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월-1974년 8월까지 갤럽의 국내 여론조사 추이
1줄 요약: 사상 초유의 美 대통령 탄핵과 하야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설립 멤버이자 지금은 고인이 된 앤드류 코후트의 글을 발췌요약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재선에서 낙승을 거둔 닉슨의 지지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2. 미국민들은 닉슨이 하야했던 1974년 중반까지도 탄핵에 반대하거나 신중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3. 탄핵안 하원 통과 당시에도 닉슨의 지지율은 24%를 유지했다.
4. 일단 여론의 향배가 바뀌자 국민들은 사퇴한 닉슨을 기소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사면을 반대하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5.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부통령 포드가 소위 국민화합 차원에서 닉슨을 사면하자
여론의 결정타를 맞고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카터에게 패배했다.
연표식으로 구성했습니다.
1972. 6월 17일 워터게이트 호텔 침입사건 발생
민주당 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하려던 5명의 현행범들을 현장에서 체포.
1972. 11월 대선 공화당 압승
(득표율 닉슨 60.7% vs. 민주당 맥거번 37.5%)
당시 갤럽 지지율 조사 닉슨 지지율 68%.
1973. 1월 닉슨 재임 임기 시작
1973. 4월 여론조사 지지율 48%로 추락
이때쯤 국민중 83%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인플레 발생에 따른 국민들의 우려와 맞물리면서 지지율 추락 시작.
1973. 5월 상원 특별위원회의 '워터게이트 청문회' 시작 (TV 중계)
국민 71%가 청문회 방송을 시청한 적이 있다고 답변.
이중 21%는 10시간 이상 시청 경험.
1973. 8월 지지율은 31%로 하락.
여론 조사결과 국민 71% 이상은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탄핵 또는 하야를 원하는 국민은 26%.
탄핵 소추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61%.
1973. 10월.
집무실 녹음테이프의 제출을 요구하는 특별검사.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는 닉슨.
닉슨의 특별검사 해임 지시에 법무무 장관은 불복하고 사퇴.
법무부 차관도 이를 거부하고 사임.
소위 '토요일밤의 대학살(Saturday Night Massacre)' 사건.
1973. 11월.
일련의 극적인 사건전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민 51%는 탄핵을 반대했다.
1974. 3월
특별검사와 사법부는 할데만 백악관 비서실장을 비롯한 닉슨 핵심측근들을 기소.
아직도 국내여론은 대통령 탄핵을 놓고 양분된 상태.
1974. 6월.
탄핵찬성 44% vs. 탄핵반대 41%
1974. 7, 8월.
대법원, 닉슨에게 녹음 테이프 제출명령.
하원 법사위원회 탄핵안 심사 및 결의안 가결
일련의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야 국민여론은 탄핵찬성(57%)으로 돌아섰다.
1974년 8월 9일
닉슨 하야 성명.
출처:
How the Watergate crisis eroded public support for Richard Nixon
퓨리서치센터
하루 빨리 민주당이 탄핵에 앞장 서야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물 건너 사례를 퍼왔습니다.
법무부 차관도 이를 거부하고 사임."
한국은 절대 이럴 일은 없어보이는데요. 그리고 그게 엄청나게 큰 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