
419당시 김영삼은 2선을 했던 반면, 김대중은 벌어놓은 돈도 다 까먹고 부인 차용애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죠. 장면은 1960년 그를 대변인 자리에 앉히고 1961년 보궐에서 김대중은 드디어 금배지를 달게 됩니다. 516쿠테타가 터지자 '쿠테타는 쿠테타고 나는 당선증을 받아야겠소' 하고 서울까지 올라갔었죠^^; 10년 넘은 원한이 전부 다 나왔을 듯 싶습니다.^^;
김영삼은 윤보선의 민정당을 택해 민정당 초대 대변인을 맡은 바 있습니다. 김대중은 이 당시 이희호 여사와 처녀 재혼을 하게 되었죠.
419에 이어진 516쿠테타로 만들어진 정부는 뭐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정상적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정치의 경우 일본은 수상으로 대표되는 얼굴마담 뒤에 보수우익 인물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수족으로 야쿠자들이 있었다고 하죠. 금뱃지 단 인물들이 뒤에 있지 않는 한 야쿠자나 조폭같은 족속들이 일본이나 한국같이 태생적으로 치안이 뛰어난 나라에서 살아남는다고 보긴 어렵죠.
이때 만들어진 한국정부는 일본과 상당한 밀월관계에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상관이었던 세지마 류조와 기시 노부스케(아베 외조부), 고다마 요시오같은 세 사람들이 그때 당시 박정희 정부와 잘 통했던 모양입니다.
정건영, 고다마 요시오, 기시 노부스케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가훈장을 받았다고 하죠.
1968년 당시에 김영삼과 김대중의 일차 충돌이 있었는데, 원내총무 자리를 계속 맡았던 김영삼은 이 당시 자리를 피함으로서 김대중을 원내총무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하죠. 그 다음 이차 충돌로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합니다. 김대중이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죠. 이때 그의 연설에 100만인파가 모여들자 박정희 정부는 경상도 정권을 지켜내야 한다는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시작합니다. 이승만과 같이 고무신을 돌리던게 먹히던 시절이어서 상황도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만, 박정희와 김대중의 표차는 불과 95만표가 났죠. 결국 박정희는 1972년 김기춘을 시켜 유신헌법을 만들고 유신을 선포합니다.
요새 뉴스 보면 김기춘같은 경우 그렇게 오래 해먹고도 왜그렇게 또 해먹으려고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만..-__ ; 김기춘의 이름은 후에 초원복국집 사건(1992)에도 고대로 나옵니다.
유신당시 김영삼은 미국에 있었는데 '죽어도 한국에서 죽겠다'라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택연금을 당했죠. 반면 김대중의 경우 당시 수상한 교통사고가 있어서 요양차 일본에 가있던 상황이었습니다.(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 다리를 절었는데 이때 교통사고와 후에 나오는 고문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죠.) 김대중은 아예 망명을 결심하고 미국, 일본, 캐나다 등을 돌며 반독재 반유신 투쟁을 전개해나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놀란게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연속으로 김대중이 노벨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는겁니다. 물론 노벨상이 깨끗한 상인지에 대해서는 분분합니다만-_-a(요새 보면 국제정치적인 논리가 너무 강해서;) 적어도 세계가 보는 눈이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는 부분은 알 수 있겠죠.
1973년 이른바 KT공작이라 불리는 김대중 납치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때 미국의 CIA가 움직이고 김수환 추기경, 장준하, 함석헌, 김동길을 비롯한 재야인사들이 유신반대를 향해 움직이면서 김대중은 겨우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1974년 육영수 암살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때 국모의 죽음으로 학생운동의 저항을 받고 있던 유신정권은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죠. 한 편으로는 베트남전에서의 미국 패배로 반공분위기가 사회를 덮치기도 했습니다.
장준하사건이 일어나자 김대중은 성명서를 작성하고 1976. 3.1 민주주국 선언을 합니다. 이 때 당시 징역으로 대부분 5년형을 받았죠. 김대중에게 붙어다니는 꼬리표중에 '배신하는'이 있는데, 이철승같은 사람이 김대중을 이 당시 사식을 넣어주는 등 물심양면의 도움을 펼쳤지만 김대중은 1979년 김영삼이 총재가 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도왔습니다. 그 밖에 김대중의 경우 정계은퇴선언을 여러번 했지만 결국 다시 정계에 복귀했죠. 어떻게 보면 왜 결국 하지도 못할 은퇴를 선언했는지, 그로 인한 불이익을 왜 받아야 했는지 이해는 안갑니다만^^; 지나간 역사엔 IF가 없는거겠죠. 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 후에 후회할만한 선택을 자주 하긴 했습니다.
1979년 YH여공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영삼은 여러모로 배짱이 있는게 이 당시 지휘하던 사람의 멱살을 잡더군요^^; 결국 군부가 몰아닥치며 이때 김영삼도 같이 폭행을 당합니다만(...) 미국의 경우 동년 8월11일 미국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책임자의 징계를 강력히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그동안 한-미-일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박정희 정권에게 있어 이 규탄은 청천벽력에 가까운 것이었죠. 또한 이 논평에 의해 유추되어 김재규가 10월26일 박정희를 암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동년10월4일 공화당은 날치기로 김영삼 국회의원 제명건을 통과시킵니다. 10월16일 부산대생의 데모로 시작된 사태는 후에 부마항쟁으로 불리게 되었죠. 이작가(이동형)이 제기하는 IF는 이 책에서 두세번정도밖에 등장하지 않는데, 1026사건 이후 김재규가 구속되었을 당시 이 수사를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맡지 않았다면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까를 보더군요^^a; 딱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자리에 전두환이 있었다고 해야 하겠죠.
미국의 경우 전두환 암살까지 생각하고 전두환에 협조적이지 않은 한국군 내 군인들을 포섭했습니다. 전두환은 경비를 강화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죠. 당시 학생회장 심재철이 10만명의 학생을 회군하는 사태가 1980년 5.18일 광주사태 3일 전에 벌어졌습니다. 10만명이 서울역에서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과연 광주사태는 벌어졌을까?에 대한 의문을 이작가는 제기하고 있습니다. 심재철은 신군부를 도와주는 히어로 신세가 되고 김대중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내란음모죄만으론 사형이 안되니 반국가단체결성까지 죄목을 물었죠.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DJ는 다리를 못쓰게 되어버립니다. 1982년 2월에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전두환 정권이 미국으로 쫒아냈죠. 반면 김영삼은 가택연금되고(두번째던가 세번째던가-_-a) 1983년 단식투쟁을 벌이죠.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생정당이 제1야당 민한당을 더블스코어로 누르는 일이 발생했죠. 이 훈풍 사이에서 1986년 김대중은 대통령선거에 불출마선언을 했습니다만, 결국 출마하여 약속을 저버리고 군부정권을 연장시켰다고 해서 그를 괴롭히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여당이 일본의 기업의 돈을 받아 정치를 한 구조였죠. 1961년에서 1965년 사이 공화당 예산중 2/3이 일본에서 받았단 얘기가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도 지하철을 놓는데 전철가격을 두배로 사서 일본정치인을 도와주던 구조였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아이디어는 세지마 류조라는 일본 우익 인사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죠.
일본 우익의 경우 1. 지정학적인 이유, 2.돈때문에 한국을 도와주던 사이였죠.
전두환의 629선언 뒤에 김대중과 김영삼 두 사람의 길은 완전히 틀어집니다. 후보 단일화가 물건너가고, 김대중이 여의도 집회에서 130만 인파를 동원했죠. 이 당시 김영삼도 130만 인파를 동원합니다. 노태우도 150만명의 인파를 동원했죠.
이 당시 칼기폭파사건이 있었는데, 대통령선거 전날 방송으로 온종일 김현희의 입국을 틀어댔습니다. 1987년 1월 체포된 김현희는 3월 27일 사형판결받았습니다만, 4월 12일 사면됩니다.-_- ;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하면 항상 보수후보가 이겼습니다. 그래서 항상 후에도 그런 시도들이 있었죠.
대선 당시 노태우가 36.6퍼센트, 김영삼이 28퍼센트, 김대중이 27퍼센트, 김종필이 8.1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만, 이작가는 후의 1997년 대선이나 2002년 대선같은 케이스를 보면 합쳤다고 해도 결코 용이한건 아니었다고 지적하죠.
1992년 대선때엔 3당합당의 주역 김영삼과 야권후보 김대중간의 한판승부가 펼쳐졌습니다.
대선 두달전 국민의 레드 컴플렉스 자극이 또한번 있었죠. 김대중은 이 당시 정계은퇴를 선언합니다. 조선일보같은 신문사도 '박수칠때 떠나라'라며 대대적으로 김대중의 정계은퇴를 신나게 보도했죠.
김영삼의 업적으로 꼽히던게 바로 하나회 숙청입니다. 금융실명제도 우려와는 달리 멀끔하게 지나갔다고 하죠. 다만 인사정책에 있어 재임기간동안 계속하여 인사참사가 일어났던 모양입니다. 사고도 끊이지 않았죠. 삼풍, 성수대교 등등..-_- ;
김영삼이 할게 없어서 나중에 세계화선언했을때 소통령이라 불리던 아들 김현철은 삼성자동차 등에 반대했죠. 김영삼 말기가 되자 '영원한 2인자' 김종필은 탈당을 합니다. 한편 1996년 12월 26일 신한국당 위원 154명은 단체로 국회본회의장으로 이동해, 노동관계법을 7분만에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재벌들의 손을 상당수 들어준 법안이었죠.
1997년 IMF의 미셸 캉드시 후보가 각서장을 대통령후보들에게 전부 받고 나서, 김영삼의 실정과 이회창의 아들의 병역문제, IMF, 이인제(김대중 정권의 최대공헌자(...))의 등장, DJP(김대중-김종필)연합 등 모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회창과는 40만표가 채 안되었다고 이작가는 지적합니다.
음. 마지막을 보면서 무슨 감정이 들었을까. 북한은 계속해서 요즘 미사일을 쏴대고 있습니다. 언론사의 발악도 알아줄만 합니다. 하지만 다시금 바람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또다시 신승으로 끝날 확률이 큽니다.
30년 전에 고문치사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10년 전에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며 이명박이 정권을 잡고 박근혜가 그 정권을 물려받았죠. 다른 나라라면 이미 끝났을 왈츠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편,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좋은 시대가 올거라는 가능성은 그닥 크진 않습니다. 황상민씨가 최근 한 북인터뷰를 팟캐스트에 실었는데 '좋은 대통령을 원하면 나쁜 대통령이 될겁니다'란 말과 같이 말이죠. 요즘 돌아가는 방향만 봐도 세계가 좋은 방향으로 돌아가기엔 썩 틀린것같이 느껴지죠. 유럽의 분열이라던가 미중협약설이라던가.. 북한의 행동이라던가(이번엔 북풍보단 미중세력간의 압력에 북한이 지레 뱉어내는 것에 가깝지만^^;)를 보면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올거란 보장이 없긴 합니다. 한-미-일이라는 삼각구도가 깨질지?에 대해서는 요새 깨질 가능성이 높아보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좋은 가능성은 아닙니다.
변화란건 꼭 좋은 방향으로 오진 않죠.
그래도 역사에 IF가 있다면?의 한 장을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느낌정도는 듭니다. 역사는 여전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책에 대해서는 꽤 재미있게 읽은 편이었습니다.
endless waltz편 마칩니다.
책은 더 재밌습니다^^
#CLiOS
다만 대통령되기 전까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이었는데 인물복이 없었죠(...아무래도 김대중처럼 갈퀴로 긁어대어 찾아내는 스타일은 아니다보니-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