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구체적으로 반에서 남학생들사이 싸움순위가 메겨졌던거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8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남학생들사이 싸움순위는 곧 권력순위이고, 학교생활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싸움순위에따라 이른바 학교와 학교이외 생활의 질이 매우 달라졌으니까요.
전 어릴때부터 태권도학원에 다니고 키가 큰편이라 운동신경이 꽤 좋았습니다.
달리기빼고 멀리뛰기, 높이뛰기, 턱걸이, 팔씨름, 윗몸일으키기 등등은 거의 반에서 항상 일이등을 했었거든요.
달리기는 일이등은 못했지만 상위권에는 속했구요.
싸움은 운동실력에 비해 순위가 좀 떨어졌습니다. 대략 3~5등 정도 였습니다. 배짱이 많이 없었던거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순위얘들과는 순위뺏기지 않기위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높은 순위얘들한텐 반격을 못하고 일방적으로 맞곤 했었거든요.
당시 한반에 약65명, 남학생 약34,여학생 약 31 정도의 비율였던거 같습니다.
초등학교 5,6학년때엔 정말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가 다 메겨졌고, 한번싸움이 날때마다 그 순위의 변화가 상당히 빠르게 반영되었습니다. 전교등수도 1등부터 10등까지는 메겨졌던거 같구요. 서울 외각지역에 있는 학교였는데 한반에 60~70명, 학년 전체반이 13반에서 많게 16반까지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초등학교때처럼 구체적인 순위는 없었지만, 대략적인 힘의 세력이 생겨나기 시작하더군요.
좀 못사는 동네쪽의 패거리,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오는 아이들 패거리, 조직폭력배 휘하의 실질적 지배세력 등으로요.
저희 초등학교에서 그 중학교로 간 아이들이 많질않고, 지역적으로 교통이 애매한 위치라 전 어떤 패거리에 들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문인지 어떤 세력의 비호하에 있던 아이들이 많이 제멋대로 굴곤했었고, 전 얌전하게 있어야 했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크고 힘쎈 아이도, 그런 세력밑의 쪼꼬만 아이한테 일방적으로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혼자서는 어떻게 할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나봐요.
그러다 고등학교를 멀리 대전에 기숙사있는 학교로 들어갔습니다. 비연합(공부못하는쪽으로)의 인문계 고등학교인데, 시골에서 장학생으로 모셔오는 학생들(이친구들은 대부분 서울 상위권이나 경찰대,사관학교, 세무대 정도에 갑니다.)위주로 기숙사생활을 하는 학교였습니다.
제가 장학생으로 갔을리는 없구요. 아버지께서 그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중학교때 가출을 일삼아 잡아두려는 요량이었습니다.
전 어릴때부터 배짱이 많이 부족해 싸우는게 싫었습니다. 한편 싸움상위권의 권력은 정말 달콤하다는건 어느정도 맛보긴했었구요. 중학때는 초등학교때처럼 싸워서 이긴다고 순위가 올라가지도 않고 권력이 주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의미없는 싸움을 많이 하고 다녔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엔 이상하게 저한테만 유독 싸울일이 많이 들어오는게 왜그런지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된건데, 제 말실력이 너무 형편없었던것에서 기인했던거같습니다. 말로 충분히 해결할수 있는 문제를 어느순간 말로 풀어가는데 쓰이는 에너지는 딱 끊기고 주먹이 나가게되는 상황이라던지,말을 조리있게 하지못해 상대의 화를 돋군다던지 하는 식으로요.
여튼 중학시절 싸움은 정말싫어 고등학교들어가면 절대 안하리라고 그 긴 겨울방학내내 잘때마다 맹세를 하면서 자곤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계신 학교이기도 하고, 싸움안하고 공부만 잘해도 누가 안건드는 아이가 너무 부러운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들어온 첫째주 토요일(개학후4일째) 싸움이 났습니다.
대전이라는 도시도 낯선데, 반친구 얼굴도 아직 다 알지 못한때 쉬는시간마다 우리반 뒤에서 노는 얘를 같은반얘로 생각하고 가지고 놀고있던걸 나도좀 해보자고 하면서부터 일이 시작됩니다.
이전까지 대전의 새로운 아이들은 서울에서 온 저한테 상당히 호감을갖고 대하고, 매우 잘해줬거든요. 근데 이 친구는 거절을 하는거 였어요. 처음으로 거절을 받고 황당하면서 오기가생겨 몇번더 한번 해보자고(장난감갖고노는거-실을감으면 쥐세끼가 굴러가는거였음) 하니까 다짜고짜 아구창을 날리는거 였습니다.
저도 이것저것 생각할겨를없이 같은 반격을 날리면서 그친구는 쓰러지고, 꽤 크게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엉켜서 막 싸우다 풀어져 거리가 생기면 책상, 의자 집어던지고, 학생들이 너무 몰려와 교실이 쫍아 화장실로 자리 옮겨서 싸우고 했습니다. 너무 몰려서 결국 체육선생님한테 걸리고 상담실로 끌려갔습니다.
다행히 선생님들이 다 절 아셔서 맞진 않고 반성문만 쓰고 끝나는걸로 그일은 마무리 됐습니다.
싸움은 서로 누가 이겼다고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근데 알고보니 그친구가 중학교때 그 학교짱을 먹던녀석이었습니다.
일단 이런얘랑 싸우고나니 중학교때처럼 싸움걸어오던 친구들은 없어지더군요.
오히려 제가 싸움을 걸고 다니는 처지가 되버렸습니다.
옆반에서 책좀 빌리려는데, '남의반세끼 꺼져' 하는 소리가 들렸고 전 책을 못빌리고 나왔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몰랐기때문에 일단 조심했던거죠. 다음시간 옆반친구에게 누구냐고 묻고, 점심시간에 좀 보자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마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가 짱을 옥상에 데려가는것처럼 했던거 같습니다. 복도 주위에 학생들이 많았는데 가운데를 벌려주고, 전 그얠데리고 옥상으로 향했죠. 잘따라 오던 그친굴 아무 예고없이 뒤돌아 다짜고짜 때렸고 일방적인 승리가 되었습니다.
이 얘긴 제가 처음으로 싸울때 아무 예고없이 상대를 때린거라 기억이 많이 남아요. 이전까지는 대부분 먼저 맞고 반격하거나, 오랜 말싸움과 신경전끝에 주먹이 나가곤 했었기때문에요.
이 사건으로 선방의 중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결국 이후 고등학교시절 싸움은 무조껀 선빵을 쳤고, 무패의 전적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사람가면서 싸웠죠.
모든게 저한테 좋은쪽의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때도 조직에서 기르는 예비조직원이 몇명 학교에 있었고, 그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친구를 연합고사보기 몇일전 오락실에서 만나 꽤 가까운 친구로 두게되었습니다. 그시절 하던 오락은 스트리트화이터2였고, 서울 오락실에서의 도입이 대전보다 일이년 빨랐기때문에 거기에 빠졌던 저한테 대전에서 상대할자가 없었습니다. 백원가지고 몇시간을 했었거든요. 계속 달라붙어서.....그중 한명이었는데 이친구는 화내지도않고 도리여 저한테 말일걸어와 친하게 된거거든요.
이런 친구가 있으니 일단 진짜 강하거나 패가 있는 친구들은 다 친하게 지낼수가 있었구요.
서울에서 와, 기숙사에서 지내니 장학생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모범생이라는 인식이 심어졌구요.
실제로 성적이 계속 올라 장학생 바로 밑수준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반 15등에서 반2등 쭈욱, 내신2등급마무리:근데 장학생빼곤 잘하는얘들이 없어 서울인문계였으면 잘해야 15등정도 였을겁니다)
이러다보니 학교가 매우 편해지더군요.
고1때는 낯선환경과 엄한 선생님들, 기숙사 선배들로 별로 즐길틈도 없다 2학년때 미술부들면서 혼자만의 자유를 맘끽하고,
3학년 되어 내 세상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이외에 절 거드릴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반장이니 학생회장이니 하는얘들조차...
이런일까지 있었습니다.
고3 마지막 반장선거가 있었습니다. 전 한번도 반장이나 부반장 학급임원을 맡아해본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대학욕심도 그다지 없고해서 기념으로 반장이나 한번 하고 학창시절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고3 2학기 반장은 다들 마다하는건데 웃끼죠.
어쨋든 반장선거를 했습니다. 처음에 전 기권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반장 선거중 갑짜기 위해 말한거같은 생각이 확들더군요. 다시 한다고 하고서 후보명단에 이름을 넣었습니다. 투표하는 중에요....
결과는 부반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부반장은 하고싶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반장안한다고 기권한다고 다시하라고해서 반장선거를 두번이나 더하게 만들었네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시절엔 그 얄팍한 권력의 맛에 너무 나댔었습니다.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이 장면을 돌이켜보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네요.
공부잘하는 기숙사 친구들과, 세력의 패거리들 친구와는 아무 문제 없이 잘지냈지만 다른 반친구들한테 저란 사람의 모습은 아마 "개"이하로 기억될꺼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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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짜기 이런 싸움담 얘기꺼낸것은 제 자신을 홀라당 스스로 까보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그중에서도 고3시절의 제 모습은 가장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꺼리게 하는 부끄러운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적으로요.
하지만 가슴에선 고3시절을 제 인생의 꽃과같이 아름답게 기억하려고 하네요.
이성과 감성이 너무 다른방식으로 사건을 받아들이는거 같아 혼동스러울때가 많습니다.
지금한 얘기들은 10년도 더된 과거의 일이지만, 저 사건을 받아들이는 저의 자세는 현재이기때문에 뭔가는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물론 이성이 말하는 쪽으로요.
이러면서 또 끊임없이 드는 질문은 (원하지않는)감성이 이성을 통하여 적절한 감성으로 전환하는데 어떤 메커니즘이 발생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제 능력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좀더 구체적인 느낌을 원하고 있네요.
얼마전 괜찮은 브랜드의 꽤 희소성있는 바이크를 구입했습니다. 구입하기에 앞서 브랜드나 희소성 이전에 그 기능과 편리함에 가장 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타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가슴으로는 브랜드와 희소성을 뽐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너무 자연스럽게요. 사람 시선을 좋아하지 않는 저인데, 그런쪽의 생각이 계속들다보니 매우거추장스럽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언제까지 뽐내고싶은 마음이 생기는건 아닌거 같습니다. 몇주일 타다보니 슬슬 다시 기능성과 내가 이걸로 할수 있는거에 좀더 마음이 많이 쓰인다는걸 느끼고 있거든요. 물론 아직까지 과시욕은 남아있지만 곧 사라질꺼 같긴 합니다.
이처럼 제 감정은 결국 사회에서 좀 더 쉽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바뀌는걸 많이 경험해왔습니다.
그런데 싸움과 권력에 관계된 추억은 이성으론 반성하라고 하지만 여전히 과시하고싶은 욕구가 죽질 않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생각이 아니기때문에 제안에 고이 간직하거나 인터넷 게시판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만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외치든 적어버리는것이 고작입니다.
다른 분들도 저와 비슷한건지, 혹은 저만 이런건지...
아무튼 긴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ps- 지금 전 맘으로나 이성적으로나 남에겐 절대 피해 안주며 살아가자는 주의 입니다.
막말이나 욕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폭력적이지도 않고, 어떻게보면 내성적으로까지 보이는 사람이 됐습니다.
반면 제 잘못된 과오를 반성하고 부끄러워하지도 못하고 있는 이중적인 인간이기도 하군요.
빼먹은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부끄러워 했던 시기는 다른사람에게 가장 피해를 적게 준 중학교 시절이라고 가슴이 말하네요.
다들 자기만의 추억이 있는 거겠죠..
저야 어렸을때부터 덩치도 컸고(키는 반에 뒤에서 3번째 안에 거의 들었고 체중도 많이 나갔고) 성격도 둥글둥글했고,
이런말하긴 뭣하지만 공부도 아주 잘하는 편-_-이라서 싸운적은 거의 없지만, 고등학교때만 해도
같은 반 애들이 많을때는 일주일에 두어번씩 싸움을 하곤 했죠.
뭐 아무래도 성장기다 보니까 심리상태도 불안정하고, 반항심리도 있고, 남들 다 하니까 하는 마음도 있었겠고,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돌아보고 나면 뭐 다 별거 없었던 거 같습니다.
물론 피해자였던 아이들에겐 별거 아닌 일일수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그것보다도 지금이 중요하겠죠.
학창시절 주먹질 하던 친구들 별로 좋게 보이지않아 말이 좀 센거 같긴 하지만 글 말미에 적으신 내용을 보면 좀 세게 해도 될듯 하네요...
전 어느순간 부터 친구가 없어지더군요
그리고 어떤일이 잇어도 폭력은 않된다는 동네형의 말을듣고 중2때 바뀌엇습니다
덕분에 고등학교 진학하곤저희반은 짱이 없엇죠 노는 애들보다 싸움을 잘햇는데 싸우질 않고 그 쪽도 절 않건드렷으니까요
백곰씨님. 네. 치기어린자랑입니다. 동시에 왜 다른건 고쳐지는데 이건 안고쳐지는지 스스로에대한 질문입니다.
전 말로만 고쳐졌다는 위선이나 가식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고치고싶은데 안돼면 이런식으로 글을써서 좀 더 밖의 시각으로 내 문제가 뭔지 들여다 보고싶어지기때문에 적어본글입니다.
하지만 자랑할 일은 절대 아닙니다.
자랑할 수 있는 일은 저정도의 힘과 능력이 있다면 행패부리는 친구들로 부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을 보호해줬다는게 자랑 할수있는 일이겠지요.
남을 괴롭히면서 얻어낸 과시욕이 옳다고 보시진 않으실거구요.
전 학창 시절 후회스러운 순간이 괴롭힘 당한 친구들을 나몰라라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한 일입니다.
전 평범한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중간층 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비겁했다고 생각합니다.
p.s 대전은 제 고향이라 잘 알지요. 221번 버스가 서일고로 가더군요. 전 반대편으로 가는 221번 버스를 타고 다녔었습니다. ㅎㅎ
엇그저께 36 쳐먹은 사촌동생이랑 오랜만에 술 마시는데 아직도 중고딩때 잘 나가던 이야기 하더군요
거기에 34쳐먹은 내 동생도 동조하고 아니 오히려 더 잘난듯 자기의 이야기 하면서
완전 학교, 오락실(?), 집만 왔다갔다 했던 나로서는 먼 나라 이야기 ㅡ.ㅡ;;;
즉, 남자의 로망 아니겠습니까? ㅎㅎ
선생도 나 때리고, 학생도 나 때리고,
심지어는 가만히 있어서 맞았는데
교무실가서 선생이 한다는 말이 맞은데는 이유가 있지 않냐..
뭐 이런말도 듣고...
.
뭐ㅡ 그당시 겪었던 사람들을 '개' 이하로 기억하긴 합니다.
찾아서 맞은만큼만 때리고 싶기도 하지만,
짜장면 배달이나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뭐 다들 자신들만의 가치관이 있으니까요..
누구에겐 불행이었던 기억을 자긴 행복햇던 기억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는거군요...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잘나갔던 고삐리 동창 지근지근 밟아준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