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게임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자랑하는 코나미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갑작스러운 조직재편에
인기 제작자의 퇴사, 침묵을 지키는 수뇌부. 2015년 3월기부터는 게임 소프트 판매실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베일 너머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간판 제작자의 '유폐'
코나미 본사가 들어선 도쿄 롯폰기의 도쿄 미드타운 이스트. 그 10층에 이번 3월 조직재편으로 신설된 '제8 제작부'
사무실이 있다. 그들은 예전에 '코지마 프로덕션'이라는 이름이었다.
'이런 짓을 계속하면 소송 사태가 벌어진다.' 코나미의 어느 젊은 사원이 분노한다. 요 4개월 남짓, 제8 제작부의
사원이 사용하는 PC는 인터넷 접속이 차단된 상태다. 유능한 기술자들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당하고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제8 제작부를 이끄는 코지마 히데오(51)도 정보발신을 금지당했다.
코지마 히데오라고 하면 게임 업계뿐 아니라 크리에이터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87년에 코지마가
개발한 '메탈기어'는 적의 기지 내에 잠입해 몰래 첩보활동을 하는 새로운 타입의 게임으로, 그 영상과 무대설정의
현실성이 인기를 누려서 전 세계에서 히트해 코나미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 최신작인 '메탈기어 솔리드 5 팬텀 페인'은 이미 100억 엔이 넘는 개발비를 투자하면서 발매일을 몇 번이고 연기했는데
발매일인 9월을 앞에 두고 창조자가 '유폐'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코나미에게서 아무 연락도 없습니다. 이에 모모타로 전철은 정식으로 종료합니다.' 6월, 트위터에 올라온 메시지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글을 쓴 사람은 사쿠마 아키라. 주사위 놀이 형식의 인기 게임 '모모타로 전철' 시리즈의
창조자이다. 이 작품도 게임 팬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명작'. 개발사인 허드슨을 2012년에 흡수합병한 이후 코나미와
사쿠마는 라이센스를 나눠 가졌다. 하지만 최신작은 코나미와 사쿠마의 수익배분 조건교섭으로 암초에 부딪혔다.
■ '모모타로 전철'은 닌텐도로
코나미는 사쿠마의 투고에 대해 6월 '대화를 계속하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라고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교섭은 이미 좌절된 모양이다. 현재는 사쿠마와 닌텐도가 최신작을 개발 및 발매하기로
조정에 들어갔다. 발매는 내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이며, 코나미는 모모타로 전철을 닌텐도에 라이센스 아웃하여
최신작의 수입에서 라이센스료를 받는다. 코나미는 이대로 모모타로 전철 신작개발에서 손을 뗄 가능성이 크다.
'모모타로 전철'이나 '메탈기어'만이 아니다. 현재 코나미의 인기 게임이 차례차례 소멸위기에 있다. 이를테면
연애 게임 '러브플러스'. 팬들에게 '장인어른'이라고 불리며 친숙한 프로듀서 우치다 아카리가 3월에 갑작스레
퇴사해서 속편 제작 예정이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두근두근 메모리얼', '환상수호전' 등 고정 팬을 가진 시리즈의
신작개발이 정지된 상태다.
코나미의 중흥을 이끈 사람과 소프트를 잇달아 잘라내고 코나미는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게임사업은 10년간 4할 감소
'코나미의 분기점'. 어느 사원이 회상하는 것은 2010년에 발매된 휴대전화용 게임 '드래곤 컬렉션'이다.
개발비는 고작 수천만 엔. 그 '싼' 게임이 인기를 끌어 1달에 수억 엔 규모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시대는 소셜게임이야. 좀 더 소셜에 힘을 쏟게나.' 이 시절부터 창업자이며 지주회사 코나미의 회장인
코즈키 카게마사(74)는 주변에 이렇게 독려했다고 한다. 가정용 게임은 게임기의 성능향상에 따라 소프트 개발비가
치솟는 한편, 판매대수 감소로 인한 시장축소가 동시에 일어나는 역풍하에 있었다. 1개당 수십억 엔이나 드는 거액의
개발비를 회수하기 어려워지는 와중에 코즈키에겐 소셜게임이 '돈이 열리는 나무'로 보였을 것이다.
코나미의 2015년 3월기의 연결매상은 2,181억 엔. 이 중에 게임사업(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은 969억 엔. 최근 10년간
40% 이상 줄었다. 게임사업 중 4할을 '드래곤 컬렉션'의 히트를 필두로 한 소셜게임 부문에서 벌어들였다고 하니
가정용 게임과 업무용(아케이드) 게임의 수익은 10년간 3분의 1 정도로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게임사업의 사업이익(132억 엔) 대부분은 소셜게임으로 번 모양이다.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려보면 카지노 사업(게이밍&시스템)이 10년간 매상을 약 3배 늘렸다. 사업이익도 63억 엔으로
매상이익률은 2할 가까이다.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인 가정용에서 로우리스크 하이리턴인 다른 사업으로.
올해 3월 코지마 프로덕션의 소멸은 경영체제가 소셜게임으로 옮겨간 이후의 필연적인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억지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수법에는 회사 내부와 게임 팬들의 불만이 맺혀 있다.
'메탈기어 솔리드 5 발매를 반년 후에 앞둔 상황에서 인기 제작자인 코지마를 실각시키다니'
인터넷의 큰 반향에 당황한 코나미는 '새로운 메탈기어 시리즈 제작에 착수합니다' 라고 표명했지만
'코지마 감독이기 때문에 메탈기어에 가치가 있다.' 라는 것이 게임 팬의 마음이다.
이 상태라면 사람과 소프트로 쌓아올린 코즈키 왕국은 발끝부터 붕괴할지도 모를 추세다. '가정용의 우수한 제작자가
속속 유출되고 개발비가 떨어지고 있다. 상층부는 게임 기획의 장래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인재가 부족해서
투자 회수 계획을 세우기 쉬운 극히 일부의 시리즈 작품에 심취해 있다.' 라고 최근 퇴직한 OB는 털어놓았다.
이런 불신감을 한층 심하게 하는 것이 코나미의 폐쇠적인 경영 스타일. 코나미의 정보통제는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예를 들면, 사원은 자기 메일 주소를 가질 수 없다. 영업부 등 외부와 연락이 필수인 경우에만 알파벳과 다섯 자리
숫자를 무작위로 조합한 주소가 배포된다. 이 주소도 몇 개월마다 변경된다. 점심시간은 외출가능 시간을 정해두고
사원의 입퇴장기록을 타임카드로 관리. 규정시간을 넘겨 외출하면 위반자의 이름을 사내에 공표한다.
사무실과 복도의 카메라로 감시하는 것은 수상한 사람이 아닌 사원의 근무상황이다.
■ '좋아요'를 눌러서 이동
'못 써먹겠다' 라고 판단한 사원에게도 엄격하다. 예전에 유명 타이틀의 프로듀서로 찬양받던 제작자는 파칭코
공장에서 나사 돌리기와 같은 조립 작업에 종사하고 있다. 본사 1층에서 경비원이 되거나, 코나미 스포츠&라이프
산하의 코나미 스포츠 퍼실리티 서비스로 이동해 피트니스 클럽의 청소작업을 담당하기도 하는 제작자도 있다.
2014년 봄에는 사내에서도 이야깃거리가 된 '페이스북 사건'이 벌어졌다. 타사에 재취업한 사실을 보고한 코나미
OB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버튼을 클릭한 몇 명의 현역사원이 일제히 이동 통보를 받았다.
대상자 중에는 관리능력이 뛰어나 부하에게 신뢰받는 경영간부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목적은 '배신자는 용서치 않는다'라는 사원에 대한 무언의 압력.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지나친 관리체제에 의문을 가지는 사원이 늘고 있다.
게임회사의 자산은 2가지밖에 없다. 게임 타이틀과 인재다. 그 매력에 이끌려 게임유저가 모인다.
코나미는 지금 그 자산을 2가지 모두 손에서 놓고 유저에게서 버림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코즈케에게 취재를 여러 번 신청했으나 7월 31일 현재 취재는 실현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코즈키는 좀처럼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는다. 업계에서도 이채로운 경영자다.
1940년생, 교토 출신. 칸사이 대학을 졸업해 일본 콜롬비아에서 주크박스 영업에 종사했다.
69년에 오사카 토요나카시를 거점으로 코즈키 카게마사, 나카무라 요시노부, 미야사코 타츠오 3명이 창업.
73년에는 3명의 머릿글자를 따 '코나미 공업'을 설립했다.
주크박스 수리판매업으로 시작해 오락실 업무용 기기를 거쳐 80년대 중반에 가정용 게임시장 참여를 이뤄냈다.
이때부터 90년대에 걸쳐 '이 얼 쿵푸', '그라디우스', '메탈기어',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등의 히트작을 단속적으로 발매했다.
코즈키는 닌텐도의 故 야마우치 히로시, 남코의 나카무라 마사야, 캡콤의 츠지모토 켄조, 세가의 나카야마 하야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가정용 게임의 초창기를 살아온 '제1 세대'이다. 제1 세대는 주크박스나 완구회사에서 시작한
창업·동족경영자가 많다. 가식 없이 경쟁자와 서로 비난하며 떠들썩한 한편, 위기가 찾아오면 서로 돕는 길드 같은
요소도 있었다. 하지만 코즈키는 이 '무리'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코즈키하고는)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리듬게임 특허소송 등으로 다툰 남코의 나카무라는 예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게임의) 이미지가 안 좋아서 자식들에게도 내 직업을 말할 수 없었다.' 코즈키는 99년에 창업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01년, 코즈키의 본심이 살짝 엿보이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미 슬롯머신 등의
카지노 기기에 진출하고 대형 완구회사인 타카라(현재 타카라 토미)의 필두주주가 되는 등 주목받고 있던
코즈키에게 2건의 매수안건이 들어온다. 하나는 음반회사인 빅터 엔터테인먼트, 또 하나는 경영위기에 빠진
마이칼 산하의 피트니스 클럽을 운영하는 피플.
'이 이상 엔터테인먼트는 필요 없다.' 코즈키가 고른 것은 피플이었다.
■7명 중 4명이 동족
'나는 겨우 게임 이외의 사업을 손에 넣었다.' 700억 엔 이상을 투자한 피플 매수로 건강 서비스 사업에 착수한
코즈키는 직후의 경영회의에서 죽 늘어앉은 간부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공언했다고 한다.
'코즈키 씨는 「어차피 게임」이라는 세간의 풍조에 신경을 써서 「게임꾼」이라고 불리는 걸 싫어했다.'
경영회의에 참가했던 OB는 이렇게 밝혔다.
'원맨', '동족'과 같은 고루한 게임업계에 등을 돌린 코즈키의 경영은, 그러나 그에 이끌리듯이 집안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2012년, 지주회사의 사장직을 차남인 코즈키 타쿠야(44)에게 양도했다. 대표권을 가진 것은
코즈키 부자뿐이다. 히가시오 키미히코 이사(55)는 조카. 1981년에 입사한 업무용 게임기 개발자였던
타나카 후미아키 이사(54)는 사위다. 코나미 최초의 신규 졸업자 채용이었던 81년 입사자들은 사내에서도
특별시 되는 존재로, 그중에서도 사위인 타나카는 각별하다고 한다.
사내이사 7명 중 4명을 코즈키 일족으로 한다. 대주주에 이름을 올린 여러 자산관리회사의 소유주도 코즈키 일가다.
창업 50년을 눈앞에 두고 코나미는 변혁의 과도기에 있다. '돈 먹는 벌레'인 가정용 게임 사업은 앞으로
축소경향이 계속될 것이다. 붕 뜬 개발자금이 향하는 건 폭발력 있는 소셜게임 사업인가, 세계 유수의
슬롯머신 제조사로 자라난 카지노 사업인가,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사업인가.
어느 쪽이든 카리스마 경영자 코즈키 카게마사의 시선 앞에 게임 팬이 동경하던 'KONAMI'의 모습은 없다.
=경칭생략
(닛타 유지)
1차 출처 : http://www.nikkei.com/article/DGXMZO89986400R30C15A7000000/?dg=1
2차 출처 : (루리웹)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news/519/read?articleId=1806018&bbsId=G003&itemGroupId=32&pageIndex=1
러플은 어차피 못 만들어서 잘린거지만
#CL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