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신라부흥운동은
역사적 논쟁거리 중 하나인데,
그 중에 이비,발좌의 난은 다들 의견이 일치하는 편이지만
김사미,효심의 난에 대해서는 학자간 이견이 있는 편입니다.
편찬위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정리된 걸 보면
일단, 김사미 효심의 난을 신라부흥운동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역사적 사료로 봐도,
해당 운동은 신분해방이나 농민 반란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단지 신라부흥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건 것 뿐이죠.
그래서 교과서에서도
김사미 효심의 난은 사회동요기 속의 반란으로,
이비 발좌의 난만을 신라부흥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통론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제 수중에 현재 없군요. ;;
역사적 논쟁거리 중 하나인데,
그 중에 이비,발좌의 난은 다들 의견이 일치하는 편이지만
김사미,효심의 난에 대해서는 학자간 이견이 있는 편입니다.
편찬위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정리된 걸 보면
일단, 김사미 효심의 난을 신라부흥운동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역사적 사료로 봐도,
해당 운동은 신분해방이나 농민 반란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단지 신라부흥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건 것 뿐이죠.
그래서 교과서에서도
김사미 효심의 난은 사회동요기 속의 반란으로,
이비 발좌의 난만을 신라부흥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통론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제 수중에 현재 없군요. ;;
애초에 시작이 단발적인 민란이었고
그것이 연대되면서 규모가 커진 것인데
어떠한 신라재부흥이라는 대의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말씀하신바에 동의합니다.
추가로... 아랫쪽 글에서 언급된 이비의 난 같은 경우도, 신라부흥운동이라고는 해도.. 그 세력이 미미했고 정통성 역시 없었기에.. (거기다 주변 군현을 협박하고 약탈..) 대의도 없고 그저 사회동요기(무인정권 - 최충헌)의 민란중 하나로 보는게..
나오기 상당히 힘들고 있었다 하더라도 일부 지역에 한정된 소규모였을겁니다
그리고 고려 개국당시 고려에 신라가 흡수되면서 당시의 지배계층들은 사회지도층으로 지위를
어느정도 인정받았구요
오히려 신라 부흥운동이 있는게 이상하다고 보여집니다
신라는 경주 출신 귀족 이외에는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지도 않았던 나라입니다.
결국 경순왕이 귀부한 것이기에
고구려,백제와는 다르게 부흥운동의 정당성을 찾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