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맥북 프로 터치바를 살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2016년형 12인치 맥북을 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기도 했고, 애플 1세대는 거르라는 말이 있었으며, 또한 실제로 터치바를 봤었을 때 생각만큼 큰 감흥이 있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좀 지나치게 비쌌어요. 저 많이 쓰이지도 않을 것 같은 터치바 하나 넣어주고, 약간 애매한 성능을 가졌으면서, 15인치 기준 2400불이 시작이라니. 세금 붙이고 나면 2600불이 훌쩍 뛰어넘는 가격이었거든요. 아무리 맥북이 좀 비싼 편이라곤 했지만, 좀 과했어요 이번엔.
그런 제가 맥북 프로 터치바 15인치를 구입하게 된건.. 그냥 뭐에 홀렸다고 봐야할 껍니다. 애플 스토어에서 몇번 가지고 놀다가 보니 터치바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디자인과 컬러가 마음에 들었으며, 바뀐 키감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덜컥 질러 버리게 됩니다. 여차하면 반품해야지, 라는 생각으로요.
원래는 맥북 12인치를 대체해서 13인치를 살까 했었습니다. 맥북 12인치는 매우 좋은 제품이지만, 생각보다는 문제가 많은 제품이었어요. 일단 발열과 쓰로틀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조금 무거운 동영상을 장시간 보다보면 프레임 드랍이 느껴집니다 (!!) 그때부터는 전체적으로 버벅이기 시작해요. 게다가 콘크리트에 대고 치는 듯한 키감은 정말 별로였어요. 그게 제 메인 컴퓨터였는데, 아무래도 가지고 다니며 가볍게 쓰긴 좋지만, 메인으로 쓰기엔 영 성이 안찼던거죠. 12인치라는 화면도 좀 작게 느껴졌고요.
그래서 15인치를 구매하게 됩니다. 12인치는 이곳저곳 가지고 다니는 용도로 쓰고, 15인치는 메인 컴퓨터로 쓰려고요. 이리저리 사는 국가와 도시가 자주 바뀌는 제 라이프스타일상 데스크탑을 사는 건 무리였고, 15인치 노트북 정도면 적당하겠다 싶었거든요. 어차피 이걸로 게임을 할 것도 아니고, 무겁지 않은 코딩 정도 할것 같아서 15인치 기본형, 스페이스 그레이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용량을 512기가로 올리고 싶긴 했는데 그랬다간 3천불에 육박하는 가격이 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처음 구매를 하고 포장을 뜯어서 보니 와.. 정말 감탄밖에 안나옵니다. 저는 애플 제품군 중 맥이 제일 좋아요. 13인치 맥북에어, 15인치 맥북 프로 레티나, 12인치 맥북에 이어 네번째 쓰는 맥북인데.. 여태까지 써본 맥북 중 디자인으로는 가장 좋습니다. 스페이스 그레이의 새로운 컬러는 중후한 매력이 있고 (비록 기존 12인치 맥북도 스페이스 그레이이긴 했습니다만은..) 터치바는 영롱하며, 한층 좁아진 베젤과 넓어진 트랙패드, 그리고 그걸 하나의 패키지로 말끔하게 마감한 알루미늄 바디는 예술품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앱등이 같긴 하지만, 사실 맥북을 마감면에서 능가할 노트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하니, 사실 맥 OS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이 없습니다. 회사에서도 쓰레기통 맥프로를 쓰고, 이미 맥만 여러대 썼기 때문에 새삼스레 OS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긴 좀 그래요. 하지만 터치바 맥북의 경우 초반에 소프트웨어가 잘 구동 안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은 실행만 시키면 크래쉬가 났고, 이유없이 배터리가 광탈할 때가 있었으며, 크롬이 좀 이상하게 반응하는 등.. 몇번의 업데이트를 거치고 나니 안정화 되더군요. 지금은 큰 문제 없이 쓰고 있습니다.
바뀐 건 하드웨어입니다. 일단 디스플레이가, 기존 15인치 맥북 프로 레티나에 비해서도 눈에 띄게 좋아진게 느껴집니다. 더 밝아졌고, 색이 좀 더 화사해 졌구요. 스피커? 최고입니다. 훨씬 좋아졌어요. 이제는 음악을 틀면 깔끔한 저음이 두둥 대며 느껴지는 게 왠만한 저렴이 블루투스 스피커 뺨칩니다. 키보드? 개인적으로 12인치 맥북에 달려있던 버터플라이 키보드는 참 별로였는데, 맥북 프로 터치바에 달려있는 2세대 버터플라이는 훨씬 괜찮아 진 것 같습니다. 조금 (사실은 많이) 시끄럽긴 하지만, 키가 조금 더 깊어졌고, 키를 눌렀을 때 느낌이 조금 더 고급집니다. 맥북의 트랙패드는 뭐 여전히 좋습니다. 이걸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기는 한데.. 보통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말할텐데, 이 경우에는 너무 커서 키보드 칠때 닿을까봐 좀 신경이 쓰일 정도였으니까요. 12인치 맥북과 비슷하게 트랙패드에도 포스 터치가 적용되어 기존 맥북을 쓰시던 분들은 좀 이질감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쓰다보면 익숙해집니다.
터치바는.. 사실 존재 이유를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터치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선이 분산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터치바를 보려면 액정에서 눈을 내려서 터치바를 봐야하고, 그 다음에 손가락을 가져가서 조작을 해야 하는데, 전체적인 workflow를 방해한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게다가 피드백도 없어서, 포스터치를 사실은 터치바에 적용을 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클릭을 했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게요. 커스터마이즈가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사실 그쪽으로 눈을 잘 가져가지 않아서 굳이 커스터마이즈를 해서 쓸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유일하게 쓸모있었던 건 동영상 재생 시 스킵하는 기능이었는데 그마저도 지원하지 않는 앱이나 사이트가 좀 있어서.. 아이폰의 3D 터치 때와 마찬가지로 애플에서 좀 뭔가 사용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때까지는 이건.. 있어서 나쁘진 않지만 400불씩이나 가격을 올리기엔 좀 기믹성 기능같아 보여서요.
기존 맥북 프로 레티나에 비해 무게는 가벼워지고 살짝 작아졌지만, 큰 차이를 느끼겠다, 싶은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좀 컴팩트 해졌네, 기존 맥북처럼 넓은 베젤때문에 구형 같아 보이지 않네, 이 정도의 의미는 줄 수 있겠지만, 크기나 무게면에서 썩 만족스럽지는 않더군요. 포트가 없어진 건.. 뭐 기존 맥북 12인치는 사실 더 했으니까요. 이미 블루투스 마우스를 샀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샀고, USB-C 타입의 외장하드를 샀고, 젠더도 이미 맥북 용으로 구입을 해놨었고. 저에게는 뭐 별 감흥이 없더군요. 이미 한번 당했던 터라.
전체적으로 보면, 잘 만든 맥북입니다. 디자인은 아릅답고, 액정은 훌륭하며, 키보드, 스피커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인데.. 이번엔 좀 과했어요. 한 400불은 깎아서 2천불 정도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았나 싶긴 한데.. 여전히 잘 팔리는 거 보면 그냥 저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거 같기도 하네요. 가격때문에 그렇게까지 추천하고 싶은 녀석은 아닙니다만, 노트북이 필요한게 아니라 최신의 맥을 쓰고 싶다면 사실 별로 선택지가 없긴 합니다.



사지는 못하고 애플판매처에서 만져보니 확실히 비싼 값은 하는거 같더라구요...터치바...으으...
델 XPS보다 약간 비싼 정도면 구매할 용의가 충만한데 말이죠
괜찮은거 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